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5화
방송을 켜자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입장하는 것이 보였다.
'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는 1인을 위한 프리미엄 방송보다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중소통 방송이 훨씬 좋았다.
사실 소통은 아니지만 나는 소통하니까 소통 방송이라고 하기로 했다.
'실시간 시청자수 1만 돌파.'
방송을 켠 지 1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1만을 돌파하고 2분이 채 지나기 전에 2만을 돌파했다.
아, 물론 겉으로 보이기에는 이렇게 보인다.
* * *
* * *
[19,200명/19,200명]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계속해서 시청자가 밀려들고 있다.
숫자 올라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이래서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켜놓고 한동안 노래 틀어놓거나 시간을 끄는 거 같다.
새로운 걸 배웠다.
근데 생각해 보니 며칠 전에 에건 폴이 인터뷰했던 게 생각난다.
지가 신문명 시대에 누구보다 빨리 적응했다나 뭐라나.
새로운 도전을 가장 먼저 시도하여 압도적인 시청자수를 기록하고 있다나 뭐라나.
'내가 더 많은데?'
나는 원래 3등만 하려고 했다.
에건 폴이 1등인 건 너무 당연한 얘기다.
근데 얘기가 좀 달라지고 있다.
에건 폴이 나를 먼저 언급했다.
정확히 말하면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한국의 김철수와 비교하면 현재 폴의 위치는 어떠합니까?"
"그가 저의 역량을 넘보고 있다는 소식은 종종 전해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자와 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출발선부터가 다르니까요."
"출발선이 다르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김철수는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시간과 역량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미 시청자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시작했죠.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니, 나보다 시청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면 인정하겠다.
지금 얘 시청자 수는 대략 5만 명 정도로, 나랑 비슷한 수준이다.
비슷한데 왜 이렇게 지가 압도적인 것처럼 잘난 체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면 안 되는데 기분이 슬슬 나빠진다.
'스트리머는 방송으로 증명해야지. 방송에나 집중하자.'
"황금 수호수 앞에 섰습니다. 이곳에 제가 우연히 얻게 된 [바루드나이마 영령수]를 뿌려볼까 합니다."
아까 히든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획득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에건 폴. 너는 황금 수호수 파종도 못해봤지?
영령수도 없지?
여왕개미랑 싸워보지도 못했지?
제작맞춤형 신비를 가지지도 못했지?
이 썰 다 풀고 싶어졌지만 이성으로 참아냈다.
대신 방송 제목을 조금 바꿨다.
[최초 공개! 지구 서버 유일의 황금수에 7,000년 된 신성목의 영령수를 뿌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뭔가 제목이 지나치게 길어진 기분이지만 왠지 오늘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보시다시피 바루드나이마 영령수는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서 태어난 나무에 깃들어 있던 영령의 기운을 품은 물입니다. 이 영령수는 7,000년간이나 하나의 의지를 품어왔고 수호수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한 번 뿌려보겠습니다."
나는 영령수를 황금 수호수에 뿌렸다.
공기와 맞닿은 영령수가 황금빛 연기로 변하는가 싶더니 황금 수호수의 몸통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황금 수호수 주변에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수호수 본체가 흩뿌리는 황금빛과 물안개가 부딪쳐 은은한 빛을 반사 시켰다.
시간이 지나도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황금 수호수 주변을 맴돌았다.
안 그래도 제법 있어 보이는 형상의 나무였는데 조금 더 상서로운 느낌이 들었다.
"마치 조명을 켜놓은 것 같네요. 멋있습니다."
어느덧 황금 수호수의 이름이 바뀌었다.
──────────
[영령이 깃든, 어린 황금 수호수]
──────────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었다.
그와 함께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하게 작용하면서, 일종의 접근금지 설정이 가능해졌네요."
수호수의 권역에서의 출입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레벨 150 이상쯤 되어야 내 통제권을 깰 수 있을 거 같다.
"시험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실 저를 노리는 암살팀이 하나 있는 거 같은데요."
뛰어난 플레이어에게 암살자가 붙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아, 이걸 안 보여드렸구나."
나는 품속에서 빨간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오늘 밤, 너를 사냥할 것이다. - 검은 가시 연합]
아까 방송 켜놓고 기다리고 있을 때 나한테 떨어진 선전포고용 쪽지였다.
이 정도면 제대로 된 암살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미리 경고도 하고 소속도 밝혔다.
정석적인 플레이다.
"일단 얘네를 한 번 쫓아내 보겠습니다."
황금 수호수 앞에 섰다.
나뭇가지로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빗줄기처럼 떨어져 내려 내 몸을 감쌌다.
"저기, 저기, 저기. 세 명이 보입니다. 각성명은 도둑살쾡이, 검은하마, 무법지옥이네요. 상대 수준에 따라, 또 제 역량에 따라서 접근금지 구역 설정이 가능한 거 같습니다."
레벨은 40대.
실력이 그렇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었다.
'이건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해야 하는 거구나.'
이 또한 내 컨트롤이 필요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구체화하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접근금지 구역'으로 설정할지 떠올려야 했다.
명상을 아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이 권능을 다루기에는 쉽지 않을 거 같았다.
"오, 암살자들이 제 발로 멀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부작용도 있었다.
두 명은 '길'로 뛰어서 연희동 바깥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한 명은 창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약간 자살하는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저런."
5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부러진 다리로 억지로 일어서서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상대의 신체를 조작하여 제가 설정한 권역 밖으로 밀어내는 능력인 거 같습니다. 다리가 부러져도 몸이 계속 움직이네요."
저러면 많이 아플 텐데.
저만치 멀리서 '김철수!!!'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왜 억울해하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무슨 총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나도 제대로 된 플레이로 반격한 건데 왜 억울해하지?
"아마도 저를 암살하는 데 실패한 것 같아서 많이 분한 모양이겠죠."
이외에도 수호수의 권역 내에서 '방어계열 신비/특성/스킬' 사용 시 그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옵션도 붙었다.
이것도 얼른 보여주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으나 참았다.
'한 번에 너무 다 보여주면 재미없지?'
방송 시작 전 약간의 기다림.
조금 더 자극적인 제목.
그리고 콘텐츠 완급의 조절.
나는 또다시 뿌듯해졌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
보고 있냐, 에건 폴.
차진혁은 그의 집 근처를 접근불가 지역으로 만들었다.
가족과 허락받은 사람 이외에는 접근할 수 없도록.
그가 '기만자의 가면'을 사용했다고는 하나, 이미 차진혁의 신상은 알음알음 알려진 상태.
많은 기자들이 이미 차진혁의 집 주소를 알아냈고 그 주변에 진을 치고 있었다.
"어어?"
기자들은 스스로 밀려났다.
"왜 이러지?"
"몸이 제, 제멋대로 움직여!"
기자들뿐만 아니라 스트리머들도 '접근 금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불청객들을 일정 거리 밖으로 쫓아낸 차진혁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근성이 꽤 있는 놈들이었어.'
비교적 저레벨이기는 했지만 역시 검은 가시 소속다웠다.
내가 아는 '검은 가시'라면 이 정도로 암살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늘 밤이라고 했지?'
검은 가시의 연합장인 '까치 살모사'.
놈이라면 분명 움직인다.
핸드폰을 슬쩍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천사소녀 송하영이었다.
"어, 왜?"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아요!
"바빴어. 왜?"
-검은 가시 연합이라는 놈들이 있어요. 그놈들이 당신 노릴 거야.
"어, 알아."
-안다고요? 어떻게?
"선발대 보내서 나 살펴보고 있던데? 선전포고까지 했어."
-돌아버리겠네. 거기 연합장이 누군지 알아요?
누구긴 누구야.
까치 살모사 곽도형이겠지.
예전에도 제법 이름 날렸던 놈이다.
"글쎄. 누군데?"
-각성명 까치 살모사. 무서운 독과 암기를 다루는 암살자계열 플레이어라고요. 현재 레벨 50대 중후반 추정. 우리 쪽에 당신에 대한 정보제공을 의뢰해 왔어.
"무슨 정보 제공 해줬는데?"
-미쳤어요? 제공 안 해줬지.
차진혁은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제공을 안 했다고? 왜? 아니, 도둑 연합이자 정보연합인 너희가 정보 제공을 안 해? 왜? 도대체 왜?"
-그걸 말이라고…….
"해줬어야지. 아니. 지금이라도 해. 내가 연희동 근방에서는 훨씬 강해진다는 거 알고 있지? 나를 상대하려면 북쪽으로는 서대문구청 위쪽, 남쪽으로는 연희IC 아래쪽. 그쪽으로 몰고 가야 할 거야. 정보료는 두둑하게 받도록 하고."
-……이런 정보를 도대체 왜 알려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야 재밌잖아. 엘튜브 각도 살고."
그 말에 송하영은 정신을 퍼뜩 차렸다.
재밌어야 한다.
그 기본을 잠시 잊었던 것 같았다.
-알았어요. 정보 전할게요. 틀림없는 정보죠? 거짓 없죠?
"당연하지. 날 뭘로 보는 거야? 아. 하나 더 있다. 우리 집 근처로는 접근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까 집 근처로 오는 건 지양해야 할 거야. 방금 생방에서는 얘기했었는데, 설마 생방 안 봤어?"
-…….
"아니, 정보단체의 수장이라는 놈이 정보력이 이렇게 뒤떨어져서 어떡하냐?"
사실 송하영으로서도 변명할 거리가 있기는 했다.
그녀 또한 몸이 하나이고, 모든 것을 혼자서 살피지는 못한다.
차진혁(김철수)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원들이 따로 있고, 그 정보원들이 정보를 획득해 송하영에게 보고를 올린다.
방금 전에 있었던 생방송에 관한 보고는 아직 안 올라왔다.
그래도 송하영은 변명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분발할게요.
"그래, 그래야지."
차진혁은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의 플레이가 무척 즐겁기는 했으나 육체와 정신에 상당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암살자들이라."
그는 히죽 웃었다.
"이건 즐거운 게 아냐."
듣는 사람은 없으나 혼잣말로 누군가를 설득했다.
"나중에 고레벨이 되어서 진짜배기 암살자들이나 사냥꾼들이 붙기 시작하면 진짜 피곤해진단 말이지?"
일단은 레벨 150까지만 플레이하고 은퇴할 거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근데 진짜 혹시 모르잖아? 어떻게 하다 보니 더 고레벨까지 내가 플레이를 즐기고 있을지도?"
그렇게 되면 그때부터는 진짜 위험한 사냥꾼들이 붙는다.
아무리 스트리머 보호조약이 있다고는 할지라도, 차진혁 자신이 갖고 있는 '올라운더' 같은 특성은 분명 각성자 사냥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능력이었다.
"진짜 만에 하나, 내가 그 즈음까지도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면 암살자들에 대한 실전감각을 다져놓는 게 좋겠지."
혹시 모르는 거다.
실전 연습은 늘 중요하고, 가벼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컨디션 조절에 매우 유리했다.
"그러니까 암살자들이 많이 와주면 좋겠다."
잠시 눈을 붙였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밤에 있을 이벤트를 기대한 덕분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럼 움직여 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송도 켰다.
[충격, 검은 가시 연합의 예고된 살인? 쫓기는 김철수. 위험천만 그 자체.]
나는 방송을 켜고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골목의 가로등이 고장 났는지 불이 꺼져 있어서 상당히 어두웠다.
전기작업도 미리 해놓은 모양이었다.
'오.'
벌써부터 암살자들의 기척이 느껴지고 있다.
숫자는 대략 일곱 명쯤.
곳곳에 나를 잡기 위한 트랩이나 함정 같은 것도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야, 그래도 준비 많이 했네.'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비플레이어들의 접근을 미리 차단해놓은 것 같았다.
그렇지.
이게 플레이의 기본이지.
간을 보겠다는 듯 어디선가 화살이 하나 날아왔다.
'근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냥 맞아볼까?'
연희동에서는 내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면 중계결계 등의 도움이 없어도 견제용 화살쯤은 그냥 맞을 수 있지 않을까?
내 방어력이 그 정도는 될 거 같은데?
'조준이 살짝 틀렸네.'
슬쩍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퍽!
가슴팍에 작은 충격이 있었다.
화살촉은 내 가슴을 뚫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당황한 척해야겠다.'
가슴팍을 붙잡으면 더 아픈 것처럼 보이겠지?
'사소하지만, 엘튜브 각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게 신호였는지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숫자가 꽤 많았다.
저걸 다 맞으면 어떻게 될까?
내 방어력이 버텨줄까?
모르겠을 때에는 한 번 해봐야 했다.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마사지도 세게 받으면 아프다.
화살로 맞으니까 강한 마사지보다는 훨씬 아팠다.
연출상으로는 중계결계를 사용한 척했다.
'나를 진짜 죽이려는 공격이 아니야. 잘하고 있네.'
송하영으로부터 정보를 잘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아마 이런저런 방법들을 통하여 나를 연희동 바깥으로 끌고 가려는 심산이겠지.
'저쪽 마법진 쪽으로 유도하고 있어.'
마법진이 보였다.
체력을 갉아먹는 디버프가 걸린 마법진 같았다.
'이참에 내 몸의 마법 저항력도 살펴봐야겠다.'
이렇게 꼼꼼히 잘 준비해주면 내 역량을 파악하는 데 참 좋다.
나는 여태까지 쌓아온 연출실력을 기반으로 약간의 연기를 더하며 적당히 화살을 피해내고 적당히 맞아줬다.
"어어, 어어?"
내 연출은 완벽했어.
나는 성장했다고.
……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내 방송의 중계방인 '비밀상자'의 채널을 들어가 봤어야 했다.
거기서 무슨 채팅이 오가는지 확인을 못한 게 내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