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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16화 (116/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6화

미셸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중얼거렸다.

"둘 만을 위한, 1인칭 시점의 초희귀 소장본."

그녀의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차진혁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네. 미공개 소장본입니다. 두 분께 이걸 드리고 싶습니다."

"준다고요?"

미셸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흐음, 하고 턱을 매만지고 있는 최갑수와 달리 미셸장은 감정을 숨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다시 물을게요. 그걸 준다고요?"

* * *

* * *

* * *

"네. 드리려고 합니다."

"파는 게 아니고?"

"파는 것도 생각은 해봤습니다만."

솔직히 파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검술가 '김평범'으로 플레이하면서, 방송을 못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단 한 명의 시청자가 너무 소중하더라고요."

그는 이제 완전한 스트리머가 되었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고, 강한 마물과 살을 맞대고 싸우고, 그 강적을 꺾는 것만으로는 이전과 같은 희열과 성취감을 느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제 플레이를 선보이고, 제 영상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보람된 일인지 이번에 제대로 배웠습니다."

이 두 사람의 존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만약 이 둘이 없었다면, 대나무 숲에라도 숨어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쳐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그 고마움도 표현할 겸, 두 분께 영상을 헌정하려는 거죠."

계속해서 턱을 매만지던 최갑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공짜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 내 귀한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준 만큼, 당연한 대가를 지불해야 내 마음이 편하지. 자네. 우리 둘 중 한 명한테 영상을 판매하는 건 어떤가?"

[퀘스트, '최갑수의 제안'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최갑수와 미셸장.

둘 중 한 명에게 영상을 팔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10억 다이아를 제시하지."

"그렇다면 나는 11억 다이아."

"12억."

"13억 다이아요."

차진혁의 심장이 간질간질거렸다.

그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잠재 스킬 활성화가 가능해.'

직업 '만능 스트리머'안에 내재되어 있는 스킬이 내면의 벽을 깨고 꾸물꾸물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잠재 스킬, 외교력.'

레벨 60, 군주 전용 스킬인 외교력.

'잠재 스킬, 협상의 달인.'

레벨 90, 군주 전용 스킬인 협상의 달인.

외교력과 협상의 달인.

두 가지 스킬을 사용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아니다. 됐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그에게 돈은 필요하지 않았다.

필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있으면 안 된다.

돈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왠지 모르게 빨리 은퇴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은 후원내역도 모른 척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차진혁은 이제야 깨달았다.

'저번에 외교력 스킬을 사용했던 건 실수였어.'

이 둘을 상대로 알량한 스킬을 사용해서 마음을 움직이려 들거나 상황을 타개하려는 생각은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고수의 눈에 하수의 행동은 모조리 눈에 보이기 마련이니까.

차진혁은 예전, 이 둘과의 만남에서 '외교력'을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적대──비우호──중립──우호──극호──▶?◀]

그 당시, '극호'가 아니라 '?'에 체크되어 있었다.

극호 다음에 표기되어 있다고 해서 극호를 넘어서는 '호감'이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이제는 알겠다.

'외교력 스킬이 성공적으로 작용했던 게 아니라, 그냥 저들이 날 귀엽게 봐준 거였어.'

그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기술이 통하지 않으면 진심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들에게 고맙다는 건 정말 진심이었다.

차진혁은 잠재 스킬을 굳이 일깨우지 않았다.

"제안을 거부합니다."

"뭐?"

[퀘스트, '최갑수의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겨우 레벨 90대 병아리 플레이어가 내 퀘스트를 거절해? 10억 단위의 퀘스트를?"

"여기에 돈을 받아 버리면 제 영상의 가치가 추락하지 않겠습니까?"

"왜? 어째서? 자네는 영상을 제작하는 제작자고, 나는 그걸 소비하는 소비자인데."

"그런 제가 최초로 시청자를 위한 감사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시청자가 있어야 제가 있다는 걸 이번에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저는 감사 영상을 가져온 거지, 상업 영상을 가져온 게 아니거든요. 이걸 돈 받고 팔게 된다면 시청자를 향한 제 감사의 마음이 왜곡될 거 같습니다. 부디 제 마음을 지켜주십시오."

미셸장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 레벨 90짜리 플레이어한테 차인 기분이 어때요?"

"글쎄, 뭐 크게 나쁘지는 않군. 간만에 제대로 된 스트리머를 만난 느낌이야. 요즘 애들은 진정성이 별로 없거든. 나 때는 말이야……."

장황한 말을 시작하려 했고 미셸장이 적절한 타이밍에 끊어버렸다.

"당신이 스트리머로서 진심이라는 사실은 나도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외교력 같은 잡기술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어. 영상은 고맙게 받을게요."

"나도 고맙게 받도록 하지."

차진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소장용 촬영본을 둘에게 넘겨주었다.

둘은 곧바로 영상을 살펴보며 이런저런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 리액션이 차진혁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스트리머 하길 잘했다.'

전 고정닉, '김철수는2인자다'.

현 고정닉, '김철수는신이시다'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치열맨 김철수가 진짜로 치열했다. 이거슨 진심 치열모드.]

그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까지 했다.

김잘알TV의 새로운 편집자였다.

그는 김철수와 관련된 영상들을 편집하여 엘튜브에 올림과 동시에 여러 짤들을 만들어 한마갤에 배포하면서 한마갤의 네임드로 급부상했다.

[치열맨이 진심이면 지구를 구한다.]

┗ 진심 치열모드 미쳤눜ㅋㅋㅋㅋ

┗ 근데 가짜 치열모드도 있누?

┗ 가짜 치열모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음.

┗ 치열맨은 늘 치열하니까 치열맨임.

[회개한다. 치열맨은 매사에 치열했다. 그러므로 진심 치열모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분은 모든 순간에 진심이시다.]

그리고 그는 오늘, 신을 영접했다.

그의 신인 차진혁은 연희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잘알TV의 새로운 편집자, 강철입니다."

"아, 네. 게시글들은 잘 보고 있어요. 영상도요."

강철은 차진혁을 보자마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 용태는 진짜 차진혁의 모습이십니까?"

"네."

"실로 아름다우십니다."

차진혁은 강철의 눈에 어린 광기를 읽었다.

아름다움을 읽어낼 수 있는 저 눈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왕유미가 끼어들었다.

"덕질 포인트도 엄청 잘 잡고, 아무래도 본인 스스로가 폐하의 광팬이다 보니 편집 퀄이 엄청 좋아요. 오늘 일부러 데려온 건 폐하한테 허락을 하나 받아야 하거든요."

"……."

차진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어느샌가부터 자꾸 자신더러 폐하라고 부른다.

전생에서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괜스레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그놈의 폐하 소리는 그만하죠?"

"중요한 건 호칭 같은 게 아니에요. 제가 강철 씨를 굳이 데려온 건 허락받을 게 있기 때문이라고요."

얘기를 들어보았다.

"……해서 김뽕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까 하거든요."

"김뽕?"

"네, 김철수뽕. 원래는 킹갓제네럴국뽕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김뽕이 더 적절한 이름 같아서요."

재생 카테고리를 하나 파서 국뽕영상 같은, 김철수뽕 영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꼭_하고 싶다 #흠모 그리고 #존경 #그는 신이시다 #진정한 회개]

어찌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진정한 회개'가 보였다.

차진혁은 강철의 과거를 일부 읽어낼 수 있었다.

'과거, 나한테 엄청난 질투와 시기를 했었고, 지금은 회개하여 나를 섬긴다. 뭐 대충 이런 건가. 근데 이거 뭔가 좀 잘못되어 가는 느낌인데?'

예전에는 왕유미만 미쳐 있었다면, 이제는 왕유미보다 더 미친놈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예전보다 더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었다.

적당한 광기는 환영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지나치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법이다.

김뽕 카테고리 개설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리머 김철수에게 더 많은 캐릭터와 서사를 입힐 수 있어요. 당연히, 에건 폴을 뛰어넘고도 남는,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스트리머가 될 수 있어요."

허락하기로 했다.

얘네 둘은 왜 여기서 싸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강미나가 으르렁댔다.

"나는 무려 김평범과 독점적인 계약을 맺은 유일한 스트리머야."

왕유미는 능수능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무려 김철수와 계약한 중계자죠."

"네 방송은 가짜잖아. 네 방송이 아니라 김철수의 방송을 보여주는 것뿐이면서."

"저는 김철수의 방송을 바탕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어, 시청자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제공해 주는 크리에이터예요."

"나는 한국 랭킹 1위라고. 당신 같은 하꼬랑은 비교조차 할 수 없지."

"저는 언니 같은 물레벨이 아니라서요, 언니."

"언니? 내가 왜 언니야?"

"딱 봐도 언니 같아서?"

"너 몇 살인데?"

"네 짤?"

"이게 진짜!"

주제가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흥! 말이 좋아 2차 창작이지, 널 누가 스트리머라고 인정하겠어?"

"저는 새로운 장르의 방송을 개척하고 있는 선두주자예요. 콘텐츠를 다각화하고 시장 파이를 늘리는데 기여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제 분야를 비하하세요, 언니?"

"언니 아니라고!"

"화내면 지는 건데? 지금 화냈어요?"

"화 안 냈거든!"

왕유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보는 나도 얄미울 정도였는데 강미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전생이랑 똑같네.'

강미나는 왕유미에게 늘 패배했었다.

결국 강미나는 '불의 행성에서 애지중지 자란 불꽃의 소녀'라는 설정을 받아들이고 왕유미가 시키는 대로 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결국 강미나는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이봐. 얘기 좀 해봐."

"뭘?"

이렇게 옛 동료인 강미나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마음이 평온해진다.

창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얘랑 진짜 많은 전장을 돌아다녔는데.

"누가 최고의 스트리머인지 결판을 내달라고."

"응?"

"지금까지 우리 대화 봤잖아."

보통 이런 걸 대화라고 하나?

아무튼 강미나는 나한테 대답을 종용했다.

"빨리 결론을 내려줘."

빨리 대답 안 하면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강미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내 말에 집중했다.

그에 반해 왕유미는 차분한 모양새로 따뜻한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강미나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치? 내가 최고지?"

"뭔 소리야?"

얘는 아까부터 뭔 소리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직 초보티를 못 벗었다.

초보를 벗어나려면 자기객관화부터 해야 하는 데 말이다.

"당연히 내가 1등이지."

강미나는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얘기를 하는데 왜 저런 표정인지 모르겠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왕유미가 정답을 내놓았다.

"김철수 미만 잡이죠."

왕유미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강미나는 오늘도 패배했다.

키하엘은 차라리 죽고 싶었다.

'내 워라벨!'

퇴근 못 한 지 벌써 3일이 지났다.

내가 살아 있는 건지 죽은 건지 실감이 안 날 정도였다.

지구의 시나리오였던 '경외받는 자'와 '무너진 경외'가 뒤틀린 것도 모자라서, '신 시나리오'마저 박살 나버렸다.

'원래 한국맵하고 중국맵 일부 정도는 초토화시켰어야 했는데…….'

사실 키하엘은 그걸 바라고 또 바랐다.

한국맵이 멸망해 버리면 꽤 오랜 시간 쉴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두 달 이상은 신 시나리오가 진행되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며칠 만에 막을 내렸다.

정식 오픈까지 공백이 생겨 버렸다.

몸도 힘든 데다가, 여러모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나 세르찬은 콧노래를 불렀다.

"이번 일을 잘만 해결하면 승진할 수 있겠어."

전 차원을 통틀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진행되었다.

"서로 대치되는 두 시나리오의 대부분을 한 명이 진행했고, 그 대체로 투입된 신 시나리오마저 한 명한테 먹혔어. 유례가 없는 일이고, 곧 우리가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는 뜻이지. 우리가 곧 선례가 될 거야, 키하엘."

"저 퇴근 3일 못했습니다, 대리님."

"키하엘 주임은 다 좋은데 애사심이 좀 부족한 거 같아. 이 시국에 퇴근이 웬 말인가? 농담한 거지?"

"……."

키하엘은 세르찬의 인중에 주먹을 박아넣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저 지금 관리자 권한 총동원해서 시나리오 클리어 보상 미루고 있는 거 아시죠? 시시각각 코드 입력하고 돌발변수 제거하고, 시스템 명분 작성하고,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요."

"역시 유능해."

칭찬을 바란 게 아니란 말이다!

키하엘은 소리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못 미룹니다. 쓸 만한 건 다 썼어요. 결국 김철수, 김평범과 만나서 담판 지어야 합니다."

왜 이딴 일이 서대문구에서 일어나서 이 난리란 말인가.

이대로 시나리오 보상이 진행되어 버리면 밸런스 문제가 대두된다.

상부로부터 밸런스 조절에 실패했다는 질책이 들어올 게 뻔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김평범은 행방이 묘연하니 김철수부터 만나보기로 했다.

그는 몰랐다.

김철수가 잠재 스킬, '외교력'과 '협상의 달인'을 각성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그걸 적재적소에 잘 사용할 수 있는 타이밍까지 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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