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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04화 (10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4화

방향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녹색 문양에 손을 뻗자 평소 신비를 얻었을 때와는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들었다.

'신비가 아니다?'

신비와 비슷하되 신비가 아닌 것.

나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접촉하였습니다.]

그때,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영광된 자여. 이 길을 따라가라. 이 길 너머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에, 그대를 밝게 비출 광명이 있으리니. 7,000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도다.

* * *

* * *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

그곳에 진정한 히든 퀘스트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곳이 바로 이곳 부화장이었고.

신유리가 알들을 모조리 파괴하면서 생명이었을 것들이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수많은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면서 저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바루드나이마'로부터 자격을 증명받았으므로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신비로 개화합니다.]

녹색의 마력선이 내 손을 타고 어깨를 넘어 온몸에 퍼졌다.

마치 마력으로 이루어진 바다에 풍덩 빠진 것만 같았다.

밀도 높은 마력 때문인지 숨쉬기가 조금 힘들 정도였다.

'아, 이런 거구나.'

이제 알겠다.

정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다만 '지키고자 하는 의지'는 신비의 재료였다.

이 재료가 플레이어인 나를 만나 맞춤 제작형 신비가 태어나는 듯했다.

'신유리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겠지.'

전 우주 유일무이.

아이언 돔이 전 서버를 통틀어서 단 하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그 신비가 신유리에게 딱 맞춘, 제작맞춤형 신비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게 있을 줄이야.'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마력이 내 몸에 흡수되면서 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방어계열 신비로 전환될 것이라고.

[신비, '환상검희'를 획득하였습니다.]

환상검희.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의 신비였다.

이 또한 내게 딱 맞춘 제작맞춤형 신비 같은데, 여전히 약간 기묘했다.

'방어형 신비의 느낌이 없는데?'

아까 '행운 그 자체'가 단단한 조각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신비는 그 신비가 가지는 특유의 느낌이 있다.

해당 신비에 집중하면 신비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살기등등한데?'

누가 봐도 방어형 신비가 아니라 공격형 신비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 건 써봐야 안다.

나는 곧바로 신비를 사용해 봤다.

[신비, '환상검희'를 사용합니다.]

순간, 내 몸으로부터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유령?'

유령에 가까운 모습.

반투명 상태의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오른손에는 대검 라칸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칼을 들고 있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여자의 형상이었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코 밑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고.'

그 밑으로 입만 보였다.

'웃어?'

히죽 웃고 있었다.

중계자의 시야로 내 신비가 만들어낸 환상체를 살펴볼 수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

내 느낌이 정확했다.

방어형 신비가 아니라 공격형 신비인 것 같았는데 나는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요즘 중계결계를 사용한답시고 잠깐 잊고 있었다.

원래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 간단한 진리를 잊고 있었는데 '환상검희'가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환상검희는 유령형 몸체를 지니고 있어서 물리적인 제약이 적었다.

허공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벽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걸 쓰면 원거리 공격도 가능해지네?'

내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환상검희는 나와 제법 멀리 떨어진 상태로 여왕개미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건 쿨타임이 어떻게 되지?'

제멋대로 신비인 '행운 그 자체'와 비교하면 내게 훨씬 더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해온 동료 같은 기분이었다.

[신비, '환상검희'를 사용합니다.]

'연속으로 계속 사용도 가능해?'

[신비, '환상검희'를 사용합니다.]

무려 세 개체의 환상검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똑같이 히죽 웃으며 여왕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 근데 그만해야겠다.'

환상검희는 나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내가 일부분 컨트롤을 해야 했다.

'지금의 내 정신력과 신비 운용능력으로는…… 세 개체가 한계야.'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세 개체도 지나치다.

겨우 하나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말까였다.

'취소도 되나?'

[신비, '환상검희'의 사용을 취소합니다.]

[신비, '환상검희'의 사용을 취소합니다.]

두 개체를 없애 버렸다.

그러자 하나의 환상검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거지.'

나는 환상검희 컨트롤에 신경 쓰면서 여왕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도 모르게 방송하듯 중얼거렸다.

"놈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생각이 많은 타입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을 기다리며 일을 도모했을 만큼 안정을 추구하는 놈이죠."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할 걸 그랬다.

유일한 시청자인 신유리가 들었어야 했는데.

실수로 목소리를 크게 못 냈다.

"근접전을 극도로 싫어하는 놈인데 부상까지 입은 상태. 게다가 자신의 군대가 되어줄 알들도 모두 파괴가 되었습니다. 결국 놈이 선택할 선택지는 하나죠."

내 검이 허공을 베었다.

내 눈앞에 있던 여왕개미가 모습을 감췄다.

놈은 약간의 위험도 허용하지 않는 성정을 지녔다.

그런 성정답게, 자신이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쳤다.

'어우.'

나는 황급히 환상검희 신비 사용을 중지해야만 했다.

신유리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환상검희를 없애버렸다.

'하마터면 신유리를 벨 뻔했네?'

여왕개미가 도망친 것 때문에 잠시 정신을 놓았더니 이런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신유리 또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아이언 돔'을 사용하기 직전이었다는 것이었다.

"저게 왜 공격을 멈췄죠?"

[#아쉽다 #강해 보였는데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공격당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훌륭하다.

신유리가 물었다.

"플레이를 하다 보면 아까 같은 괴물을 자주 마주치나요?"

"플레이하기 나름이죠."

물레벨 애들처럼 약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레벨만 올리면 여왕개미 같은 놈들과 마주치기 어렵다.

히든 퀘스트나 시나리오같이 거창한 건 해보지도 못한다.

나는 신유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긴장감이 느껴지는 한편, 묘하게 설레고 떨리죠?"

"……."

"솔직히 대답해도 돼요. 이상한 거 아니니까."

"이게 정상인 거죠?

"당연하죠."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이를 구하지 못한 게 아쉽네요."

"아쉬워할 필요 없어요."

NPC들은 프로그램이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저 필요에 의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핸드폰에서 앱 지웠다고 안타까워하지는 않잖아요."

아까 난쟁이 마을로 돌아가 보니 난쟁이 마을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난쟁이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는데 아마도 여왕개미에게 당한 것 같았다.

옆을 힐끗 보니 신유리는 무덤덤해 보였다.

'이해가 정말 빨라.'

이런 광경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정신이 흔들리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나는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게 플레이어로서는 굉장히 불리하다.

NPC는 NPC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유리는 여러모로 플레이에 적합한 체질을 타고난 것 같았다.

"저희가 여기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룬 거겠죠?"

"네. 이제 밖으로 나갈 겁니다."

"어떻게 나갈 수 있나요?"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던전이 있지만, 보통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아까 싸웠던 그 괴물이요?"

"네."

하지만 놈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혹여 찾는다고 해도 지금 당장 놈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다행히 저기 구멍이 보이네요."

사람 두어 명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보였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구멍이었다.

"아마도 여왕개미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뚫어낸 루트 같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이런 식으로 던전 밖으로 빠져나오는 경우는 드물기는 하지만 분명 존재했다.

신유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여기로 뛰어내리면 되나요?"

"그럴 거 같기는 한데 죽을 수도 있습니다."

바깥과 이어질 확률은 높지만 단언할 수는 없다.

운 나쁘면 죽는다.

"죽음은 별로 두렵지 않아요."

"……."

"던전은 어차피 까딱 잘못하면 죽는 곳 아니에요?"

"그렇죠?"

저 말이 맞다.

저 단순한 명제를 이해 못한 멍청한 플레이어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 그렇지.

원래 던전은 죽음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왜 웃으세요?"

"멍청한 플레이어들과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면 한 30분 동안 고민하고 있을 거거든요."

여기로 내려가는 게 맞느냐 틀리냐.

이걸로 한참 얘기하고 토론할 것이 분명했다.

"가보죠."

밑으로 뛰어내렸다.

한참의 시간 동안 떨어져 내렸다.

[필드, '북한산 중턱'에 입장하였습니다.]

신유리와 나는 북한산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여왕개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산을 내려오면서 신유리는 조금 분해했다.

"그 마음 잊지 마세요. 그래야 강해질 수 있습니다."

"네. 절대 잊지 않을게요."

오늘 우리는 여왕개미한테 패배했다.

신유리는 그게 못내 분한 모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어느덧 산에서 다 내려왔다.

"저 계속 스승님이랑 같이 플레이해도 괜찮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초기 방향은 정말 잘 잡아주었다.

'이거면 내 역할은 다 했어.'

신유리의 화력은 누구에게도 비할 바 없을 만큼 강력했지만, 나와 둘이 플레이하기에는 여러모로 제약이 많다.

항상 함께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듀얼 플레이를 즐기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이다.

"여기로 연락해 보세요."

"이게 누군데요?"

"마리아라는 사람이 받을 겁니다. 국정원 소속이고, 신유리 씨를 잘 케어해 줄 겁니다. 나보다 훨씬."

"마리아라는 분과 함께하면……."

신유리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말해보세요. 괜찮으니까."

"스승님보다 강해질 수 있나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스승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정말 강해질게요. 그리고 스승님보다 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저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신유리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던전 속에서는 잠시 플레이에 몰두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는데.

밖으로 나오자 현실감각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너무 처량해졌네.'

남편을 잃고 혼자 남게 된 이 현실이 다시 체감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흐느낀 신유리가 입술을 깨물고 말을 이었다.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요. 언젠가 반드시 보답할게요.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피와 철의 계약'이 생성되었습니다.]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보니 이건 '네미시스 함포' 직업의 특성이었다.

내 눈앞에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철판.

그리고 핏방울이 맺혀 있는 깃펜 하나가 생성되었다.

"스승님을 향한 제 감사와 존경의 증표에요. 그곳에 원한을 지닌 자의 이름을 쓰시면, 저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그자를 반드시 죽여야 해요."

"그렇게 이해했어요?"

나는 신유리에게 설명을 듣기도 전에 중계자의 시야로 '피와 철의 계약'에 대해 살펴보았다.

신유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었다.

"제가 이해한 게 틀렸나요?"

"꼭 복수가 아니어도 여러 가지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아마 '상세 설명'에는 복수와 관련된 내용만 쓰여 있는 모양이었다.

왕왕 있는 일이었다.

상세 설명창이 만능은 아니다.

이면의 다른 것들도 분명 존재하고, 그걸 읽어내는 건 플레이어의 역량이다.

"말하자면 강제 명령서 같은 거네요."

대리복수를 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도 가능하다.

나는 허공에 생성된 피 묻은 깃펜을 들고 철판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억지로 눈물을 참지 말 것.]

[맘껏 애도하되 무너지지는 말 것.]

사실 이런 애매모호한 '명령'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눈물을 참지 말 것'이 아니라 '오른손으로 지금 흐르고 있는 눈물을 닦아낼 것'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명령해야 한다.

"……아."

어차피 상관없었다.

이 '피와 철의 계약'이 반드시 복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된 거니까.

헤어지기 직전, 문득 내 경험들이 떠올라서 말해줬다.

"저도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봐서 알거든요."

그 어마어마한 상실감과 고독감은 누가 옆에서 위로한다고 해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로운 무게를 이겨내는 것은 본인의 몫이었다.

나는 마지막 조언을 해주었다.

"플레이가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나는 신유리와 헤어진 채 연희동으로 향했다.

'음.'

사러가 마트 근처에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았다.

골목이 여기저기가 바글바글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별로 상관은 없었다.

일단 나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곧바로 '어린 황금 수호수'로 향했다.

불과 몇백 미터 안 남았는데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도착했다!'

어린 황금 수호수 앞에 서서 나는 방송을 켰다.

이걸 보여줄 수 있다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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