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42화 (14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42화

번쩍!

그 빛은 서울 전체를 휘감았다.

'마물들이 모조리 사라졌어?'

골목골목에 숨어 있던 작은 마물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시 전체에서 마물이 사라진 거야.'

[지구 서버, 한국 맵, 서울 내 던전 '홍은 고가도로'가 폐쇄되었습니다.]

.

.

.

[지구 서버, 한국 맵, 서울 내 던전…… 이 폐쇄되었습니다.]

같은 종류의 알림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끝도 없이 알림이 들려오길래 설정을 매만져서 알림을 꺼버렸다.

"서울에 있는 마물은 물론이고 던전까지 모조리 폐쇄된 것 같네요."

이게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이러면 서울 내에서는 던전 플레이를 전혀 즐길 수 없다는 얘기가 되니까.

마물과 던전이 있어야 콘텐츠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이건 쓸데없이 커져 가지고서는.'

내가 공무원이었을 때 이걸 했었다면 진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서울시 시민들의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무척 기, 쁩, 니, 다."

으득.

그렇다고 서울시의 던전을 다 폐쇄해 버리면 어떡하냐.

이건 매년 자동차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니까 자동차를 모조리 없애버린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황금 수호수가 무려 3개나 몰려 있는 아르비스에서 자라는 황금 수호수들도 이렇게 넓은 면적을 커버하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서울 전체를 커버하는 황금 수호수라니.

솔직히 나도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다.

-"이 몸은 성장하시고 말으셨도다."

자기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수호수의 말투가 영 이상해졌다.

-"이 정도 고통은 기본이느니라. 이 몸은 아무렇지도 않으셨도다. 음하핫!"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수호수의 몸통을 발로 차보았다.

무려 서울 전체를 커버하는 수호수로 성장했으니까 진심을 담아 차도 되겠지.

-"으악! 왜 때리는 것이오냐!"

"튼튼하게 자란 것 같네요."

-"방금 분명 감정 실렸는데!"

"그럴 리가. 확인 차 찬 거야."

-"아닌데. 분명 감정 있었도다!"

"파종꾼의 기록일지가 업데이트되었습니다."

──────────

[파종꾼의 기록일지(귀속)]

황금 수호수의 탄생과 성장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일지.

* 2022/7/26 : 씨앗을 뿌렸다.

* 2022/7/29 : 어린 황금 수호수가 자라났다.

* 2022/8/19 : 어린 황금 수호수가 크게 성장하여 황금 수호수(LV:3)가 되었다.

──────────

순서대로 따지면 레벨 2가 되어야할 것 같은데 곧바로 3이 되었다.

아마도 내가 신세계에서 획득한 '개척자의 특권' 때문에 더 많이 성장한 것 같았다.

['파종꾼'에게 '황금 수호수'의 권능이 공유됩니다.]

[황금 수호수의 영역에서 파종꾼에게 '공격불가' 설정이 적용됩니다.]

[레벨 200 이하급의 모든 마물, NPC, 플레이어 등 모든 생물/무생물의 공격을 통칭합니다.]

[파종꾼이 지정한 양육자들 또한 같은 설정을 공유합니다.]

양육자들에게 같은 설정을 공유하는 건 이전에도 있었는데, 그게 이제는 더 강화되었다.

[양육자의 숫자 제한이 사라집니다.]

[단, 수호수의 역량에 따라 양육자 수의 한계가 결정될 수 있습니다.]

양육자 시켜달라고 온갖 거머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거 같은데 약간 귀찮을 거 같기도 하고, 돈을 너무 많이 벌 거 같아서 조심스럽네.

이러다가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게 아닐까 싶어 조금 불쾌해졌다.

빨리 화제를 돌려야겠다.

"어? 황금 수호수의 몸통이 흔들거리기 시작합니다."

얘가 날 도와주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황금 수호수의 몸통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황금빛 가루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단순히 내가 발로 차서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어?'

크기가 너무 커져서 위태롭게 달려 있던 '특별한 과실수' 하나가 흔들거렸다.

수호수가 '으윽- 으윽-' 하고 작은 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마도 저 과실수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변비가 심한 사람이 화장실에서 용을 쓰는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곧 떨어지겠는데? 저걸 받아낼 수 있나?'

손으로 받아내면 또 연기가 되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황급히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하여 배출(?)을 조금이나마 늦추었다.

-"무슨 짓이야! 왜 남의 생리현상을 막는 것이냐도다!!"

수호수가 영 이상하게 항의했지만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저걸 어떻게 받아내야 제대로 획득할 수 있을지 빠르게 생각했다.

'방법이 분명 있을 거야.'

저 과실이 왜 사라지는지를 생각해 봤다.

보통 이런 경우는 해당 아이템이 해당 서버에서 존재하기에 매우 불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물고기가 육지에 나오면 죽는 것과 똑같다.

'오래 생각할 수가 없어.'

결국 과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령 소환술."

저 과실과 지구가 맞지 않는 거라면, 지구의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령이 제격이었다.

왜 반응이 없…… 아, 맞다. 이게 아니었지.

근데 이걸 직접 방송 중에 내 입으로 말해야 한다고?

아주 잠깐 포기할까를 고민했으나 겨우 이런 걸로 포기하면 진정한 스트리머라고 할 수 없겠지.

"귀여운 엘리 나타나라 얍!"

허공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정령문이 생성되는가 싶더니 안에서 맨발의 소녀 한 명이 튀어나왔다.

엘리였다.

엘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엘리가 팔을 활짝 벌린 채 나를 향해 달려오길래 순식간에 안아 들고서, 떨어지는 과실을 향해 던졌다.

엘리는 후웅- 하고 훨훨 날았다.

엘리는 내가 놀아주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나비가 날갯짓하듯 양팔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엘리 난댜!"

"엘리, 저 과일을 붙잡아!"

"임무?"

엘리의 표정이 돌변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아기 고양이 같았다.

"처뻔째 임무!"

저래 봬도 엘리네스의 현재 레벨은 80대.

현 지구의 어중간한 플레이어들보다는 훨씬 민첩하고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임무 완요!"

엘리는 거의 자기 몸통만 한 과실을 껴안고서 바닥을 떼굴떼굴 굴르다가 수호수와 부딪쳤다.

콩! 하고 소리가 났고, 엘리가 구른 자리에 불꽃이 남아서 몇 초간 타오르다 사그라들었다.

"헤헤."

기특하게도 엘리는 과실을 놓치지 않고 품에 꼭 안은 채 낑낑대며 일어섰다.

온몸이 흙투성이였는데 정령불 한 번이면 저런 이물질은 다 날아간다.

지금 쟤는 이게 재미있어서 일부러 저러고 있는 거다.

"엘리, 잘해써여?"

엘리는 큼지막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엘리 잘해떠? #칭찬 해주면 조케떠♡]

"잘했어, 엘리. 네가 아니었다면 과실을 획득하지 못했을 거야."

"헤헤."

엘리는 내 칭찬에 입을 크게 벌리고 활짝 웃었다.

머리 위로 여러 색깔의 작은 폭죽들이 터져 나왔다.

"칭찬 받아떠."

내게 가까이 다가와 머리를 내밀길래 엘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엘리의 머리 위로 '♡' 모양의 불꽃이 송송 피어올랐다.

* * *

차진혁은 엘리네스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아직까지는 저 과실을 지구에서 보관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존프릭의 배' 같은 것이 하나 있어야 저걸 제대로 보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존프릭의 시체라도 갖고 나올 걸 그랬나 싶어서 조금 아쉬워졌다.

'아니면 존 프릭의 배를 깊이 찔러본 이현성에게 자문을 구하든지 해봐야겠어.'

"방법을 찾을 때까지 정령계에 보관해야겠군요."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드디어 '한마갤(한국맵 마이너 갤러리)'이 정식 갤러리로 승격되었다.

이후 알림이 이어졌다.

['한국맵 마이너 갤러리'가 시스템 커뮤니티 '네르버'에 편입됩니다.]

지구 서버의 커뮤니티가 시스템 커뮤니티 네르버에 편입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맵 마이너 갤러리'를 처음 만들고 관리한 사람의 신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시스템으로부터 무려 9,000억 다이아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다.

'한마갤'의 상징성을 이유로, 시스템은 한마갤이라는 이름을 고유명사로 사용하게 배려해 주었다.

이제는 한국맵 마이너 갤러리의 한마갤이 아니라, 시스템 커뮤니티의 '한마갤'이 되었다.

최갑수는 흐뭇하게 웃었다.

"릴리아. 서버도 아니고, 그저 맵에 속한 작은 커뮤니티가 네르버에 편입된 건 몇 년 만이지?"

"공식 자료에 의하면 38년 만입니다."

"근데 왜 자네가 그렇게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나?"

"그거야……."

제 낭군님의 업적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하마터면 그 말을 할 뻔했다.

"됐네. 나랑 비슷한 이유겠지. 허허허."

최갑수는 김철수를 처음부터 발굴하고 후원했던 후원자였다.

후원자로서, 김철수가 업적을 일궈가는 것이 꽤 흥미롭고 즐거웠다.

한마갤이 네르버에 편입될 수 있었던 건 김철수라는 스트리머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한마갤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의 90프로 이상은 모두 김철수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름이 한마갤이지 사실상 김철수 마이너 갤러리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겠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플레이 외 업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구만."

최갑수는 소파테이블에 발을 올린 채 편안히 누워 차진혁의 방송에 계속 집중했다.

"정령왕의 딸은 정령계로 돌려보냈고. 이쯤 되면 좀 쉴 법도 한데 말이야."

여기서부터 최갑수와 릴리아의 반응이 조금 갈렸다.

"역시 훌륭한 스트리머라면 이래야지."

"체력적으로 좀 걱정이 되긴 하는군요."

최갑수는 차진혁의 자세를 칭찬했고, 릴리아는 차진혁의 체력을 걱정했다.

최갑수는 껄껄대며 웃었다.

"유혹의 몽마가 상대의 체력을 걱정해 주는 날이 오다니. 이거 참 놀랄 노 자로군."

"……부끄럽네요."

"아니야, 보기 좋네. 자네의 순정을 응원하지. 오, 이제는 본격적으로 서버연결이 시작될 것 같은데?"

최갑수는 자세를 바로잡고서 핸드폰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화면 속, 차진혁이 말하고 있었다.

-"신세계를 올 클리어하면서 지구와 처음으로 연결될 서버를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저 서버가 선택되면 서버연결이 시작될 거고, 그것은 곧 지구 서버의 정식 오픈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미 수많은 서버에서 지구 서버에 큰 관심을 쏟고 있는 상황.

"돈쭐, 아니, 미셸장이 그러더군. 김철수 같은 플레이어를 키워낸 토양을 다들 탐낼 거라고."

개천이라도 있어야 용이 나는 법이다.

현재의 지구는 김철수를 나게 한 개천이었다.

수많은 서버 개척가들과 모험가들이 지구라는 환경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

"과연 지구와 처음으로 연결될 서버는 어디가 될 것인가?"

"김철수 플레이어라면 최선의 결론을 낼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아요.

릴리아도 숨을 죽인 채 차진혁의 선택을 기다렸다.

-"제가 처음으로 연결할 서버는 말이죠."

최갑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송쟁이 다 됐구만. 이제 시간도 적절히 끌 줄 알고."

스트리머 김철수의 성장이 흐뭇한 한편 답답하기도 했다.

"설마 아르비스를 연결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혹시 몰라 제가 미리 확인해 봤는데 아르비스는 현재 연결 불가한 서버입니다."

"그건 다행이군."

만약 아르비스 서버와 연결이 된다면 지구는 그 즉시 식민지행이었다.

'릴리아가 저렇게 철두철미한 비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김철수도 성장했고, 릴리아도 성장했다.

최갑수는 그 둘 모두의 성장이 기꺼웠다.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해서 선택하려나? 시간을 길게도 끄는군!"

화면 속 김철수가 서버를 선택하기 직전.

몇 명의 시위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철수, 당신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기득권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HARD 운동'의 대표주자.

영국의 기자이자 인권운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의 행동이 수많은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찰스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당신은 극도로 위험한 플레이를 지향하게 하고, 기본의 기준을 이상하게 정립하며, 비상식을 상식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의 악영향이 전 세계 사람들을 신음하게 만듭니다. 부디 당신 스스로의 영향력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기를 바랍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찰스가 차진혁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