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9화
'신유리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지금이라도 제거해야 하나?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유리를 한국 최악의 빌런이라 생각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얘는 전남길 같은 놈들과는 다르지.'
연쇄살인마 전남길 같은 놈들은 쓰레기들이었다.
그들은 플레이어와 비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그저 제 욕망에 이끌려서 앞뒤 안 가리고 날뛰던 놈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신유리는 그렇지 않았다.
반신연합의 신유리는 늘 플레이어와 전쟁을 치렀으며 전쟁 전에는 선전포고도 했다.
* * *
* * *
당시 날고긴다는 연합들이 반신연합에 박살 났었다.
가면을 쓴 현자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솔직히 우리도 전멸할 뻔했었고.
'얘는 빌런이라고 하기에 좀 애매한데.'
정말 많은 사람을 죽인 건 맞다.
근데 그건 전부 플레이의 영역이었고 플레이어로서 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내 생각에 신유리는 조금 억울할 거 같기도 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재앙' 혹은 '혈겁'은 얘 화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인터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신유리에게 다가갔다.
얼마나 울었는지 신유리의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기자세요?"
"기자는 아니고 스트리머입니다."
기자가 아니라는 말에 신유리는 약간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스트리머로서 자존심이 좀 상하는 순간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자 #공론화 시켜야해 #시신이라도 찾아줘]
상한 자존심을 회복해야했다.
신문명 시대에서는 어지간한 기자들보다 스트리머가 더 낫다는 걸 증명해 줘야 한다.
(물론, 내가 기자 직업을 가졌다면 어지간한 스트리머보다 기자가 더 낫다는 걸 증명했을 거다.)
[스킬, '단독 심층 인터뷰'를 사용합니다.]
신유리는 레벨 1의 플레이어였다.
그저 플레이어로서 각성만 했을 뿐 사실상 비플레이어였다.
나랑 레벨 격차가 아주 많이 난 덕분에 얘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마치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한세린의 과거가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재생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물었다.
"남편을 잃었죠?"
신유리.
미래 기준으로는 최악의 빌런.
지금 기준으로는 결혼 후 석 달 만에 남편을 잃은 아내.
"판교 부근에 생긴 탄광 필드에 억지로 집어넣어서 말이에요."
아, 이건 선 넘었지.
플레이어가 아닌 사람을 필드에 밀어 넣어 파밍을 하는 건 상당히 후진국형 범죄였다.
비플레이어는 플레이어에 비해 인건비가 훨씬 싸다.
그래서 몇몇 양심 없는 기업들은 비플레이어를 동원하여 몇몇 아이템들을 획득하곤 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 신유리도 내 마음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정리하자면 고인이 되신 김민종 씨는 신일그룹 산하의 하청업체의 직원이었습니다. 판교의 탄광필드에서 하급마석을 캐내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가 갑자기 나타난 마물에 의해 사망하였습니다. 신일그룹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요. 남편분이 정상적으로 퇴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요?"
"……맞아요."
그냥 콱 다시 올라가서 최익환을 족칠까.
비플레이어를 동원해?
'예전의 나였으면 그랬겠지만.'
나는 이제 성장했다.
곧바로 한세린과 두더지맨에게 연락했다.
둘 다 바쁘다고 했는데,
"그럼 두더지맨 부른다?"
"그럼 패스파인더 부른다?"
라는 말에 둘 다 한걸음에 달려왔다.
"왜 두더지맨이 여기 있어?"
"왜 패스파인더가 여기 있지, 두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백지장도 둘이 맞들면 낫다잖아."
"나는 두더지맨이랑 일 못 해!"
"나는 패스파인더랑 일 안 해, 두지!"
둘 사이에 꽤 많은 앙금이 쌓여 있는 듯했다.
허공에서 둘의 눈빛이 부딪쳤는데 불꽃이 이는 것만 같았다.
"너네 바보들이냐?"
"뭐가?"
"무슨 뜻이지, 두지?"
"나는 둘한테 똑같은 의뢰를 할 거야. 같은 필드. 같은 시간. 같은 정보를 가진 상태지."
둘의 눈빛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역시 최상위 랭커들이라서 내 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서로를 넘어설 수 있는 최고의 기회 아니냐?"
"그건 그렇네?"
"그건 그렇군, 두지."
나는 둘에게 경쟁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다.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상태를 읽어내 미래를 안전하고 빠르게 개척하는 것. 그것이 길잡이의 영역이죠. 패스파인더와 두더지맨이라면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판교에 도착했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사유지입니다."
진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댔다.
필드가 사유지라니?
힘으로 점령한 거면 모를까, 사유지?
사유지라고 했냐?
다행히 얘네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뭐요?"
"열 셀 동안 안 꺼지면 죽입니다. 열. 둘. 하나."
대검 라칸을 휘둘렀다.
후웅-!
대검이 남자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애들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플레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보면 참을 수가 없네요."
우리는 판교의 탄광 필드에 진입했다.
둘은 광적으로 경쟁하며 단서와 증거들을 수집했다.
"비플레이어의 발자국을 읽어냈다, 두지!"
"비플레이어의 체모야."
나도 원리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저 둘은 비플레이어들이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채집했다.
"응? 여기……."
두더지맨이 갈퀴 달린 손으로 땅을 파냈다.
표정이 어두워졌다.
두더지맨이 해골을 발견했다.
사람의 뼈가 틀림없었다.
"이러면 기뻐하기 애매한데, 두지."
한세린도 약간 어두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물었다.
"이 유골, 비플레이어의 유골이지?"
"그렇다, 두지. 특수한 흔적이 있다, 두지. 화학적 처리와 비슷한 작용을 하는 플레이어의 이능이 감지된다, 두지."
"신원확인은? 가능해?"
두더지맨은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자 한세린이 끼어들었다.
"신원 확인은 어렵지만 생전의 얼굴을 복원해 낼 수 있어. 플레이어의 이능으로 부패한 거니까 내 능력으로 복원할 수 있을 거야."
유골을 찾아낸 건 두더지맨.
유골의 얼굴을 복원한 건 패스파인더.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둘은 더 이상의 경쟁을 포기한 것 같았다.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자."
"흥, 이번에는 봐줬다, 두지."
우리는 탄광 밖으로 나가 신유리에게 복원된 얼굴 사진을 보여주었다.
신유리는 크흑,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에휴. 얼마나 속상할까."
한세린이 신유리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두더지맨은 '이런 상황은 너무 불편하군.'이라 말하며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 후에 신유리가 내게 말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시신을 찾아주실 수 있을까요? 반드시 사례는 하겠습니다."
그때, 어딘가로 사라졌던 두더지맨이 다시 나타났다.
그의 어깨에는 커다란 관이 메여져 있었다.
"여기 있어요."
그놈의 두지는 뺐다.
관을 내려놓고 두더지맨은 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관 뚜껑을 열어본 신유리는 또 한참이나 펑펑 울었다.
한세린이 그런 신유리를 다독이며 물었다.
"시신이라도 복원해드릴까요?"
결국 한세린은 시신을 복원해 주었다.
결혼 세 달 만에 남편을 잃은 아내는 남편의 시신을 붙잡고 꺼이꺼이 울다가 혼절했다.
'응?'
탄광의 입구로부터 강력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수천 가닥의 마력이 정신을 잃은 신유리의 몸을 누에고치처럼 감쌌다.
그와 동시에 각성룸의 각성 NPC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별한 조건들을 만족하였습니다."
천사 형태의 NPC였는데 마력실에 누에고치처럼 감싸져 얼굴만 빼꼼 나온 신유리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당신은 특별한 직업, '네메시스 함포'로 거듭나게 됩니다. 부디 당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를."
네메시스.
내가 알기로 복수의 여신이다.
나는 누에고치처럼 변한 신유리를 잠자코 바라보았다.
'신유리가 이런 식으로 각성했구나.'
보통의 플레이어들은 레벨 15에 각성룸에 진입하여 정식으로 각성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이런 식으로 각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조건들을 여럿 만족해야 하는데, 그 조건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각성한 사람들을 '이레귤러'라고 표현한다.
내 눈에 신유리의 레벨이 상승하는 게 보였다.
[LV9]
[LV10]
.
.
.
[LV44]
[LV45]
순식간에 레벨이 45까지 치솟았다.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이레귤러는 시작 레벨이 일반 플레이어들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다.
몽마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레벨 70인 것과 비슷하다면 비슷하겠지.
나는 마력실에 둘러싸인 신유리를 보면서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얘는 또 반신연합을 만들어서 희대의 빌런이 되려나?'
내 생각이 어찌 됐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얘를 빌런으로 봤다.
'근데 그냥 내가 키우는 게 안 낫나? 아직 빌런도 아니고.'
얘를 키우고 싶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솔직히 우리팀은 얘가 이끄는 반신연합에 패배했었다.
'제대로 잘 크면, 다시 붙어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의 압도적인 화력과 경쟁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처음 길만 잘 닦아주면 잘 크지 않겠어?'
좋은 생각이 하나 났다.
'내가 조금 키운 다음에 마리아한테 맡기자.'
신유리가 합류된 국정원 팀이라니.
지금 국정원 팀은 너무 연약하지만, 신유리가 합류한 국정원팀은 아마 한국에서도 최강으로 손꼽히게 될 거다.
'그럼 그 국정원팀과 싸우는 것도 재미있겠다.'
신유리가 인간적으로 불쌍한 건 맞지만, 저 남편의 죽음에 큰 감흥은 없었다.
이런 죽음 하나하나를 애도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죽음을 경험했다.
그냥 나는 내가 할 일을 조금 하기로 했다.
"신유리 씨. 신일그룹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했죠?"
한마갤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그 이슈의 중심에는 또 김철수가 있었다.
비밀상자 채널의 짤들이 순식간에 양산되어 퍼져나갔다.
["이 순간, 김철수는 오히려 지나치게 애도하지 않는 담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신유리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신유리 씨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행동에 옮겼죠. 그야말로 품격있는 위로이자 강자가 보여줄 수 있는 아량이었어요."]
┗ 존멋
┗ 222
┗ 333
┗ 저 장면만 삼백 번은 본 거 같다. 근데 볼 때마다 새롭다. 짜릿하다. 그저 빛, 빛철수, 빛철수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난 그저 빛철수란 국가의 국민인가 보다.
["결국 신일그룹의 최익환 회장님이 직접 나서서 무릎 꿇고 사과했고, 신유리 씨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질 것이라 약속했어요."]
┗ 정의는 살아 있다.
┗ 와, 이렇게 역사를 경험하는구나.
┗ 보라, 빛철수가 정의의 철퇴로 세상을 뒤집어놓으셨다. 정의의 나팔을 불지어다.
최익환의 결단은 굉장히 빨랐다.
최익환은 실시간으로 차진혁의 방송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진혁에게서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자기를 죽이려는 건 괜찮고. 돈도 필요 없는데. 비플레이어가 플레이에 이용당한 건 불같이 화를 내는군.'
그는 차진혁을 직접 봤다.
그렇기에 그는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은퇴 시기를 언제 잡아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차라리 잘 됐어.'
그는 기자회견을 소집하고 신유리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관련자들의 처벌과 신유리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으며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얘기했다.
┗ 근데 이거 아직 불법 아니라며? 그럼 사과할 일은 아니지 않냐?
┗ 유럽은 이미 불법으로 지정했다던데 역시 국개의원들 일 존나 안함.
아직 불법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정의가 구현됐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죠셉과 왕유미는 이번에 새로 마련한 사무실 책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죠셉과 왕유미는 같은 표정으로 함께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별이…… 떠오르고 있다."
"달이…… 떠오르고 있어요."
둘은 똑같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왕유미가 중얼거렸다.
"서사가 이렇게 미쳐버렸다고요. 덕질하고 싶은 요소가 너무 많아서 뭘 덕질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중에서 내 최애 포인트는 여기에요 여기. 찢어지는 가슴을 숨긴 채 담담한 모습. 남편을 잃은 부인을 그만의 방식으로 애도하는 그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비틀려 있어요. 그의 숭고한 묵념의 모습이, 위험한 냄새를 잔뜩 머금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고 있다고요."
죠셉의 귀에 왕유미의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죠셉은 각종 커뮤니티의 뜨거운 반응들을 살펴보며 흐흐흐 웃었다.
돈과 명예가 따라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차진혁이 스타로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 일을 차근차근 해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한편, 차진혁은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을 하나 받게 됐다.
"이번 제안은 어때요,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에게 제안을 건넨 사람은 다름 아닌 마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