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10화
내 비밀들을 모두 알게 된 최갑수 영감님이 크게 웃었다.
두 사람 모두 내 방송에 굉장히 만족했다.
최갑수 영감님은 한참 동안이나 웃다가 내게 물었다.
"그래.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 이유는?"
별거 아닌 말인데 미셸장은 견제를 놓치지 않았다.
"나한테라뇨? 우리한테 보여준 거지."
"쓸데없이 예리하군. 그래. 우리한테 이걸 보여준 이유는? 아니, 이런 능력을 여태껏 감추고 있던 이유는 뭔지부터 들어보지."
구구절절 많은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 * *
"모든 것을 드러내면 재미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건 그렇군요."
"중요한 건 제가 두 분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거겠죠. 이런 능력이 있다면 적어도 150레벨까지는 지금까지의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최갑수 영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럴 것 같군. 미셸장. 그쪽 생각은 어떤가?"
"저도 그렇게 봤어요. 저런 스타일의 스트리머는 수도 없이 많이 봐왔어요. 특히 인상적인 건 만능잡캐로 속이고 있는 올라운더 특성. 영감님은 올라운더를 본 적 있어요?"
"없지. 나도 처음 봐."
두 사람은 내가 제공한 콘텐츠에 무척 만족했고, 그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는 나도 내 나름대로 흡족했다.
'이거지.'
이게 방송하는 재미다.
예전 삶에서는 이걸 모르고 살았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저는 제 모든 것을 드러냈습니다. 수만 명이 모르고 있는 비밀을, 오로지 두 분은 알고 계십니다. 방금 방송의 가치는 제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두 분께 맡기겠습니다."
이번에는 미셸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아요. 값은 충분히 치르죠. 그래서? 아까 말했던 솔깃한 제안이라는 게 뭔지 들어볼까요?"
"정식 오픈이 되기 전에 있을 커다란 이벤트. 제가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죠."
미셸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고 하나 봐요?"
"시스템 입장에서 저는 생태계 교란종일 확률이 높으니까요. 관리자들도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고. 제가 관리자들이라면 결국 이번 이벤트를 통해 저를 죽이고 싶을 거 같거든요."
다가올 나의 위기.
내 생각에,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저 두 사람을 온전히 내 편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저 둘은 하드코어 시청자들 중에서도 극 하드코어 시청자이고, 자신의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니까.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움직이기 더 쉽다.
"결국 완벽한 전개를 위해, 그리고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 개미여왕에게 힘을 실어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노림수가 있다 파악했습니다."
"어떤 노림수요?"
"개미여왕은 본신의 능력도 무척 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제국을 세우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그녀 휘하의 군단과 수많은 개미들이 있어야겠죠. 그러나 영상에서 보셨다시피 군단장급 개미들은 다 죽었고, 부화장의 개미 알도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개미여왕은 어딘가에서 개미들을 키워내고 있을 겁니다."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새로이 키워낼 개미군단을 위해서, 개미여왕은 막대한 식량이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지구에는 양질의 식량이 별로 없죠."
내가 파악한 시나리오의 본질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하리라 판단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는 종종 발생하는 이벤트인데, 이 이벤트를 강제로 발동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재화가 소요된다.
트리니티들이 움직였다는 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확률이 제일 높다는 소리다.
"아마도 개미의 식량이 되어줄 수 있는 몬스터 웨이브가 발발하겠죠.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힘을 키운 개미여왕의 최종목적지는 제가 있는 한국맵이 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최갑수 영감님은 턱을 쓰다듬으며 나를 쳐다봤다.
나를 향한 눈빛에는 진득한 호감이 담겨 있었다.
"허허허. 그저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똑똑하게 미친놈이었구만."
"제 가정이 사실입니까?"
"나도 그렇게 디테일한 건 몰라. 자네 TV 볼 때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면서 보나? 나는 소비자이지, 창작자가 아니네."
거기에 미셸장이 한 마디를 보탰다.
"그렇지만 듣고 보니 당신의 말에 일리가 있어요."
미셸장이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말들이 무척이나 흡족한 모양새였다.
"좋아요. 당신의 미래에 걸어보죠. 개미여왕과의 에피소드 기대할게요. 뭘 원해요? 말만 해요. 돈으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대격변 이후, 온라인게임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온라인게임은 이제 더 이상 비현실적인 소재가 아니었다.
세상에는 실제로 마물과 던전이 존재하고 플레이어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던 비현실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고, 직접 플레이어로 뛸 수 없는 사람들은 게임에 더 열광하게 되었다.
당연히 게임 스트리머들 또한 인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다.
그중에서도 '닥겜'은 최근 상당히 주목받는 스트리머였다.
그는 플레이어로 각성하기는 했으나 결국 플레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온라인 게임 스트리머로 전향해서 성공한 케이스였다.
그는 방금 가챠(*랜덤뽑기)를 진행하다가 300만 원을 날려 버렸다.
"으아아악! 이런 씨X! 이 운빨X망겜! 씨X! 으아아악!"
키보드를 쾅쾅 내리치며 괴성을 질렀고 채팅창은 'ㅋㅋㅋ'가 도배되었다.
닥겜의 컨셉은 뭘 해도 못하고, 뭘 해도 안 되는 컨셉.
그래도 늘 자신감 넘치게 열심히 하다가 결국 열받아서 샷건을 때리는 컨셉의 스트리머였다.
절규하던 닥겜은 야구방망이를 가져와 키보드를 내리쳤다.
쾅! 쾅!
-LK312 : ㅋㅋㅋ나왔다 샷건ㅋㅋㅋㅋㅋ
-타쿠미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잘생겼다 : ㅋㅋㅋㅋㅋ
닥겜이 씩씩대며 말했다.
"내가 진짜 씨X, 이 운빨X망겜 또 하면 사람 아니다."
-증조애기 : ㅋㅋㅋㅋ 이미 322번째 사람 아닌 중.
-덩더러뿡뿌직 : 응, 사람 아닌 나.
채팅 반응은 꽤 뜨거웠고 상당한 후원이 이어진 뒤, 닥겜은 방송을 종료했다.
그러고서 가장 핫한 방송인 '김잘알TV'를 시청하며 시장 동향을 파악했다.
화면 속 킹갓제네럴유미가 말했다.
-김철수가 가챠를 시작했네요?
대격변 속에는 가챠 시스템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대중화된 시스템은 아니었다.
"가챠 시스템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한 번 뽑는데 무려 1,000만 다이아! 돈 없으면 시도도 못 하는데 대부분은 똥템이 나와요. 모든 가챠는 운빨존망이지만 시스템의 가챠야말로 운빨존망겜의 대명사죠."
그건 닥겜이 방금 경험한, 뼈저린 사실이기도 했다.
-에건 폴도 7억 원가량을 쏟아부었다가 결국 포기해 버린 일화는 엄청 유명한데요. 김철수는 무슨 생각일까요?
김철수의 기행에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쏟았다.
-휘파람휴스턴 : 와 미쳤따맄ㅋㅋㅋ방금 3억 7천 증발했따리 ㅋㅋㅋ
-볼빨간산사춘 :몰락설 진짜인가 봄?
-김철수는2인자다: 저런 형태의 스트리머들은 레벨 100 언저리에 다 도태되는 것이 학계의 정설.
참고로 '김철수는2인자다'가 바로 '닥겜'이었다.
-엘뀨 : 4억 증발 ING.
-도른자 : 별로 아쉬워하지도 않는데?
개중 가장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김철수는2인자다'의 의견이었다.
[<고정댓글> 김철수는2인자다: 저런 형태의 스트리머들은 레벨 100 언저리에 다 도태되는 것이 학계의 정설.]
┗ 이게 맞는 듯 ㅇㅇ
┗ 222
┗ 333
┗ 어차피 접고 뜰 거니까 전 재산 꼬라박는 중인 듯?
┗ 아무리 그렇다고 무슨 전 재산을 꼬라박냐?
┗ 도대체 어쩌려고 저러누?
┗ 김철수 걱정은 뭐다?
┗ 쟤 수백억 건물주임 ㅋㅋ 걱정 ㄴㄴ
닥겜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흐흐. 기분이 좋구만."
닥겜은 김철수에게 큰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플레이어로서도, 스트리머로서도, 그는 김철수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었으니까.
김철수만 너무 높은 곳에 있었으니까.
"나락이다! 나락!"
그의 시선으로 본 김철수는 스트리머로서 자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 마지막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저 짓을 하고 있는 거겠지.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는 잘난 척하며 말했다.
"대부분 레벨 100 언저리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뼈저리게 체감하게 되지. 자신의 한계와 마주했을 때에 느끼는 상실감과 절망감은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씨익 웃었다.
"나처럼 잘 극복해 내면 다른 분야에서 재기할 수 있을 거다. 처음부터 탄탄대로만 걸어온 너한테는 쉽지 않겠지만, 후후."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닥겜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휘파람휴스턴 : 20억 증발 완료.
21억.
22억.
.
.
.
24억.
25억.
김철수는 미친 듯이 다이아를 쏟아부어 가챠를 진행했다.
이쯤 되자 채팅창도 김철수를 비웃는 내용보다는 감탄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닥겜은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김철수는2인자다'님이 1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지금 김철수는 제정신 아님. 건물까지 담보 잡히고 빚져 가면서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중. 후원금도 거의 바닥났다는 소문이 파다함."]
닥겜은 제 나름대로의 통계와 경험까지 인용해 가면서, 이러이러하면 얼마를 벌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자산은 어느 정도이며, 지금까지 쏟아부은 건 이럴 것이다, 그리하여 곧 파산이다, 등의 내용을 제법 논리적이고 구체적으로 풀어가며 얘기를 쏟아냈다.
그의 채팅은 왕유미의 보이지 않는 도움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고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채팅이 너무 빨리 스쳐 지나가서 닉네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왕유미는 예리한 눈썰미로 한 닉네임을 놓치지 않았다.
-돈벼락 : ? 날 뭘로 보고?
[<고정댓글> 돈벼락 : ? 날 뭘로 보고?]
┗ 헐? 이거 ㄹㅇ임?
┗ 돈벼락 up! up! up!
┗ 돈벼락 up!
┗ 헐? 돈벼락?
┗ 와ㅏㅏㅏㅏ 미친ㅋㅋㅋㅋㅋ
┗ 찐인듯?
┗ 미쳤다, 돈벼락 강림하셨다.
그리고 방송 너머, 김철수는 계속해서 가챠를 진행했다.
31억이 증발했다.
32억이 증발했다.
33억이 증발했다.
김철수가 말했다.
"다시 한번, 도움을 주신 돈벼락 님과 돈쭐 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한도 제한이 없는 무제한 후원은 처음 받아보네요."
'도움을 주신 분' 특전으로 두 사람만큼은 김철수 방송에서 직접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도움을 주신 분, '돈벼락'이 뿌듯해합니다.]
[도움을 주신 분, '돈쭐'이 흐뭇해합니다.]
"돈벼락 님, 1억 후원 감사합니다. 중간에 원하는 게 나오면 나머지는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돈쭐 님, 1억 후원 감사합니다."
[도움을 주신 분, '돈벼락'이 환불을 거절합니다.]
[도움을 주신 분, '돈쭐'이 환불을 거절합니다.]
돈벼락은 보란 듯이 후원을 이어갔다.
그리고 왕유미의 방송에 채팅을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고정댓글> 돈벼락 : 뭐라고? 내 후원이 어쨌다고?]
┗ ㅋㅋㅋㅋㅋ 김철수2인자 어디감?
┗ 야 김철수2인자 나와봨ㅋㅋㅋ 후원 끝났다며?
┗ 돈,벼,락렐루야!!!
┗ 저도 한 푼만 굽신굽신.
┗ 돈벼락선생님 ^.~ 뭘 하면 선생님처럼 부자가 될 수 있나요? 방법 공유 좀 ㅋ
┗ 내 후원은 끝이 없닼ㅋㅋㅋㅋㅋ 김철수2인자 어디갔누?
그사이 차진혁은 40억 다이아를 소모했다.
사실 가챠를 진행하는 차진혁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도 무제한의 후원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기는 했지만 진짜 이렇게 후원해 줄 줄은 몰랐다.
'행운 그 자체는 왜 이렇게 엉덩이가 무겁냐?'
몇 번 쓰다 보니 느낌이 온다.
언제 써야 이게 가장 큰 권능을 발휘하는지.
때를 기다리며 가챠를 진행 중이다.
'아직 때가 아냐.'
41억.
.
.
.
49억.
근 50억가량을 투자했다.
'지금이다.'
[신비,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합니다.]
타이밍을 잘 맞추어 무언가를 뽑았다.
"드디어, 신화급 카드를 획득했습니다! 카드 형태의 신화급 아이템. 아마 지구 서버 최초인 것 같은데요? 역시 모든 빨 중 최강빨은 템빨이죠."
닥겜은 으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방송 중도 아닌데, 닥겜은 방망이로 핸드폰을 내리쳤다.
쾅! 쾅! 쾅!
핸드폰이 박살 났다.
"씨X! 이 운빨X망인생 같으니라고."
그 날로, 닥겜은 방송을 접고 은퇴했다.
그의 은퇴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은퇴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큰 두 가지 사건이 연달아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첫째로 차진혁이 '카드 형태의 신화급 아이템'을 최초로 획득했다.
그것도 무려 50억 다이아를 써서.
1다이아는 현재 약 1원의 화폐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한화로 50억 원을 쓴 것과 비슷했다.
-50억 원의 기적, 신화급 아이템이란 무엇인가!
-스트리머의 기행인가, 독보적인 콘텐츠인가.
각종 뉴스와 포털은 물론이고 수많은 커뮤니티에 김철수 이야기가 도배되었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이벤트까지 진행되었다.
미국.
독일.
중국.
세 개의 맵에서 '신 시나리오, 벌레를 삼키는 자'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벌레 떼들이 나타나 큰 피해를 입히기 시작했다.
피해 정도가 심각하여 이것은 곧 전 지구적 재앙으로 번질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일명 '버그 쓰나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