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4화
강미나는 일전에 김평범을 독점중계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해놓았다.
다시 말해 김평범을 중계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강미나뿐이었다.
"김평범과 단! 독!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원활한 인터뷰 진행을 위해 도네도 잠깐 막을게요!"
도네(*기부/후원)까지 막았다.
강미나는 스킬 '공중밟기'를 사용하여 차진혁을 향해 멧돼지처럼 뛰어갔다.
차진혁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강미나를 힐끗 쳐다봤다.
'공중밟기?'
공중에 얇은 판막을 생성시켜 밟아 공중을 뛰어다닐 수 있는 스킬이다.
* * *
* * *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잘 안 쓰는데.'
까딱 잘못하면 추락사할 수도 있는 능력이라 강미나도 꺼려 하는 스킬 중 하나.
그러나 지금의 강미나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오로지 김평범과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질주하는 것만이 그녀의 사명인 듯했다.
"김평범! 오랜만이야."
차진혁은 강미나와 반말을 했는지 존대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 안 날 때는 반말하는 게 기본이지.'
그래야 얕잡아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이네."
"인터뷰 좀 해도 되겠어?"
"물론."
그러라고 강미나를 여기 배치했다.
"여태까지 어디서 뭐 하다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 거야?"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답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을 거 같은데."
"뭐?"
"봉주르TV 봐봐."
"봉주르TV?"
강미나는 핸드폰을 꺼내 엘튜브를 켰다.
봉주르TV를 통해 보니 개미여왕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침 봉주르TV의 봉킹이 개미여왕 추적을 포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더, 더 이상은 못 쫓겠습니다, 헉, 헉!"
어느새 화면에서 개미여왕의 모습이 사라졌다.
차진혁이 말했다.
"김철수가 말하길, 개미여왕은 이곳으로 온다고 했어."
"김철수가? 너 김철수랑 알아?"
"어."
"김철수는 괜찮은 거지?"
"쓰러져 있어. 지금 눕방 하던데?"
내가 아니고 차진솔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개미여왕의 독이 어지간한가 봐. 근데 개미여왕의 독에는 특수한 능력이 있대. 그 능력 덕분에 위치를 파악해서 날아오고 있는 거고."
"너는 그 개미여왕과 직접 싸우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거고?"
"그렇지."
차진혁은 인벤토리에서 대검 라칸을 꺼내 들었다.
"그 검은……?"
"그래. 김철수의 검이지."
"김철수랑 많이 친한가 봐?"
"꽤."
차진혁은 대검 라칸이 처음이라는 듯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검이야."
"내가 알기로 그거 엄청 좋은 거라고 알고 있어. 그런 걸 무상으로 대여해 준 거야?"
"이것만 대여해 줬게?"
"그럼?"
차진혁은 잠시 시간을 끌었다.
그는 스트리머로서 최선을 다했다.
'편집점은 잡았고.'
그리고 품 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거."
"서, 설마 이건!"
강미나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만. 민하상 여러분.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실화인가요?"
-순살치킨 : 미쳐따맄ㅋㅋㅋ
-2017년 : 와 신화급 대여 실화냨ㅋㅋㅋㅋㅋㅋ
-파맛첵스 : 클라스 미쳤누 와 지려 버렸다.
-갑둘라77 : 50억짜리를 빌려주고 빌려오네?
-폐급청정수 : 저 정도면 김평범이 김철수 아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뽑는 데에만 무려 50억이 소모되었다.
그것도 행운관련 신비인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해 가면서.
김철수에게 가장 큰 유명세를 가져다준 '신화급 카드'를 김평범이 들고 있었다.
"이걸 빌려줬다고?"
"어."
"이거 그, 50억 들여서 뽑은 그거 맞지? 그걸 아무런 담보도 없이 빌려줬다는 거야?"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트리머답게 말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까."
차진혁은 사실 아름다운 이상론이나 정의 같은 건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지나치게 팍팍하고 잔혹했다.
그러나 이번에 에건 폴의 방송을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 감동받는지.
"태평양 건너, 타 대륙의 플레이어들이 목숨 걸고 이곳을 찾아왔어. 자유의 최전선을 지키기 위해. 슈퍼 컴퓨터가 예측한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에건 폴의 기획의도를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배울 수 있는 건 배우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건 벤치마킹해야 성공이 뒤따르는 것 아니겠는가.
"최근 여러 이슈들로 인해 우리와 사이가 조금 불편해졌던 중국에서조차 그들의 정예를 보내왔지.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동해에서 팔적목 일개미들과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어. 지구 건너편, EPU 소속의 플레이어들도 속속들이 도착하여 힘을 보태고 있고."
모두가 함께 싸우고 있다.
전 인류가, 최초로 맞이하는 서버급 재앙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 인류는 잘해내고 있어."
차진혁이 마음속 깊이 원하던 '병신 같지만 멋들어진' 대사는 꾹 눌러 담았다.
그는 이제 어엿한 스트리머였고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았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의 선한 의지와 정의가 모여, 재앙을 맞이하는 최초의 방어선을 만들어내고 있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각자의 국기를 흔들며 마음으로 한국을 지키고 있잖아."
강미나는 차진혁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말이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이래저래 편집하기 딱 좋은 속도와 억양이네. 누가 봐도 김평범은 영웅 그 자체고.'
차진혁이 말을 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오랜 친구인 김철수가 내게 부탁했어."
"무슨 부탁을 했나요?"
여지껏 반말하던 강미나가 말을 높였다.
채팅창에는 '그렇지, 저게 인류의 영웅을 대하는 예의지' 등의 채팅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지켜달라 말했어. 우리의 부모님을, 우리의 아이들을, 그리고 우리의 터전을."
"……."
"그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지. 나는 인류의 명령을 받은 거야. 개미여왕과 맞서 싸우라는 명령. 김철수는 내게 그렇게 숭고한 명령을 내리면서, 신화급 카드를 넘겨줬어."
강미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순수한(?) 강미나는 반쯤은 정말로 감동받았고, 반쯤은 감동을 연출했다.
눈물을 슥- 닦아내며 말했다.
"아까 제 질문은 어리석고 무례했네요."
그 질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화면을 띄웠다.
-내가 알기로 그거 엄청 좋은 거라고 알고 있어. 그런 걸 무상으로 대여해 준 거야?
한편, 강미나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살펴보던 김잘알TV의 새로운 편집자 강철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쾅!
책상을 내리쳤다.
"이거지."
그의 두 눈에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직, '닥겜'이었던 강철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철수. 그분은 신이시다."
지금껏 은둔하며 그 실체를 철저히 감쳐왔던 한국 최강의 검객.
그리고 비공식 랭킹 1위이자,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트리머.
둘의 만남은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서 다짐했다.
"아름다운 영상을 헌정하리라."
그를 위하여 김철수와 관련된 모든 영상과 정보들을 끌어모으는 중.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봉주르TV의 봉킹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하필이면 강미나가 이런 기회를……!"
강미나에게 너무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게다가 연출이 기가 막혔다.
'이건 에건 폴의 기획 의도잖아.'
같은 기획 의도.
그러나 다른 스케일.
'그나마 2위로 김철수의 뒤를 바짝 쫓던 에건 폴의 완벽한 패배다.'
이게 우연일까.
노련한 스트리머인 봉킹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김철수가 철저하게 계획하고 연출한 내용이야.'
2위인 에건 폴에게 던지는 경고이기도 했다.
1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말라고.
너와 나의 차이가 이 정도라는 것을 넌지시, 그러나 강력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에건폴 또한 봉킹과 같은 것을 느꼈다.
'졌다.'
어벤저스 사단 또한 동해에서 팔적목 개미들과 잘 싸우고는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다.
'김철수-김평범'의 대서사시에 포함된 조연들.
'그렇다고 철수할 수도 없어.'
이미 전 세계가 보고 있다.
더 이상의 이득이 없다고 여기서 철수했다가는 인류의 반역자가 될 모양새였다.
'젠장! 김철수!!!'
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절대 죽지 마라.'
김철수의 상황이 위중해 보였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온몸이 보라색으로 변한 것 같았다.
'너는 절대 죽으면 안 된다. 내가 널 뛰어넘을 때까지.'
반드시 김철수를 뛰어넘어서 그를 무릎 꿇리고 싶었다.
'스트리머 계열'의 압도적인 1인자.
그것이 에건폴이 꿈꾸고 있는 것이니까.
그는 본국에 있는 사무실의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이번에 획득한 그거. 혹시 모르니까 한국으로 배송시켜둬. 김철수의 회복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시끄러워! 잔말 말고 보내라면 보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강미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개미여왕과 정말로 싸울 생각인 거죠?"
"당연."
나는 신화급 카드의 뒷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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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다]
──────────
"김철수의 방송에서 봤듯, 앞면은 스트리밍 대상의 능력을 복사해 오는 거였어. 그러나 뒷면은 스트리머 본인의 힘을 극대화하는 권능이 담겨 있어."
"스트리머 본인이요? 당신은……."
"그래. 나는 스트리머가 아니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김철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거든."
"설마……!"
"그래. 룰 브레이커."
어차피 내 스스로가 스트리머니까 큰 상관은 없었지만 아무튼 지금의 나는 검술가였으므로 적당한 개연성을 부여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면 김철수는 그렇게 큰 부상을 입은 가운데에서도 룰 브레이커를 활용하여 신화급 카드의 설정값을 변경시킨 뒤 당신에게 전해주었다는 거죠?"
"그래."
아 근데 이거, 자꾸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아서 신나네.
"정말……."
강미나는 갑자기 품속에서 하얗고 노란 꽃 한 송이를 꺼내 내 발밑에 내려두었다.
"설강화에요. 꽃말은 희망과 위안. 그리고 인내. 저는 김철수, 김평범. 두 분을 통해 희망을 느꼈고, 동시에 위안을 받았어요. 인류에게 아직 희망이 있구나. 또다시 재해가 닥쳐올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구나. 우리는, 잘하고 있구나."
얼씨구.
얘도 내 컨셉을 잘 이해한 것 같았다.
[……#찐감동 #희망이_있다 #나, 너, 사랑해도 되냐]
……이상하네, 얘가 왜 이런 걸로 감동받지?
아직 순수해서 그런가.
"아, 민하상 분들이 알려줬는데요. 전 세계 군대의 작전도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해요."
군대는 일정 수준 이상의 마물에게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군단장을 잃어 힘이 약화된 일개미들, 그리고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개미 알들을 파괴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이상의 알을 발견해서 파괴했다고 해요."
그럼 개미여왕이 더 미쳐서 날뛰겠네.
나는 천천히 걸어 수호수 앞으로 이동했다.
'방심도 했고, 화도 난 상태다.'
평소라면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개미여왕이지만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날 말려 죽이기 위해서라도 수호수의 권역을 뚫고 들어온다.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괴물은 뭐야?"
저번에 환청처럼 들었던 수호수의 목소리였다.
어린아이의 목소리.
"으, 나 쟤 싫어. 왜 저런 애를 끌고 왔어?"
혹시 대화가 되는가 싶어서 속으로 물어봤다.
'쟤를 막아낼 수 있겠어?'
그랬더니 정말로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아직 어린이라고. 저런 걸 어떻게 막아!"
아마도 신화급 카드의 영향인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내 레벨에 +20 산정이 들어간다.
덕분에 수호수와 대화가 가능해진 듯했다.
"나 못 막아. 아플 거 같아."
'그럼 막지 말고. 차라리 그 힘을 비축해서 날 도와.'
"뭘 어쩌려는 건데?"
'내가 개미여왕을 죽일 거야.'
내 오른손에 올 클리어 각인이 돋아났다.
올 클리어 각인의 효과가 적용되었다.
사러가 던전 반경 1,000미터 내에서 내 모든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신화급 카드. 올 클리어 각인. 그리고 황금 수호수의 도움까지.'
이제 준비는 끝났다.
어느덧, 저만치 멀리 도로 끝에서 개미여왕이 이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몰라. 나 진짜 안 막는다? 그냥 통과하게 둔다? 지, 진짜 들어왔어. 안 막았어!"
'대신 지금 네 권능도 멀쩡하겠지.'
연희동 전체를 수호할 필요 없다.
어차피 다소간의 피해는 필수 불가결하니까.
'넓은 지역을 보호하는 것보다, 나 하나를 지키는 게 훨씬 쉽지?'
"몰라. 나 무서워."
개미여왕이 내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일이로구나."
내 모습이 김평범으로 바뀐 것이 의아한 듯했다.
"분명히 어리석은 자의 고약한 냄새가 잔뜩 묻어나 있는데."
개미여왕이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나는 인간들의 씨를 모조리 말려 버릴 것이니. 묻겠다. 너는 나를 막아선 것이냐?"
내 눈에 개미여왕의 정보가 보이기 시작했다.
[LV178/아를로아 P 데미라스/스킬/업적]
대답을 하기 직전, 은사가 날아들었다.
와.
보스몹이 채팅러쉬를 한다고?
'응?'
여지껏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서걱-
내 목이 잘리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