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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13화 (11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3화

-서서히 잠식하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주마. 약속하지.

-결코 편안하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개미여왕의 저 말은 사실 개미여왕의 성정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고 있지만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천천히 사냥하겠다는 말이었다.

'좋지.'

다른 말로 하자면 겁쟁이라는 거다.

저렇게 신중한 녀석들은 실패의 횟수도 적겠지만 성공도 못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한 번 싸워보겠습니다."

* * *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개미여왕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스킬, '단독 심층 인터뷰'를 사용합니다.]

단독 심층 인터뷰를 통해 개미여왕 한 개체의 움직임을 읽어내려 애썼다.

그리고 나는 일말의 희망을 보았다.

'훨씬 더 잘 보인다.'

나를 향해 날아드는 은사.

'왼쪽, 세 가닥.'

피해야 하나.

막아야 하나.

'이번에는 막는다.'

[특성, '중계결계'를 사용합니다.]

세 가닥의 은사를 모조리 막아냈다.

두 달 전만 해도 이렇게 수월하게 막아낼 수는 없었을 텐데.

90레벨대에 접어드니 확실히 달랐다.

"방금 건 견제성 공격이었습니다."

개미여왕의 공격이 전보다 훨씬 더 잘 읽혔다.

방송을 진행할 여유까지 생겼다.

개미여왕이라는 기준이 잡히자 나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성장했네.'

내 스스로 성장을 체감했을 때의 이 희열감.

이게 나를 미치게 했다.

"다음 공격은 머리 위. 그리고 발아래. 도합 열 가닥의 은사가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특성, '중계결계'를 사용합니다.]

발밑에 중계결계를 깔아서 발밑으로 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라칸을 휘둘러 몇 가닥의 은사를 쳐낸 뒤 몸을 뒤틀어 또 몇 가닥의 은사를 피했다.

뒤로 몸을 던져 두 바퀴 공중제비를 돌았다.

"피해냈습니다."

뺨에 미세한 열감이 느껴졌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했네요."

이내 나는 개미여왕과의 거리를 좁혀 대검 라칸을 휘둘렀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합니다.]

개미여왕이 비늘 날개를 사용하여 공중에 떴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내 검을 피해냈다.

나는 분명 많은 성장을 이룩했지만 개미여왕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슬슬 비가 와줘야 하는데.'

저 날개를 적셔서 기동성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내게는 단 일 할의 승률도 없을 테니까.

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이건 마리아에게 미리 부탁해놨다.

혹시 개미여왕과 싸우게 될 때, 소방용 헬리콥터를 동원해 줄 수 있느냐고.

쏴아아-!

물이 쏟아져 내렸다.

"저였으면 헬리콥터가 다가오기 전에 헬리콥터부터 파괴했을 겁니다. 그러나 겁 많은 개미여왕은 그러지 않았네요. 저를 생각보다 많이 신경 쓰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심리 파악이 쉽네요. 잘 됐군요."

심리전도 전투의 일부다.

심리전을 못하는 강자는 힘만 센 멍청이다.

순간,

개미여왕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컥."

팔이 덜렁거렸다.

"많이 아프군요."

여지껏 원거리 공격만을 고수해 왔던 개미여왕이 급작스레 내게 접근하여 칼날 같은 팔을 휘둘렀기 때문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뒤틀기는 했으나 왼쪽 어깨가 거의 잘려 나가다시피 했다.

"날개를 적셔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목이 잘렸겠는데요?"

이건 진짜 다행이었다.

"어쨌든 움직임에 굉장한 제약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너덜거리게 두느니 잘라버리는 게 낫겠네요."

왼팔을 잘라내서 고이 인벤토리에 모셔놓았다.

이 정도 큰 부상을 입자 개미여왕의 입이 양옆으로 주욱- 벌어졌다.

"결코 편안하게 죽지는 못할 것이라고 약조하였다."

개미여왕은 열 개의 손가락을 쫙 펼쳐 수십 가닥의 은사를 쏘아냈다.

나는 막아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공격에 살기가 전혀 없었다.

"저를 죽이기 위한 공격이 아닙니다."

그저 나를 괴롭히기 위한 공격이었다.

수십 가닥의 은사 중 내게 치명상을 입힌 은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내 피부 근처를 쓸고 지나갔다.

은사에 핏방울이 맺히고 쓰라린 고통이 밀려들었다.

"따끔따끔하네요. 그리고, 왼쪽 어깨가 지나치게 욱신거리는군요."

단순히 팔이 잘리는 고통은 수백, 수천 번 느껴봤다.

그런데 이건 그 이상이었다.

"아, 독이 있었네요."

어깨 부근이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곰팡이처럼 내 목과 몸을 향해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절망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개미여왕은 내 표정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맘껏 두려워하고 공포를 노래하도록. 그것이 너를 잠식해 나갈 것이다."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폈다.

마치 도망갈 길을 찾는 것처럼.

눈치 빠른(?) 개미여왕이 내 움직임을 읽어냈다.

손을 늘어뜨린 개미여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래. 네 두 발은 남겨놓았으니, 발이 닿는 대로 도망쳐보아라. 네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너를 옥죄는 감옥이 될 테니."

이 독에는 특별한 힘이 있는 듯했다.

내가 어디로 도망치더라도, 개미여왕은 나를 쫓아올 수 있겠지.

'도망친다.'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임시 워프포탈 쪽으로 달렸고 개미여왕은 팔짱을 낀 채 나를 그냥 두고 보았다.

'완벽히 방심했군.'

역시 나는 오늘도 치열맨다운 모습을 보여준 거 같다.

개미여왕을 완벽히 속일 수 있었다.

'연희동으로 간다.'

개미여왕은 완벽히 방심했다.

방심을 이끌어 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였다.

민하TV의 강미나는 다리를 덜덜 떨면서 핸드폰을 살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방송을 진행했다.

"김철수가 올 거라고 약속했습니다. 오겠죠?"

개미군단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

차진혁과 한세린.

그리고 강미나는 도주 루트를 미리 짜놓았다.

"아, 방금 들어오신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하자면 지금 저희는 길잡이 패스파인더의 도움을 받아 임시 워프 포탈을 생성해놓은 상태입니다."

물론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그건 차진혁이 해결해 줬다.

"김철수가 후퇴했으니 이쪽으로 이동할 거기는 한데요. 확률은 반반입니다. 예비한 도주로가 두 개 거든요."

혹시 몰라 두 개의 도주로를 준비했다.

한쪽은 민하TV의 강미나가.

또 다른 한쪽은 봉주르TV의 봉킹이 대기 중이었다.

'제발 이쪽으로 와라!'

순간,

발밑에 그려놓았던 임시 워프포탈에서 녹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쪽으로 왔네요! 혈색이 창백하고 거의 반송장 상태입니다. 개미여왕의 독이 생각보다 강력한 거 같네요!"

차진혁의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개미여왕의 독 냄새를 맡고서, 중간중간 팔적목 일개미나 팔적목 병정개미 등이 나타나기는 했으나 강미나가 중계결계를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김철수는 정신이 거의 혼미한 상태라 제가 중계를 이어가겠습니다!"

미리 준비해놓은 임시 워프포탈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움직였다.

"네 개의 워프포탈만 더 타면 서울 진입이네요. 김철수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 가고 있어요. 자유의 성녀께서는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차진혁이 정신을 잃으면서 차진혁 방송은 끊어졌다.

덕분에 민하TV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네, 후원 감사합니다. 네, 어서 오세요.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 부탁드려요. 네! 완전히 정신을 잃었네요. 독이 많이 퍼졌는지 온몸이 푸르죽죽합니다. 엄청 심각한 독인가 봐요."

차진혁의 상태가 민하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었고, 연희동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진솔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차진혁을 기다렸다.

"도착했습니다! 민하상 여러분, 김철수를 자유의 성녀에게 넘기겠습니다. 이제 힐을 시작했네요! 자유의 성녀가 수혈팩을 뜯어서 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어요. 에이, PPL 아니에요. 하긴, 자유의 성녀가 먹는 걸 보니 왠지 맛있어 보이기는 하네요. 근데 저거 음료수 아니고 피에요 피! 정신 차려요."

차진솔은 미리 준비했던 피를 마셔가면서 차진혁을 치료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차진혁이 눈을 떴다.

"김철수가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개미여왕과의 싸움이 너무 처절했는지 체력회복에는…… 응? 민하상 여러분! 어디 가요! 나가지 마! 아니, 내 방송도 재밌어!"

사실 차진혁이 정신을 차린 지는 좀 되었다.

그러나 일부러 눈을 감고 계속 기다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방송 켤 수 있을 정도의 상태까지는 최대한 휴식하자.'

어느덧 팔도 완전히 붙었고, 방송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그는 방송을 켰다.

차진혁의 방송이 열리자 민하TV로 넘어갔던 시청자들이 다시 김철수 채널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차진혁이 말했다.

"신화급 카드를 다시 한번 쓰겠습니다."

슬쩍, 강미나 쪽을 바라보았다.

시청자를 빼앗긴(?) 강미나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차진혁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진혁이 씨익 웃으며 신화급 카드를 들어 올렸다.

강미나는 환청을 들었다.

-느그 집엔 신화급 카드 없지?

그러거나 말거나 차진혁은 방송을 이어갔다.

"혈사제의 능력을 가져오겠습니다."

이미 여러 가지 제약사항은 모두 만족해놓은 상태.

이것도 한 번 해봤다고, 아까보다는 조금 더 익숙해졌다.

'어?'

개미여왕의 독으로 인해 썩어가던 몸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초재생과 초인 특성을 복사해 온 덕분인 것 같은데요."

원래 이 두 특성은 다른 특성들과 큰 충돌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차진혁은 자신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올라운더 특성이 두 특성을 부드러이 잘 잡아주고 있어.'

그렇지만 방송으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만능잡캐가 두 특성의, 타 특성을 향한 배척성을 융화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럼 혈사제의 스킬 중 하나인 [상태이상 치유]를 사용해 보겠습니다…… 만."

지금 차진혁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피가 좀 필요하겠네요."

그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가까이 와봐."

"으, 응?"

"저도 흡혈해 보겠습니다."

차진혁이 차진솔의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악!"

차진솔은 깜짝 놀랐다.

매번 흡혈을 하기만 했지, 흡혈을 당한 적은 처음이었다.

'소, 속이 울렁거려!'

피가 모조리 빨려 나가는 이 느낌은, 과장을 조금 더하자면 몸속의 내장이 목덜미를 통해 빨려 나가는 것만 같았다.

묘하게 소름 끼쳤다.

지금 당장에라도 차진혁을 밀쳐내고 싶은 충동이 끓어 올랐다.

순간, 그녀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오빠는…… 이런 걸 매번 참아왔단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흡혈당하는 이 기분은, 기분이 나쁜 걸 넘어서 혐오스러웠다.

몸 안의 장기들이 파괴되는 것만 같았다.

본능적이고도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흡혈 당할 때의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차진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야 오빠가 감당해 오던 것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차진솔의 오해였다.

사실 차진혁은 차진솔만큼 끔찍한 감정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부정적인 감정에 무디기도 했고, 그는 차진솔과 달리 '제왕의 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튼 차진솔이 느끼는 이 혐오감은 오히려 오빠를 향한 감동으로 변해 버렸다.

"오…… 오빠."

차진솔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좀 빨아! 어지러워 죽겠다고!

그 말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차진솔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그제야 차진혁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차진혁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저도 모르게 피를 너무 많이 빨았나 봅니다. 흡혈하는 게 기분이 되게 좋네요? 처음 하는 거라서 힘 조절을 좀 못한 거 같습니다."

흡혈 행위에 정신이 팔려서 차진솔의 상태를 별로 신경 못 썼다.

차진솔의 전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피를 더 빨았으면 기껏 빨았던 피를 되돌려 줘야만 할 뻔했다.

"아무래도 저는 회복에 전념해야겠군요."

차진혁은 차진솔을 업어 들고서 집으로 향했다.

차진솔을 차진솔의 침대에 눕혀놓고, 그 또한 침대에 누웠다.

"회복하는 데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잠시 화면 조정 좀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3인칭 공개네요. 아, 기만자의 가면으로 얼굴을 많이 바꿔놨습니다."

잠시 화면을 껐다.

그러고서 다중인생을 사용하여 만들어낸 아바타를 침대에 눕혔다.

현재 차진혁과 같은 모양새의 아바타였고, 당연히 온몸에 독이 퍼져 있었다.

그리고 레벨 70, 스트리머 전용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고정용 카메라'를 사용합니다.]

외부 카메라를 하나 설치하여 그 카메라로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제목도 바꿨다.

[눕방 시작하겠습니다.]

일종의 눕방이자 회복방송이었다.

아바타를 눕혀놓은 차진혁은 거실로 나와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스킬, '상태이상 치유'를 사용합니다.]

상성이 좋은 동생의 피를 잔뜩 마셔서인지, 회복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진솔이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회복의 효능이 뛰어난 느낌이었다.

'나 힐러에도 재능이 있을지도?'

올라운더 특성의 힘을 다시 한번 체감한 차진혁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수호수 근처로 향했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가 싶었는데, 나를 제대로 알아본 사람은 역시 강미나였다.

강미나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기, 기, 기, 기, 김평범, 김평범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몇 달 전, 레벨 90에 달하는 비상섬여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었던, 그 김평범! 지구 최강의 검객이 모습을 드러냈다고요! 네 맞아요! 미나가 몇달 전에 공개했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나타났다고요! 개욱겨 님 후원 고맙습니다."

민하TV의 시청자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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