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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17화 (11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7화

나는 요즘 매일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건 내가 내 스스로의 성장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술가로서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스트리머로서, 그리고 군주로서의 성장까지.

특히 군주로서의 성장은 마치 사춘기 애들 키가 쑥쑥 크는 것처럼 크게 체감되었다.

'내가 워낙에 초보였으니까. 성장 폭이 엄청 크게 느껴지네.'

뭐든지 초반 성장은 아주 달달한 법이다.

초보 군주인 나는 성장의 달달함을 만끽하고 있다.

'보상이 너무 짰지?'

겨우 1레벨업?

* * *

* * *

이게 보상일 리 없다.

'분명 강제적인 무언가가 보상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 그건 아마도 밸런스 문제일 테고.'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규모 수능이란 행사도 밸런스 못 맞추면 욕먹는 세상이다.

우주 규모의 서버에서 밸런스를 못 맞추면 그 여파는 수능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아마 관리자들이 필사적으로 보상을 지연시키며 대책을 논의 중일 거다.

'이런 게 보인다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과거 미친놈 시절의 나였다면 '아, 뭐야, 보상 개쓰레기네'라고 한 번 투덜거리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검술가 차진혁의 눈에 그딴 건 안 보이지만 군주 차진혁의 눈에는 이런 게 다 보인다.

아무튼 얼마 지나지 않아 키하엘이 날 찾아왔다.

얘도 참 고생 많다.

"……해서, 한 상황이다."

의외로 얘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것들을 솔직하게 오픈했다.

내가 최갑수 영감님과 미셸장을 상대할 때 잡기술을 배제하고 진심으로 대했던 것처럼, 얘도 나를 상대로 정공법을 선택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잠재 스킬, '협상의 달인'을 사용합니다.]

참고로 여기는 우리집이다.

내 모든 능력이 강화되는 권역.

거기에 얘가 우리 집에 오자마자 나는 신화급 카드 뒷면 효과로 내 레벨을 20레벨 높여놨다.

내 기준에 군주로서의 나는 경험이 별로 없는 초보이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효과들로 인해 내가 마치 뛰어난 군주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얘를 어떻게 구워삶아야 할지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하긴. 밸런스는 중요하지. 관리자들의 관리 실수로, 그 모든 것들이 한 명한테 집중되면 곤란하기는 할 거야. 여러 명이 나눠 가지라고 만들어놓은 것일 테니까. 수호수의 도움이라든가, 룰 브레이커라든가, 수호자의 반지라든가, 제작 맞춤형 방어신비라든가, 기타 등등."

말을 하는 내내 키하엘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듣다 보니 우울한 현실이 더 체감되는 모양이었다.

"관리자들의 상황을 이해해."

"……정말이냐?"

키하엘은 의심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내 스스로가 의심스러웠다.

내가 말을 너무 잘한다.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보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도 이해해. 그러니까 더 미뤄도 괜찮아. 내 동의가 들어가면 조금 더 수월하게 지연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아?"

"……."

키하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아주 미묘한 변화였지만 내 눈에는 아주 크게 보였다.

이 또한 '협상의 달인' 효과였다.

"원하는 게 뭐지?"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냐? 나는 네가 조금 더 편했으면 하는 거야."

"……."

중계자의 시야와 협상의 달인 또한 훌륭한 콜라보를 보여주었다.

키하엘의 심리가 예전보다 훨씬 잘 읽혔다.

[……#이럴 리가 없는데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괴물이?]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어차피 똥은 쌌어."

보상을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안 줄 수는 없다.

그건 나도 알고 키하엘도 아는 사실이다.

참고로 보상을 거절할 생각은 전혀 없다.

"누군가는 똥을 치워야겠지. 근데 말이야."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말을 끊었다.

키하엘의 반응을 보는 게 좀 웃겼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귀가 쫑긋거렸다.

실제로 그랬다는 건 아니고, '협상의 달인'을 사용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는 뜻이다.

"그게 너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냐?"

중계자의 시야로 본 키하엘의 머리 위에 내 눈에만 보이는 표시가 생성되었다.

[!]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었다.

"어차피 곧 오픈베타 끝나고 정식 오픈 시작되잖아. 그거 맞춰서 보직 이동해. 그때까지 기다려줄게."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

나는 키하엘이 마음에 든다.

나를 특별관리하는 관리자들이 배치될 텐데, 개중 나를 오래 보아온 키하엘이 포함될 거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얘는 보직이동 못하고 나랑 계속 같이 가야 할 거다.

근데 그건 말해주지 않았다.

"하, 하지만……!"

"원래 전임자가 싼 똥은 후임자가 치우는 거지. 욕도 후임자가 먹고."

"……."

"그나마 좋은 생각이지?"

전임자도 욕을 안 먹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후임자보다는 훨씬 낫다.

비야망가 직장인 스타일 키하엘에게는 아주 달콤한 제안일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심리가 다 읽힌다고!'

나는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키하엘은 마지막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물었다.

"왜 나를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거지?"

"너를 배려하는 게 아냐. 나를 위해서지."

"너를 위해서라고?"

"나한테도 명분을 주는 거지. 나는 시스템 운용을 최대한 배려했다. 관리자들과 협력할 자세가 충분히 되어 있다. 나는 대책 없는 독불장군이 아니다. 그걸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가 되는 거야."

나만 잘나서는 안 된다.

결국 내 세력을 확장시켜야 하는데, 그저 나만 잘났소! 하고 주변을 다 패고 다니면 외톨이가 되는 건 나다.

검술가 차진혁은 그래도 되지만 군주 차진혁은 그러면 안 된다.

"너, 직업이 뭐였지?"

"나?"

얘는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스트리머."

신 시나리오 클리어에 관한 보상은 미루기로 했다.

정식 오픈이 시작된 이후에 받기로 했다.

그게 뭐가 될지는 시스템이 결정한다나 뭐라나.

"흐흐흐."

된장찌개를 떠먹던 차진솔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오빠, 미친놈 같아."

"넌 이렇게 똑똑한 미친놈을 본 적이 있냐?"

가족과의 단란한 식사를 마친 뒤, 차진솔이 나를 쫄래쫄래 쫓아왔다.

"뭔데? 뭐가 그렇게 신나는데? 엄청 센 마물이 등장했어?"

"정식 서버 오픈 전까지, 지구 서버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를 시키려고 노력할 거야."

"상향평준화?"

나는 지금 보상을 못 받고 있다.

지금 기준에서 내게 주어지는 보상들이 너무 과해서 밸런스가 지나치게 파괴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 다른 애들이 강해져야 그나마 욕을 덜 먹을 테니까."

나는 키하엘과 있었던 일을 대충 얘기해 줬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녀석답게 금방 이해했다.

"아! 그러니까 지구 전체의 수준을 높여서, 오빠의 보상이 과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거네?"

"그렇지."

"그럼 오빠한테 안 좋은 거 아냐? 상대적으로 보상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거잖아."

"지구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지."

그러나 지구만 볼 게 아니다.

정식 오픈이 되면 서버 간 이동이 점차 자유로워진다.

결국 서버끼리 경쟁해야 하고, 그 가운데 지구가 상향평준화된다는 것은 내 본진이 튼튼해진다는 의미였다.

"좀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날 거고, 부활 설정 같은 것도 더 많이 걸릴 거고, 좋은 템들도 드랍이 많이 될 거야."

"우리도 발맞춰서 준비해야겠네. 정보 고마워, 오빠. 이건 관리자가 알려준 거야?"

"관리자가 미쳤냐? 이런 걸 세세하게 다 알려주게?"

차진솔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그럼 이런 건 오빠가 스스로 생각해낸 거라고?"

"후후."

차진솔의 반응이 꽤 바람직했다.

리액션이 풍부한 시청자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이제 갓 초보 티를 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성장하고 있어."

"……초보 티를 벗고 있다고? 성장하고 있다고? 오빠가?"

얘는 왜 인정 못하는 거 같냐.

분명 나는 성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거 은근히 자존심 상하네.

"어, 군주로서 말이야."

"……."

차진솔은 잠깐,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인상을 찡그렸다가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저 속내를 읽을 수가 없어서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볼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이렇게 일상적인 동생과의 대화에서조차 스킬에 의존하면 내 사회성이 다 증발해 버릴 거 같다.

능력의 적절한 이용도 플레이어로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뭐, 맞아. 오빠는 초보지. 그런 걸로 하자. 그래서? 초보인 오빠는 이제부터 뭘 할 건데?"

말하자면 지금은 공백기다.

원래 신 시나리오가 두세 달은 진행되어야 했었고, 다른 말로 하자면 내게도 두세 달의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다.

"신세계에 가보려고."

버그 쓰나미가 일어났던 3개국 미국, 중국, 독일.

그리고 개미여왕의 습격이 있었던 한국.

네 국가 수도 곳곳에 동일한 이름을 지닌 던전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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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는 여러 개였으나 모두 같은 던전이었다.

입장 최소 레벨은 70.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던전들 중 입장 제한 레벨이 제일 높았다.

-신세계란 무엇인가!

-신세계의 문턱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랭커들.

이미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신세계'에 진입했으나 그 누구도 끝을 보지 못했다.

-무한 부활, 그것은 축복인가 독이 든 성배인가!

신세계는 무한 부활 설정이 걸려 있었다.

운이 나쁘면 연속으로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때문에 상당히 많은 플레이어가 폐인이 되었다.

혹은 무한 부활을 믿고서 무리하게 플레이를 진행하다가 정신적 임계점을 넘어 폐인이 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신세계는 플레이어들에게 친절하면서 또 친절하지 않은 던전이었다.

세이브 및 로드가 설정된 최초의 던전!

자유 입출입이 가능하면서 세이브와 로드 설정까지 가미 된 던전.

일정 지점에 세이브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

죽으면 세이브 포인트에서 부활하면, 세이브 이전에 플레이했던 내용은 저장된다.

'신세계.'

차진혁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꽤 고생했었던 곳인데.'

전생의 차진혁이 클리어했던 곳이다.

내용과 공략법은 모두 알고 있다.

'그때 우리 팀 레벨이 평균 120대였는데.'

신세계는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로도 한참 동안 미개척 던전으로 남아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차진혁의 팀원들의 평균 레벨이 120을 달성했을 때.

차진혁이 개인 레벨 124를 달성했을 때에, 겨우 클리어했었다.

'지금의 내가 클리어할 수 있을까?'

아마 못하겠지?

'근데 솔로잉 모드로 설정하고 진행하면?'

솔로잉 모드로 진입하면 솔로잉에 맞게 난이도가 조금은 하락할 거다.

'솔로잉 모드로 진행해도 내용 자체는 안 바뀌어.'

그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팀 단위로 클리어하기 전에, 차진혁은 쉬는 날을 빌어 '신세계'에 여러 번 들어갔었다.

'그때 못해도 200번 이상은 죽은 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았다.

10번의 죽음 이후로는 잘 안 셌으니까.

'솔로잉 시도할 때 내 레벨이 110대 중반이었지, 아마.'

그러니까 '신세계'야말로 과거의 차진혁과 현재의 차진혁을 비교해 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지표라고 할 수 있었다.

'제발 내용이 안 바뀌어 있으면 좋겠다.'

보상이나 경험치 획득량 같은 건 더 좋아졌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도 관리자들은 지구 서버의 평균적인 실력을 상향조정 하려는 작업에 들어갔을 테니까.

그러나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제작한 던전의 내용 자체를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 내 레벨이 93.'

여기에 '그 길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다' 효과를 적용하면 113이 된다.

게다가 무기 또한 '대검 라칸'으로 같았다.

'전생의 나랑 비슷한 레벨로 플레이할 수 있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모든 경쟁의 끝은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스트리머로 각성하여 더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알게 된 자신이, 검에만 미쳐 있던 과거의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렇다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 있음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건 무조건 가야지.'

한국에 위치한 '신세계' 입구는 롯데 시그니엘타워 44층에 존재했다.

[1층]

[2층]

[3층]

엘레베이터가 빠르게 올라갔고 심장이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신세계의 문이 열린다.

"요즘 장안의 화제, 신세계에 진입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솔로잉 입니다."

시청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솔로잉 모드를 설정했다.

[30층]

[31층]

'어, 근데 잠깐만.'

[41층]

[42층]

'아…….'

[42층]

[43층]

잊고 있던 게 있었다.

[44층]

문이 열렸으나 나는 내리지 못했다.

-문이 닫힙니다.

나는 결국 44층이 아닌 45층에 내렸다.

내 욕심과 갈증을 해소하기 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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