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30화 (13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30화

KSM 연합.

풀네임 '김철수 시X 목재현' 연합.

안전을 지향하던 플레이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결국 목재현이 새로 만들어낸 연합이다.

'K-사단' 혹은 'K-연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김철수 휘하 연합의 하나로서 최근 높은 주가를 달리고 있었다.

KSM의 연합장 목재현은 처음 각성 때부터 즐겨 사용하던 방어스킬 수목산성을 운용하며 맹금류 마물의 공격을 막아냈다.

거대 독수리와 비슷하게 생긴 그것은 재빨랐고 공격 또한 무척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이었다.

'아주 쉬워!'

시속 100㎞는 빠른 속도다.

그런데 시속 150㎞로 달리다가 100㎞로 달리면 느리게 느껴진다.

그와 같은 현상이 목재현에게 벌어지고 있었다.

'이깟 공격은……'

회귀 전 차진혁의 대련상대는 늘 최강벽이었다.

회귀 후 차진혁의 대련상대는 늘 목재현이 되었다.

차진혁에게 단련된 목재현이 눈을 부릅떴다.

'진혁 형에 비하면……!'

차진혁의 공격을 떠올리며 맹금마물의 발톱 공격을 막아냈다.

"아무고토 아니다!"

목재현은 약간의 광기에 젖어 있었다.

그는 스스로 '내가 미쳐가고 있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상태.

요즘 팀원들이 하는 말로 차며들고(*차진혁에게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그 스스로 좋으면서 싫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차진혁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좋은 피지컬을 왜 그렇게 쓰냐?

눈앞의 상대는 맹금마물이지만 사실상 목재현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상상 속의 차진혁이었다.

목재현의 세계 속에서, 맹금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는 어느새 차진혁의 검이 되어 있었다.

"이야아아아압!"

* * *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기분이 좋아져서 바로 칼부터 나갈 뻔했지만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 빠르게 말했다.

"축구를 예로 들겠습니다. 어떤 선수는 드리블에 뛰어난 강점을 보입니다. 또 어떤 선수는 넓은 시야를 지니고 있고, 또 어떤 선수는 정확한 슈팅 능력을 갖고 있으며, 또 어떤 선수는 위치선정 능력등이 뛰어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기 마련이었다.

"존프릭의 방어능력 운용은 무척 조악하군요."

용암목으로 만들어낸 나무팔의 단단함과 내구성은 상당히 뛰어났다.

목재현이 이능으로 구현하는 나무보다 훨씬 튼튼한 것은 맞았다.

그러나 그 운용능력이 목재현에 비해서 너무 뒤떨어진다고 느꼈다.

목재현에게 수차례 했던 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저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 왜 저렇게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차진혁은 곧바로 존프릭에게 달려들었다.

'2페이즈 돌입을 막은 게 아쉽긴 하지만…….'

검술가 차진혁이었다면 아마 2페이즈 돌입을 내버려 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이 생겼다.

'지금 어딘가에서 봉킹 애들이 뭘 하고 있을 거야.'

차진혁 자신은 앞서간 자.

봉킹 일행은 발자취를 쫓는 자로 구분되어 있다.

협력하는 관계이자 경쟁하는 관계였다.

'걔네한테 질 수 없지.'

강한 놈은 또 나오겠지만 패배는 영원하다.

[스킬, '신검합일'을 사용합니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합니다.]

두 개의 스킬을 동시 운용하면서 스킬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검술가 시절의 차진혁과는 또다른 설렘과 떨림이 느껴졌다.

'오히려 좋아.'

요즘 차진혁은 신세계를 맛보는 중이다.

단순히 강한 놈과 싸우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2페이즈 돌입 전, 아주 취약한 상태군요."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정확하게 공략하는 것.

상대가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도 전에 빠르게 제압하는 것.

이것 또한 차진혁에게 무한한 기쁨과 설렘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렇게 약한 부분만 공략해서 베어낸 다음 접근하면 나무팔로 만들어진 일종의 수목산성을 뚫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안에 진입해 보겠습니다."

안에는 변태 중인 존프릭이 보였다.

녹색의 꾸덕꾸덕한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 형상의 애벌레 같았다.

차진혁이 히죽 웃으며 내달렸다.

'벤다!'

"그럼 베어……."

아차.

차진혁은 가까스로 검을 멈추었다.

"잠시 돌발미션에 미쳐 있었던 것 같군요."

하마터면 스트리머로서 추태를 보일 뻔했다.

'보통의 스트리머라면 이렇게 허접하게 방송하면 안 되지.'

차진혁은 숨을 고른 뒤 변태 중인 존프릭을 자세히 관찰했다.

존프릭에게 다가가 물었다.

[스킬, '단독 심층 인터뷰'를 사용합니다.]

"지금 뭐하고 있나요?"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사실 차진혁도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정령왕의 딸을 구해야 하는데.'

존프릭과 싸우면서 깨달았다.

존프릭은 단순히 복부비만 거미가 아니었다.

'저 배 안에 정령왕의 딸이 잡혀 있는 거 같은데.'

배 부근에서 묘한 정령력이 느껴졌다.

아마도 정령왕의 딸이 저곳에 봉인되어 있는 듯했다.

차진혁은 머릿속으로 정령왕의 딸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존프릭씨, 혹시 죽여도 됩니까?"

존프릭을 그냥 죽이면 정령왕의 딸도 사망할 수 있었다.

배를 갈라내서 구해내야 하는데 차진혁도 자신이 없었다.

'죽이는 건 자신 있는데…….'

반대로 살리는 건 좀 어려웠다.

차진혁은 대검으로 꾸덕꾸덕한 녹색 실선을 몇 가닥 잘라냈다.

크으으윽!

무의식 상태의 존프릭이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신음성을 내었다.

"이 실선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는 거 같네요."

일단 이것부터 막아내기로 했다.

차진혁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잔인하리만치 집요하게 녹색 실선을 끊어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변태에 실패한 존프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리…… 죽……여……다오."

짜릿한 손맛에 매료된 차진혁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채 끈질기게 다시 생성되는 녹색 실선을 계속해서 잘라냈다.

* * *

'정령왕의 딸을 찾는 건 포기해야 하나.'

이미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존프릭이 '이제 그만, 차라리 죽여줘'라고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차진혁은 흥미가 싹 가셨다.

이제 재미가 없어졌다.

'정령왕의 딸까지 구하는 건 너무 욕심인가?'

존프릭을 죽이기만 해도 '불사조의 심장'은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욕심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신세계에서 이런 시나리오를 진행한 유일한 사람인데 이 정도는 욕심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얘는 더 괴로워하는 거 같고.'

이미 전의를 상실한 마물을 계속해서 베는 것에는 취미가 없었다.

존프릭의 몸은 어느새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변태에 실패한 녀석의 레벨은 수직강하하여 지금은 50레벨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면 콘텐츠도 너무 지루하고.'

안 되겠다.

그냥 깔끔하게 베고 끝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었을 무렵, 길잡이 김무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참고로 나무팔로 만들어진 일종의 수목산성은 말라 비틀어진 지 오래였다.)

"제가! 제가! 뭔가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저는 이곳이 어째서 왜! 신세계인지 알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예?"

"이곳은 존 프릭의 실험장으로 설정된 곳. 존 프릭은 원래는 붙어 있지 않았던 것을 제멋대로 잘라 붙이고 접합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령들의 힘이 필요했죠."

김무진은 차진혁과 다른 방식으로 신세계 클리어를 진행했고 그 나름대로 많은 단서를 얻었다.

"정령들이야말로, 우주 각지를 제약 없이 돌아다니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들은 소환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통해 타 서버로 넘어옵니다. 다른 세계와 아직 연결되지 않은 지구에도 정령술사들이 존재하는 것이 그 증거죠."

"……오."

저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차진혁도 흥미가 돋았다.

"세계와 세계를 이어붙이는 힘. 그 힘의 원리를 존 프릭이 이용하고 연구했던 것입니다. 그 힘을 통하여 차원의 틈새를 만들었습니다."

이 차원도 아니고 저 차원도 아닌 중간 즈음 어딘가.

그곳을 '차원의 틈새'라고 부른다고 했다.

"존프릭은 자신의 배 속에 인위적으로 차원의 틈새를 만드는 실험을 강행했던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어져 있던 차원이 끊어지게 되면 엄청난 폭발력이 생성되어 양쪽 차원 모두에게 커다란 피해를 입히는 것 같습니다."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사실인데.'

훗날 밝혀질 사실이다.

실제로 몇몇 빌런연합은 차원통로를 인위적으로 끊어내는 테러를 자행하기도 했었다.

"그 화력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혹시 저 배를 갈라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래요?"

김무진의 표정이 굉장히 간절했다.

"다만, 존프릭이 죽으면 안 됩니다."

"흠."

차진혁은 이미 흥미를 잃은 채 에너지를 공급하는 녹색 실선을 대충 끊어내고 있던 중.

"동시에 완전히 회복할 시간을 줘도 안 되겠죠?"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흥미는 없지만 지금 같은 단순 반복노동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았다.

"차라리…… 날…… 죽이란…… 말이다……!"

존 프릭이 절규했다.

차진혁은 존 프릭의 고통에 꽤 공감했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원래 중간 즈음이 제일 힘들지.'

저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상태 조절을 굉장히 잘했다.

'여기서 더 끊어내면 죽겠다.'

일부러 에너지 공급을 좀 시켜주고.

'여기서 더 풀어주면 힘이 회복되겠네.'

적당히 녹색 실선을 잘 끊어냈다.

차진혁은 그 교묘한 줄타기를 기가 막히게 해냈다.

길잡이 김무진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존프릭의 빵빵한 배를 분해했다.

"이제…… 이제 하나만 더 해내면 됩니다……!"

어느새 그의 온몸이 녹색의 질펀한 액체로 뒤덮였다.

그의 몸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나 그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갈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차진혁에게 말했다.

"딱 하나의 조각만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김철수 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제 도움이요?"

"네. 존 프릭의 연구가 담긴……."

그는 쭈뼛거렸다.

김철수의 방송을 통해 김철수가 '존프릭이 분실한 연구일지 한 조각'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아, 이거요?"

차진혁은 별다른 요구조건 없이 연구일지를 내밀었다.

"이걸 그냥 주시게요?"

"네, 그래야 배를 잘 가를 수 있다면요."

존프릭이 '다…… 듣고 있다……! 이 극악무도한 종자들아……!'라고 중얼거렸으나 차진혁은 듣지 못했다.

"대신 배 안에서 좋은 거 나오면 제 겁니다?"

"그건 당연하죠."

신세계 진입 전의 김무진과 진입 후의 김무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남들이 아무도 해보지 못했던 것을 해내는 것에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 행위가 즐거울 뿐, 이 행위를 통해 뒤따르는 보상은 별로 필요 없었다.

차진혁은 그런 김무진을 보며 기꺼워했다.

'역시 훌륭해.'

김무진은 그런 차진혁의 눈빛에 무척 신이 났다.

봉킹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 컨셉 괜찮은 거지?'

차진혁은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주변을 미치게 만드는 진짜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저런 미친놈을 저격하며 무시하는 컨셉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고, 나름대로 큰 효과를 보고는 있으나, 몹시 두려워졌다.

킹갓제네럴유미의 함정에 빠진 것만 같았다.

그래도 겉으로는 티 내지 않은 채 열심히 방송을 이어갔다.

"존프릭의 배가 잘 갈라졌습니다! 오색찬란한 빛줄기가 새어 나오는데요? 그리고 수많은 색깔의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정령력으로 이루어진 정령불입니다!"

삽시간에 주변이 굉장히 뜨거워졌다.

'불타는 요새'보다 훨씬 더 뜨거운 열기였다.

김무진이 재빨리 외쳤다.

"이 새어 나오는 정령력을 정령계로 우회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그러고서 이현성에게 부탁했다.

"이놈의 항문을 찔러주세요."

"……항문을?"

"예. 깊게요."

"얼마나 깊게……?"

"김철수 님보다 더 깊게."

이현성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김철수보다 더 깊이 찌르고 말리라.

으드득, 이를 갈았다.

"더없이, 깊게, 찔러, 주마."

잘 보아라, 김철수!

이현성의 눈이 광기에 젖어들었다.

등껍질 위.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상태의 존프릭이 중얼거렸다.

"미친놈들의…… 세상에서 부디…… 구원을…… 다오."

푸욱!

'나의 검은 인위를 부순다'라는 멋들어진(?) 대사에 자극받았던 이현성이 홀로 중얼거렸다.

"나의, 검은, 항문을, 가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