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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03화 (10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3화

어쨌든 '히든'이나 '시나리오'가 들어가면 대부분 즐겁다.

그 두 개가 같이 엮여 있는 건 더더욱 즐거울 수밖에.

이름부터 굉장한 느낌이 들어 무척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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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가 지켜온 7,000년의 염원]

신성목 바루르드나이마는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태어난 성스러운 영목.

오랜 시간이 흘러 바루르드나이마의 외양은 삭았고 그 권능은 바스라졌으나 태생의 본질을 잊지는 않았노니.

* * *

'지키고자 하는 의지'의 파편을 제시하라.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물 한 가지를 바루르드나이마에게 제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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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행되는 이 내용은 세트 시나리오라 할 수 있는 '경외받는 자&무너진 경외'와 관련되어 있다.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된 거라면…….'

나한테는 두 개의 증거물이 있다.

하나는 수호자의 반지.

또 다른 하나는 수호수와 관련 있는 파종꾼의 기록일지.

'굳이 증거물을 하나로 제안한 걸 보면 무엇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루트가 달라질 건데.'

뭐가 좋으려나.

모든 퀘스트나 시나리오가 철저한 이성과 합리적인 선택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는 수학이 아니니까.

이럴 때는 답이 정해져 있었다.

[신비,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합니다.]

나는 내 운은 안 믿어도 신비는 믿는다.

얘도 요즘 좀 기력이 쇠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예전처럼 번쩍거리는 번개를 내리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감이 온다.'

나는 아이템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단 한 명의 시청자를 위하여 내 나름대로 대사를 연출해 봤다.

"나의 의지를 증명할 일지다. 이것이 7,000년을 지켜온 네 염원에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아무튼 나는 '파종꾼의 기록일지'를 내밀었다.

힐끗 보니 시청자의 눈이 반짝반짝한 것이 대사도 잘 친 거 같아 뿌듯했다.

히든 퀘스트도 중요하지만 내 눈 앞에서 리액션을 보여주는 시청자도 중요했다.

사회성 부족해지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속마음 안 읽으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궁금했다.

괜찮았나?

좀 오그라들었나?

대사가 너무 진부했나?

[……#아름다워 #무척]

매우 뿌듯해졌다.

훌륭한 플레이를 볼 때면 나는 늘 아름다움을 느낀다.

망부석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 보니, 우리는 동류였다.

동류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더 좋아졌다.

내 손에 있던 파종꾼의 기록일지가 두둥실 떠올랐다.

촤르륵!

가벼운 효과음과 함께 기록일지가 펼쳐지는가 싶더니 신성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수가…… 그대는 황금의 문명을 재건할 운명을 지닌 왕의 재목이었구나. 그대를 둘러싼 의지가 참으로 거대하여 감히 형용할 수 없으리. 아아. 눈이 부시구나."

[히든 퀘스트, '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가 지켜온 7,000년의 염원'이 클리어되었습니다.]

순간,

어두운 통로들에 반짝이는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신성목의 뿌리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 같았다.

"영광된 자여. 이 길을 따라가라. 이 길 너머 생명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에, 그대를 밝게 비출 광명이 있으리니. 7,000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도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통로 중 유난히 밝게 빛나는 통로가 하나 보였다.

신성목이 스스로 길을 내어준 것이었다.

"그러나 부디 조심하여라. 이 길 끝에는 끝없는 탐욕을 지니고 수천 년간 나의 영혼을 갉아먹은 여왕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팔적목 여왕개미를 뜻하는 것 같았다.

"혹시 그 여왕이 인간 아이를 납치했나?"

"그렇다. 여왕은 자연의 섭리를 거부한 채, 수천 년간 인간 아이를 잡아먹었다. 1만 명의 어린아이를 잡아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 여기는 것 같았다."

순간,

신성목은 말을 멈췄다.

"방금 1만 번째 아이를 잡아먹었군."

나는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저 말은 곧 퀘스트가 실패했다는 소리였다.

사소한 퀘스트여도 퀘스트는 퀘스트다.

실패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이럴 수가. 숨 가쁘게 움직여야 한다, 황금왕의 재목이여. 수천 년에 걸친 집착과 탐욕이 결국 그럴듯한 기적을 일궈내고 있다. 여왕이 스스로 변하고 있다. 내가 여왕의 오염된 의지를 과소평가했구나. 시간이 없다. 황금왕의 재목이여. 재앙을 막아다오."

훨씬 더 고레벨의 세계였던 내 예전 세계에서도 이런 건 없었다.

팔적목 여왕개미가 사람을 잡아먹는다니?

수천 년간 무려 1만의 사람을 먹어 치웠다니?

그래서 사람으로 변한다니?

'그럼 뭐가 되는 거지?'

나도 알 수는 없었으나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내 머릿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구현되었다.

내 정신세계에 자리 잡고 있는 조각 하나가 박살 나는 것만 같은 환상이었다.

'행운 그 자체?'

내가 지니고 있던 신비, '행운 그 자체'가 깨져 버린 것만 같은 느낌.

나는 이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행운으로는 타파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거겠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았다.

"가죠."

"네."

나는 신유리와 함께 밝은 통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통로가 엄청나게 기네.'

차진혁은 계속해서 길을 따라 뛰었다.

제 역할을 다한 신성목이 점차 죽어가는 건지, 빛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속도를 점점 올리자 신유리가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저, 저는 두고 먼저 가세요."

"그러죠."

차진혁은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는 신유리에 귀에 무엇인가를 작게 속삭였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네. 부탁합니다."

신유리를 뒤로하고 차진혁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마저 호흡이 불안정해지고 지쳐갈 무렵.

순간적인 살기를 느껴 곧바로 중계결계를 사용하며 몸을 뒤틀었다.

'중계결계.'

순식간에 중계결계가 박살 났다.

차진혁조차 간담이 서늘해졌다.

'몸을 뒤틀어 피하지 않았다면 목이 잘렸을 것 같군.'

허공에 무언가가 보였다.

희미해져 가는 빛에 반사되는 얇은 실이었다.

'은사?'

차진혁은 검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은사를 튕겨냈다.

'날카롭다.'

어지간한 검보다 훨씬 날카로웠다.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이 강맹하여 손목이 저릿했다.

'엄청나게 강한 놈이야.'

어디선가 공격을 하고는 있는데 그게 어디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중계자의 시야로도 전혀 안 보였다.

레벨 차이 혹은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는 뜻.

'일대일로 싸워서 가망은 없겠어.'

다만 한 가지는 느껴졌다.

'내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이 희미한 불빛 너머로부터.

'시간을 조금 더 벌어야 해.'

차진혁은 동물적인 감각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거나 쳐냈다.

'별의 방패.'

일곱 가닥으로 나뉘어져 차진혁의 목을 노리던 은사가 튕겨져 나갔다.

이내, 희미한 불조차 모두 사라지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법이구나."

남자도, 여자도, 어른도, 아이도 아닌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섞인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점차 다가오자 중계자의 시야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LV???/???/???/???]

모든 것이 물음표로 표시되는 마물이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실루엣만 보일 뿐, 어둠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개미들의 여왕이냐?"

"경외를 표하라, 어리석은 것."

목소리가 점차 더 가까이 다가오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엄청난 위압감이군.'

점차 가까이 다가온 실루엣을 보아하니 크기는 대략 150㎝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키가 작은 사람 정도 되어 보였다.

"이 육체, 이 능력, 모든 것이 황홀하고 아름답다."

"……."

차진혁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어떻게 하면 저거랑 후회 없이 싸울 수 있지.

죽을 땐 죽더라도 후회 없이 싸워야 즐거울 텐데.

차진혁이 물었다.

"원하는 게 뭐냐?"

"아름다운 제국을 세울 것이다."

과연 여왕개미다운 답변이었다.

"나의 아름다운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이 이 어두운 지하세계를 벗어나 빛이 닿는 곳을 지배하게 되겠지."

여왕개미가 기괴하게 웃었다.

"곧 나의 아이들이 깨어날 것이다."

그때,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응, 태양권."

[스킬, '중계용 조명'을 사용합니다.]

화악!

빛이 밝아졌다.

순간, 여왕개미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며 손가락으로 은사를 쏘아냈다.

차진혁은 몸을 던져 은사를 피해냈다.

'진짜 사람하고 똑같잖아?'

머리의 더듬이.

그리고 등에 달린 비늘 날개를 제외하면 인간과 똑같았다.

전체적인 형상은 여자에 가까운 듯했다.

'나를 압도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어두워진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냈어. 빛에는 약하고, 생각과 조심성이 지나치게 많은 타입.'

생각이 너무 많으면 행동이 굼뜨기 마련이다.

빛 때문에 잠시나마 혼란이 야기되었으니 더욱 그랬다.

이때가 기회였다.

차진혁은 곧바로 달려들어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하여 여왕의 몸통을 베어냈다.

'안 먹히는군.'

여왕을 보호하는 보호막이 너무 단단하여 조금의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

또다시 수십 가닥의 은사가 차진혁을 향해 쇄도했고, 차진혁은 날쌘 몸동작을 선보이며 은사를 피해내거나 막아냈다.

'접근전 능력도 나보다 훨씬 강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왕개미는 은사를 조종하여 원거리전을 고집했다.

차진혁의 접근 자체를 불허했다.

"제법 깜찍한 재주를 부리는구나."

어느덧 여왕개미는 '중계용 조명'의 빛에도 익숙해졌다.

이제 중계용 조명은 여왕개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은사가 날아들어 차진혁의 대검을 묶었다.

"제법 즐거운 놀이였다."

차진혁은 라칸 대검을 그대로 놓아버린 채 몸을 뒤로 던져 세 바퀴나 굴렀다.

'검술가가 검을 놓다니.'

그의 이성은 '나는 검술가가 아니고 스트리머야'라고 늘 주장하던 이성은, 그의 본성에 잠식되었다.

굉장히 치욕스러운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라칸과의 거리는 너무 멀었고, 차진혁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두 줄의 은사가 날아들어 차진혁의 양쪽 허벅지를 찔렀다.

차진혁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반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마비독이 침투했어.'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이제는 승리를 확신한 듯 여왕개미가 점차 가까이 다가왔다.

몇 가닥의 은사가 더 생성되어 차진혁의 양 손목과 발목을 묶어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은사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은색 실을 따라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붉은 피가 아름다워."

여왕개미는 예술품을 바라보듯 차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은사를 따라 여왕개미의 손가락까지 붉은 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여왕개미는 그 피를 핥아보고서 히죽 웃었다.

"네 피는 무척이나 달콤하구나."

그런데 그때.

여왕개미가 '안 돼!!!'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안 되긴 뭘 안 돼."

차진혁은 이미 실로 여왕개미의 손가락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

차진혁 또한 빠른 속도로 여왕개미에게 딸려갔다.

차진혁은 자신의 손목을 파고든 은사를 손에 꽉 쥐었다.

'놓치면 안 돼.'

중계결계를 손목과 손바닥에 집중했다.

'집중하자. 안 그러면 손목 절단난다.'

몸이 허공에 뜬 가운데, 바닥에 꽂힌 라칸을 빼냈다.

라칸은 제대로 회수했다.

'점점 뜨거워지는데.'

익숙한 냄새가 났다.

이것은 신유리의 스킬, '네메시스의 분노'에서 나는 화약 향이었다.

'내 요청을 잘 수행했나 보네.'

이내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불에 휩싸여 있었고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화약 향이 가득했다.

'본질적으로 제 알들을 끔찍이 여기는 설정은 변함이 없어.'

차진혁은 이곳 어딘가에 '부화장'이 있을 것을 확신했다.

신유리에게 부화장의 개미 알들을 파괴해달라는 부탁을 했고, 신유리는 그 부탁을 잘 이행했다.

타오르는 불길 가운데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네 이년!!!"

이성을 잃은 여왕개미는 신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여왕개미의 손날이 날카로운 검날로 변해 은색으로 번쩍거렸다.

그때, 신유리가 차진혁도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비, 아이언 돔."

순간.

기계 방어형 신비 중 최강으로 불리는 신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등 뒤로 수백 발의 마력탄이 쏘아졌다.

방어를 위해 사용되었을 때 최적의 효율을 발휘하는 신비.

신유리 신체, 직업과의 상성이 극상인 신비가 여왕개미를 향해 쏘아졌다.

콰과과광!

순식간에 수십 발의 폭발음이 들렸다.

수십 발은 여왕개미의 본체를 타격했고, 수십 발은 여왕개미의 퇴로를 막았으며, 수십 발은 어느 한 곳으로 쏘아졌다.

폭발이 이어짐과 동시에 일순간 진공상태가 되면서 세찬 바람이 불었다.

사람의 몸을 날려 버리고도 남을 강력한 바람이었다.

차진혁은 아까 조각났던 신비 '행운 그 자체'가 다시 복구되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행운으로 어찌어찌 비벼볼 수 있다는 건가.'

[잠재 스킬, '신검합일'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여왕개미가 쏘아지던 관성력.

그리고 폭발에 의한 강풍.

그 모든 힘과 체중을 얹어, 검술가 계열 90레벨 전용 스킬 '신검합일'을 사용했다.

아이언 돔에 의해 보호막마저 약화 된 상태.

푹!

여왕개미의 등에 라칸을 꽂아 넣는 것에 성공했다.

"크악!"

여왕개미가 괴로운 듯 팔을 내저었다.

퍽!

차진혁은 그 팔에 얻어맞고 튕겨져 나갔다.

'광대뼈가 함몰된 것 같은데.'

제법 큰 통증이 밀려들었지만 차진혁은 웃고 있었다.

'날아가는 방향이 아주 좋다.'

아까 신유리의 신비가 열어준 길 끝.

그 끝에 녹색의 마력 문양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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