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8화
최근 한 달 간 나랑 연락이 뜸했던 서지수가 대뜸 나를 찾아왔다.
"오빠, 나 서운해."
"뭐가?"
"나는 오빠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진짜 엄청 노력했어. 지금도 하고 있고. 오빠도 알다시피 [K-킬러s] 연합도 만들었어."
저기서 K는 한국의 K 혹은 김철수의 K.
뒤에 붙는 s가 서지수, 서지아의 s라나 뭐라나.
부를 때는 그냥 K킬러즈라고 부른다.
[……#개서운 #왕서운 #몹시속상 #나운다?]
* * *
* * *
얘가 왜 이렇게 나한테 섭섭해하는지 모르겠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서지아도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우리가 약했나? #자기반성 #자기혐오]
아니, 얘까지 왜 이러는 거지.
서지수가 주먹을 꽉 쥐고서 말했다.
"나는 오빠가 K-킬러즈를 가장 먼저 협력 연합으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일 줄 알았어."
"……."
"물론 우리가 아직 검은가시 연합에 비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아. 우리는 후발주자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우리가 오빠한테 첫 번째일 줄 알았어. 그래서 엄청 열심히 노력했고, 노력하고 있고, 성장세만큼은 우리가 검은가시 연합에 비해서 훨씬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어."
말을 듣다 보니 애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1등을 빼앗겼으면 자존심 상할 수 있지.
"너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 너희가 내 첫 번째 협력 연합이야."
"……진짜?"
"당연하지."
실제로 K-킬러즈는 어마어마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단 서둥이들의 레벨은 벌써 70 후반.
랭킹 5위와 6위를 나란히 달리고 있다.
한 연합에 이 정도 랭커가 둘이나 포진해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게다가 얘네는 물레벨도 아니다.
레벨로는 5위, 6위겠지만 아마 실제 실력으로는 그보다 위라고 생각한다.
'안 되겠다.'
먼 미래에 나는 내 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하는 중.
내 세력의 가장 큰 지지기반은 내 첫 파티원들이다.
얘네들이 흔들리면 내 세력 전체가 흔들린다.
'기강 한 번 잡고 가야겠다.'
애들을 모아서 얘기를 한 번 나누기로 했다.
얘기도 들어주고,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점검도 해보고, 조언해 줄 수 있는 것들은 조언하는 자리를 좀 가져야 할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일대일 면담도 가끔 해야겠지.'
생각해 보니 훗날 군주로 전직했던 한세린이 종종 이런 자리를 가졌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분기탱천해서 나를 찾아왔던 서지수가 이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그냥 옆자리를 뺏긴 거 같아서 너무 열 받았어. 아니…… 솔직히 질투 나고 속상했어."
"아냐. 이것도 다 군주로서 해야 할 일인데 뭐."
"응?"
"왜?"
"방금 오빠 분명히……."
내가 뭐라고 했더라?
나는 천사소녀 송하영에게 우리 팀원들에 대한 조사를 객관적으로 해달라 부탁했다.
"아주 흥미로워. 시작이 좀 늦기는 했지만 다들 엄청난 성장세로 자리 잡고 있어. 아, 일단 목재현부터 얘기를 시작해 볼게."
목재현은 다른 애들과 달리 약간의 방황을 거쳤다고 했다.
"처음에는 안전을 지향하는 연합에 소속돼서 소심하게 플레이를 했단 말이야? 일견 만족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해당 연합에서 나왔단다.
"같은 짓을 몇 번 반복하더니 이제 안 되겠나 싶었나 봐. 최근에 연합을 새로 차렸어. 그쪽도 이름은 알고 있겠지만 KSM연합이야.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몰라."
"김철수 X발 목재현 연합."
얘기를 들어보니 목재현은 자기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단다.
안전을 제일로 추구하는 중위권 연합에 들어가 너무 답답해했다나 뭐라나.
성향이 안 맞아서 다른 연합들을 전전하다가 아예 연합을 차려 버려서 연합장이 되어 버렸다.
"다른 연합들이 성에 안 찼던 거지. 아무튼 KSM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좋은 소식이네."
"재미있는 건 다른 동료들도 과정이 달랐을 뿐 결과는 비슷하다는 거지."
목재현과 달리 서둥이들은 곧장 자리를 잡았다.
독립하자마자 곧바로 K킬러즈 연합을 차려서 암살자들을 끌어모으고 세력을 확장 중.
"검은가시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을 정도야. 성장세만큼은 독보적이지. 그리고 김정현의 경우, 청불연합을 이끌고 있어. 그쪽도 알다시피 청불연합은 불과 세 달 만에 한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거대 연합으로 성장했어. 아마 청불연합의 네임드 효과였겠지."
목재현.
서둥이들.
김정현.
모두 하나의 연합을 이끌고 있다.
전부 내 1차 협력 연합들이다.
"국정원에 소속 되려 했던 한세린이 청불연합의 길잡이로 갔다는 건 알고 있지?"
"어. 들었어."
"그리고 한세린의 라이벌로 손꼽히는 두더지맨이 목재현의 김, 철, 수, X, 발 연합에 소속됐어. 연합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인데 아마 한세린과 경쟁하고 싶은 것 같아."
왜 김철수 X발에 힘을 준 거 같지.
"보통은 KSM연합이라고 하지 않냐?"
"풀네임을 말했을 뿐이야."
그렇다고 보기에는 뒤에 목재현을 뺀 거 같은데.
아무튼 다들 성장세가 어마어마했다.
유능한 길잡이들은 물론이고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흑장미 연합의 연합장에게 보고의 형식으로 들으니 괜스레 뿌듯했다.
"다들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그쪽 동생, 차진솔이지."
"차진솔?"
차진솔은 요즘 많이 바쁘다.
나랑도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요즘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각성명 아기상어. 이명, 자유의 성녀."
내 동생한테 저런 이름 붙었다니 소름이 돋고 말았다.
자유의 성녀라니.
"어느 특정한 연합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 신분으로 수많은 현장에서 기적의 치유력을 보여주고 있어. 레벨 랭킹은 10위권이지만 레벨과 상관없이 모든 연합에서 가장 원하는 힐러로 유명해. 어디서든 모셔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 몸값도 엄청 비싸고, 영향력이 어마어마해."
아 근데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닌데.
지금 차진솔의 성장세를 보건대 무난하게 탑랭커는 될 거 같다.
그러면 세력이 좀 든든히 버텨줘야 각성자 사냥꾼 등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질 텐데.
'얘가 탑랭커가 되는 걸 걱정하는 날이 오다니.'
처음에는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는 것 같다.
얘가 또 어떻게 커 가지고 이런 걱정을 하게 만드는 건지 뿌듯, 아니, 걱정된다.
'당장 걱정할 건 아니니까.'
힐러와 스트리머는 비교적 안전한 편인 데다가, 아직 거기까지 걱정할 시기는 아니었다.
"다들 뛰어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공통점 외에 정말 두드러지는 공통점이 하나 더 있어."
"그게 뭔데?"
송하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서 말을 이었다.
"다들 자기들을 엄청 과소평가해. 다들 말버릇처럼 기본적으로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말하거든?"
"……."
"근데 그 기본의 기준이 좀 많이 이상해."
"이상하다고?"
"그 미국에서 3일 내 연속 죽음을 금지하는 움직임 있는 거 알지? 근데 얘네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어. 그거 못 버티면 연합에서 나가라고 하거든. 그런 괴랄한 기준이 많은데, 그게 기본이래."
나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기본 아닌가?
나는 한세린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애들을 불러 모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한세린은 우리한테 욕밖에 안 했던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다들 기본을 잘 지켜주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리고 애들한테 우리의 협력 연합원들이라 할 수 있는 송하영과 곽도형도 소개시켜줬다.
서지수는 약간 술에 취해서는 '오빠, 내가 저 아저씨보다 강해지면, 그땐 나랑 사귈래?'라면서 주사를 부려댔다.
여기서 '저 아저씨'는 같은 암살자 계열인 곽도형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서지수의 목덜미를 때려 기절시켰다.
서지아는 아무 말도 없이 홀짝홀짝 와인을 마시다가 얌전히 잠들었다.
미성년자인 목재현은 포도쥬스를 마시다가 잔을 쾅! 내려놨다.
"다른 데서 플레이하다가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얘는 술도 안 먹은 애가 왜 취한척하는지 모르겠네.
"진짜 미친 생각인데요."
혼자서 자꾸 시X, 시X, 욕을 해댔다.
뭔가 깊은 화가 있나 보다.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요. 가끔 우리끼리 플레이할 때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진짜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 같아."
말이 많아서 기절시킬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생각해 보니 한세린은 욕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들어주기는 다 들어줬던 거 같다.
이것도 군주로서, 군주가 응당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겠지.
"기본만 지키면 되는데, 왜 다들 기본을 안 지키죠?"
"그러게나 말이다."
"던전 안에서 죽을 수 있다는 건 너무너무 당연한 전제잖아요? 그게 싫으면 플레이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쌓인 게 많나 보네.
"축구선수가 다리 다칠 거 두려워서 축구 안 해요? 배구 선수가 손가락 다칠 거 무서워서 배구 안 해요? 운동선수가 관절 다칠까 봐 운동 포기하냐구요! 아니잖아요. 다리 다칠 거 알아도! 손가락 다칠 거 알아도! 관절이 상해도! 그래도 해야 하잖아요! 프로니까. 근데 왜 플레이어들은 안 그러냔 말이에요. 왜 다들 기준이 이상하냐고!"
듣고 있던 송하영이 크흠, 헛기침을 하고 현실 감각을 일깨워줬다.
"축구나 배구 하다 죽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플레이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플레이 때려치우라 그래!"
"아니 왜 나한테 화를 내냐?"
"죽을 수도 있는 게 당연히 기본인데 왜 기본을 놓치냐고!"
"야. 나도 너랑 생각은 같아.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말이지."
이래저래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아무튼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했던 거 같다.
검은가시 연합장 곽도형은 내 옆에 앉은 뒤 작게 말했다.
"솔직히 제가 미친놈인 줄 알았습니다. 사실 형님을 암살대상으로 지정했을 때에도 연합 내에서 반대가 많았거든요."
얘가 나보다 나이 많은데 나보고 형님이란다.
그렇게 불러야 마음이 편하다나 뭐라나.
"하지만 이제 알겠습니다. 여기 와보니 제가 미친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정상들의 세상에서 정상은 소외받기 마련이죠. 제가 정상이 맞았습니다."
마음에 깊은 평안을 얻어서 깊게 감동한 것 같았다.
"앞으로도 종종 불러주십시오."
처음에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귀찮기만 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내 나름대로 꽤 재미있었다.
거의 처음 느껴보는 부류의 즐거움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기절했던 서지수도 정신을 차린 뒤 내가 입을 열었다.
"솔로잉, 듀얼 모드도 업데이트됐고. 이제 얼마 후면 오픈베타가 끝날 거야."
플레이 얘기가 나오자 다들 진지해졌다.
저 자세들이 보기 참 좋았다.
"정식 오픈이 되기 전, 큰 이벤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거든."
원래는 서울시 제4시나리오와 연계된, 침략자와 수호자 간의 전쟁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강력한 공격자가 나타나고, 지구 서버의 사람들은 한데 똘똘 뭉쳐 침략자를 몰아내는 경험을 해야 한다.
그게 정식 오픈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가 되어야 했다.
근데 공격자를 위한 안배와 수비자를 위한 안배를 전부 내가 진행하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송하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관련되어 몇 가지, 진지하게 말할 것이 있어. 이건…… 나 혼자 알아냈다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곽도형의 몸이 움찔했다.
보아하니 둘 사이가 아주 원만하지는 않은 거 같다.
약간 계열이 겹쳐서 그런가, 둘은 묘한 경쟁심을 가진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저기, 살모사와 함께 힙을 합쳐 알아낸 정보들이야. 굉장한 얘기를 할 거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외부로 퍼져 나가지 않았으면 해."
곽도형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의 얘기를 다 듣고 난 이후, 그에 합당한 정보료를 지불해 주면 좋겠군. 정보에는?"
송하영이 가볍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정보로."
얼씨구?
둘이 사이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네.
[……#이번에는_우리가]
[……#우월함을_증명할_차례]
쟤네는 정보료를 받을 생각이 애초에 없는 거 같기는 했다.
'정보의 우월감을 만끽하고 싶은 본능은 당연한 거지.'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당연하다.
근데 왜 묘하게 나를 의식하는 거 같냐?
[……#이것만큼은_내가 이겨 #김철수는 2등이다]
[……#이건_이긴다 #김철수를_이긴다]
……어?
송하영이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드시 비밀을 엄수해 줘. 서울시의 시나리오와 관련된 얘기야. 관리자들은 물론이고, 트리니티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VIP 존재들까지 엮여 있는 큰 사건이지."
……이 정도로 날 이기겠다고?
이건 선 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