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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02화 (10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2화

저 눈빛.

저 태도.

모든 것이 나에게 큰 울림과 감명을 주었다.

나를 향해 떨어진 빛기둥이 내 바로 앞에 꽂혔다.

'레벨 45 수준이 이 정도라니.'

누군가는 반쪽짜리 플레이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한 방 파괴력은 으뜸이었다.

그리고 내 바로 앞, 머리에 구멍이 난 마물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거의 빈사 상태가 됐네?'

몸이 다 빠져나오지 못해 반쯤만 나와 있는 개체였다.

* * *

* * *

* * *

[LV55/팔적목 개미 부군단장/스킬]

팔적목 일개미들보다 무려 레벨이 10 이상 높은 개체.

덩치도 훨씬 컸다.

대략 50㎝ 정도 되어 보였는데 턱에 달린 이빨이 아주 날카로운 놈이었다.

나는 단도를 꺼내 숨만 간당간당 붙어 있는 팔적목 부군단장을 사냥했다.

[팔적목 개미 부군단장을 처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만치 위쪽을 바라보니 망부석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는데 #아직 부족해 #반성하자]

망부석의 태도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을 넘어서서 영감을 주고 있었다.

망부석은 오늘이 첫 실전이다.

정신도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내 앞에서 튀어나올 적을 미리 알아차려서 능동적으로 이곳을 공격했다.

'기본적으로 저 공격은 직사인데 그걸 곡사로 바꾸기까지 했어?'

포격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라지만 이건 문제가 좀 달랐다.

방금이 첫 스킬 시전이었으니까.

이건 신이 내린 재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보다 더 내게 영감을 준 건 망부석의 마음가짐이었다.

'이 소소한 성공에 기뻐할 법도 한데 오히려 자신을 채찍질하며 반성하고 있어.'

특히 저레벨 플레이어 혹은 플레이를 제대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들은 작은 성공에도 기뻐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아무래도 첫 기준점을 잘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레 움직여 일개미들을 자극하지 않은 채 신성목을 올랐다.

나는 기쁨과 설렘을 감추고 이 플레이어가 보다 나은 플레이어가 될 수 있도록 교육했다.

"센스는 좋았어요. 그렇지만 아군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판단도 플레이어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입니다."

"조금 더 가르쳐주세요."

"망부석이 알고 있는 것을 제가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

"그놈은 제가 사냥하는 게 효율적이었습니다. 더 강하지만 단신이었으니까. 당신의 역할은 약하지만 떼거리로 몰려 있는 저놈들을 섬멸하는 것이었어요. 쿨타임은 얼마나 돼요?"

"5분 정도요."

와, 길기는 길다.

5분에 한 번 공격할 수 있는 거면 시점에 따라서는 진짜 반쪽짜리 플레이어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우리는 5분을 버린 겁니다."

"반성할게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데 배우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런 우등생을 가르칠 때면 나도 신나서 더 많은 것들을 전수해 주고 싶다.

"곧 5분이 다 되어 가네요. 이번에는 약속된 바에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차진혁과 신유리는 역할을 나누어 팔적목 개미들과 싸웠다.

차진혁은 그 앞으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부군단장을 죽였고, 나머지 일개미들은 신유리의 포격에 녹아내렸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신유리는 무려 3레벨이 올랐다.

'쿨타임이 무려 30초나 줄었어!'

그녀는 희망을 봤다.

레벨을 더 높이면 쿨타임이 점점 줄어들 테니까.

때때로 차진혁이 신성목 위로 올라와 신유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는데, 신유리는 그때마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느꼈다.

차진혁은 차진혁 나름대로 즐거웠다.

1인을 상대로 한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 시청자의 리액션이 너무 훌륭했고 기특했으니까.

"부군단장이 나왔으면 그 다음은 뭐가 나오겠습니까?"

"군단장이 있나요?"

"그렇죠. 근데 저 꿀에 파묻혀서 게걸스럽게 꿀을 핥고 있는 일개미들을 한 번 보세요. 뭐가 느껴지죠?"

"음……."

신유리는 꼭 정답을 말하고 싶었다.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일사불란하게 집단행동을 할 만큼의 지성체는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아!"

신유리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렇다면 저 일개미들을 지휘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테고, 그게 군단장이라는 말이죠?"

"예.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그러면 군단장은 일개미보다는 훨씬 더 지성을 갖춘 마물이겠네요?"

뿌듯해진 차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기다려주었다.

신유리는 희열을 최대한 감추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부군단장은 꿀에 유혹되지 않고 오히려 스승님을 기습하려고 했어요. 일개미보다 훨씬 똑똑했죠."

어느새 신유리는 차진혁을 스승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차진혁도 자연스레 그 호칭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군단장은 더욱더 똑똑한 개체겠네요."

그녀는 차진혁이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은지 정확히 간파했다.

"그렇다면 군단장이 나타난 시점에서 저는 공격을 멈출게요. 그 정도로 똑똑한 개체라면 분명 저를 공격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대신, 스승님이 군단장을 성공적으로 사냥한다면 조직적으로 움직이던 일개미 군단이 와해 될 테니 상황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차진혁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너무나 흡족한 대답이었다.

"그렇습니다. 어그로가 튀지 않도록 잘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도 망부석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일 겁니다. 공격만 강하다고 끝이 아니니까요."

"명심할게요."

그리고 상황은 차진혁과 신유리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차진혁은 자신의 발밑에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숨어 있는 깊이에 따라 중계자의 시야에 잡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놈이 가까워지자 똑똑히 보였다.

[LV65/팔적목 개미 군단장/스킬]

'대략 지하 1미터 정도 위치.'

이 정도 규모면 못해도 다섯 이상의 군단장이 있으리라 판단했다.

'온다.'

차진혁은 슬쩍 몸을 뒤로 뺐다.

'더 빼는 게 안전하겠지만.'

일부러 아주 조금만 뒤로 움직였다.

'중계결계.'

이제는 중계결계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익숙해졌다.

이 능력에 익숙해지는 동안에는 최대한 사용을 지양하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얘기가 좀 달라졌다.

정확한 순간에, 딱 필요한 만큼의 중계결계 운용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땅 밑으로부터 솟구치는 날카로운 기운.

그것을 중계결계가 막아냈다.

'감이 온다.'

어느 정도 능력을 갖고 있는지.

모습을 드러낸 군단장의 모습이 점점 커졌다.

땅 밑에서의 크기는 부군단장과 비슷했는데, 지상으로 올라오자 차진혁과 키가 거의 비슷해졌다.

인간처럼 두 발로 선 개체였는데 등딱지에는 한 쌍의 비늘날개가 달려 있었다.

'여덟 개의 눈을 사용해서 약간의 최면을 걸 수 있고.'

적을 몽롱하게 만들거나 느려지게 만드는 정신계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제왕의 격을 지닌 차진혁에게는 티끌만큼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날아다니는 게 성가시기는 한데…….'

운 좋게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런 비늘 형태의 날개를 가진 놈들은 비가 오면 제대로 날지 못한다.

"그러면 검처럼 생긴 두 개의 앞발로 저를 공격할 텐데요."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요즘에는 수많은 것들에 재미를 느끼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검과 검의 대결을 가장 좋아했다.

"근본 재미를 추구해 보겠습니다."

대검 라칸을 휘둘렀다.

이게 진짜 방송이라면 어떤 대사를 읊어야 좋을지 생각해 본 뒤 말했다.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신유리는 차진혁이 말한 대로 군단장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공격하지 않다가, 군단장이 죽는 시점에 맞추어 일개미들을 공략했다.

대략 6시간이 지났을 때, 차진혁은 7마리의 군단장을 사냥할 수 있었다.

'됐다.'

일개미들이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본래 레벨이 45 내외였으나 (-30)판정을 받아 15 내외의 잡몹으로 변했다.

붉게 빛나던 여덟 개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 버렸다.

군단장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운이 좋네요. 마침 비도 오는 덕분에 쉽게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제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어요. 검의 움직임이 너무 빨랐어요."

신유리는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그 모습에 차진혁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이런 리액션은 늘 차진혁을 기쁘게 했다.

"이 정도는 다들 하는 겁니다."

"플레이의 세계란 정말 놀랍네요."

"아무튼 군단장들이 모두 사망했으니 이제 뿌리 쪽 통로로 이동해 보죠. 놈들이 땅을 뚫고 나온 곳들 중 뿌리로 이동하는 게이트 같은 것이 있을 겁니다."

마지막 군단장을 죽였던 그 위치, 지하 약 3미터 지점에 게이트가 형성되어 있었다.

──────────

[신성목의 뿌리]

──────────

"들어가죠."

"네."

3미터 아래.

차진혁은 게이트를 향해 몸을 던졌고, 오늘이 첫 플레이인 신유리도 그곳을 향해 거리낌 없이 몸을 내던졌다.

[필드, '신성목의 뿌리'에 입장합니다.]

이곳은 마치 동굴 같은 곳이었다.

길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뿌리 곳곳에 빛이 나는 야광석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신성목의 뿌리에서 새어 나오는 즙이 굳어 발광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그때 묘한 알림이 들려왔다.

[시나리오, '무너진 경외'의 파편에 진입합니다.]

시나리오라고?

여기서?

'이름이 무너진 경외?'

내 머릿속에 몇 가지 단서들이 떠올랐다.

'시나리오라는 것 자체가 흔한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이름이면…… 경외받는 자와 연관이 있어야만 할 거 같은 이름인데.'

서울시 제4 시나리오 '경외받는 자'는 지구를 침략하는 공격자들을 위한 시나리오다.

그 반대급부의, 수비자를 위한 시나리오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이름까지는 몰랐다.

'그게 무너진 경외일 가능성이 높다.'

생각해 보니 퍼즐이 짜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 신유리가 수비자로서 [무너진 경외] 시나리오를 진행했던 것 같네.'

희대의 빌런이었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딱히 침략자와 싸우지 않았다.

그래서 '경외받는 자'라든가 '무너진 경외'라는 시나리오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신유리는 여기서 수비자의 능력을 얻었던 거야.'

바로 방어신비 '아이언 돔'.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얘기였다.

이제야 과거의 전말을 알 것 같았다.

'신유리가 흑화한 덕분에 우리가 피똥 싸면서 타 서버 놈들이랑 싸웠던 거구나.'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어쩐지 오픈베타 지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힘들더라.

내 성장 속도가 그렇게 늦나 하고 잠깐 자괴감에 빠졌었는데 그럴 필요 없었던 거였다.

수비자로서 든든하게 우리 편에 서줬어야 했을, 방어군의 중추였던 신유리가 오히려 빌런 짓을 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힘들 법도 했지.

그래.

난 그때 절대 약했던 게 아니다.

내 유추가 맞다고 확정이라도 지어주듯 선택 알림이 이어졌다.

──────────

1. 시나리오, '무너진 경외'의 파편에 진입하기를 원한다.

2. 시나리오, '무너진 경외'의 파편에 진입하기를 거부한다.

──────────

밑줄을 선택하자 여러 설명이 이어졌다.

말하자면 흔한 내용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아주 커다란 책임과 위험을 동반하는 시나리오이며, 선택받지 않았거나 자격 없는 이들은 신성목의 심판을 받게 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배경설명이었다.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이동 루트가 달라진다는 얘기도 있었다.

내가 신유리에게 물었다.

"신유리 씨도 보이죠?"

"네, 보여요."

"저랑 같은 걸 봤겠죠?"

"네."

"뭘 선택하고 싶어요?"

"1번이요."

"어째서죠?"

"더 위험하고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고 해서요."

"그게 더 좋아요? 보통 안 좋은 거 아니에요?"

"그, 그러게요? 이상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 제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고."

신유리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이건 당황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고로 플레이란 이렇게 하는 거다.

보고 배워야 할 사람이 많다.

목재현이라든가 목재현이라든가 목재현이라든가.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렇다니 다행이에요."

신유리는 내 말에 상당히 안심한 모양새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서 요구하는 특별한 자격과 조건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가 내가 생각하는 시나리오와 연관이 되어 있는 거라면……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조건을 만족한 거 같기도 하고요."

사실 이런 건 길잡이의 영역이라서 나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대충 감이 온다.

한 번 부딪쳐보면 정확히 알 거 같다.

나는 곧장 1번을 선택했다.

아마도 신성목의 목소리라 짐작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지를 좇아 당도한 자여 어쩌고저쩌고.

자격이 어쩌고저쩌고.

혹시 몰라 귀담아듣기는 했는데 딱히 유용한 내용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지막이었다.

"이럴 수가. 어째서 그대에게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지는 것이냐?"

목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웅웅 울릴 지경이었다.

"그대의 존재를 내게 증명해다오. 저 추악한 개미들에게 유린당하며 참아온 나의 기다림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다오."

통로 전체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 '신성목 바쿠르드나이마가 지켜온 7,000년의 염원'이 생성되었습니다.]

응?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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