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9화
김잘알TV에는 하나의 설문이 올라왔다.
[1. 저 정도면 사소한 것.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2. 저런 부상이 사소하다고? 김철수가 매우 이상하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모두가 '2'를 선택해야 했다.
[1. 저 정도면 사소한 것.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72%)]
[2. 저런 부상이 사소하다고? 김철수가 이상하다.(28%)]
* * *
* * *
그러나 김잘알TV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1'을 골랐다.
왕유미는 씨익 웃었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저런 끔찍한 부상이 사소할 리 없다는 건 시청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1'을 선택했다.
'김철수의 캐릭터가 잘 잡혀가고 있다는 증거지!'
콘텐츠를 이끌어가는 힘은 결국 캐릭터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저 비상식적인 담담함! 어딘지 모르게 비틀려 있는 상식! 누가 봐도 어려운데 참 쉽죠? 하는 묘한 애티튜드!'
왕유미는 차진혁의 방송을 중계하면서, 그 스스로 차진혁을 덕질했다.
'아쉽다, 아쉬워.'
그녀의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차진혁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방완얼인데.'
방송의 완성은 얼굴이다.
적어도 차진혁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공개하게 될 거야.'
그때를 위하여 많은 서사와 캐릭터성을 부여하기로 했다.
"네, 참 쉽네요. 어? 제보가 들어오고 있네요? 몇몇 연합과 팀들이 김철수가 했던 그대로 플레이를 해보고 있다는 제보들입니다. 네? 제 메일로 영상 보냈다고? 네에. 고맙습니다! 영상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철수의 방송을 보고 그 공략을 따라한 피해자(?)들의 제보가 빗발쳤다.
사막 거북부터 문제였다.
영상을 공유한 왕유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요. 이렇게 쉬운 걸 못한다고요?"
채팅창에 'ㅋㅋㅋ'가 많아졌다.
-결혼해듀호: ㅋㅋㅋ 와 저걸 못하넼ㅋㅋㅋㅋ
-곽곽곽: 저걸 못한다고? 나도 저정도는 쌉가능(내 레벨25)
-미륵: 플레이에 마구니가 꼈구나!
일반적인 시선에서 김철수의 플레이는 기예에 가까웠다.
너무나 효율적으로 사막 거북을 사냥했다.
사람들 모두가 그걸 알았다.
그렇지만 모두가 주장했다.
김철수의 플레이는 아주 쉬운 플레이라고.
"그래도 제법 잘 따라 하는 영상들도 있네요."
거북 사냥까지는 그럭저럭 따라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철수만큼 깔끔하게는 아니어도, 사막 거북 공략에는 곧잘 성공했다.
"문제는 용암계곡인데요."
김철수가 하는 걸 보면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부상도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상 따라할 수 있는 이들이 없었다.
-펑범: 제보자입니다. 저렇게 쉬운 것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ㅠㅠㅠ
반성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평범'님이 1,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반성하겠습니다 흙흙 이렇게 쉬운 것도 못하는 나는 개쓰레기입니다."]
김철수처럼 용암을 달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신체적 능력은 받쳐줘도 멘탈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설령 뛰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모두 '용암 물고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정댓글> 얼음마왕 : ㅅㅂ 이거 쉽다고 한 새기 누구냐? 이게 쉽다고? 단체로 미친새기들인가.]
분위기 파악 못한 이들 중 몇몇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 너 친구 없지?
┗ 이 쉬운 걸 못하는 나 ㅋㅋㅋㅋㅋㅋ
┗ 살 좀 녹고 발목 뼈만 드러나면 되는데 이걸 못한다고?
┗ 치열맨을 보셈. 개쉬운데 뭔 솔?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김잘알TV를 확인하지 못한 차진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너무 쉬운 것만 보여주면 긴장감 떨어지는데.'
30분가량 지난 상태.
포션을 통해 발목은 완치시켰다.
진행이 너무 느슨해졌으니 이제 새로운 걸 보여줄 때가 된 것 같았다.
"부상을 회복하는 사이에 용암 계곡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보니까 용암계곡 안에 파밍해야 할 아이템이 숨어 있는 거 같습니다."
차진혁은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본 내용을 캡처해서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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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마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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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안쪽에 마그마 열매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근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도적이나 길잡이의 도움없이 저걸 꺼내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지금으로서는 차진혁 또한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솔로잉이 비효율적인 이유였다.
'낭만이 있네.'
모르는 것이 많아야,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많아야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다.
열심히 생각해 봤지만 저걸 꺼내는 방법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일단은 저기에 마그마 열매가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차진혁이 걸음을 옮겼다.
'덥네.'
용암계곡 필드를 지나 불타는 요새쪽을 향해 계속 걷자, 불타는 요새 직전에 마주하게 되는 필드인 '태양이 내리쬐는 광야'에 도착했다.
"전체적인 모습은 아까 지나쳤던 메마른 들판과 비슷하기는 한데요, 더 푸석하고, 더 메말라 있습니다. 거기는 선인장도 있고 마물도 있었는데, 여기는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보이는 것이라고는 메마른 땅과 모래.
작열하는 태양밖에 없었다.
아주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불타는 요새'가 이정표처럼 불타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중간보스가 나오지.'
이곳에 별다른 마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광야의 미치광이'라는 레벨 90대의 중간보스가 등장한다.
'본신 레벨 자체는 높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놈한테 5번도 넘게 죽었었다.
놈은 이곳의 지형지물을 워낙에 잘 사용하는 놈이었고, 이 필드에 최적화된 마물이었다.
단순히 레벨이 높다고 해서 놈을 압도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광야의 미치광이라는 마물이 등장하는 영상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요."
나는 미리 준비해놓았던 사진 몇 개를 공유했다.
'광야의 미치광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미친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미의 형상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인간이 거미처럼 기어다니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더러워진 백발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노인의 얼굴.
기괴하리만치 기다란 팔.
그 팔은 피부가 괴사한 사람의 팔 같기도 했고, 썩은 고목으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했다.
"여덟 개의 팔이 달려 있는 괴물인데요, 개중에서도 앞발 두 개가 기괴하게 길고 흉측하네요. 이런 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무섭습니다."
아까까지 열심히 가르치는 컨셉은 잘 보여줬으니, 이제는 내 원래 컨셉으로 돌아가서 치열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슬슬 긴장감이 생기는 구간이네.'
과연,
지금의 내가 직접 마주하는 '광야의 미치광이'가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해졌다.
'온다.'
놈은 기괴한 팔을 사용해 이 광야 밑을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플레이어가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튀어나와 플레이어의 머리를 물어뜯는다.
'일단, 중계자의 시야는 사용 안 해야겠다.'
이걸 사용하면 놈의 위치를 너무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모래 속에 은신하여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이 이놈의 능력.
'이래야 긴장감도 살고, 예전의 나와 비교도 잘 할 수 있지.'
겉으로 보기에는 중계자의 시야를 제대로 펼치기 어려울 정도로 급박한 상황처럼 보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중계자인 왕유미로부터 간단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킹갓제네럴유미(중계자)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중계자의 시선 안 썼어요!"]
확실히, 내가 많이 급박해 보이나 보다.
방송 중에 직접 개입은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왕유미가 이렇게 중계자의 메시지를 보내서 알려줄 정도면 말이다.
'내 발밑.'
나는 몸을 뒤틀어 밑으로부터 솟구치는 광야의 미치광이의 공격을 피해냈다.
놈이 공중에 떴다.
늙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놈의 입에서 구정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놈이 입으로부터 무언가를 뱉어냈다.
녹색의 끈적한 거미줄이었다.
"이크."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가 있던 자리에 녹색 거미줄이 닿았고, 치익-소리와 함께 모래가 녹아내렸다.
'오? 중계자의 시야 없이도 피해냈어?'
예전 이곳에서 처음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 이 공격이었다.
이 공격을 이제는 내 순수 피지컬과 직감만으로 피해냈다.
상당히 좋은 결과이기는 했지만, 이것만으로 단순히 예전의 나보다 더 강해졌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다.
'어떤 공격이 올지 알고 있었으니까.'
이미 알고 있는 공격을 막는 것과 모르는 공격을 막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약간 급박한 척 검을 휘둘러 볼까?'
일부러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지금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할 수 있는 여유마저 없는 급박한 상태니까.
나는 말없이 곧바로 광야의 미치광이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놈은 기다란 앞발을 X자로 교차하여 내 검을 막아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나무에 도끼질을 하는 것만 같은 소리였다.
'데미지가 거의 안 들어갔어.'
놈이 모래 아래로 숨어버렸다.
그 틈을 타서 내가 입을 열었다.
"유달리 긴 앞발 두 개의 방어력이 상당합니다. 그 두 곳을 피해 공격해야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제야 여유를 되찾은(?) 나는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했다.
'중계자의 시야'는 다중인생 설정을 통해 '중계자의 시선'으로 이름이 설정된 상태.
왕유미가 말했다.
"중계자의 시선을 사용할 수도 없을 만큼 상황이 긴박했네요."
시청자들도 각자의 반응을 쏟아냈다.
왕유미는 '피드백' 스킬을 통해 몇몇 반응들만 추려서 원작자인 차진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은 차진혁의 방송에는 노출되지 않고, 차진혁에게만 은밀하게 전달되는 중계자의 피드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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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김철수는 아주 매우 치열하다.
-볼빨간산사춘: 세상에 저렇게 치열한 전투 처음 봄 ㅇㅇ 긴장감 어쩔? 대단쓰bbb
피드백 요약 : 긴장감 연출 좋아요. 숨 막히는 전투씬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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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짜집기 된 피드백이었다.
-일부러 중계자의 시선 안 쓴 거지?
-봐주는 거 졸라 티 남 ㅋㅋㅋㅋ
-오늘도 본인만 치열한 치열맨의 하루ㅋㅋㅋㅋㅋㅋㅋ
-이거 CC같은 거 아니냐? 본인은 철저하게 비밀연애 하는데, 둘 빼고 다 아는 그런 거?
기타 등등의 반응들은 피드백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기 본인은 진짜 치열한 줄 알아서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치열맨.
그게 컨셉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왕유미에게 중요한 건 그런 '이미지'와 '캐릭터성' 그 자체였고 이미 어느 정도 성공했다.
차진혁은 왕유미의 피드백에 무척 흡족해졌다.
라칸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왕유미의 피드백을 보아하니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역시 콘텐츠에는 긴장감이 있어야지.'
다시금 광야의 미치광이가 솟아올랐다.
'찌를까?'
놈의 이마에 라칸을 꽂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치열맨 연출'이 성공적으로 먹히고 있는 상황.
'얘를 상대로도 내 성장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중간보스 정도로는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이상하게 '광야의 미치광이'가 너무 쉽게 느껴졌다.
'공격으로 확인하기 어려우면.'
몸의 대화에는 공격만 있는 게 아니다.
맞는 것도 대화의 일부다.
"하압!"
차진혁이 공중으로 뛰어오른 마물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마 쪽을 겨냥했으나 마물이 그로테스크한 몸동작으로 목을 꺾어 검을 피해낸 뒤, 고무줄처럼 머리를 쏘아내 차진혁을 덥석 물었다.
꽈득!
머리를 꽉 깨물었다.
광야의 미치광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구정물과 함께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놈의 아가리에 갇히게 된 차진혁은 꽤 기뻤다.
'예전보다 훨씬 씹힐 만하잖아?'
참고로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는 빼놓은 상태다.
어중간한 마물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그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
치명상에 해당하는 공격은 오히려 즉사 공격으로 전환되어 주인을 공격하는 아이템이니까.
꽈득! 꽈득!
광야의 미치광이는 강한 치악력으로 차진혁의 머리를 씹어대는 한편, 괴기하고 기다란 팔로 차진혁의 몸통을 아래로 쭉 끌어당겼다.
머리와 몸을 분리해 내려는 것처럼.
'흐흐흐흐.'
또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역시 기준점이 있어야 성장을 잘 체감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죽어줄까?'
그러면 엘튜브각 살 거 같은데.
차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아마 머리가 깨져서 죽든, 몸이 찢어져서 죽든, 아무튼 죽을 것은 분명했다.
'죽는 것도 나쁘지 않기는 한데.'
그런데 혀가 보였다.
'혀. 저게 약점인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혀의 뿌리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검은색 돌이 이놈의 약점이다.
이러나저러나, 혀를 통째로 뽑아버리면 놈은 즉사한다.
그러니까 혀가 약점이라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물의 아가리에 삼켜진 차진혁은 꽤 평온한 상태로 고민했다.
내가 죽을 것인가, 이놈을 죽일 것인가.
뭐가 더 나은 연출이 될 것인가.
'긴장감을 위해 죽어줘야겠다.'
스트리머 차진혁의 머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해…… 빠진…… 놈."
차진혁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씹어…… 삼켜…… 주마."
마물의 덩치에 비해 상당히 가녀린 혀를 향해 뻗어 나가 혀를 움켜쥐었다.
우드득!
혀를 뿌리째 뽑아냈다.
그는 자신이 스트리머임을 잠시 잊었다.
본능이 그를 지배했다.
"내가 약하다고?"
감히 날 물어?
씹어 삼켜?
꽈득!
놈의 혀끝, 검은 돌들을 씹어서 깨뜨려 버렸다.
이 새끼가 까불고 있어.
['광야의 미치광이'를 처치하였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이게 아닌데?
[최초로 '광야의 미치광이' 솔로잉에 성공하였습니다.]
[신세계 시나리오, '새로운 곳에 나 홀로 걷다' 활성화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회귀 전, 이곳에 수백 차례 들어왔었던 차진혁으로서도 처음 듣는 알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