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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100화 (100/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100화

마리아는 내게 일종의 퀘스트를 제안했다.

'네미시스 함포'로 각성하게 된 신유리를 잘 설득하여 국정원팀에 소속시켜달라는 얘기였다.

신유리의 잠재력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 퀘스트에 성공하면 내게 '마리아의 권한 내에서, 원하는 종류의 정보 한 가지'를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개이득이네?'

마리아의 제안이 아니었더라도 원래부터 그러려고 했다.

물론 신유리 본인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저 힘에 미쳐서 희대의 빌런이 되느니, 국정원 산하에서 잘 관리받으면서 크는 게 신유리에게도 좋을 거 같다.

* * *

* * *

* * *

"거절합니다."

예전의 나였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오케이했을 거다.

그때의 나는 그저 강해지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나는 제법 군주로 플레이하는 맛도 알게 되었고 엘튜브각도 잡을 줄 안다.

이제 피자 맛도 알고 치킨 맛도 아는데 비빔밥만 먹는 건 좀 아쉽지 않은가.

"어째서요?"

"정확히 말하자면 반만 거절이요."

마리아는 침착하게 차를 마시면서 내 말을 기다렸다.

내가 말을 이었다.

"플레이어는 초반 성장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미래가 완전히 달라지죠."

"그렇죠."

"초반에는 제가 옆에서 중심을 잡아주려고 합니다."

"김철수 씨, 본인이요?"

"네."

"왜죠?"

"반대로 묻죠. 남편을 잃고 바스러지기 직전인 신유리 씨의 마음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저 말고 누가 있죠?"

"……."

마냥 신유리를 위해서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일그룹은 신유리에게 사과했고, 그 여파로 인해 수많은 책임자들이 문책을 받았다.

최익환 회장은 회장직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신유리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해야 할 걸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본의 아니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니요. 김철수 플레이어의 말이 맞습니다."

"초반에는 제가 케어하면서 육성 방향을 잡아줄 겁니다. 본인이 원한다면요. 다만, 어느 정도 시점이 지나면 제가 직접 설득하여 그쪽에 소속되도록 힘을 써보죠."

마리아는 다시 한번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대가로 김철수 씨는 무엇을 요구할 생각이죠?"

"정보."

"정보요?"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정보. 신유리 씨를 올바른 방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보를 원합니다. 신유리 씨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 있을 테니까. 우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만큼, 보다 자세하고 쓸모있는 정보를 제공받으면 좋겠는데요."

마리아와 나는 한동안 얘기를 나누었고, 결과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내가 봐왔던 김철수 씨는 이렇게까지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그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역시 이걸 물어볼 줄 알았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대로 차분히 대답했다.

"도와주고 싶으니까."

그 말에 마리아는 약간 황당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비밀상자(왕유미)의 방송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김철수는 현재 일상에 가까운 콘텐츠를 진행하는 상태.

이런 경우에는 비밀상자의 채널에 더 많은 시청자들이 쏠렸다.

비밀상자가 잠시 화면을 멈춘 뒤, 영상을 살짝 뒤로 옮겼다.

"다시 보겠습니다."

화면 속, 김철수가 말하고 있었다.

-도와주고 싶으니까.

시청자들의 채팅이 폭주했다.

-벼락오바마: 지렸다.

-이모순대주세요: 미친 개멋있는거 보소.

-반자동프린터: 나 왜 광광울고 있어?

와아.

우와.

등의 감탄사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빛철수바라기: 오빠, 날 가져 엉엉.

-쭈니파파: 진짜 강한 사람은 저렇게 행동하는군요. 저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시프네요 ^.~ 감덩 ㅋ

그들이 보기에 김철수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도와주고 싶다'라는 진심이 전해졌고, 그것은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비밀상자는 해당 장면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그녀는 약간 과장된 모양새로 두 손을 맞잡은 뒤 뺨에 그 손을 대고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잖아? 나는 지금 그 탄생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너네들 생각은 어때요?"

[퀘스트, '마리아의 제안'이 수락되었습니다.]

나는 마리아의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마침 신유리에게서 연락이 와서 나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

우리는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신유리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신경 써주신 덕분에 시신도 되찾을 수 있었고 장례도 잘 치렀어요. 경황이 너무 없어 제대로 감사를 표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아뇨. 뭐, 저도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어쩐지 믿는 눈치가 아니다.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주시는지 모르겠어요."

나야말로.

갑자기 또 왜 훌쩍거리는지 모르겠다.

정신적으로 온전한 상태가 아니니까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것도 이해하기로 했다.

신유리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내게 슬쩍 밀었다.

"저…… 이거 봤어요."

"네?"

보니까 엘튜브의 비밀상자 채널이었다.

비밀상자 채널의 주인, 킹갓제네럴유미가 편집한 영상이었다.

'응?'

사람들의 이목이 엄청나게 쏠리고 있다.

나를 지나치게 치켜세워주면서 내가 한 일에 제멋대로 서사와 감동 포인트를 붙여대고 있었다.

와, 이걸?

이렇게 살린다고?

좀 억지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을 뻔했다.

관심받는 게 생각보다 꽤 즐거운 일이다.

'나도 채팅 켤까?'

아니, 아니지.

괜히 그랬다가는 방송 퀄리티 낮아진다.

그냥 나는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시청자 반응은 비밀상자 채널을 통해서 봐야겠다.

"대략적인 내용은 방송을 통해 알고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저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그…… 호칭을……."

"스트리밍 중일 때에는 김철수, 아닐 때는 차진혁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진혁 씨가 저한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저 혼자만 간직하고 있기에는 너무 커서요."

요약하자면 신유리도 나처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자기 남편 같은 사람이 아주 많을 테니, 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다.

아니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사람이 빌런이 됐어?

"어떻게 하면 진혁 씨처럼 강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안 강해요."

겨우 이것 가지고 강하다고 하면 오히려 자존심이 상한다.

너무 약해서 150레벨에 능력 숨기고 은퇴해야 되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나보고 강하다니?

동의는 못 하겠지만 일단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도 돕죠."

나는 신유리에게 '네메시스 함포'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쪽 능력은 반쪽짜리입니다."

"……."

"당분간 그쪽이 구사할 수 있는 스킬은 하나. 거대한 대포를 구현해서 발사하는 것밖에 없을 거예요."

다만 그 파괴력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마력을 충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한 번 발사하고 나면 쿨타임도 길고, 본신의 능력은 매우 약할 겁니다. 그래서 소규모 전투에서는 그다지 효용이 없는 직업이죠."

"그렇다면 저는 강해질 수 없는 건가요?"

"소규모 전투에서는 그렇다고요."

그러나 대규모 전투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 어떤 광역계 마법사의 광역 마법도, 신유리의 화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적어도 지구에서는 그랬다.

"주변에 좋은 팀이 갖춰지고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환경만 갖춰진다면, 그 누구보다 막강한 화력을 뿜어내겠죠. 그리고 마리아의 팀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

"그렇지만 본인에게도 몇몇 능력들이 있으면 좋겠죠."

내가 가지고 있는 중계결계처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다.

그리고 나는 신유리에게 어떤 능력이 가장 어울리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아이언 돔.'

방어계열의 신비.

전 세계, 아니 전 우주적으로 한 번밖에 발견되지 않았던 유일한 신비.

전생의 신유리가 지니고 있던 특별한 능력이었다.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형 신비를 얻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요. 더 나아가 위치까지 이동할 수 있는 이동형 신비가 있으면 금상첨화겠죠."

방어형 신비.

이동형 신비.

모두 과거의 신유리가 지니고 있던 것들이었다.

"다행히 저는 그에 관한 정보들을 제공받았습니다. 아참, 이런 걸 전부 제공받았다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저도 방송 안 하고 있는 거고요."

사실 의외이기는 했다.

아무리 마리아가 시스템을 등에 업은 관리자라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세세하고 자세한 정보를 전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마리아는 '이게 다 김철수 씨 당신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지만 딱히 와닿는 설명은 아니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마음 정리되는 대로 시작하죠."

"바로 내일부터도 할 수 있어요."

"바로요?"

"네. 몰두하고 싶어요. 안 그러면 미쳐 버릴 것 같아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몰두하고 싶어야지.

플레이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야지.

상위 랭커가 되기에 좋은 마음가짐이다.

'빨리 강해지면 좋겠다.'

성장한 신유리가 포함된 국정원팀과의 교류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렸다.

때마침 딱 맞추어 업데이트 알림이 있었다.

시스템 전체 알림이었다.

[솔로잉 모드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듀얼 플레이 모드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솔로잉 모드 혹은 듀얼 플레이 모드로 설정한 뒤 던전에 들어가면, 그에 맞도록 던전의 난이도나 내용이 일부 조정된다.

'말 그대로 일부 조정이기는 하지만.'

'혼자 하겠다고? 알겠어, 그럼 난이도 엄청 낮춰줄게! 들어와!'와 같은 친절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일부 조정이다.

당연하게도, 솔로잉이나 듀얼 플레이는 효율은 무척 떨어진다.

아무리 난이도나 내용이 변경된다고는 해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꾸려 플레이하는 것과 한둘이서 플레이하는 것에는 엄청난 효율의 격차가 있으니까.

전생의 차진혁은 솔로잉이나 듀얼 플레이를 극도로 지양했다.

'그때의 나는 효율에 돌아 있는 미친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효율만 보면서 플레이하는 미친놈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낭만과 풍류를 아는 스트리머로 성장하고야 말았으니까.'

전생의 차진혁도 솔직히 마음으로는 솔로잉을 해보고 싶었다.

듀얼 플레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보통 듀얼 플레이라 함은 전투계열 플레이어 1명에 힐러 1명이 붙는 게 보편이었다.

'힐러 없는 듀얼 플레이. 치료와 빠꾸따윈 없는 직진 일변도. 이게 남자의 로망이지.'

이거야말로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약간 병신같지만 멋진 플레이 아니겠는가.

차진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유리와 함께 북한산을 올랐다.

"신기하게 별로 안 힘드네요."

"레벨 45까지 올라서 그래요."

차진혁과 신유리는 북한산을 헤매고 다녔다.

마리아가 전해준 지도 덕분에 겨우 14시간 만에 던전의 입구를 찾을 수 있었다.

"저기 커다란 바위 위에 일렁거리는 공간 보이죠?"

"네, 보여요."

"저기가 던전의 입구에요. 저기로 들어가면 새로운 필드가 펼쳐질 겁니다."

"잠시 쉬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14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고작 이 정도 산을 탔을 뿐인데 왜 벌써 힘들어하지?

아무리 물레벨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45레벨인데?

14시간 만에 지친다는 게 말이 되나?

차진혁은 차진혁의 기준을 아직 다 못 버렸다.

보통의 45레벨 플레이어들의 경우, 이 정도 움직이면 지친다.

"신체와 정신 사이에 괴리가 있는 모양이네요."

"네?"

"원래 45레벨쯤 되면, 이 정도로는 안 힘들거든요. 근데 정신이 아직 육체의 변화를 못 따라온 거 같아요. 어쨌든 좀 쉬었다 가죠."

"……그런 거예요?"

신유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정신이 참 나약하구나.'

남편을 잃은 상실감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그렇지만 조금만 지나면 나도 할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자위하며, 차진혁의 그릇된(?) 기준을 배워갔다.

"이제 슬슬 입장해 보죠. 듀얼 플레이모드를 설정할 수 있어요."

"했어요."

듀얼 플레이모드를 설정한 뒤, '던전, 숲속의 유적지'에 입장했다.

신유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네요?"

이곳은 숲속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익히 보던 숲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나무가 훨씬 거대했고,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저기 복잡한 형상의 넝쿨이 나무를 감싸고 자라고 있었는데 넝쿨을 타고 얼굴이 빨간 원숭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원시림에 들어온 것만 같아요."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별세계에 도착한 듯한 감상에 빠진 신유리와 달리 차진혁은 별 감흥 없었다.

"이쪽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숲속 난쟁이들의 마을이 있을 겁니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요."

둘은 걸음을 옮겼다.

차진혁은 신유리와 다른 의미로 설레고 있었다.

'던전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네.'

사실 여태까지의 던전들은 차진혁 입장에서는 규모가 너무 작았다.

던전이라 함은 원래 이렇게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거대하고 광활해야 했다.

차진혁의 기준에서는 그랬다.

'점점 진짜 던전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거겠지.'

그가 생각하는 '진짜 던전'에는 각종 NPC도 있고, 던전 내 퀘스트도 있고, 이중, 삼중 던전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이 왕창 튀어나오는 흉악한 곳이어야 했다.

'NPC들의 마을이 있는 던전이라.'

이제야 조금씩 던전 같아지네.

마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저기 보세요. 저렇게 커다란 버섯들은 처음 봐요."

형형색색의 버섯들이 자라나 있었다.

그 버섯들은 아름드리나무만큼이나 거대했는데, 버섯의 몸통 중간중간에는 창문이 나 있었다.

[필드, '숲속 난쟁이들의 마을'에 진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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