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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50화 (15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50화

반드시 제대로 된 해금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가슴속에 차올랐다.

이미 여러 차례 해왔던 작업의 반복이었고 나는 명상을 통해 내 안의 우주를 유영했다.

‘해낸다.’

나는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할 수 있다.

해금술은 제약을 찢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나?

오늘의 나는 결국 실패하는 건가.

불현듯 두려움이 일었다.

순간, 집중이 흐트러지면서 에건 폴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철수를 앞섰다며 거들먹거리는 -물론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였으나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에건 폴의 표정이 아른거렸다.

‘에건 폴!!!’

순간, 내 우주 속에 작은 폭발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빅뱅이었고, 우주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 틈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는 듯했다.

‘지금이다.’

때로는 분노가 커다란 동기부여나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그와 비슷한 원리인 것 같았다.

정신세계가 특별한 힘에 의하여 폭발하였고, 그것이 내 해금술에 크나큰 힘과 원동력을 부여했다.

[특별한 제약이 파괴(해금)되었습니다.]

역시 하면 된다. 여태까지 괜히 안 하고 있었네.

천년 묵은 체증이 쭉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역시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법이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왕유미를 불렀다.

새벽 3시였건만 왕유미는 한달음에 우리 집까지 달려왔다.

“뭔데요, 뭔데요?”

“왕유미 씨. 이건 기밀사항이니까 왕유미 씨만 알도록 하세요.”

이야기꾼 왕유미에게만 정보를 전해주었다.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가진 만능잡캐 특성.”

“아아, 네! 만능잡캐요.”

왕유미는 또 이걸 어떻게 이용해서 어떤 식으로 내게 도움이 될까.

분명 나는 상상도 못한 방법이겠지?

에건 폴이 다시는 내 1등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해주겠지?

“올라운더라는 특별한 특성으로 상향됐어요. 콘텐츠 진행하기 전에 알고 있으시라고.”

“크흡!”

왕유미는 과장스러운 동작을 취하며 팔뚝으로 눈가를 닦았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신뢰는 처음이얌.”

“네. 내일부터 잘 부탁합니다.”

왕유미를 돌려보낸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 사랑스러운 특성을 새벽 내내 살펴보면서.

──────────

[먼치킨]

──────────

이런 특성이 존재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나 잘하면 은퇴 안 해도 되겠는데?’

아니, 이거 아니지. 나는 초심을 잃지 않는, 기본에 늘 충실한 플레이어다.

은퇴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나약한 마음가짐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나마 이 정도까지 강해질 수 있었던 건 ‘150레벨에는 은퇴해야지’라는 몹시 어려운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라 생각한다.

‘서버를 넘어가야만 활성화되는 특성이야.’

지구에서는 그대로 올라운더로 적용된다.

지구 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소리고,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다독였다.

‘150에 은퇴해야 하니까 그때까지는 최대한 즐겁게 즐기자.’

근데 솔직히 150은 좀 너무 과한 거 같기도 하고.

난 기본에 늘 충실하고 초심을 잃지 않는 플레이어이기는 하지만 기준을 약간만 더 올려보면 어떨까 싶다.

‘175까지만 할까?’

그래 175.

숫자가 예쁘게 생긴 거 같아서 마음에 든다.

겨우 25 차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 * *

다음 날 오후 12시.

나는 패스파인더 한세린과 서울역 앞에서 만났다.

“나한테 기회를 줘서 고마워.”

얘가 전생보다 훨씬 고분고분해진 게 느껴진다.

나한테 이렇게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릴 애는 아니었는데, 괜히 낯부끄럽다.

“기회는 무슨.”

“이참에 확실히 보여주려고.”

“뭘?”

“두더지맨보다 내가 우위에 있다는 걸.”

나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사람은 라이벌이 있어야 성장하는 법이다.

내가 알던 한세린보다 오히려 성장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응?”

“두더지맨이랑 나랑 누가 더 뛰어난 길잡이 같아?”

“숫자는 거짓말 안 해.”

“……숫자?”

“랭킹 말이야.”

두더지맨과 패스파인더는 늘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랭킹 1, 2위를 오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랭킹 1위는 두더지맨이었다.

한세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전의를 불태웠다.

보기 아주 좋았다.

“출발하지, 치열맨.”

스칸노르비아행 워프포탈은 서울역 튜토리얼 던전 내에 생성되어 있었다.

[서버, ‘스칸노르비아’로 향하는 워프포탈을 이용하시겠습니까?]

[개척자의 특권으로 이용료가 면제됩니다.]

“어지러울 수 있으니까 송출 멈추겠습니다.”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서 나는 잠시 방송을 멈췄다.

괜히 ‘먼치킨’ 특성을 들키면 좀 곤란해질 거 같아서.

[개척자가 서버 간 이동을 진행합니다.]

[개척자의 특권이 적용됩니다.]

변경된 설정값이 자동으로 눈 앞에 생성되었다.

──────────

특성 : 먼치킨

──────────

* * *

스칸노르비아 서버에 도착했다.

‘전사들의 서버. 정말 오랜만에 오네.’

숨을 깊게 들이마셔 보았다.

지구보다 훨씬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이곳의 워프포탈은 커다란 숲 속 한가운데였는데 꽤 많은 수의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굉장히 오래된 원시림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수풀이 굉장히 우거지고 나무 몸통이 굵네요. 고목들이 많아 늙어버린 땅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한세린이 물었다.

“예정대로 안내하면 되지? 변경사항 없지?”

“잠깐만.”

나는 한세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너무 급하면 될 것도 안 되는 법이다.

“나뭇잎이 워낙 우거져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초록빛 잎사귀들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은 청량하군요.”

나는 1인칭 시점의 스트리머로서, 시청자들에게 이곳을 생생하게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이름 모를 동물의, 약간 원숭이 소리 같은 것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고요. 산새 소리도 상당히 많이 들립니다.”

마침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푸드덕! 하고 날아올랐다.

몸집이 독수리만 한 붉은 새였는데 부리가 굉장히 커서 펠리컨 같은 모양새였다.

“처음 보는 새가 날아오…… 음, 한 플레이어의 머리통이 씹혔습니다.”

저 새의 이름은 ‘큰 부리 우적새’다.

일단 입에 들어갈 만한 건 무조건 넣고 씹어보는 동물인데, 마물이 아니라 레벨은 따로 없지만 대략 레벨 30레벨 즈음으로 보고 있다.

“으악!”

머리통이 씹힌 플레이어의 머리에서 피가 좀 흐르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고 일단 이 주변은 꽤 평화로웠다.

“그러면 저희도 이동을 해보겠습니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몇몇은 직접 다가오기도 했다.

“진짜 김철수?”

“네, 김철수입니다.”

“오 마이 갓!”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나를 만나 방방 뛰었다.

“우상을 만나뵙게 되어 진짜 영광입니다, 와 여기서 만날 줄이야.”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암살자인가 싶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살펴봤는데 불행히 암살자는 아니었다.

[……#세계랭킹 1위 스트리머 #멋있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직업은 스트리머.

선제각성 스트리머중 한 명이었는데 레벨은 90대였다.

나는 괜스레 뿌듯해졌다.

‘나도 이제 스트리머들에게 꽤 존경받는 사람이 된 거 같네.’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건 꽤 유익하고 흐뭇한 일이었다.

마음이 벅차오르고 즐겁기는 했지만 그것을 최대한 티 내지는 않았다.

‘근데 각성명이 오수정스크리스탈?’

이름이 낯이 익었다.

얼굴을 보니 회귀 전에 인연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잘 기억은 안 났다.

“패스파인더. 내가 요청했던 건?”

“목소리 왜 그래?”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갑자기 엄근진?]

“아무튼 최단 루트는 뚫어놨어. 중간중간 마물이 나오기는 할 건데 사냥할 거야?”

“아니.”

“알겠어, 마물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안내할게.”

한세린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꽤 많은 수의 지구인 플레이어들이 우리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김철수를 따르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뭐라도_주워먹자]

이렇게 한심한 놈들도 있었고.

[……#세계랭킹 1위의 플레이다 #내 눈에 담아야해 #닮아보자, 나의 이상향]

바람직한 녀석들도 있었는데, 이 속마음은 오수정크리스탈의 것이었다.

플레이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여러모로 오수정크리스탈은 꽤 마음에 드는 플레이어였다.

참고로 나 세계랭킹 1위라고 인정해 줘서 그런 건 아니다, 절대로.

“중간중간 간단하게 마물의 습격이 있네요. 벌레 형태의 마물들이 좀 위험한 거 같습니다. 나무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독액을 발사하는 경우가 많군요.”

중간중간 발생한 마물의 습격 때문에 몇몇 플레이어들은 사망하기도 했고, 몇은 내가 구해주기도 했다.

구해주고 싶어서 구해줬다기보다는 비교적 강한 독이라 맞아보고 싶었다.

“사왕급 독 이하에는 완전 면역이라더니 정말인 거 같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여기에 좀 더 강한 독을 가진 개체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강한 놈은 없는 것 같아서 무척 아쉽다.

“가, 감사합니다.”

“여기서부턴 위험하니까 돌아가요.”

어느덧 나를 따라오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한세린의 이동속도가 워낙 빠르기도 했고, 점점 강력한 마물들이 등장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음, 근데 오수정크리스탈은 먼발치에서나마 쫓아오고 있네?’

내 방송을 이정표 삼아서 열심히 나를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시청자라는 말인데 기특하기도 하지.

커다란 칼을 들고 넝쿨을 잘라내던 한세린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근데 아까 그여자는 왜 구해줬어?”

“그 여자?”

“어떤 애들은 죽어도 신경도 안 썼잖아. 근데 왜 그 여자는 구해준 거야?”

아. 여자였던 건 기억 못하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을 돌이켜보니 내가 구해준 사람이 오수정크리스탈인 거 같기도 하고?

“여자한테 좀 더 친절하다든가. 그런 쪽이야?”

“설마.”

나는 순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 옛동료에게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여줬었나?’

어쩌면 한세린은 내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가 그래 보였어?”

“그 여자, 꽤 예뻤잖아.”

“그랬나?”

사실 얼굴에 대해서는 아예 기억이 없다.

“딱히 뭐 그런 건 아니고 독을 맞아보고 싶었어.”

“아하.”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서 나를 쳐다보던 한세린은 금방 납득하고서 살짝 웃었다.

아까 방송하면서 이유를 설명했는데 얘는 못 들었나 보다.

다행히 내게 크게 실망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안 살려주고 독만 맞았어도 됐잖아.”

“이왕이면 살리는 게 낫지?”

“하긴. 억지로 살릴 것까진 없지만 겸사겸사하다 보니 살리게 되는 건 나쁘지 않지.”

참고로 날 세계랭킹 1위라고 인정해서 살려준 건 아니다, 절대로.

근데 이 시절의 얘가 이렇게까지 냉혈한이었나 싶기도 하고.

회귀 전보다 좀 더 빨리 성숙해지고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한세린은 세차게 칼을 휘둘러서 넝쿨을 다 쳐냈다.

기분이 좀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거대한 도마뱀 형태의 마물과 조우했다.

“위험해.”

나는 한세린을 꼭 붙잡고 나무 위로 뛰어 올랐다.

‘오, 몸이 가벼워.’

먼치킨 특성 때문이었다.

체감하기로는 최소 30레벨업 이상 이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한세린을 안고 나뭇가지를 뛰어다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꼬리에 커다란 혹 같은 것이 달려 있습니다. 저걸 휘두르는데 위력이 상당하네요. 고무줄처럼 길이가 쭉쭉 늘어나고 채찍처럼 휘어서 생각보다 정교한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LV77/꼬리혹 도마뱀/꼬리 휘두르기]

레벨은 77밖에 안 되지만 방금 공격은 한세린의 관자놀이에 닿을 뻔했다.

‘근데 이런 공격에 순순히 당해줄 한세린이 아닌데?’

은신이 제법 뛰어난 꼬리혹 도마뱀이기는 하지만 한세린이 못 알아차릴 정도는 아니었다.

‘방심했나?’

방심했던 거고 실수라면 조금 실망인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런 공격을 허용한 거야?”

내 품에 안긴 한세린은 고개를 들어 올린 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걸 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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