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3화
찰스의 눈에는 일종의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나의 영역이다.'
카메라를 대동한 상태에서 대중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는 적절한 질문을 던졌고 김철수는 대답을 해야만 한다.
김철수가 얼마나 대단한 –그의 기준에서는 미친- 플레이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역은 자신의 영역이라 확신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겠지.'
최근의 김철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일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가 떠받들어주고 칭송해 주는 것에만 길들여져 있는 김철수라면, 자신이 깔아 놓은 이 촘촘한 덫에서 절대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분명 허울 좋고 듣기 좋은 말 몇 마디 하다가 어버버댈 것이다.'
찰스의 목표는 김철수의 몰락 같은 건 아니었다.
다만 'HARD 운동'을 더 널리 알리고 김철수의 플레이가 지나치게 위험하며 인류에게 유해한 플레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철수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 확실했다.
"뭐래냐?"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찰스를 보자 옛 생각이 무럭무럭 떠오르는 것이 기분이 영 별로였다.
'아, PTSD.'
그는 공무원 플레이어였고 툭하면 언론에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있다.
왕유미의 합류 이후로는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잘하건 잘못하건 욕받이 신세는 면치 못했었다.
'그때는 짜증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받는 플레이어였고, 그 지원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이런 것도 감수해야만 했었으니까.
찰스가 재차 물었다.
"김철수 플레이어. 반성하지 않습니까?"
"뭔 병X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차진혁이 찰스 앞에 섰다.
"다행히 너도 플레이어네."
찰스의 레벨은 10.
초저레벨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플레이어는 플레이어였다.
플레이어 아니었으면 핍박하기 좀 어려울 뻔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입 바르고 따뜻한 얘기를 누가 못하냐?"
저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모두가 안전하게, 최대한의 인간다움을 지향하면서, 아름답고 고귀하게 플레이하여야 한다.
말은 참 좋았다.
"제대로 던전 클리어는 한 번이라도 해봤냐?"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김철수 플레이어. 그렇게 위협적인 발언 말고, 제 질문에 대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찰스는 저도 모르게 씨익 웃고 말았다.
'김철수가 내게 말려들고 있다!'
그가 알기로 김철수는 시청자들과 소통도 거부한 채 방송을 진행한다.
그것은 아마도 소통 능력의 부재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김철수에게 이런 상황은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상황일 것이었다.
"응, 내 대답은."
차진혁은 찰스의 허리춤을 잡아 들어 올렸다.
레벨 격차가 워낙 심하게 나서 별로 힘을 쓰지 않고도 그냥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뭐, 뭐하는 짓입니까!"
"너같이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애들은 직접 봐야 하거든."
보는 눈이 많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찰스의 예상과는 달리, 차진혁의 행보는 다소 파격적이었다.
"직접 던전 들어가 봐.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는지."
* * *
수호수가 마냥 날 불편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파종꾼'의 권한으로 던전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폐쇄된 던전을 다시 개방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굉장히 큰 성과였다.
던전 브레이크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는, 비교적 안전한 던전을 생성할 수 있는 거였으니까.
['사러가 마트 던전'에 입장합니다.]
"이, 이것 놔요! 뭐하는 짓이야!"
가끔은 말보다 행동이 더 잘 먹힌다.
행동보단 폭력이 더욱 잘 먹히고.
"해봐, 어디."
"이러고도 당신이 문명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응, 문명인 안 해."
나는 찰스를 주먹 원숭이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로 집어 던졌다.
나는 내 나름대로 방송을 이어나갔다.
"평화의 정의를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네요."
예전에도 그랬다.
평화에 찌들다 보면 꼭 저런 놈들이 튀어나와서 나를 힘들게 했다.
저들의 생각이나 사상이 틀렸다고는 생각 안 하지만, 중요한 건 저런 놈들이 날 열받게 했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기껏 목숨 바쳐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고 나왔더니 왜 다 못 구했느냐, 더 빨리 할 수 없었느냐, 왜 더 안전한 방법을 찾지 못했느냐 기타 등등.
"서버 연결을 앞둔 지금, 한가하게 저런 소리를 하고 있을 여유는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도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소리다.
우리 지구 서버는 어중간한 힘을 가진 서버였다.
덕분에 강대 서버 중간에 끼어서 고래등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이 꽤 많았었다.
근데 그것도 우리가 어중간한 힘이라도 갖고 있어서 그랬던 거지, 만약 더 약했다면 애초에 식민지 노예행이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수 서버의 사람들이 거의 노예로 전락해서 살아가고 있다.
"으아아악!"
레벨 10의 언론인 찰스는 주먹 원숭이들에게 얻어터지기 시작했다.
[……#어찌 이리 야만적일 수가! #김철수는_미친 놈이다]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으아아악!"
[……#제발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주먹 원숭이들은 새로 들어온 저레벨 인간을 장난감처럼 취급했다.
이리저리 던지기도 하고 샌드백처럼 때리기도 했다.
퍽! 퍽!
시원한 격타음이 들려왔다.
"사…… 살려 주세요."
"한 번만 더 평화니 인권이니 내 앞에서 떠들어대면 머가리를 다 부숴버릴 줄 알아."
"죄, 죄송합니다. 제발 한 번만……."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들이닥치니 역시 착해졌다.
근데 쟤 엄살이 아주 심하다.
아직 내장이 튀어나오지도 않았고 죽을 정도로 출혈이 심하지도 않은데 저렇게 공포에 벌벌 떠는 걸 보면 말이다.
그저 갈비뼈 몇 대 부러지고 좀 많이 맞았을 뿐인데 자신의 한계를 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거 같다.
좀 더 맞게 둬야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슈웅-
찰스가 날아갔다.
한 주먹 원숭이가 펄쩍 뛰어올라 배구 하듯 찰스를 때렸다.
"힘이 없으면 이렇게 됩니다. 타 서버의 지성체들에게 유린당할지도 모를 일이죠."
아,
그냥 죽일까.
내가 공무원 시절에 당했던 것들 생각하면 가만 안 두고 싶기는 한데.
쯧, 그래도 저레벨 플레이어라서 살려주기로 했다.
레벨이 60만 넘었어도 그냥 모른 체했을 텐데 그래도 저레벨 뉴비를 어여삐 여기는 것도 플레이어의 기본이다.
"평화는 강자의 특권입니다. 강자가 만드는 평화에 기생하면서 강자에게 의무를 요구하는 파렴치한이 없어졌으면 좋겠네요. 진지하게 패고 싶어지니까."
나는 기절한 찰스를 인형뽑기의 인형을 집듯 들어 올렸다.
"저레벨이니까 살려는 주겠습니다."
은근히 힘줘서 갈비뼈 하나 더 부러뜨렸다.
소심하고 사소한 복수였다.
* * *
한마갤.
언제나 그렇듯 화력이 터져 나왔다.
-크으, 존멋. 김철수에 취한다. 주모! 여기 사이다 한 병 추가!
-저게 찐 강자의 모습이지 ㄹㅇ.
-여유 무엇? 마이크 워크 오져따리.
그러나 또 몇몇은 김철수의 과격하고 폭력적인 행동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거 아님? 사실 찰스의 말이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자너?
┗응 선비충 ㄲㅈ
┗막말로 개미여왕의 습격 때 김철수랑 랭커들 없었으면 인류 멸망각 아니었음?
-약자를 지나치게 핍박하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음 ㅇㅇ
┗다짜고짜 쳐들어가서 반성하냐고 물어뜯었는데 약자는 무슨 약자?
┗이건 강자에 대한 역차별이다.
전직, 샷건의 스트리머 닥겜.
현직, 김잘알TV의 편집자이자 한마갤 네임드 유저 '김철수는신이시다'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치열맨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현실의 축소판을 보여주신 것이다. 힘이 없으면 잡아 먹힌다. 그 힘은 편안하게 키울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희생하며 높은 경지에 오른 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하지는 못할망정 악영향을 끼친다고 매도하다니. 치열맨이 진심치열모드로 지구를 구해놨더니 이제는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지X발광을 하는구나.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이 어디 있단 말이냐! 치열맨이 이룩했고, 이룩하고 있고, 이룩해나갈 평화에 기생하는 주제에 'HARD'는 얼어 죽을 하드. 하드나 사먹어 새기들아!]
[-글작성자: 김철수는신이시다]
다소 과격한 문장에 이번에는 또 다른 네임드 과대포장사절이 등장했다.
[꼭 저렇게 난폭한 방법으로 사실을 보여주어야 했음? 아무리 저게 사실에 가까운 현실이라고 해도 이건 솔직히 선 넘었지 ㅅㅂ. 힘 있다고 저렇게 깡패짓해도 됨? 저런 걸 사이다라고 칭송한다고? 칭찬할 걸 해라 ㅂㅅ들아.
[-글작성자: 과대포장사절]
┗암튼 저게 사실이라는 거네?
┗힘없으면 저렇게 되는 건 맞다는 거 인정해 줌 ㅋㅋㅋㅋㅋ ㅂㅅ이눜ㅋㅋㅋㅋㅋㅋ
┗이 정도면 김철수 안티 아니고 팬 아니냨ㅋㅋㅋㅋㅋㅋ
한마갤 닉네임 '과대포장사절'이자 현실 이름 죠셉은 후후 웃었다.
"그래. 나를 맘껏 조롱해라."
자신은 조롱의 대상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이것이 차진혁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는 얼마든지 욕받이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은 강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헤이, 강철. 좀 더 극단적이고 과격한 표현들을 써봐."
"생각 중입니다. 흐흐."
현실 이름 강철.
한마갤 닉네임 '김철수는신이시다'는 극단적인 김철수 칭송론자들을 끌어들여 김철수를 옹호했고, 죠셉은 다른 방식으로 중도에 가까운 사람들을 김철수의 편에 서도록 은근히 유도했다.
그리고 그 둘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왕유미였다.
"폐하의 이번 행보가 좀 과격해서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생각보다는 일이 스무스하게 흘러가겠어요."
왕유미는 흐흐 웃었다.
이것이야말로 캐릭터가 가지는 힘이었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짓을 했으면 욕을 많이 먹었겠지만, 김철수는 아니었다.
"영국 정부도 아마 대놓고 항의하기는 어려울 거고요."
애초에 정부나 공권력이 플레이에 개입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개미여왕의 힘을 직접 보았으니, 우리 폐하의 눈 밖에 나고 싶지는 않겠죠, 후후."
혹여나 또다시 개미여왕 같은 강력한 개체가 나타난다면 결국 각국 정부는 차진혁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왕유미의 판단이었다.
그러니까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차진혁을 비판하거나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차진혁으로부터 비밀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
왕유미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차진혁에게 비밀 메시지를 보낼 때는 종종 있었는데, 차진혁이 자신에게 먼저 비밀 메시지를 보낸 건 처음이었다.
'설렌다, 설레.'
메시지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돈 많은 서버 VS 호전적인 서버?]
왕유미는 이 짧은 메시지에 숨겨진 의미를 대번에 해석해 내고서,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정답: 호전적인 서버]
비밀답장을 확인한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긴가민가해서 왕유미에게 물어보았는데, 왕유미는 곧바로 핵심을 간파하고 정답을 말해주었다.
왕유미는 또 다른 조언도 건네주었다.
["시청자들에게 사과하세요. 불청객 때문에 방송이 늦어져서 죄송하다고요."]
강철이 물었다.
"왜 굳이 사과하라고 시키는 건가요? 김철수 님은 잘못한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야 전 우주의 시청자들이 찰스를 욕하죠."
"……아!"
"폐하께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우리가 다 치워버려야 해."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스승님."
한편, 차진혁은 방송을 재개했다.
"서버 간 연결을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불청객 난입으로 콘텐츠 진행이 늦어져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달려보죠."
왕유미의 말대로, 찰스를 욕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차진혁은 연결 가능한 서버 목록들 중 하나, '스칸노르비아'를 선택했다.
스칸노르비아는 무척 호전적인 성향의 전사들이 살고 있는 서버였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의미의 새 시대였다.
"스칸노르비아. 이 서버를 최초 연결 서버로 선택하겠습니다."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지고 지구 모든 곳에 어둠이 내리깔렸다.
오랫동안 잠잠했던 몇몇 화산에서 화산이 폭발하기도 했고 전 세계 상공에서 오로라 현상이 관측되었다.
[신서버, '지구 서버' 정식 서비스 시작을 준비합니다.]
차진혁의 오른쪽 손등.
올 클리어 각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전 세계 상공에서 관측되는 오로라와 유사한 색의 빛이었다.
[신서버, '지구 서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지구 서버의 정식 서비스 알림과 동시에 차진혁 개인에게도 몇 가지 변화들이 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