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18화 (11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8화

차진혁은 그 누구보다 '기본'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검술가 시절의 차진혁은 1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칼로 한 번 더 찔러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기본을 잊으면 안 돼.'

그것은 스트리머인 지금도 적용되는 진리였다.

스트리머는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시청자는 스트리머에게 그에 대한 대가로 관심과 후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스트리머는 그 시청자에게 감사하며 더 좋은 콘텐츠로 보답한다.

'시청자가 없으면 스트리머도 없어.'

* * *

이번에 시청자에 대한 감사함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스트리머라면, 당연히 후원에 대한 감사 리액션을 해야만 했다.

그게 기본이었다.

'여태까지는 내 사리사욕에 심취해서 기본을 잊고 있었다.'

그는 크게 반성했다.

돈이 너무 많아지면 빨리 은퇴해야 할 것 같은, 이를테면 마지막 양심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후원창을 애써 외면했었다.

그러나 그는 초심과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으면 어떡하지?'

차진혁은 떨리는 마음으로 후원창을 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읽으며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내팔굵다 님 1,000다이아 후원 감사합니다. 오작교모닝스타 님 3,000다이아 후원 감사합니다, 핑크응가 님 2,000다이아 후원 감사합니다."

유명한 스트리머들은 시그니처 리액션도 있다고 하던데.

나는 그런 것도 없구나.

스트리머로서의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차진혁은 자신의 형편없음을 다시금 깨닫고 말았다.

'반성한다.'

매일 같이 '반성할게요'라고 말하던 신유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신유리도 그렇게 자기반성을 하면서 발전하고 있는데, 내가 기본을 잊을 수는 없지.

'다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반성의 한 형태였다.

이번만큼은 모든 후원 내역을 하나하나 열심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전지적피해자시점 님 3,000다이아 후원 감사합니다. …… 감사…… 합니다…… 감사…… 감사…… 감사…… 감사…… 합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기억하고, 시청자들의 이름을 정성 들여 부르는 사이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차진혁은 상당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끝이 없어!'

그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후원 읽는 속도보다 후원이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

지금 제공하는 콘텐츠는 딱히 재미가 없는 콘텐츠였다.

그냥 열심히 정성을 담아 후원 리액션 –사실 리액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없었지만- 을 하고 있을 뿐인데 이상하리만치 후원이 많이 쏟아졌다.

'이대로는 안 돼.'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이 후원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진혁은 결국 후원창을 닫고 말았다.

한편, 차진혁의 방송을 중계하는 시청자들의 놀이터.

김잘알TV의 왕유미는 오늘도 치열맨의 치열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말 치열하게 자신과의 사투를 이어가고 있네요! 치열맨은 오늘도 치열하다! 후원 속도가 리액션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걸 아직은 깨닫지 못한 모양인데요, 깨달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네요!"

김잘알TV 채널에 'ㅋㅋㅋ'가 가득했다.

치열한 김철수를 더욱 치열하게 만들자는 붐이 일어났다,

-나도 후원한다.

-어, 너두? 나두.

-후원 ㄱㄱㄱㄱㄱㄱ

왕유미는 이번 사태에 티 나지 않게 계속 영향력을 행사했다.

"저도 후원해 볼게요. 제 이름도 불러줄까요? 아, 불러주면 좋겠다."

유명 스트리머에게 관심을 받고자 하는 수요층은 늘 존재하기 마련.

평소 닉네임을 불러주지 않기로 유명한 김철수에게 이름이 불리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은 아주 많았고, 왕유미는 그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후원이 끊이질 않았다.

김철수의 후원 리액션이 8시간을 넘어가자, 한마갤도 이 주제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김철수 방송 망한 듯ㅋㅋㅋ 방송이 개씹노잼 ㅋㅋ]

┗ 응, 후원 12억 돌파.

┗ 망해서 12억? 갸꿀 ㅋㅋㅋ

[아니 근데 왜 저렇게 치열하냐? 저게 저렇게 치열할 일이냐?]

┗ 치열맨이니까 ㅋㅋ

┗ 역대 최고로 치열한듯 ㅋㅋㅋㅋ

┗ 진심 치열모드 시즌2 발동했누 ㅋㅋㅋ

치열맨은 자기가 치열한 줄 아는, 사실은 치열하지 않은 김철수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치열맨이 진심으로 치열했다.

[저도 자극받았읍니다 ㅋ 아직 젊으니까 나도 치열해야지 치열쓰 ^.~ ㅋ]

┗ 아재요 ㅠㅠ

┗ 절므니 화이팅!

결국 차진혁이 후원을 닫고서 또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원 리액션이 끝났다.

차진혁은 미루고 미뤄놓았던 숙제를 해낸 기분이었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기쁠 게 없었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나도 후원 리액션 만들어야 돼.'

기본을 지키지 않는 스트리머를 누가 스트리머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차진혁은 그저 닉네임을 읽고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못내 괴로웠다.

'강미나나 왕유미는 리액션도 엄청 재밌게 하면서 자연스레 토크 끌어가던데.'

킹갓제네럴유미의 태동을 보면서, 시청자들과 소통하며 방송을 진행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던 그 자신을 회개했다.

'나는 너무 초보다.'

왕유미에게 소통을 맡겨놓길 잘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정말로 신세계에 진입해 보겠습니다.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서, 신세계에 집중하기 위해서, 후원창은 잠시 닫겠습니다."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던전, '신세계'에 입장하였습니다.]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기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이곳은 한 마을의 광장이었다.

배경은 중세 유럽 배경.

['아조프 마을'에 입장하였습니다.]

'오랜만이네.'

마을의 규모는 꽤 컸다.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한 워프포탈에서 바라보면, 붉은색 지붕이 파노라마처럼 멀리 펼쳐져 있었다.

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규모였다.

'던전다운 던전에 드디어 진입했다.'

적어도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던전이라고 할 수 있다.

NPC도 많고, 던전 내 퀘스트들도 다양하고, 클리어루트도 다양해야 한다.

그래야 플레이하는 맛이 있다.

"솔로잉 모드라서 그런지 독립공간으로 전이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일반 모드로 진행하면 타 플레이어와도 만날 수 있다.

"계단을 내려가 보겠습니다."

워프포탈의 계단을 내려가자 한 NPC가 말을 걸었다.

"새로운 모험가인가?"

"예."

"아조프 마을은 처음인가? 그렇다면 내가 몇 가지 알려줄 수 있는데."

선택지가 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하겠다는 선택지와 무시한다는 선택지.

"사실 이곳에 대한 공략도 꽤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죠. 저는 무시하겠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도전했다.

클리어된 적은 없지만 중간 보스까지는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저도 몇몇 영상들 보면서 이미 공부해왔거든요. 남들도 다 공략한 흔한 초반부는 빠르게 스킵하겠습니다."

이곳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서쪽 루트과 동쪽 루트가 존재하는 곳이다.

서쪽에는 '불타는 요새'가, 동쪽에는 '동쪽 옛 성읍'이 있다.

'원래는 동쪽 옛 성읍부터 클리어해야 수월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불타는 요새부터 공략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나도 그랬던 거 같다.

'어차피 한 방에 클리어는 못 해.'

나도 아마 여러 번 죽어야 할 거고, 어쩌면 클리어에 실패할 수도 있다.

일단은 다른 사람들이 클리어하고 공개한 공략대로 움직여보기로 했다.

나는 아조프 마을의 서문에 도착했다.

서문에는 낡은 갑옷을 입은 경비병이 서 있었다.

"이봐. 모험자. 서쪽으로 모험을 떠나려고 하는 건가?"

"예. 불타는 요새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더군요."

"그렇다면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퀘스트, '서문 경비병의 부탁'이 생성되었습니다.]

이건 필수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퀘스트다.

이 경비병은 불타는 요새에서만 자라는 '열꽃'을 구해다 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그 열꽃을 잘 채취하기 위해서는 이 경비병이 내주는 특별한 화병이 필요하다.

그 화병이 나중에 귀하게 쓰이는데, 아직 거기까지 플레이한 사람은 없는 거 같다.

애초에 열꽃을 발견한 사람조차 없었으니 말 다 했다.

"꼭 열꽃을 구해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퀘스트를 받은 나는 서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서쪽 지역, '메마른 들판'에 진입합니다.]

예전의 나와 정확한 비교를 위해 신화급 카드 효과도 적용했다.

"공기가 상당히 건조합니다. 땅은 푸석푸석하고 식물들은 메말라 있습니다. 저기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 같이 생긴 마물이 존재하네요. 몸집은 대략 2미터쯤. 체중은 700kg쯤 되는 것 같네요. 앙증맞게 걸어옵니다."

쿵! 쿵!

동물치고 저 정도면 꽤 큰 편이지만, 마물치고 저 정도면 앙증맞은 편이었다.

"방어력이 무척 높고 여차하면 등껍질 안으로 숨는 녀석이라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들었는데요."

[LV70/사막 거북/스킬]

레벨은 70.

나는 라칸을 들어 올렸다.

"일단 간을 보겠습니다."

스킬 사용 대신 일반 공격으로 쭉- 찔러 넣었다.

푸욱!

'어라.'

라칸이 거북의 몸통을 뚫었다.

'내 생각보다 더 쉽게 뚫리네?'

화들짝 놀란 거북이 몸을 뒤집으며 등껍질 속으로 숨었다.

"이런 모양이 나오면 사냥하기가 아주 쉽다고 하더라고요."

상대적으로 배 부분은 방어력이 약했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합니다.]

레벨 50에 획득하는 기본적인 스킬.

기본스킬이니만큼 예비동작이 작고 정신력 소모도 현저히 적었다.

"한 번으로는 베기 어렵고."

보호막을 깨야 했다.

근데 보호막의 결이 아주 일정하게 나 있어서 검결을 찾아내기 쉬웠다.

"일곱 번 정도 베어보겠습니다."

일곱 번을 베었다.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때 찌르면 될 거 같은데요."

나는 거북의 몸 위에 올라탔다.

푹! 푹! 푹!

짜릿한 손맛과 함께 진녹색 피가 튀어 올랐다.

"잘 찔립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푹! 푹! 푹!

계속해서 찔렀다.

'확실해. 예전보다 더 쉽다.'

물론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도, 얘는 그리 난이도 높은 개체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나랑 레벨 차이 자체가 많이 났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10레벨 대의 검술가였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한다면, 지금의 내가 더 강한 거 같기도 했다.

'아니. 너무 들뜨지 말자.'

기준으로 삼기에 얘는 너무 약하다.

그리고 당시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경험이 훨씬 많다.

'내 능력이 더 좋아진 게 아니라 경험이 더 많이 쌓여서일 수도 있어.'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혔다.

푹! 푹! 푹!

['사막 거북'을 처치하였습니다.]

푹! 푹! 푹!

['사막 거북의 등껍질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푹! 푹! 푹!

푹! 푹! 푹!

완전히 흥분을 가라앉힌 나는 거북의 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렇게 사냥하면 되네요."

순간, 나는 흠칫 놀랐다.

'너무 쉽게 사냥한 거처럼 연출했나?'

근데 또 생각해 보니 매번 치열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한 가지 패턴으로만 연출하면 시청자들도 질리지 않겠는가.

'이번 콘텐츠는 컨셉을 조금 바꿔야겠네.'

치열함은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 한다.

치열맨이 안 치열하면 안 되겠지.

나는 굳이 더 사냥할 필요 없는 사막 거북 몇 마리를 더 사냥했다.

"이렇게 찔러서."

치열하게 가르쳐주었다.

이런 잡몹에게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뒤집은 다음에."

슥삭슥삭.

칼을 휘두르면 된다.

"이러면 됩니다. 쉽죠?"

설마 이렇게까지 가르쳐줬는데 못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래도 나는 혹시 모를 열등생들을 위하여 치열하게 가르쳐주었다.

무려 17마리의 거북을 사냥한 뒤 나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중간중간 선인장 형태의 마물이나 전갈 형태의 마물들도 있기는 했지만 던전 클리어와는 별로 관계없는 마물이라서 무시했다.

"이렇게 뒤에서 찌르기도 하는데요.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굳이 엄한데 체력을 쓸 필요는 없겠죠?"

중계결계로 여러 차례 가시 공격과 꼬리 공격을 막아냈다.

선인장과 전갈은 제풀에 지쳐서 멀어졌다.

"일단 이쯤에 세이브 포인트를 하나 잡아놓겠습니다."

세상에, 세이브가 되는 친절한 던전이라니.

이런 친절한 설정은 유용하게 이용해야 한다.

"점점 더워지는데요."

붉은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메마른 들판'과 명확히 경계가 나뉘었다.

"저기 앞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네요."

──────────

[용암 계곡]

──────────

"저길 건너야 할 거 같은데요."

건너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아주 빠르게 뛰어가면 된다.

화상은 좀 입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거다.

운 나쁘면 죽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니까 이제는 생략하겠다.

"용암은 문제가 안 되는데, 용암 속에서 튀어나오는 용암 물고기가 문제죠?"

용암 하나만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

용암 물고기 하나만으로도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저 둘이 합쳐졌을 때다.

영상으로 많이 봤다.

"용암 물고기가 발을 물어뜯기는 순간 사람들은 멈칫하기 마련이고, 용암에 빠지게 되는 구조더군요."

운 좋은 사람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운 나쁘면 용암에 빠져 타죽는다.

"저도 한 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나도 한 번 뛰어봤다.

운이 나빴던 건지, 용암 물고기가 내 발을 물었다.

"물렸지만 괜찮습니다."

건너편에 도착했다.

"이렇게 물려도 움찔하지 않으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네요."

치악력이 워낙 좋은 녀석이라 살점이 꽤 많이 뜯어져 나갔다.

"상처를 입으면 용암의 열기에 훨씬 쉽게 잠식된다는 설정이 걸려 있습니다. 상태이상으로 열상이 적용되네요."

때문에 상처가 흐물흐물해지고 피부가 녹아서 발목뼈가 드러났다.

아주 사소한 부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세계의 악명에 비해서는 난이도가 낮은데요?"

전생의 내가 기억하는 신세계보다 어째 훨씬 쉬운 느낌이네.

아직까진 기분 탓인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