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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29화 (12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9화

차진혁이 대검 라칸을 뻗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오면서 계속 사용했던 스킬이 몸에 익은지라, 곧바로 '깨부수는 검'을 사용했다.

대검 라칸은 존프릭의 안경을 부수고 눈 한쪽을 타격했다.

"으아악!"

존프릭은 네 개의 다리로 자신의 눈가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러댔다.

덕분에 차진혁은 존프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차진혁이 재빠르게 말했다.

"중계자의 시야로 이곳에 무색무취의 마취기체가 깔리고 있다는 걸 이미 봤습니다."

그걸 일부러 숨기고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고, 또 어떤 정보를 숨겨야 할지에 대한 감이 오는 것 같았다.

봉킹과의 협력이 꽤 도움이 되었다.

"이제 저도 숨 참는 게 거의 한계에 이르렀군요."

피부는 중계결계로 보호했다.

원리는 아까와 같았다.

숨을 길게 뽑아내는 것처럼 중계결계를 계속해서 얇게 유지하면서 마취약과의 접촉을 차단했다.

'진짜 힘들었다.'

방송도 신경 써야지, 존프릭으로부터 치명상은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그 와중에 숨도 참고 중계결계도 유지해야 하지.

'스트리머의 길이 정말 높고 험하네.'

차라리 검술가 시절일 때가 편하기는 훨씬 편한 것 같았다.

그냥 칼만 휘두르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복잡해진 만큼, 그로부터 오는 성취감도 더 컸다.

"이걸 쓰겠습니다."

차진혁이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

[상급 불의 정령석]

──────────

"이걸로 정령력을 폭발시키면 이 무색무취의 마취제를 모조리 날려 버릴 수 있을 겁니다."

차진혁은 정령석을 공중에 던졌다.

그리고 스윙하듯 라칸을 휘둘렀다.

[스킬, '깨부수는 검'을 사용합니다.]

붉은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령력이 가미된 불길이 활활 타오르며 차진혁과 존프릭의 몸을 덮쳤다.

물론 그 불은 차진혁도 집어삼켰는데, 덕분에 차진혁은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지.'

처음 신세계에 들어왔을 때에 이 불길을 마주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괴로웠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정령들과 계속해서 맞닥뜨리면서 이 정령력에도 꽤 익숙해졌다.

"근데 존프릭은 저보다 정령불에 대한 내성이 훨씬 뛰어난 거 같습니다."

정령불은 존프릭의 다리에는 아예 옮겨붙지도 못했다.

"하긴, 용암목으로 만들어진 팔다리를 여덟 개나 가지고 있는 괴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얼굴과 몸통에 불이 붙었으나 존프릭이 후웁- 크게 배를 부풀리며 불꽃을 삼켜버렸다.

"불을 먹어버렸습니다. 배 부근이 빨갛게 변했네요."

저게 되네?

나도 해볼까?

저렇게 불을 막을 수 있다면 참 편할 거 같은데.

차진혁은 문득 궁금해졌지만 지금 실험해 보기에는 여유가 별로 없었다.

존프릭을 상대하며 방송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정령으로 생체실험을 하는 미친놈이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성이죠."

어차피 이 정령불로 존프릭을 공격할 생각은 아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차진혁의 머리 위로 나무팔이 날아들었다.

"빠르게 발을 움직입니다."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뒤로 몇 걸음 움직여서 나무팔을 피해냈다.

"또 공격이 날아드네요."

콱! 콱! 콱!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나무팔이 땅에 꽂혔다.

또 몇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나무팔을 피해냈다.

"모양이 아주 징그럽게 변했네요."

본래 팔이 여덟 개였던 존프릭의 몸에는 수십 개의 팔이 더 돋아나 있었다.

그 팔 하나하나가 각자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꿈틀거렸다.

"확실히 고레벨 마물이군요."

팔 자체가 고무처럼 늘어났다 줄어났다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한 번은 채찍처럼, 또 한 번은 둔기처럼, 또 한 번은 예기처럼 차진혁을 공격해 왔다.

가끔은 폭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공격 범위와 수단이 복잡하고 교묘해서 차진혁도 아까와 같은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다.

'강해.'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확실히 레벨 128에 달하는 괴물이었다.

'묘하게 공격타점이 벗어난 덕분에 비교적 쉽게 피하고는 있는데.'

첫 공격으로 눈을 손상시킨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놈의 공격에 정교함이 조금 떨어졌으니까.

그러나 존프릭도 다친 시야에 점점 익숙해지는 모양이었다.

"점점 공격이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검술만으로는 상대하기가 무척 벅차네요."

존프릭은 대부분의 팔로 차진혁을 압박하면서, 남은 두 개의 팔로 진흙을 빚어 동그란 형태로 만들었다.

이내 자신의 다친 눈을 푹! 찔러 자신의 눈알을 뽑아낸 뒤 땅에 던져버렸다.

"아주 재미있는 놈이야."

진흙으로 버무린 동그란 물체를 눈에 끼웠다.

눈두덩이에 끼워진 그것은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이내 눈동자로 변했다.

존프릭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었다.

존프릭이 후후 웃었다.

"이제 진짜로 상대해 주마."

* * *

길잡이 김무진이 말했다.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어느덧, 부활한 봉킹과 강민혁, 그리고 이현성과 최강벽까지 우물 안으로 내려왔다.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는 바람에 김무진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김철수 님은 여전히 솔로잉 모드로 진행 중입니다. 생각해 보면 많이 이상하죠. 왜 굳이 앞서가는 자와 뒤따르는 자를 따로 설정했는가? 그리고 왜 합쳐놓고서는, 또 한 명은 그냥 솔로잉 모드의 자격을 유지하게 해줬는가? 이상한 모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김무진은 쿵쾅대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상태에서 회복을 거치면서,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부쉈다.

그것이 그를 극한의 황홀감의 상태로 밀어넣고 있었다.

"이곳, 신세계를 완벽히 클리어하기 위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할도 분명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김철수는 미로를 부수며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그 길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제가 파악한 길은 다릅니다."

열변을 토했다.

"우리의 길은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저 앞선 발자국을 남긴 자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우리의 힘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김철수 님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방식으로!"

이내 김무진은 길잡이의 방식으로 경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김철수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쉬워.'

잘은 모르겠지만 많은 트랩과 함정들이 박살 나 있었다.

이건 아마도 김철수가 다른 곳에서 미로를 부숴버린 덕분인 것 같았다.

그는 '무아의 영역'에 빠져들어 걸음을 옮겼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쫓아오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길을 개척했다.

마치 러너스 하이와 비슷한 상태에 접어든 김무진의 눈빛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 뒤를 힘겹게 따르며 군주 강민혁은 그 나름대로 크게 자극받았다.

'저 눈빛은, 김철수의 눈빛이다.'

저 눈빛이야말로 훌륭한 플레이어의 기본이겠지.

'여지껏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쳐야 한다.

그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직접 체감하고 깨달은 것은 처음이었다.

비교적 상식적이었던 군주 강민혁의 눈빛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봉킹이 변해가는 강민혁의 눈빛을 실시간으로 화면에 잡았다.

-군주가 각성하고 있습니다! 우리팀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거 보이시죠? 이게 바로 봉킹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시청자들은 그런 봉킹을 조롱했다.

-응, 아니야.

-누가봐도 김철수한테만 자극받은 썰 푼다.

* * *

"이제 진짜로 상대해 주마."

존프릭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차진혁은 업적을 변경했다.

"아까까지는 인위를 부수는 자 적용을 안 했거든요."

이제 업적을 바꿨다.

"생각해 보니까 존프릭 저놈 자체가 인위 그 자체더라구요."

존프릭은 스스로의 몸을 키메라화시켜서 이것저것을 덕지덕지 붙여놨다.

그러니까 이 '인위를 부수는 자'는 키메라를 상대할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업적인 셈이었다.

[스킬, '깨부수는 검'을 사용하였습니다.]

쾅!

소리와 함께,

우지끈!

하고 존프릭의 나무팔 하나가 힘없이 부러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차진혁은 여전히 검은 '베거나 찌르는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게 재밌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둔기처럼 내리치는 건 검술가로서는 분명 지양해야 할 만할 행위였다.

검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근데 나 검술가 아니잖아?'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자신은 스트리머였다.

스트리머는 검술가가 아니니까 검술가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맞네. 상관없네.'

사실 이렇게 둔기처럼 패는 맛도 썩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못 먹어본 맛이라 더 맛있어.'

'인위를 부수는 자' 업적을 활용하니 존프릭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체력은 아까보다 많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하기는 더 쉬웠다.

우지끈!

또 다른 나무팔 하나가 기괴하게 꺾였다.

'똑같은 연출 계속 보여주면 재미없겠지?'

패턴 자체는 다 파악했다.

'빨리빨리 부수자.'

수십 개의 들러붙은 나무팔을 모두 부숴버리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5분에 불과했다.

팔다리가 모두 망가진 존프릭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네 이놈!!!"

입에서 보라색 독극물이 뿜어져 나왔다.

화악-!

액체였던 그것은 공기와 만나 순식간에 기화되었다.

차진혁은 소매로 코와 입을 막았다.

"딱히 저를 공격하려는 의도 같지는 않고요. 아마도 시간을 벌기 위한 거 같은데요. 확실히 살펴보겠습니다."

부러진 다리들이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더니 존프릭 주변 땅에 꽂히기 시작했다.

이내 그 파편들이 모여 요새처럼 존프릭을 보호했다.

"틈새로 살펴봐야 할 거 같은데요."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존프릭을 느리게 재생시켰다.

원래부터 본체의 움직임이 빠른 놈은 아니었던지라, 그 움직임이 비교적 자세하게 보였다.

"팔로 요새를 만들어서 등을 가렸고요."

차진혁에게는 꽤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재현의 수목산성과 비슷한 능력이네?'

괜히 반가운 느낌이었으나 차분히 방송을 이어갔다.

"등껍질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뭐가 꿈틀거리면서 피어오르고 있네요?"

좌우로 갈라진 등껍질에서 끈적한 녹색 액체가 꾸물꾸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하얀 비늘이 덮인 무언가가 애벌레처럼 꿈틀대며 일어섰다.

"아. 알겠다. 놈은 지금 변신하고 있습니다."

변신 중에는 취약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보라색 독무와 나무 요새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생각했거든요."

어린 시절 차진혁은 로봇 만화영화를 볼 때마다 궁금했었다.

왜 악당들은 변신할 때 공격하지 않을까?

"변신할 때 공격하는 게 개꿀 아닌가요?"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찌르기 너무 좋은 상태.

기분이 좋아진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거 찌르기 참 좋은 날씨네."

현재 위치는 하수구 안.

날씨를 확인할 수 없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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