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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38화 (13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8화

며칠 전.

각성명 검은 나비, 본명 케일린이 한국을 찾았다.

"당신이 검은가시 연합의 연합장?"

"반갑군. 검은가시 연합장, 곽도형이다. 당신이 어벤저스 사단의 암살자. 검은 나비로군."

미국을 대표하는 암살자 중 한 명과 한국을 대표하는 암살자 중 한 명이 만났다.

곽도형이 말했다.

"내 친구가 큰 도움을 입었다 들었다, 고맙군."

"뭐. 겸사겸사였어."

곽도형과 케일린의 만남은 차진혁이 쏘아올린 나비효과였다.

이 상황의 발단은 곽도형의 친한 친구이자 자칭 화랑, 타칭 태권V인 김두환이었다.

태권V 김두환은 차진혁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이후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차진혁에게 가르침 아닌 가르침을 받고서 그는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차진혁의 회귀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타이밍이었다.

차진혁에게 받은 자극 덕택에 보다 빨리 자신의 길을 찾게 된 김두환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련과 퍼포먼스를 병행했다.

"내 목표는 퍼포먼스형 플레이어다. 내 플레이는 결국 남에게 선보여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무대 자체가 내게는 수련이지. 세계각지를 돌아다니며 무대에 서겠어."

그리하여 김두환은 세계를 돌아다니기로 결심했는데 그 첫 번째 행선지가 미국이었다.

아직 '퍼포먼스 플레이어'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히기 전이었고, 미국은 특히 퍼포먼스 플레이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서버 중 하나였다.

때문에 몇몇 플레이어와 크게 다툼이 일었는데 검은 나비 케일린이 김두환을 도와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쪽의 김철수 습격은 꽤 인상 깊게 봤어."

"상당히 처절하게 패배했었지."

"그 정도면 잘한 거라 생각해. 나는 손도 못 쓰고 당했었으니까."

케일린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

"무슨 의미야?"

"김철수가 어째서 당신과 당신연합에는 그토록 너그러웠는지를 묻는 거야."

케일린은 아직도 한 번씩 악몽을 꾼다.

무감한 표정으로, 그러나 눈에는 살기를 가득 담은 김철수가 다가와 자신을 찌르는 악몽을.

"나와 내 연합에만 너그러웠던 게 아닌데."

"그럼?"

"김철수 형님은 모든 플레이어에게 너그럽다. 플레이어가 기본을 지켰다는 가정하에."

곽도형이 보는 김철수는 이상향 그 자체였다.

플레이다운 플레이를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상하며 다정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형님을 암습했었고, 지금도 수차례 노력하고 있다.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지 그 심장을 찌를 준비가 되어 있지.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형님께서는 기본을 지키는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늘 흡족하게 바라봐주시기 때문이다."

"……."

곽도형과 대화를 나누고서 호텔방으로 돌아온 케일린은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기본을 다하지 못했었구나."

생각해 보면 그랬다.

암살자의 공격은 당연히 기습이다.

기습의 사전적 의미는 '적이 생각지 않았던 때에, 갑자기 들이쳐 공격함. 또는 그런 공격'을 뜻한다.

'내가 했던 건 기습이 아니었지.'

페트로나스 타워에서 빠져나온 뒤 김철수를 공격했던 상황을 회상해 보았다.

당시 케일린은 강철지네에 둘러싸여 10시간 넘도록 사투를 벌였던 상태였고 차진혁을 보자마자 이성을 잃었었다.

'나도 모르게 살기를 내뿜으며 크게 공격했어.'

이미 그 시점에서 차진혁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켰었다.

기습은 이미 실패였다.

'거기서 나는 도망이나 항복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목 감아채기'를 사용해 차진혁을 공격했었다.

'내가 보다 암살자답게 공격했더라면, 기본에 충실했더라면, 훨씬 더 유의미한 상황이 만들어졌었겠지.'

그녀는 차분히 암살계획을 세웠다.

어느새 전 세계 암살자들의 꿈이자 이상향이 되어버린 차진혁을 공략하기 위하여.

다음 날, 케일린은 다시 한번 곽도형과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혹시 기본을 잘 지켰는데도 김철수가 지나치게 반격해 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곽도형은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지나친 반격이 도대체 뭘 뜻하는 거냐?"

"김철수가 진심으로 반격하면 암살자는 죽을 수도, 아니, 높은 확률로 죽을 텐데?"

곽도형은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신경 쓰면서 암살자 행세를 하겠다고?"

곽도형이 단검을 집어 던졌다.

케일린이 고개를 돌려 단검을 피해냈다.

케일린의 뺨에 얕은 상처가 났고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검은 나비, 네게 실망했다. 앞으로는 다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 * *

차진혁은 자신의 심장 부근을 찌른 여자의 손목을 낚아챘다.

'아프긴 한데.'

그래도 가까스로 몸을 뒤틀어 심장은 피했다.

상당한 고통이 밀려들었으나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완벽하게 제압하려고 하면 제압 못 해.'

신세계를 클리어하느라 이미 너무 많이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일부러 가슴팍을 내주면서 손목을 잡아낸 것이었다.

"오랜만이다, 검은 팬티."

참고로 지금은 전 세계에 차진혁의 방송이 송출 중이었다.

어벤저스 사단 소속, 뛰어난 암살자 케일린의 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케일린은 순간 당황한 얼굴로 차진혁을 쳐다봤다.

'내 정체를 한 번에 알아냈어?'

스트리머들이 중계자의 시선으로 상대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차진혁의 스킬은 그 효과가 지나치게 뛰어난 듯했다.

'기만자의 가면까지 사용했는데, 전혀 의미 없는 일이었군.'

차진혁은 왼손으로 케일린의 손목을 꼭 붙잡은 채 오른손으로 단도를 휘둘렀다.

"컥!"

케일린의 가슴팍에도 단도가 꽂혔다.

"이걸로 동점."

케일린은 스킬, '매끄럽고 유연한 신체'를 사용하여 차진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무슨 스트리머의 완력이……!'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었다.

스킬의 능력으로 손목에 매끄러움을 더하여 겨우 손목을 빼낸 뒤,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항복하겠다."

"항복? 뭔 개소리야?"

케일린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뭐지?'

그가 알던 김철수가 아니었다.

예전, 두 눈에 살기를 가득 담았던 김철수에게서는 감정의 동요를 찾아보기 어려웠었다.

살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인형을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은데?'

케일린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기습에 제대로 성공했고, 김철수에게 꽤 유효한 공격까지 성공시켰는데?'

기본에 충실한 플레이로 유의미한 결과까지 도출했는데?

김철수는 왜인지 예전보다 훨씬 기분이 나빠 보였다.

"여기서 나를 찔러?"

김철수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거대한 산이 성큼성큼 접근해 오는 것 같았다.

케일린의 마음이 급해졌다.

'이대로면 죽는다.'

죽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케일린의 몸이 녹아내렸다.

[스킬, '도주를 위한 액체화'를 사용합니다.]

케일린은 몸을 액화시켜 땅의 틈새로 숨어들었다.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가운데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거기 그냥 서 있었으면 죽었겠어.'

* * *

검은 팬티의 공격은 꽤 위협적이었다.

신세계를 클리어하느라 나는 상당히 지쳐 있던 상태였고, 클리어의 기쁨에 잠시 긴장을 풀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여러모로 기습당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고 검은 팬티는 그 틈을 아주 잘 노렸다.

암살자로서는 칭찬해 줄 만한 플레이였다.

긴장이 풀어진 나에게 다시 긴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고, 훗날을 대비한 예행연습의 개념으로도 상당히 좋았던 시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오히려 엘튜브 각이 섰다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지금은 아니었다.

'내 방송을 망쳐?'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어가면서 신세계를 클리어했다.

그것도 무려 '올 클리어'로.

"플레이를 하면서 세 번째로 얻게 된 올 클리어 입니다."

올 클리어는 정말 귀한 클리어다.

회귀 이후 겨우 두 번밖에 못 했다.

한 번은 '사러가 던전'이었고 한 번은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이었다.

'근데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은…… 조금 특별한 케이스였고.'

그건 서울시 제4 시나리오와 관련이 되어서 조금 억지로 주어진 경향이 있었다.

내가 체감하기에 완벽한 '올 클리어'는 사러가 던전뿐이었다.

그렇게 소중하고 귀한 올 클리어를 해냈는데 지금 기습을 해?

기습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지 이렇게 방송 흐름을 끊어?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신세계를 올 클리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여기 오른손에 각인이 하나 더 생겼네요."

아, 아무리 생각해도 빡치네.

이걸 먼저 시청자들에게 공유하고 보여줬어야 했는데.

흐름이 꼬여 버렸다.

그래도 보여줄 건 보여줘야겠지.

"올 클리어 정보를 공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녹화된 장면을 다시 재생해서 보여주었다.

[업적, '올 클리어(신세계)'를 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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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클리어(신세계)]

신세계 던전을 올 클리어한 이에게 부여되는 업적.

1) 올 클리어 각인. (각인 생성위치 : 오른 손목)

-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로서, '서버간 이동'에 대한 권리 인정.

- 지구와 처음으로 연결될 서버 선택 가능.

2) 개척자의 특권

- 세계와 세계를 잇는 데에 성공한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

- 타서버 이동시, 개척자가 선택한 1개의 특성 상향조정.

- '파종꾼'을 도와 수호수의 역량 강화 및 일정 권리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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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비공개로 보여줄 걸 그랬나?'

조금이라도 빨리 정상적인 방송궤도에 진입하기 위하여 조금 서두른 감이 있다.

'뭐, 너무 많이 숨겼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겠지.'

차라리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무려 '올 클리어'이고, 괜히 사람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상상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절대, 자랑하고 싶어서 안 가린 거 아니다.

"처음부터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올 클리어 효과의 일부분을 확대해서 화면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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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세계의 개척자로서, '서버 간 이동'에 대한 권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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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 간 이동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건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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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와 처음으로 연결될 서버 선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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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내 머릿속에 현재 '연결 가능한 서버 목록'이 주르륵- 펼쳐졌다.

지구서버와 너무 차이가 나는 서버는 옅은 회색 글씨로 표현되어 있었고, 연결 가능한 서버는 검은색 굵은 글씨로 표현되어 있었다.

'와, 이거 개이득인데.'

내게 가장 유리한 서버.

재미있는 콘텐츠를 뽑기에 제일 좋은 서버를 취사선택해서 열 수 있다니.

'게다가 내가 최초로 연결하는 거잖아?'

'최초 공개!' 이름 붙은 건 무조건 좋다.

달달한 엘튜브각을 뽑아낼 수 있을 거 같다.

"말하자면 개척자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도화선 같은 역할을 하는 거군요. 좋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다음을 살펴볼게요. 개척자의 특권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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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 서버 이동 시, 개척자가 선택한 1개의 특성 상향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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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특성 상향조정?'

몇 가지 정보들이 머릿속에 전달되었다.

"특성들 중에서 성장이 가능한 성장형 특성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그 특성을 잘 선택하면 제가 가진 특성들 중 하나를 강력하게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해당 특성이 성장형 특성이 아니라면…… 이 효과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군요. 잘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복수 선택도 불가능하고 선택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군요."

서버 간 이동할 때마다 새로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한 번 선택해놓으면 그 설정이 영구히 유지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는 성장형 특성을 이미 갖고 있잖아?'

확실히 알고 있다.

특성 '검제'와 '천재'를 포식한 만능잡캐가 올라운더로 상향 조정되었었으니까.

"이건 제가 심사숙고해서 나중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올라운더에 적용할 거다.

그러나 이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건 이건데요. 조금 재미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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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종꾼'을 도와 수호수의 역량 강화 및 일정 권리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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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 파종꾼이 접니다."

몸이 무척 피곤하고 고단했으나 여기서 방송을 끊을 수는 없었다.

이미 흐름을 탄 상황이니 이번 에피소드까지는 잘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피를 많이 흘려서 좀 어지럽기는 한데, 이거야 대충 힐 받으면 괜찮아지겠지.

겨우 이런 걸로 방송을 멈출 수는 없다.

"아. 이것도 안 뽑고 있었네요."

내 가슴팍에 꽂힌 단도를 이제야 발견했다.

'뿌듯하구만.'

얼마나 방송에 집중했으면 이걸 모른단 말인가.

지금의 나는 스트리머로서 꽤 잘하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수호수로 바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중간에 혈사제를 불러서 몸은 치료하도록 하죠. 그러면 연희동에서 뵙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 부탁드려요! 알람설정 하시면 연희동 도착 직후 방송 놓치지 않고 보실 수 있습니다!"

이윽고 나는 수호수 앞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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