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4화
불사조의 심장.
불을 다루는 플레이어들이 꿈꾸는 아이템 중 하나다.
특별한 방식으로 잘 달여서 섭취하면 불에 대한 내성을 극도로 높여주는데, 레벨 200 이하에서는 최고의 영약으로 알려져 있다.
'불의 정령왕 알키나스와 어찌어찌 비벼볼 수 있었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불사조의 심장을 먹은 플레이어들이었어.'
지구 서버에 풀린 물량은 100개도 안 됐다.
한 번은 경매에 '불사조의 심장'이 나왔던 적이 있는데 어느 재벌 중 한 명이 한화로 약 4,600억 정도 되는 거금을 주고 낙찰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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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의 심장을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전 세계에서 100등 안에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아, 그리고 독에 대해서도 면역이었지?'
불사조의 심장을 먹었다고 해서 모두가 독면역을 가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독면역 얻게 되면 레벨 200 이하급 독 공격에는 완전면역이라 알려져 있다.
"바람 나그네 님께서 주시는 미션이면 무조건 해야죠. 이건 정말 감동인데요."
돌발미션을 수락했다.
"불사조의 심장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람 나그네 님은 초창기부터 저를 쭉 지켜봐 주신 분입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 방송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불사조의 심장이라니.
이건 생각도 못했다.
'답은 스트리머다!'
처음에 선제 각성 스트리머를 선택할 때에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다.
뭐랄까.
검술가에 비해서 일단 멋도 좀 없는 편이고, 결국 강해지는데 한계가 뚜렷한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불사조의 심장까지 먹으면…….'
내 목표는 레벨 150 이하에서 지금처럼 플레이를 즐기는 거였는데.
잘하면 200까지도 이렇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200까지는 남부럽지 않게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미션부터 클리어하고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아까까지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저기. 책장이 수상합니다."
책장 앞으로 다가가서 책 몇 권을 뽑아봤다.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이거 왠지, 이 뒤쪽에 특별한 공간이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박살 낼 수는 없었다.
이럴 때 아주 유용한 신비가 있다.
[신비,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합니다.]
가끔은 운빨로 해결해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이다.
"아!"
빠르게 빛이 스쳐 지나갔다.
"책을 뽑는 순서가 정해져 있네요!"
마치 핸드폰 패턴을 그리는 것처럼.
책 몇 권을 연달아서 뽑아야 했는데, 그 책들이 수십 권쯤 되다 보니 잘 기억이 안 났다.
"스트리머라는 것이 참 행운입니다."
기억 안 나도 상관없었다.
영상에 다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이게 마지막 책입니다."
책을 뽑자 크르릉- 소리와 함께 책장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책장이 돌아가는데 무슨 돌문 돌아가는 소리가 나냐.
사람 한 명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틈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필드, '존프릭의 비밀창고'에 입장하였습니다.]
불타는요새 3층보다 더 작은 방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는데요. 저기 커다란 금고가 하나 있네요."
검은색 금고였다.
광이 번쩍번쩍 나고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금고였다.
'이건…… 아조프랄 흑광석?'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광석을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도 극히 한정적이라고 알고 있다.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렇게 있어 보이는 금고는 처음 보는데요. 역시 열어봐야겠죠?"
한마갤.
그곳은 김철수의 실시간 방송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로 변질되었다.
[저건 아마도 아조프랄 흑광석으로 만든 금고로 보임 ㅇㅇ]
┗그게 뭐임?
┗아무튼 존나 좋은 거.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김철수도 저건 열 수 없을 것이다.]
┗이 컨셉충새깈ㅋㅋ 여기도 있눜ㅋㅋㅋㅋ
┗아조프랄 흑광석으로 만든 금고라니ㅋㅋ 저거 레벨 200 가까이 되는 상급 도적들도 못 여는 괴물 같은 금고임.
┗열긴 열겠지, 며칠 시간이 걸릴 뿐.
아조프랄 흑광석으로 만든 금고에 대한 얘기가 네르버와 한마갤을 뜨겁게 달궜다.
이미 아조프랄 흑광석에 대해 알고 있는 유저들은, 김철수가 저 금고를 열 수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그리고 김철수의 능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는 글들도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래 봐야 오픈베타의 유망주. 겨우 스트리머 직업으로 저딴 식으로 플레이하면 곧 도태됨. 저기까지 잘 가면 뭐함? 혼자서는 금고도 못 여는 반쪽짜린데. 반박시 네 말이 틀림.]
[-글 작성자: 과대포장사절]
수많은 반박댓글이 달렸다.
┗이새기 여기서 또 ㅈㄹ이누ㅋㅋ
┗밥은 먹고 다니냐?
┗어 이미 낙오된 도태충 어서오고 ㅋㅋ
┗ ㅡㅡㅡ먹이주지마시오ㅡㅡㅡ
글 작성자 '과대포장사절'은 최근 한마갤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는 네임드 유저였다.
김철수를 욕하고 깎아내리는 글을 작성하는 걸로 유명했다.
"후후."
어두운 방 안.
죠셉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웃었다.
"더 달라붙어라! 더! 더! 더!"
내가 욕을 먹을수록 김철수는 더 위대해 보일 것이다!
영화에서 영웅이 돋보이는 이유는 악당이 있기 때문이다.
죠셉은 키보드를 부술 듯한 기세로 타자를 쳤다.
타다다닷!
[김철수는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구욧. 이제 끝이라구욧. 응, 곧 몰락. 마지막 발악을 다 함께 즐기자구욧! 데헷^ㅡ^★]
[- 글 작성자: 과대포장금지]
그의 두툼한 승모근이 꿈틀거렸다.
게시글을 업로드한 죠셉은 담배를 태웠다.
"흐흐흐흐."
수많은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그는 딱히 댓글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후우-
담배연기를 내뿜고 중얼거렸다.
"김철수에게는 해금술이 있어."
낄낄대며 웃었다.
"해금술은 금고를 찢어!"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해금술.
내가 생각해도 진짜 사기적인 능력인 거 같다.
아조프랄 흑광석으로 만든 금고는 레벨 100후반대의 도적 플레이어들도 열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 자리에서 바로 풀기보다는 일단 금고째로 훔친 다음,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오픈하는 게 정설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이게 되네?'
딸깍,
소리와 함께 금고의 문이 열렸다.
많이 어지럽기는 했지만 참을 만했다.
"근데……."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이거.'
빛이 나를 덮쳤다.
'함정이구나.'
아무래도 이건 존프릭이 설정한 함정 같았다.
그리고 이 폭발은 내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상급정령 마그나르의 스킬과 똑같네.'
상급정령 마그나르는 원래 불타는 요새 3층의 마물이다.
레벨은 130대.
'폭발하는 불구슬'이라는 아주 까다롭고 짜증 나는 스킬을 사용한다.
빛구슬 몇 개를 허공에 던져대는데 그걸 건드리면 이런 폭발이 벌어진다.
"정령의 힘인 거 같습니다."
중계결계를 사용했다.
아주 짧은 타이밍에 맞추어 '별의 방패'까지 끌어냈다.
'와씨, 이거.'
폭발력이 미쳤다.
폭발은 분명 한 번인데 수백 가닥의 빛줄기가 나를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중계결계.'
여러번 중계결계를 연거푸 사용하면서 폭발의 여파를 최소화하려고 몸을 비틀었다.
하나로 보이는 그 폭발 가운데에서도 분명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지점들과 방법들이 존재했다.
어느덧 백색의 빛이 사그라들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운 좋게 살았네요."
나도 모르게 자꾸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걸 정면으로 받아냈어?'
이제 알겠다.
나는 과거의 나보다 훨씬 강해졌다.
'과거의 나는 이거 한 방도 못 버텼다고!'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우리 팀원들 중에서도 최강벽과 김정현을 제외하면 이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지금 내가 받아냈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세다.'
적어도 방어의 측면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존프릭이 정령의 힘을 가공해서 만든 함정이었던 거 같습니다! 저기 허공에 둥둥 떠있는 빛구슬들을 건드리면 큰 일이 날 거 같은데요. 또다시 엄청난 폭발이 있겠죠?"
일단 세이브를 했다.
혹시 죽을 수도 있으니까.
"건드려보겠습니다!"
폭발이 일었다.
이번 건 제대로 못 막았다.
"죽었네요……?"
특성, '여벌목숨'이 적용되어서 살아났는데도 사망했다.
한 번의 폭발로 두 번 죽었다.
'연습하다 보면 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빛구슬은 대략 7개.
나는 하나하나 다 시도해 봤다.
앞에 네 번은 살았다 죽었다 했고, 마지막 세 개는 안 죽었다.
"이제 이런 폭발 공격도 익숙해진 거 같습니다."
'알림'으로 정형화된 건 아니었지만 나는 이제 이런 류의 공격에 대한 내성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된 거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성장을 이루어냈다.
"흐흐."
나는 또 강해졌다.
아, 가만.
나 뭐하고 있었더라?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제 금고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렇게 강한 폭발 안에서도 흠집하나 나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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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의 워프포탈' 레시피]
──────────
이게 존프릭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건지, 시스템 시나리오를 통해 생성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오, 이동마법진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동쪽 성읍으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나는 열려 있는 창문 밖 허공을 살펴봤다.
"존프릭이 왜 창문을 열고 도망쳤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알고 보니 보였다.
중계자의 시야에 흐릿하게나마 마력의 흔적이 잡혔다.
"저기! 워프포탈이 공중에 있었네요. 저게 조우의 워프포탈이 남긴 흔적인 거 같습니다. 저길 통해 이동하면 존프릭을 쫓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재료가 몇 가지 필요했다.
[녹아버린 투구게의 이빨]
[머리 셋 짐승의 눈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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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으로 만든 무릎]
기타 등등.
이 잡다한 재료들은 내가 무아의 영역에 진입하여 수많은 마물들을 학살 했을 때에 획득했던 것들이다.
"이 재료들을 최후의 불꽃에 태워 가루로 만든 다음 저 흔적만 남은 마법진에 뿌리면 조우의 워프포탈이 생성됩니다."
한 곳에 잡다한 아이템들을 모았다.
그리고 이그리트가 내게 남긴 아이템인 '최후의 불꽃'을 사용하여 아이템들을 불태웠다.
화륵-!
불길이 높이 치솟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모든 아이템들이 검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뜨겁게 타올랐던 불길도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가루를 뿌려서 존프릭을 쫓아가 보겠습니다."
음,
근데 좀 머네?
"저거보다 높이 뛰면 되겠죠?"
일단 높이 뛰었다.
몸이 꽤 날랜 느낌이 들었다.
검술가 시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이 뛴 거 같기도 하고?
"뿌리겠습니다."
아래로 가루를 뿌렸다.
검은 가루가 허공에 불규칙하게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모양을 잡아갔다.
검은색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조우의 워프포탈'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내 몸이 마법진을 통과했다.
어딘가로 몸이 빨려가는 것 같았다.
"어딘가로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와, 이거 내 생각보다 훨씬 다이나믹한데?
절벽 위에서 블랙홀을 향해 두 팔 벌리고 뛰어내리는 느낌?
창자가 쪽 잡아당겨지는 것 같아서 아주 흥미로운 기분이었다.
떨어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서 약간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워프포탈을 타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평범한 워프포탈이 아니었다.
"상당히 재미있어요."
[중계자, '킹갓제네럴유미'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화면 일시정지 부탁좀여. 시청자분들 멀미하고 난리 났어요."]
응?
이 정도로 멀미를 한다고?
왜?
"화면 송출은 잠시 멈……."
멈출 필요 없을 거 같다.
화아악-!
시야가 밝아졌다.
새로운 곳이 보였다.
'응?'
주변이 불타고 있었다.
'잠깐만?'
평범한 워프포탈이 아니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네.
[필드, '불타는 요새 2층'에 진입하였습니다.]
존프릭의 은신처라든가.
그도 아니면 동쪽 성읍이라든가.
그런 곳으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불타는 요새 2층'으로 전이되었다.
[솔로잉 모드는 유효한 상태입니다.]
여기저기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익숙한 기합 소리는 이현성의 것이었다.
'검기를 두르고 싸워? 이그리트를 거의 죽음까지 몰아붙이고 있네.'
이현성도 꽤 많이 성장했네.
[히든 피스, '발자국을 남기는 자들과의 조우'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신세계 시나리오, '새로운 곳에 나 홀로 걷다'가 '새로운 곳에 홀로, 그리고 함께 걷다'로 조정되었습니다.]
솔로잉 모드는 유지된 채, 타 플레이어들이 클리어하고 있는 '신세계'에 진입했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설정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플레이하는데 솔로잉 모드의 특혜 –약간의 난이도 조정과 경험치 독식 등-는 유지되는 듯했다.
"제 뒤를 쫓는 분들이 여러분이었습니까?"
하아압!
이현성이 이그리트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좌에서 우로.
마지막 일격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얼굴은 정말 필사적이었다.
매우 열심히 하는 것 같기는 했는데 영 별로다.
"아…… 칼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