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1화
이현성은 최선을 다해 존프릭과 연결된 거미체의 항문을 찔렀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그 또한 무아의 영역에 들어섰다.
뜨거운 날숨을 내뱉으며 저도 모르게 무의식 속 진심을 꺼냈다.
"어때?"
존프릭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의 눈은 충혈되다 못해 토마토처럼 시뻘겋게 변했다.
끄윽, 그르륵, 끄으윽.
신음 아닌 신음성을 내뱉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떠냐고?
존프릭은 이현성의 광기에 질려버렸다.
그 또한 무수히 많은 실험을 진행했으나 실험체에게 어떠냐고 물어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이 얼마나 비인륜적이고 끔찍한 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 '어때'는 존프릭에게 묻는 말이 아니라 차진혁에게 묻는 말이었다.
차진혁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와.'
조금 기분이 나빠졌다.
'방송각을 이렇게 뺏는다고?'
이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였다.
인터뷰는 스트리머의 영역이지, 검술가의 영역이 아니니까.
'서로의 영역은 좀 지켜주지?'
입모양만으로 그렇게 말했다.
온 신경이 차진혁에게 쏠려 있던 이현성은 황당했다.
그럼 네가 한 건 뭔데?
따져 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차진혁이 깨달음을 얻고서 방송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아, 존프릭한테 묻는 게 아니라 저한테 묻는 거였군요."
깨달음을 얻은 차진혁은 조금 더 기분이 나빠졌다.
'고작 이거 해놓고 어떠냐고 묻는다고?'
천하의 이현성이?
그래도 한때 내 라이벌을 자청했던 그 녀석이?
이현성에게 몹시 실망했으나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상황이 조금 급했다.
지금은 콘텐츠를 진행해야 할 때였다.
"정령력을 우회시킬 수 있는 매개체라."
차진혁은 고뇌에 빠진 척했다.
굉장히 치열한 고민의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사이 힐러는 못 버티고 죽었다.
'힐러가 죽었으니까 다들 죽겠다.'
"불타 죽는 고통이 좀 괴롭기는 할 테지만 다들 고통에 많이 무감해진 거 같네요."
역시 많이 경험해야 한다.
다들 나한테 고마워하겠지?
차진혁이 내심 뿌듯해할 때 즈음, 봉킹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물었다
"이번에는 뾰족한 수가 없나 보죠?"
"아, 잘 모르겠네요."
"지금 사람들이 김철수라면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다들 분에 넘치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요."
봉킹이 텐션을 더 높이며 얄밉게 말했다.
"아무리 김철수여도 지금은 노답인 거 같은데요. 더 많은 거 노리지 말고 빨리 존프릭이나 죽이죠? 미션 걸렸다면서요."
욕심부리지 말고 '불사조의 심장'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투였다.
차진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와, 표정 개얄미워.'
저런 류의 연기를 굉장히 잘해내고 있었다.
표정이면 표정, 말투면 말투, 내용이면 내용,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역시 배울 것이 많구나.'
그 표정을 보며 이현성은 다시금 자존심을 구겼다.
봉킹을 보는 차진혁의 표정.
이현성이 그토록 갈구하던 표정이었다.
'내가 뭐가 부족해서!'
이현성은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아까보다 더욱 열정적으로 항문을 갈랐다.
"나의, 검은, 항문을, 가른다고……!"
푸악!
불길이 더욱 세차게 치솟아 오르면서 어디선가 흑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령불이 이곳 전체를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올랐다.
이현성이 그 불길에 휩싸인 채 비장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차진혁은 존프릭의 항문 쪽으로 다가갔다.
"이제야 한 건 해주네요."
항문에 이 정도 균열이 있어줘야 노리고 있던 것을 진행할 수 있었다.
* * *
나는 봉킹 일행과 합류하기 전, 이그리트와 대화를 나눴었다.
[……구해……다오……정령왕의……딸을……]
──────────
1. "물론이다, 정령왕의 딸을 찾아 존프릭의 만행을 저지하고 너희들을 지지하겠다."
2. "나의 즐거움은 그저 살을 에는 전투뿐. 너와의 전투를 꿈꿔왔다, 불의 정령 이그리트여."
──────────
하마터면 2번을 선택할 뻔했었지만, 훌륭히 성장한 나는 1번을 선택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했었지.
[……부탁……하지.]
이그리트는 그 말과 함께 작은 불덩이로 변해 어딘가로 움직였었다.
이그리트가 안내해 준 그 길이 바로 다음 필드였던, '불타는 요새 3층'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는 방송을 이었다.
"저보다 먼저 3층으로 향했던 이그리트는 어딘가로 사라졌었습니다."
이그리트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쪽에 먼저 와서 기회를 노리고 있던 모양입니다. 정령력이 강화되는 이 틈을 타고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존프릭의 배가 갈라지며 정령불이 타오르던 그 순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아까 사라졌었던 이그리트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스트리머 전용 스킬인 '초월번역'을 통해 이그리트의 의도도 읽어냈다.
[……나를 매개체로……정령문을……열어……다오……통로를……]
이게 벌써 3분 전이다.
봉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나도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 부활 포인트에서 보자고요. 더 버텨봐야 어차피 괴로우니까 작전회의부터 하게 빨리 좀 죽어요. 오키?"
어느새 봉킹도 피부가 녹아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나랑 똑같은 중계결계가 있는데 왜 벌써 저렇게 됐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봉킹처럼 훌륭한 스트리머가 말이다.
'중계결계 운용능력이 딸리나?'
캐릭터 기획과 연출력은 좋은데 중계결계 운용능력은 떨어질 수도 있다.
그건 각 스트리머의 특성이니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봉킹은 사망했고, 크게 자극받은 나는 방송을 이어갔다.
'봉킹, 잘 봐요. 일부러 이그리트의 대화를 공개하지 않았었으니까.'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최강벽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을 즈음, 나는 입을 열었다.
"그 이그리트를 매개체로 하여 정령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높이 뛰어올라 라칸을 휘둘러 불꽃상태의 이그리트를 베었다.
한 덩이의 불꽃이었던 이그리트가 연기처럼 흩어지며 주변의 불길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은 블랙홀 같아서 이곳을 불태우던 형형색색의 불길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흑…… 흑……!"
어디선가 어린 여자아이가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존프릭의 배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머금고 있던 정령력을 모두 배출해서인지,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나는 살아남은 최강벽에게 부탁했다.
"저기서 목소리가 들려. 안쪽 확인 좀 해줘."
"그러지."
말 잘 들으니까 최강벽 아닌 거 같네.
내 동료이자 웬수였던 최강벽은 절대 내 말을 안 들어줬었는데 말이다.
왜인지 최강벽의 표정이 약간 복잡해 보였다.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으나 일단은 참는 모양새였다.
어쨌든 최강벽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뛰어갔고 나는 방송을 이어갔다.
"저는 혹시라도 존프릭이 힘을 되찾지 않도록 상황을 컨트롤 하겠습니다."
정령왕의 딸을 완전히 구하기 전까지, 존프릭을 사살하는 건 뒤로 좀 미뤘다.
혹시 모르니까.
'너무 팼나?'
존프릭이 자꾸 그냥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통에 너무 재미가 없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최강벽이 어린 여자애 하나를 업고 나타났다.
"구했다."
아무래도 고맙다는 말은 좀 낯 간지럽다.
옛날 같았으면 '다음에 심장을 찔러줄게'라고 약속해 주면 좋아했었는데, 지금 그럴 수는 없겠지?
낯 간지럽지만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고마워."
최근 모든 성장을 통틀어 가장 크게 성장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최강벽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너. 뭐 하자는 거냐?"
* * *
몇 분 전.
최강벽의 머릿속에서 말도 안 되는 그림이 하나 그려졌다.
'김철수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
그럴 리 없지만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이그리트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정령문을 어떻게 여는지 짐작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우리 팀원들이 대부분 죽을 때를 기다려서…….'
위기의 순간, 알고 있던 패를 내민다.
진부하지만 잘 먹히는 패턴이었다.
'모두 살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모두가 불에 타죽었다.
어지간한 고통에는 굉장히 익숙해진 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 사망했다.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자결한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그걸 모두 외면하면서? 그렇게 방송각을 잡았다고?'
최강벽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철수의 행동은 최강벽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김철수는 진짜구나.'
김철수에게 몹시 감탄하다가, 최강벽은 문득 화가 났다.
김철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너. 뭐 하자는 거냐?"
"뭐가?"
차진혁은 재빠르게 음소거 모드를 사용하여 최강벽의 음성을 잘라냈다.
"크게 말해도 돼. 음소거 진행 중이니까."
"너는 분명 치열했다. 내게 깊은 울림을 줬어."
차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최강벽에게 이런 칭찬을 듣는 것이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근데 지금 네 꼴을 봐라."
"내 꼴?"
차진혁은 자신의 몸 상태를 둘러보다가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
"봉킹은 한국 랭킹 1위의 스트리머야."
강미나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데 지금은 봉킹이 1위였다.
"그 봉킹이 녹아내려 죽었다고."
"……."
차진혁을 리스펙하는 만큼, 차진혁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그럼 적어도 3도 화상 정도는 입어줘야 그림이 사는 거 아니냐?"
"……."
"지금 뭐하자는 건데? 그렇게 멀끔한 모습으로? 네가 그러고도 스트리머냐?"
"……."
"너 잘난 건 알겠어. 근데 그게 스트리머로서 옳은 거냐? 네가 무슨 탱커라도 돼? 검술가라도 되냐?"
차진혁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옛날부터 맞는 말은 잘했었지.'
예전 추억이 몽실몽실 떠올랐다.
최강벽은 예전부터 옳은 말을 잘했었다.
-맞는 말 잘하네. 처맞는 말.
그때도 대뜸 찔렀었지.
-그렇게 경고하면서 찌르면 어떡하냐! 이 멍청한 놈아!
최강벽은 예상하기라도 했듯 그 공격을 잘 막아내면서 호통을 쳤었지.
-찌를 거면 경고하지 말고 찔렀어야지!
그때처럼 찔러볼까 고민했지만 차진혁은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검술가가 아닌 스트리머이고, 방송을 진행해야 하니까.
"미안하다. 내가 아직 부족해."
봉킹처럼 한 번에 세 가지를 다 신경 쓰면서 진행해야 하는데 그 정도 반열에 이르지는 못했다.
차진혁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조금 더 높아졌다.
"알았으면 잘 좀 해라."
"고맙다."
차진혁은 음소거 모드를 해제한 뒤 방송을 이어갔다.
"어린 여자아이인데요. 정신을 잃었습니다. 지금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힐러가 도착하길 기다려보겠습니다."
시선을 위로 옮겨서 불꽃을 모조리 집어삼킨 정령문을 화면에 담았다.
"저 정령문, 뭔가 튀어나올 거 같은 느낌이 팍팍 드네요. 혹시 정령문이 완전히 열린 거라면 저기서 정령왕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요."
아직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힐러가 도착하기 전에, 바람 나그네 님, 존프릭을 사살하는 데 성공했는데요, 이 정도면 미션 성공으로 인정해 주시나요?"
알림이 이어졌다.
[미션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미션 클리어 보상으로 '불사조의 심장'이 주어집니다.]
마침 정령문에서 박동하는 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꽃에 휩싸인 심장이 천천히 낙하하여 차진혁의 손바닥 위에 닿았다.
치익-!
차진혁의 살이 익었다.
중계결계를 사용하여 막아내고 있는데도 열기를 막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와, 이거 열기가 장난 아니네.'
순간, 돌발미션이 또다시 생성되었다.
[돌발 미션이 생성됩니다.]
[돌발 미션 생성자 : 돈쭐]
그게 끝이 아니었다.
[돌발 미션이 생성됩니다.]
[돌발 미션 생성자 : 돈벼락]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연속해서 미션 주는 거 힘들다던데?'
시스템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쏟아 부어야 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차진혁으로서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었다.
[미션 명: '얼른 처먹어라']
[미션 명: '이러다 다죽어~!']
이해할 수 없는 미션이 두 개나 주어졌다.
"일단 돈벼락 님께서 [얼른 처먹어라] 미션을 주셨고, 돈쭐 님께서 [이러다 다죽어~!] 미션을 주셨습니다."
내용이 이상했다.
"불사조의 심장을 먹기만 하면 곧바로 [불사조의 간]을 주시는 미션이고요."
'이거 경매에서 3,000억에 팔렸던 건데? 근데 이런 걸 미션이라 할 수 있나?'
"[이러다 다죽어~!]의 내용도 똑같네요? 불사조의 심장을 먹기만 하면 [네비디아의 불꽃]이라는 아이템을 선물로 주신다고 합니다."
불사조의 심장을 먹기만 하면 '불사조의 간'과 '네비디아의 불꽃'을 선물해 주겠다는 미션이었다.
'아…….'
미션 보상을 확인한 차진혁은 저들이 왜 이러는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