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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98화 (9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8화

마리아.

그녀는 대외적으로는 한국 국정원, 신문명관리처의 차장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시스템을 지명을 받아 직접 플레이어 육성을 맡고 있는 일종의 관리자였다.

마리아가 말했다.

"곧 자유대련 시스템, 즉 PVP존이 도입될 겁니다. 부활 설정이 걸려 있고, 개인 혹은 팀 단위로 전투를 치르는 시스템이죠."

'내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울 거야.'

그녀는 청불팀(청담동 불주먹팀)과 국정원 플레이어들의 정기적인 교류와 대련을 원하고 있었다.

'반드시 청불팀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해. 우리 팀의 발전을 위해서.'

특히 차진혁과 반드시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리아는 플레이어 관리 차원에서 차진혁에게 매우 큰 관심을 쏟아붓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가 재능에 힘입은 '반짝 유망주'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기는 하지만 마리아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지나치게 다재다능한 사람은 한 분야의 1인자가 되지 못한다는 속설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차진혁, 아니, 김철수는 현 한국 내에서 가장 또렷하고 위대한 행보를 보이는 플레이어니까.'

그리고 그 플레이어는 이상하리만치 건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연희동에 집과 건물을 사는 것이 그 일생일대의 목표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각종 행정 제약이 걸리면서 아주 불편해졌지.'

결국 차진혁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면 차진혁도 굉장히 좋아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미안하지만 거부합니다.

"그럴 줄 알…… 네? 뭐라고요?"

-제가 그쪽 팀과 교류해야 할 이유가 없네요.

차진혁은 조금 불안했다.

마리아는 예전부터 차진혁 자신의 편의를 많이 봐줬던 사람이었다.

괜히 이번에도 편의를 봐주겠답시고 행정제약을 풀어줘버리면 곤란해진다.

그는 자신이 '은퇴하지 말아야 할 이유' 혹은 '보다 플레이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라 할 수 있는 핑계가 단 하나라도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조금 강하게 말했다.

"그쪽이 너무 약해서요."

그리고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기준을 많이 낮춰서 생각하고는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준의 플레이어들은 차진혁의 기준에 한참 미달이었다.

'나도 이때는 그랬겠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속담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올리는 중이었다.

결국 차진혁은 마리아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전화를 끊은 마리아는 책상에 앉아 눈을 감았다.

'김철수에게는 무척 달콤한 제안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다.

'이렇게 달콤한 제안마저 거절할 정도로, 우리 아이들이 형편없는 것인가?'

그것은 마리아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책상 아래로 늘어뜨린 주먹을 꽉 쥐었다.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그녀의 행보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 시스템이 인정한 관리자이니만큼, 타 플레이어들과의 밸런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추가 지원 및 플레이어 육성을 위한 도움을 요청하는 정식 서류였다.

* * *

최근 들어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즐겁게 플레이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전생에서 나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만능은 없다.

모든 걸 다 적당히 잘할 수는 있지만 최고로 잘할 수는 없다.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들이 분명 이례적이고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그래도 150까지는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이제 겨우 90레벨가량 남았다.

그 이후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벌써부터 그 너머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렸다.

'그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으로 즐기려면 극도의 효율을 추구할 수밖에.'

역시 그러려면 솔로잉이 제일 좋고, 듀얼 플레이도 그에 근접할 정도로 재미있다.

'곧 PVP존도 추가된다고 하니, 조만간 솔로잉 전용, 듀얼 플레이 전용 던전들도 생기겠지.'

PVP존.

솔로잉 모드.

듀얼 플레이 모드.

전생보다 다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이 세 가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오픈된다.

나는 팀에 묶여 있어서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역시 사나이의 로망은 솔로잉이다.

"너희들 한 명, 한 명은 어느 팀을 가더라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어. 혹은 너희가 팀을 꾸려도 되고."

내가 키운(?) 애들을 이제 독립시키기로 했다.

아, 이것까지는 정말 감추고 싶었는데 진짜 솔직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아주 혹시, 아주 만약에라도, 내가 150 이상 레벨에서도 열심히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슬슬 내게도 세력이 필요해질 거야.'

세력을 갖추고 정점에 군림하는 자들은 비교적 안전하다.

개인이 강한 것과 집단으로 뭉쳐 강한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으니까.

그래서 어차피 누군가에게 노려질 만큼 성장한다고 가정하면 세력을 이루고 있는 편이 훨씬 더 유리했다.

아, 물론 150레벨 이상에서도 이렇게 플레이를 즐기겠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솔직히 양심 없지.

차진솔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우리가 많이 부족해서 그래?"

"아니 그런 거 아냐."

차진솔이 울먹거렸다.

"진짜 열심히 노력할게. 오빠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 그니까 같이 하자. 나 오빠 없는 플레이는 진짜 생각도 하기 싫어. 오빠랑 같이 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단 말이야."

서지아도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은근슬쩍 내 옷깃을 잡았다.

서지아도 차진솔과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그건 김정현도 그랬다.

"저도…… 같은 생각…… 입니다."

다만 목재현은 약간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목재현, 너는?"

"아쉽기는 하지만 형이 왜 이런 선택을 내렸는지는 알 것 같아요. 이번 은하수와의 충돌을 통해 저도 느낀 바가 많았거든요."

"그래?"

"결국 하나의 팀이 잘나서는 한계가 명확해요. 우리도 세력이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찢어져서 각자의 팀을 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가만 보면 목재현은 미래를 보는 눈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꽤 긴 시간의 토의 끝에 애들은 결국 내 결정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서지아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넌 왜 울고 그러냐?"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네.

누가 보면 완전 헤어지는 줄 알겠다.

[#비슷한 실력의 군주 어디가서 찾지? #노답 #멘붕 #군주찾아_삼만리]

아,

저런 이유라면 충분히 울 수 있지.

서지수도 눈이 붉었는데 비슷한 이유일 거 같다.

서지수가 약간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그래도 오빠, 나랑 가끔 커피 한 번씩은 마셔."

"커피?"

이상하네.

칼 들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고 커피?

"아직 나를 다 못 보여줬단 말이야."

그렇겠지.

100레벨도 안 됐는데 다 보여줄 수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오빠는 아직 내 아름다움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어.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걸? 내가 이렇게 예뻤나 하고."

좋은 다짐이다.

그렇게 아름다우려면 진짜 강해져야 할 거다.

나는 괜스레 기특한 마음이 들어 서지수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무튼 우리는 각자의 팀을 꾸리기로 했다.

모두가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했으며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이게 훗날, 지구 서버 최강의 네트워크 'USK(United States of Korea/United States of Kim-Chulsoo)'의 전신이 될 줄은 나도 몰랐다.

* * *

차진혁이 방송을 진행했다.

"제가 화가 나는 건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몰상식한 태도입니다."

플레이어들을 연합시켜 나를 공격했던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문제였다.

원래 플레이어들 사이의 은원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완벽하게 패배를 해놓고서는 아무런 인정도 하지 않는 건 아주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차진혁에게는 그랬다.

"최익환 회장님께 요구합니다. 더 이상 추하게 끌지 말고 패배를 인정하세요."

최근 신변에 큰 위협을 느낀 최익환은 경비병력을 대폭 늘렸고 대외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김철수와 청불팀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최익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요구하는 것이 사과와 배상이 아니라 인정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일단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익환은 자신의 상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뇌에 잠겼다.

"내가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저자의 상식이 상식의 궤를 벗어난 것인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자리를 만들어보지."

최익환 또한 패배를 알지 못한 채 이 자리까지 올라왔으나, 이건 다른 문제였다.

사실 최익환은 '플레이어로서의 패배'에 그다지 큰 의의를 두지는 않았다.

그는 공식적인 자리를 마련하여 정식으로 차진혁을 초대했다.

그 자리에는 스트리머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봉주르TV와 민하TV가 참여했고,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최익환이 물었다.

"정말로 자네는 내 패배 인정이면 되는가?"

"그럼 뭐가 더 필요하죠?"

"나는 자네를 죽이려 했어."

"그럴 수도 있죠."

최익환은 차진혁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차진혁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건 어떤 계략이나 음모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니었다.

차진혁에게 중요한 건 인정 그 자체였다.

"그런 건 상관 안 합니다. 근데 상식적으로 이렇게까지 패배했으면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패배서약 해야죠?"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헷갈리는군."

"그래서요? 인정 못하겠다고요?"

최익환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정체 모를 도둑에게 많은 자료들이 털렸다.

도둑이 더 무섭다는 말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최익환 또한 그랬다.

키와 약점은 차진혁이 가지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패배를 인정하지."

"신일그룹의 회장 최익환이 아니라, 은하수 연합의 수장 최익환으로서 인정하는 거죠?"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죠."

"허허."

결국 최익환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평생 일궈온 나의 기업이, 저 자에게는 하등 가치가 없는 것이로구나.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는 스스로 왕좌에서 내려올지언정 도태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제는 나도 은퇴할 때가 된 것 같군.'

그가 최종적으로 패배를 선언했다.

"나는 무엇을 배상하여야 하는가?"

승자가 패자의 모든 것을 갖는다.

패자는 승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것은 최익환이 경험해 온 세계의 진리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차진혁이 인상을 대놓고 찡그렸다.

"설마 돈 주려는 건 아니겠죠?"

"……뭐?"

"보아하니 막대한 돈을 배상금으로 지불하려는 속셈인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 겁니다."

차진혁은 순간 화가 날 뻔했다.

'마리아 같은 소리하고 있어.'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주겠다는 마리아나.

돈으로 배상하겠다는 최익환이나.

차진혁 입장에서는 둘 다 자객이었다.

"여기 사인이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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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서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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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불주먹'팀의 플레이어가 누군가와 '전쟁'을 하게 될 시, 자동으로 참전하게 된다는 조항이 존재했다.

또한 '은하수 연합' 소속의 모든 플레이어는, 추후 '청담동 불주먹'팀의 모든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없게 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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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청담동 불주먹' 소속 플레이어가 '은하수 연합' 소속 플레이어에게 선공을 가했을 시, 반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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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공격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일단 맞으면 반격하는 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차진혁에게 이런 세부사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패배 서약서를 하나 얻었네.'

이게 많으면 많을수록 해당 팀의 위상이 높아진다.

굴복시킨 팀의 명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좋다.

차진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 사이의 은원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정말인가?"

최익환은 믿기 어려웠다.

그저 패배를 인정하고 서약서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이전에 있었던 모든 일을 잊어주겠다니.

자신의 목숨을 노렸는데 이렇게 끝내준다는 것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왜요? 더 하시게요?"

"아니, 그런 건 아니네."

차진혁이 먼저 회견장을 빠져나갔고 최익환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릇이 큰 것인가, 상식이 다른 것인가.'

도무지 정답을 알기 어려웠다.

많으면 많을수록 편한 것이 돈인데 차진혁은 돈마저 거부하는 기행동을 보이면서, 최익환은 차진혁을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한편, 신일그룹 본사의 회견장을 빠져나온 차진혁은 1층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1인 시위?'

얼굴이 묘하게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신일그룹 산하의 한 회사에서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유족이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었다.

'잠깐만.'

차진혁은 걸음을 멈춘 채 1인 시위를 하는 여자를 살펴보았다.

저 여자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신유리?'

한국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희대의 빌런.

이명 '공성병기'라 불렸던 여자.

'신유리가 저기서 저러고 있다고?'

빌런들의 연합.

'반신 연합'을 이끌던 신유리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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