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9화
수호수에 도착하기 전, 차진솔이 합류했다.
"야!"
뭘 먹다가 급하게 뛰어왔는지 입가에는 케찹과 마요네즈가 묻어 있었다.
나는 오빠 된 도리로서 그런 건 말해주지 않았다.
차진솔이 부끄러운 거지 내가 부끄러운 건 아니니까.
"이 미친놈아!"
"그거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미친놈이라니.
나는 이제 꽤 충분한 사회성을 길렀고, 예전처럼 검에만 미친 게 아닌데 말이다.
"미친놈더러 미친놈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
"미친놈 아니다."
다른 욕은 어지간하면 괜찮은데 미친놈이라는 욕은 상당히 거슬린다.
"제발 좀.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할 거 아니야."
차진솔은 나를 치료해 주면서 잔소리를 퍼부었다.
얘가 원래 이렇게 잔소리가 많은 애였나?
회귀하고서 7년 동안 삽질하고 있을 때에도 잔소리 한 번 안 하던 동생인데 요즘 이상하게 잔소리가 늘었네.
성격이 변한 건가?
"뭐가 그렇게 미쳤다는 거냐?"
"그래. 유성우에 머리가 깨진 걸 방치한 거? 그럴 수 있어. 상황이 급하니까 그땐 어쩔 수 없었지. 일단 살고 봐야 했으니까. 그래. 그 다음에 암살자가 나타났을 때에도 뭐 그럴 수 있지. 근데 상황 종료된 다음에는? 오빠 뭐 했어?"
"나?"
얘는 왜 이렇게 당연한 걸 물어보지?
"방송에만 미쳐 있었지?"
아,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칭찬인가?
근데 왜 칭찬을 이렇게 욕같이 하는 거지?
"스트리머가 방송하는 거 좋아. 근데 치료는 해가면서 해야 할 거 아냐? 포션은 뒀다 어디다 쓸래? 왜 나 올 때까지 기다린 건데? 솔직히 오빠 머리 깨진 거랑 가슴에 칼 맞은 거 진짜 심각한 부상이었던 거 다 알아."
"오, 티 났어?"
그랬다면 아주 좋다.
꽤 쫄깃한 방송이 되었을 테니까.
"당연하지! 오빠가 멀쩡했으면 암살자 도망가게 내버려 뒀겠어? 당장 쫓았겠지!"
"나, 치열했냐?"
"오빠, 제발. 그러다 진짜 죽어."
계속 듣다 보니 칭찬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너 기준이 좀 이상하다?"
"뭐가?"
"꽤 치명적이기는 하지만 죽지 않는 부상치료와 당장의 방송, 뭐가 더 중요한데?"
"……뭐?"
차진솔의 몸이 움찔했다.
내 현명한 한 마디가 차진솔의 아둔한 개념을 깨우쳐준 거 같다.
"그리고 너도 많이 죽어봐서 알잖아. 이 정도 부상이면 죽는다, 안 죽는다, 감 오지?"
"……."
"안 죽는다 감이 왔어."
논리로 내가 이겼다.
내게 패배한 차진솔은 겨우 한 마디로 반박했다.
"……보통은 오빠 정도 다치면 죽어."
"안 죽었잖아."
"……."
나는 이때까지 얘가 내 가르침에 큰 깨달음을 얻은 줄로만 알았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뭐?"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빠는 어차피 안 바뀔 거야. 미친놈이니까. 결국……."
미친놈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말을 하려고 했는데 차진솔은 이미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차진솔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뭔 생각을 저렇게 하는 거야?'
얘 마음을 전혀 모르겠어서 결국 중계자의 시야를 써봤다.
[……#만든다 #지상_최강의_힐러연합을 #못죽게_만든다_내가 #나는_할 수 있어]
* * *
수호수 앞에서 방송을 켰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 사람이 김철수?"
"막 생각만큼 잘생기진 않은 거 같은데?"
"당연히 기만자의 가면 사용했겠지. 얼굴 노출 싫어하잖아."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진혁의 심장이 괜스레 쿵덕거렸다.
'직관하려고 이렇게 많이 모였다고?'
새삼스레 방송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에건 폴도 방송하면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던데.'
에건 폴보다 많이 모였으면 좋겠…… 아니, 이거 아니지.
차진혁은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요즘 자꾸 초심을 잃어.'
초심을 잃으면 롱런할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3등만 하자.'
그런데 지금 시점의 이 '3등만 하자'는 예전과는 본질 자체가 많이 달라져 버렸다.
예전의 '3등만 하자'는 정말로 3등이 목표였었다.
기준이 너무 비정상적이라서 그렇지, 아무튼 차진혁은 진짜 3등을 목표로 했었다.
그런데 이제 결심하는 '3등만 하자'는 그렇지 않았다.
'롱런하기 위해서는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야.'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서 그렇다.
차진혁은 초심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장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제 차진혁의 '3등만 하자'는 생각은 롱런을 위한 자기세뇌에 훨씬 가까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150 레벨을 지나, 200 레벨까지. 어쩌면 그 이상까지.
그의 본능은 더 드높은 성장을 위해 착실히 차진혁을 인도했다.
"정말 운 좋게도 제가 개척자이면서 파종꾼이기도 하니까요."
차진혁은 수호수 앞에 섰다.
곳곳에서 차진혁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철수!
김철수!
김철수!
'이거…… 느낌이 나쁘지 않은데?'
차진혁은 스스로를 점점 더 많이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 관심종자인가 보다.'
돌이켜보면 검왕 시절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그때는 검에만 미쳐 있었던 시절이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스트리머라면 관심받는 게 당연히 좋은 거니까.'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관심을 향한 갈망을 깨닫게 되었다.
'회귀 전에도 스트리머했어야 했네.'
이제는 한 움큼 남아 있던 '검술가에 대한 갈망'도 사라져 버렸다.
아쉬움이 단 한 조각도 남지 않게 되었다.
'스트리머가 내 천직이었어!'
차진혁은 텐션을 조금 높여서 방송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무작정 콘텐츠를 빠르게 뽑아서 달려가기 바빴지.'
그랬던 저레벨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고레벨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지만 아무튼 그는 약간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끌면서 기다리자.'
어느 정도 시청자가 모여들고 분위기와 기대감이 후끈 달아올랐을 때.
차진혁이 말했다.
"그러면 이게 뭔지 알아보겠습니다."
──────────
- '파종꾼'을 도와 수호수의 역량 강화 및 일정 권리 획득.
──────────
오른손에 올클리어 각인이 돋아났다.
문신처럼 돋아난 각인에서 그림자 같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수호수를 향했다.
- "가, 간지러워! 간지럽다고!"
그 기운은 마치 물에 떨어뜨린 잉크처럼 점차 퍼져나가 수호수를 덮었다.
- "으헤헤헤헥! 으헤헤헥! 간지러워!"
황금 수호수의 몸체가 바들바들 떨렸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나부끼며 떨어져 내렸다.
"화, 황금이다!"
"미친!"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금 수호수로부터 떨어진 나뭇잎들은 실제로 금을 함유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금을 줍기 위해 눈이 시뻘게졌다.
"비켜!"
"이건 내 거라고!"
급기야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래 다가올 세상은 전투로 얼룩진 세상이다.
차진혁은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도, 누군가에게 경고했다.
"거기. 각성명 푸른 할아범님. 지금 그쪽이 창으로 겨누고 있는 상대는 비플레이어입니다. 플레이어가 비플레이어 건들면 써요?"
플레이어끼리 싸우는 건 너무 당연한 일상이다.
그렇지만 플레이어가 비플레이어를 공격하면 질서가 무너진다.
각성명 푸른 할아범은 결국 손에 쥐고 있던 나뭇잎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네. 죄송합니다."
푸른 할아범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도망치듯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것은 차진혁에게도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 * *
'예전에는 말 더럽게 안 듣던데.'
뭐, 솔직히 말하면 10명 중 8~9명은 말 잘 들었다.
우리 통제에도 잘 따라주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꼭 1~2명이 문제였고, 내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거의 그런 사람들이다.
'내 세금으로 월급 받아 처먹는다느니 어쩐다느니.'
아무래도 내가 공무원이어서 좀 만만했던 것 같다.
근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공무원 아닌 게 좋네.'
사람들이 내 말 한 마디에 집중한다.
검왕 시절의 나보다 오히려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은 훨씬 커진 거 같은 느낌이다.
여러모로 꽤 좋은 상황들만 이어지는 거 같다.
"수호수가 조금씩 자라고 있습니다."
여전히 간지럽다고 깩깩대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것 같기는 했는데 나무니까 그러지는 않겠지?
내게 시간 창이 하나 생성되었다.
[23:52:03]
[23:52:02]
[23:52:01]
시/분/초를 나타내는 시간창이었다.
"아무래도 수호수가 성장하는 데 24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약간 김빠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24시간을 여기서 죽치고 기다릴 수는 없다.
지루한 콘텐츠를 지속하느니 일단 쉬면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다시 방송을 진행하는 게 더 옳은 판단일 거 같다.
"그럼 잠시 방송 쉬었다가 24시간 후에 뵙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 안에 불청객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검은 팬티였고 한 명은 곽도형이었다.
"검은 팬티?"
암살자가 또 내 허락 없이 집을 찾아와?
안 되겠다.
죽여야…… 는 안 될 것 같다.
엄마가 과일을 꺼내서 대접하고 있었다.
어째 이런 일이 꼭 한 번씩 있네.
애들이 알고 이렇게 찾아오는 건가.
"어, 진혁아. 친구들이 왔네?"
엄마는 왜 저렇게 좋아하는 느낌이지?
자꾸 중계자의 시야에 의존하면 안 되지만, 엄마가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고 싶어서 한 번 써봤다.
[……#다행이야 #우리아들_친구 있네]
짧지만 꽤 강렬한 해시태그였다.
엄마는 내가 무슨 친구도 하나 없는 줄 알았나 보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검은 팬티는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며 생긋 웃어 보였다.
저걸 누가 암살자라고 생각하겠어.
"잘들 놀아요. 나는 빠져줄 테니."
엄마는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안심했다는 듯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뭔가 많이 안도한 모양새였다.
곽도형이 말했다.
"형님,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여러 번 연락 드렸는데 전화를 안 받으셔서……."
"암살자들이 내 허락도 없이 집에 들어와?"
목소리를 작게 해서 말했다.
"엄마 아니었으면 죽였다. 곽도형은 그렇다 치고, 검은 팬티 너는 진짜. 하."
아 아까 방송 망친 거 또 생각나네.
이걸 진짜 죽일 수도 없고.
"진심으로 묻고 싶었어."
"뭘?"
"왜 나를 진짜로 죽이려고 했어?"
얘는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건지.
"그게 암살자가 할 소리냐?"
"나는 기본에 충실했다고 생각해. 암살자로서의 기본."
"근데?"
"너는 그런 암살자들을 반긴다던데?"
"내가?"
과거의 나는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암살자들은 매번 새롭고 짜릿한 방식으로 날 괴롭혀줬었으니까.
그때마다 얼마나 쫄깃했는지 모른다.
근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텐데 이상하네.
"내가 그래 보여?"
[……#네_형님 #형님은_진짜배기_플레이어 #존경합니다. #지금도_히죽 웃으셨어요.]
[……#반기는 게_틀림없어 #김철수는_진짜다]
내가 웃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나는 이제 미친 검술가가 아니라 정상적인 스트리머다.
"전혀 아니야. 난 그걸 반기지 않아."
"혹시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그래? 네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건가?"
"……."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얘가 아까 날 찔렀을 때 조금만 더 잘했으면 훨씬 위험하게 공격할 수 있었을 거 같기도 하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애초에 암살을 반기는 놈이 어디 있어?"
[……#여기_그 분께서 계신다]
[……#너 좋아하잖아 #츤데레인가#]
검은 팬티가 제멋대로 또 말을 이었다.
"역시 내 실력이 부족했나 보군. 그렇다면 내게도 허락해 줘."
"뭘?"
"너를 공식적으로 노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널 찔러볼게."
아, 설렐 뻔했…… 는데, 겉으로 티 나지는 않았겠지?
"근데 내게'도' 라니?"
"살모사 말이야. 너를 공격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잖아."
"그런 적 없는데?"
"나도 허락해 주면 좋겠군."
"허락해 준 적이 없다니까?"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네가 보기에 내가 그렇게 부족한 거냐?"
[……#내가 얘보다 약해? #인정_받고_싶어]
검은 팬티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허락만 해주면 잘 찌를 자신 있다."
근데 생각해 보면 허락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기도 하다.
언제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어야 내 실력향상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이제 나도 유소년 유망주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성인 되기 전에 최대한 능력을 높여야 할 거 같다.
은퇴할 땐 하더라도 말이다.
히죽.
"칠종칠금. 너도 할래?"
"뭔지 모르겠지만 하겠다."
히죽.
결국 검은 팬티도 칠종칠금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 저렇게 절실한 사람이면 뭐라도 일을 낼 테니 나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
"그럼 형님.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에는 반드시 만족할 만한 기습을 약속하지. 믿어도 좋다."
곽도형과 검은 팬티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누군가 했더니,
'키하엘?'
서대문구 3번 GM 키하엘이 나를 찾아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키하엘, 너는 무슨 일이냐?"
"잠시, 우리 둘이 긴밀한 얘기를 좀 할 수 있을까?"
평소보다 훨씬 진지한 표정과 태도였다.
"내가 널 찾아온 건 비밀로 해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