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20화
'여기, 시나리오 던전이었어?'
사실 이곳이 시나리오 던전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시나리오 던전은 말 그대로 시나리오가 있는 던전을 뜻한다.
수많은 퀘스트들이 합쳐져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던전.
당연히 일정 규모와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한다.
'전생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인데.'
늘 그렇듯 답은 둘 중 하나다.
이 시나리오를 획득했던 사람들이 정보를 밝히지 못하고 죽었거나.
획득한 보상이 지나치게 진귀한 것이어서 내용을 철저하게 숨겼거나.
* * *
그러고 보니 한세린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도대체 이 던전 이름이 왜 신세계인지 모르겠네."
검술가 시절의 나는 한세린이 왜 불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원래 가슴에 화가 많은 녀석이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다.
"개연성이 없잖아, 개연성이!"
물론 이후에 최소한의 개연성을 확보하기는 한다.
'신세계'를 클리어하면 타 서버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정확히는 '신세계 면허'라는 것이었는데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자격증이었다.
클리어의 퀄리티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했는데 우리는 보통 2년짜리를 받았다.
"아냐. 그래도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잘 생각해 봐. 정식 오픈을 알리는 아주 중요한 타이밍의 던전이라고. 게다가 이름이 신세계라고. 겨우 면허발급해 주려고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겠어? 야. 어깨 위에 그게 장식이 아니라면 생각을 좀 해봐라!"
당연히 나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저건 길잡이 혹은 군주의 역할이고, 내 역할은 칼을 잘 휘두르는 거였으니까.
아무튼 여기에는 내가 몰랐던 시나리오가 숨겨져 있는 모양이었다.
"다들 보셨겠지만 첫 솔로잉 성공이 아마도 시나리오 발동 조건인 것 같습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지의 것에 도전하다니, 그것도 솔로잉으로.
['미치광이의 추억파편'이 주어집니다.]
예전에는 한 번도 획득하지 못했던 아이템이었다.
인벤토리에 구슬 형태의 아이템이 전송되었다.
"이거 먼저 확인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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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의 추억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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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의 추억파편'을 꺼내 손에 들자 환영이 펼쳐졌다.
"우리는 행복했었지."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숲 속이었다.
작은 오두막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산새소리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어우러진 평화로운 광경이 보였다.
오두막 앞 작은 벤치에 노인 하나가 앉아서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하얀색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머리에 안경을 쓴 남자였다.
'어?'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외과의사 존프릭?'
오른손은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 손은 '만능손'이라 불리는 손이었다.
저 손은 톱이나 칼, 심지어 도끼 등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성질의 손이었다.
존프릭은 왼손에 가죽가방을 들고서 이 작은 마을을 찾았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존프릭. 그 비열한 생체실험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이후 끔찍한 광경이 이어졌다.
어느 비오는 날.
존프릭은 마을 사람들 전원을 중독시켜 쓰러뜨리고서, 온갖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팔다리를 잘라 다른 곳에 이어붙이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샴쌍둥이를 만들기도 했다.
다른 생명체 혹은 마물과 접합하여 괴생명체들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내게는 저항하던 기억밖에 남지 않았다."
노인은 거미 형태의 마물과 접목되었다.
쇠창살에 갇혀 온갖 약물과 실험으로 점점 더 기괴하게 변해갔다.
세상이 어두워진 채 목소리만 들려왔다.
"아아. 나의 행복한 날을 돌려다오."
환상은 거기서 끝났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미치광이의 추억파편'이 박살 났다.
붉은 가루가 되어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그것은 바람결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곳에 있던 마물은 원래는 인간이었다는 설정이네요."
중요한 건 이 마물이 '외과의사 존프릭'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존프릭은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였다.
특히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인물.
출신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외과수술 실력으로, 수많은 힐러들이 포기한 사람들을 고쳐내어 누군가는 그를 신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놈이 원래 생체실험가였어? 그리고 신세계와 관련이 있는 거고?'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이 던전에 뭔가 더 숨겨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목놓아 외쳐대던 한세린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또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바스라진 가루가 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네요?"
붉은 가루가 의지를 가진 것처럼 어딘가로 날았다.
'광야의 미치광이'의 시체였다.
오른 어깨를 맴도는가 싶더니 이내 오른팔에 흡수되었다.
쿵!
미치광이의 오른팔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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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의 오른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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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이템으로 주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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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용암목을 접목하여 만들어낸 탄성팔.
단단하고 질기며 열에 강한 성질을 지녔다.
착용 제한 : 길잡이 계열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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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계열 전용이지만 별로 상관없습니다."
나는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었다.
길잡이 계열 전용의 착용제한을 없애 버렸다.
"착용해 보겠습니다."
오.
신기한데?
"팔이 엄청 길어졌습니다."
게다가 마음 먹으면 더 길게 주욱- 늘릴 수도 있었다.
"약간 고무줄 같기도 하고요."
나는 오른팔을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약간의 이질감은 있었는데 비교적 잘 움직였다.
"이게 용암목이라는 아주 특별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걸 준 이유를 알 것 같네요."
나는 곧바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용암계곡으로 향했다.
"이걸 사용하면 마그마 열매를 꺼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해서 마그마 열매의 위치를 정확히 읽어냈다.
곧바로 팔을 뻗었다.
"상당히 뜨거운데요."
버틸 수 있다뿐이지 뜨겁지 않다는 건 아니었다.
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길잡이나 도적의 도움 없이 내가 저걸 스스로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물고기가 달려들어 물어뜯지만 소용 없습니다."
내 칼도 수월히 막아냈던 팔이다.
저런 물고기의 조잡한 입질은 내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집었습니다."
용암 속에 잠겨 있던 마그마 열매를 꺼냈다.
내 팔을 타고 용암이 뚝뚝 흘러내렸다.
치익-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진 용암이 굳었다.
"마그마 열매 파밍 성공입니다. 이 기세를 몰아서 곧바로 불타는 요새를 향해 가보죠."
다시금 메마른 광야에 진입했다.
[필드, '실험체들의 광야'에 진입합니다.]
원래 알고 있던 모습과 많이 달라진 필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쉽지 않겠는데요?"
기기묘묘한 형상의 괴물들이 득시글거렸다.
인간을 여러 이어붙여 만든 지네 형상의 괴물.
상반신은 인간인데 하반신은 뱀인 괴물.
사자의 얼굴에 양의 몸을 하고 있는 괴물도 있었다.
'처음 보는 것들이 많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괴생명체들이었다.
레벨은 대부분 70~80 내외.
"일단 싸워보겠습니다."
몇 놈을 베었는데 특이점이 있었다.
"베어도 안 죽네요?"
심지어 머리를 잘라도 움직였다.
애초에 생명이 없는 것들이라서 그런 거 같다.
"아, 어렵네요. 체력도 떨어지고 있고요."
이 정도 규모의 마물군단이 모습을 드러내면 당연히 긴장감이 살겠지.
참고로 난 얘들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다 '광야의 미치광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어딘가에 검은색 구슬 같은 것들이 있을 거고, 그걸 깨부수거나 몸에서 이탈시키면 된다.
'치열하게 싸우다가, 죽어주든지 해야겠다.'
몇 번은 죽어줘야 더 재미가 살 거 같다.
"일단 후퇴해서 방법을 생각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약간 자존심 상하는 선택이다.
"이번에는 싸우다 죽도록 하겠습니다. 신나게 싸울 수 있겠네요."
나는 체력안배라든가, 효율적인 전투를 생각하는 대신 그냥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어느새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마치 게임에 푹 빠져 있으면 1시간이 10분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시간 감각이 무뎌졌다.
어떻게 싸웠는지도 기억 안 난다.
'응?'
왜 더 이상 공격이 없지?
"……안 죽었네요?"
죽으려고 했는데 실수로 다 죽여 버린 거 같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주변에 마물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검은 구정물과 녹색 피가 곳곳에 웅덩이를 이루어 메마른 땅이 늪처럼 변해 있었다.
"너무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어서…… 제가 방어신비를 펼친 것도 몰랐습니다."
초월의 영역을 넘어서서 무아의 영역에 들어섰던 것 같다.
극한의 상황에서, 자아를 버리고 오로지 전투를 위한 본능을 끌어내는 영역.
'내가 벌써 이걸 경험했다고?'
레벨 200 이상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무아의 영역을 벌써 경험하다니.
생각도 못했다.
몸에 찌릿찌릿,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환상검희가 다섯이나……!"
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환상검희는 하나 정도다.
그런데 무아의 영역에서 나는 무려 다섯의 환상검희를 다루었다.
"솔직히 기억이 안 납니다.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예전, 검술가 시절의 나는 '무아의 영역'에 들어선 나를 다시 살펴보고자 무던히 노력했었다.
무아의 영역은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의 실력을 끌어내주니까.
"녹화영상이 있을 테니까요!"
무아의 영역에 심취한 나 자신을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공부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쥐고 희열을 토해냈다.
"저는, 더욱, 강해질 수, 있겠네요."
내가 모르는 사이 레벨 95까지 달성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업적, '인위를 부수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절벽 위에 자리잡은 '불타는 요새'를 향해.
[필드, '불타는 요새'에 진입합니다.]
봉주르TV의 봉킹은 최근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만년 랭킹 2위라고 생각했던 강미나가 랭킹 1위를 며칠째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하TV에 질 수는 없다!'
그건 봉킹의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 최고의 스트리머 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다.
김철수 빼고.
'김철수는 어차피 천외천이고.'
봉킹의 관점에서 김철수는 신계에서 노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의 진실된 경쟁상대는 오로지 민하TV뿐이었다.
'아니지.'
민하TV가 전통적 경쟁자라면, 김잘알TV는 급부상하는 라이벌이었다.
민하TV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김잘알TV까지 등장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했다.
['천외천 플레이어' 김철수의 신세계 공략. 과연 '일반인 플레이어'들로 구성해서 따라 할 수 있을까?]
그는 기존에 친분이 있던 랭커들과 플레이어들을 모집하여 신세계 공략에 나섰다.
그 방송은 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반인 플레이어들도 할 수 있다! 거북이를 아주 손쉽게 사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역시, 검술계열 랭킹 1위! 이현성은 대단하군요!"
-외조맨이야: 이현성을 데려다놓고 일반인 플레이어라고? 개소리를 참신하게 하네 ㅋㅋㅋ
-??? : 는 너
-김철수는신이시다: ? 김철수 미만 일반인 맞지.
봉킹도 꽤 좋은 반응에 신이 났다.
'흐름 탔다!'
용암계곡을 건너기에 이르렀다.
"근데 저희는 뛰어난 도적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도적 전용 스킬을 사용하여 용암 속의 마그마 열매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이건 저희가 더 잘했습니다! 다음은 메마른 광야! 김철수 덕분에 약점을 알아냈죠. 바로 공략해 보겠습니다."
레벨 88, 이현성은 김철수와 같은 방식을 시도했다.
'컥!'
일부러 머리를 내주었는데, 머리가 으깨지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고통이 너무 심했다.
'광야의 미치광이'의 아가리 속은 지나치게 폐쇄적이었고, 위험했고, 악취가 가득한 곳이었다.
'혀. 혀를 찾아야 해.'
잠깐이지만 이현성마저 패닉에 빠질 정도였다.
'찾았다.'
결국 그는 김철수와 같은 방식으로 혀를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동료들이 광야의 미치광이를 공격하면서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못했다. 혼자서 했다면 머리가 박살 났을 거야.'
김철수와의 아득한 벽을 체감하고 말았다.
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봉킹은 흥분해서 방송을 이어갔다.
"이현성! 이현성이 해냈습니다! 완전한 솔로잉은 아니지만 솔로잉에 가까운 플레이! 저는 이현성 플레이어를 일컬어 검왕이라 부르겠습니다!"
이현성은 저 큰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김철수. 너는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간 거냐?'
시끄러운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다.
봉킹은 여전히 높은 텐션을 유지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오! 저희도 시나리오에 진입하게 됐습니다! 시나리오의 이름을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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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자국을 좇는 자에게 영광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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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형태입니다. 뒤에 글씨가 비어져 있네요. 외로운 발자국을 좇는다라. 결국 솔로잉을 하고 있는 김철수의 발자취를 쫓는다는 뜻인 것 같기는 합니다만, 더 진행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봉킹이 가슴을 펼치고 크게 외쳤다.
"엘튜브 각이 오지게 서버렸다! 킹정?"
차진혁이 모르는 사이, 새로운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