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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97화 (97/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7화

[숨김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30)]

이건 일반적인 채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원자들의 굵은 글씨도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였다.

(30)

(29)

(28)

초마다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카운트다운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채팅이었다는 것은 둘째 치고.

[발신인 : 킹갓제네럴유미]

발신인이 무려 왕유미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나도 잘 알 수 없었다.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는 정신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나는 프로니까.'

이 또한 콘텐츠였다.

나는 이 돌발상황을 잘 대처하면서 즐거운 콘텐츠를 뽑아내야 했다.

"처음 보는 형태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밑줄이 있네요? 발신인이 킹갓제네럴유미입니다. 이제 10초 후면 자동으로 열람되는 것 같은데 제가 한 번 열어보겠습니다."

눈으로 밑줄을 선택하자 안에 숨겨진 진짜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후원 이후처럼, 전자음이 또박또박 들려왔다.

["앙뇽? 이야기꾼 킹갓제네럴유미, 각성명 비밀상자야. 유미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_< 우리는 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아. 만나자! 아이스초코 사주께!"]

분명 전자음이었건만 왕유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놈의 아이스초코.

생각해 보니 왕유미는 하루에 두 잔씩 꼬박꼬박 아이스초코를 먹었었지.

그런데 갑자기 알림이 들려왔다.

[이야기꾼의 특성, '강제적 연결'이 적용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방송 송출 환경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방송 송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황급히 엘튜브를 확인해 보니 화면이 뚝뚝 끊기고 있었다.

이대로면 제대로 된 방송활동이 어려웠다.

"무슨 짓이냐?"

나는 순간 진심으로 화가 났다.

만약 왕유미가 내 앞에 있었으면 큰일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감히 신성한 방송을 망쳐?

또 메시지 전달과 함께 전자음이 들려왔다.

["곧 만나러 가여 >_< 뿌슝뿌슝"]

계속해서 알림도 이어졌다.

[방송 송출 환경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방송 송출 환경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방송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위 방송을 하느니 안 하는 게 나으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분에 받쳐 왕유미의 각성명을 읊었다.

"킹, 갓, 제네럴, 유미……!"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방송에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가만 안 둔다."

분을 삭이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소파에 왕유미가 앉아 있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멱살을 잡으려고 했는데 또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어, 진혁이 왔어?"

엄마가 손님을 맞이한답시고 과일과 차를 준비하고 있었고, 왕유미 옆에는 차진솔이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친한 듯 팔짱까지 끼고 있었다.

'침착하자.'

플레이 이후로 최대의 위기인 것 같은 느낌이다.

"오빠, 빨리 와서 앉아봐."

"그래. 저건 누구야?"

나도 궁금하다.

도대체 왜 왕유미가 우리 집에 있는 건지.

"저거라니.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왕유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 뵙겠습니다. 왕유미라고 해요."

"알아, 킹갓제네럴유미."

"이미 눈치챘어요?"

왕유미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눈이 반달을 그리고 있었는데 찌를 뻔했다.

"둘이 왜 같이 있어?"

"응? 내가 말 안 했어? 나 회사 처음 들어갔을 때 나 엄청 잘 챙겨주고 도와준 사수 언니 있다고 했잖아."

그러고 보니 전화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굉장히 고맙다나 뭐라나.

그 언니 덕분에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그 사수가 왕유미라고?"

"오빠. 예의를 좀 갖춰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언니란 말이야."

"……."

왕유미.

얘가 차진솔과 아주 친하단다.

전생에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왕유미가 호호호 웃고 있었다.

"우리, 나눌 얘기가 많죠?"

* * *

왕유미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 정도 퀄리티의 방송을 진행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은 어려울 거예요. 그러니까 계약된 이야기꾼과의 협업은 필수죠."

말하자면 왕유미가 내 방송을 중계하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담당하겠단다.

"물론 거절하셔도 상관은 없어요."

왕유미의 눈이 광기로 얼룩져 번들거리고 있었다.

"저는 플레이어로서 제 일을 해나갈 거예요. 그 누구도 제 플레이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 치고, 내 플레이를 강제하던데?"

방송 송출이 원활하지 않다니.

시스템에서 이런 건 처음 본다.

얘는 나한테 일종의 악성코드나 랜섬웨어 같은 걸 깐 거 같다.

"그게 제 플레이죠. 뛰어난 플레이어였다면 제 플레이를 플레이로 막았어야 하지 않겠어요?"

너무 맞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플레이로 당한 건 당한 사람이 약한 탓이니까.

그렇다고 얘를 죽인다거나 물리력을 쓰면 플레이에서 패배한 꼴이 되어 버린다.

"아참, 제가 진혁 씨의 방송을 공짜로 송출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시스템적 계약을 맺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거든요?"

왕유미가 나한테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시스템 계약서?'

이건 사람이 작성한 게 아니었다.

아마도 얘가 '이야기꾼'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얻게 된 직업 아이템인 것 같았다.

"보셨다시피 제가 후원받은 금액을 99퍼센트는 진혁 씨의 것이에요. 지금까지의 누적 후원금은 대략 3천만 다이아 정도 돼요. 계약서에 사인하시면 다음 달부터 매월 1일에 자동으로 전송될 거예요."

나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서 왕유미를 봤다.

"99퍼센트?"

"네. 99퍼센트요."

99퍼센트면 거의 100퍼센트나 다름없다.

자기가 버는 수익을 전부 나한테 준다는 건데, 쟤 눈빛이 왜 이렇게 반짝거리는…… 아!

'플레이에 진짜 진심인 거구나.'

왕유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조금 버리고 나니 왕유미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과거에도 은퇴기반을 마련해놓고서는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따라 열정을 쏟았던 여자였다.

방향이 나랑 맞지 않아서 그렇지 제 일에는 누구보다 열성적인 사람이기는 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얘는 '이야기꾼으로서'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벅찰 정도의 즐거운 취미를 즐기는데 수익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아, 그리고 진혁 씨 방송에는 영향이 없을 거예요."

"내 방송에 영향이 없다고?"

얘는 내 화면을 그대로 중계한다.

시청자가 내 쪽과 저쪽으로 분산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물론, 극초반에는 진혁 씨 시청자가 내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기는 있어요. 그렇지만 제 주력 콘텐츠는 진혁 씨를 주제로 한 시청자들과의 소통이거든요. 말하자면 놀이터죠."

"……."

말을 하는 왕유미에서 전생의 왕유미가 겹쳐 보였다.

왕유미가 나를 이래저래 괴롭히기는 했었지만 틀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결국 1인칭 시점 진혁 씨 방송 특유의 박진감과 긴장감을, 이야기꾼의 중계에서는 제대로 살릴 수가 없어요. 결국 시청자들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가듯 다시금 진혁 씨한테 몰릴 거예요.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콘텐츠가 갖는 힘은 그 자체로 우월하고 고귀하거든요."

……아 잠깐만.

살짝 기분 좋아지려고 그러네.

"내 방송에서 웃고 떠들다가도 진짜 플레이가 시작되면 결국 김철수한테 몰린다는 뜻이죠. 말하자면 메인디쉬는 김철수고 비밀상자는 사이드 메뉴 같은 게 될 거랍니다. 짜장면과 단무지처럼. 라면과 김치처럼. 피자와 피클처럼. 우리는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할 수 있어요."

왕유미가 흐흐흐 웃었다.

눈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근데 진솔이가 자기 오빠 엄청 잘생겼다고 하긴 했거든요?"

"언니!"

"친혈육이 잘생겼다고 인정하는 걸로 미루어 보아, 저는 진솔이가 뇌질환 환자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보니 그게 아니네요."

"……."

"이 정도로 잘생겼을 줄은 몰랐어. 이 정도면 친혈육도 인정 쌉가능이에요."

불길하게 왜 눈빛이 몽롱해지고 난리냐.

"뭐랄까, 아주 차가운 새벽에 고고히 떠오른 달이 생각나네요. 잘만 꾸미면 진혁 씨 자체로도 정말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근데 잠깐만.

'매력적인 콘텐츠?'

얘 말에 따르면 내 얼굴 자체만으로도 엘튜브각이라는 건가?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데.

아니, 아니지. 정신 차리자.

괜히 욕심부리다가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얼굴로 유명해지면…… 강은우 같은 일을 많이 당하겠지.'

미왕(美王) 강은우.

누구보다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남녀노소를 홀리던 녀석이었다.

결국 어떤 이들에게는 강은우를 공략(?)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였고, 진짜 수많은 미인계와 암중모략에 시달리다가 단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강은우만큼 잘생겼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일들에 얽히게 되면 아주 많이 피곤해질 거다.

"잘 생각해 봐요. 진혁 씨처럼 존재 자체로 매혹적인 콘텐츠가 되는 경우는 잘 없어요. 이런 게 단순히 잘생겨서 되는 건 아니거든요. 세상에, 강은우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더한 사람이 여기 있었네."

얘는 이 시점에서 이미 강은우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강은우?"

"네. 내가 진혁 씨 다음의 서브 콘텐츠로 밀고 있는 사람 있어요. 나중에 세계관이랑 서사 완성되면 공개할 거예요."

"……."

"근데 진혁 씨 너무 탐나네. 벌써 머릿속으로 다 그려져."

츄릅 소리가 들려왔다.

왜 또 침 흘리는데.

"그만 그려요."

"이야기꾼으로서 잘 보필할게요, 폐하."

왠지 모르게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 * *

서울 시내 한 커피숍.

계약을 마친 왕유미는 누군가와 만났다.

"정말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그렇지?"

상대는 덩치 큰 외국인이었다.

이름은 죠셉.

그는 왕유미의 투자자이자 매니저였고 둘도 없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야기꾼 왕유미가 플레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죠셉이 금전적, 행정적 지원을 맡았다.

"어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게 될지도 몰라요. 흐흐흐."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지. 흐흐흐"

"스타 아니고 문. 별 아니고 달이요."

"그게 무슨 뜻이지?"

"달에 무척이나 어울리는 남자였거든요. 뭐랄까, 달의 왕 같은 느낌이랄까? 폐하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구."

다소 아리송한 말이었으나 죠셉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왕유미의 비전을 믿을 뿐이었다.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둘은 끈끈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같은 비전을 꿈꾸었다.

"짠."

"짠."

한 명은 에스프레소를.

한 명은 아이스초코를 홀짝이며 마셨다.

* * *

'어린 황금 수호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SSF 및 한마갤로부터 수호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가 풀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황금 수호수라는 것은 전 서버에도 몇 없는 아주 진귀한 수호수입니다. 오픈 베타 서비스 기간에 이런 수호수가 자라났다는 것은 어쩌면 '거대한 의지(*시스템의 질서를 관장하는 모든 것을 통칭하는 말)'가 지구 서버에 커다란 가호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아직 어린 황금 수호수지만 적절한 환경이 잘 갖춰져 성장하게 된다면 이는 지구에 더없는 축복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작성자 : 백과사전]

그 바로 앞에 건물을 가진 차진혁에게도 여러 제안이 왔다.

-200억 제시하겠다는데 안 파시겠어요?

차진혁이 80억 주고 샀던 빌딩의 시세는 이제 200억.

-안 판다니까요. 한 번만 더 연락하면 차단합니다.

뉴스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연희동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차진혁과 가족이 머무는 집은 80억까지 시세가 치솟았다.

역사상 유례없는 폭등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진혁은 300억대 자산가가 되었다.

벼락부자가 된 차진혁은 턱을 매만졌다.

'예정보다 너무 빨리 수호수가 자라났어.'

만약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연희동 건물주가 되기가 훨씬 힘들어졌을 것이었다.

'아, 좀만 늦게 살걸.'

그랬으면 사기 진짜 힘들었을 텐데.

은퇴 같은 거 생각도 못했을 텐데.

꿈을 이미 반쯤 이루어버린 바람에 은퇴를 고려해야만 하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차진혁은 조금 우울해졌다.

은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핑계가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으니까.

일단 지금은 저번에 반파된 건물 리모델링 중.

안타깝게도(?) 수중에 지닌 돈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뭐라고요? 건축허가가 지나치게 까다로워지고 어려워졌다고요?"

연희동이 지나치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각종 행정규제도 쏟아졌다.

공무원들은 일단 연희동에 그 어떤 변화가 벌어지는 것도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진혁은 조금씩 기뻐졌다.

"아, 그럼 참 어쩔 수 없죠.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월세도 안 나오겠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월세가 안 나오니까 나는 열심히 플레이를 할 수밖에.

그러다가 부모님 명의로 된 건물도 있으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환갑 선물로 연희동 건물 드리면 좋을 거 같은데?'

그러려면 진짜 열심히 오래 플레이해야겠다.

아무래도 은퇴가 좀 더 멀어지겠는데?

아 정말 아쉽다.

차진혁은 기분이 좀 더 좋아졌다.

국정원 소속이자 '어머니'인 마리아에게서 연락이 오기 직전까지 말이다.

-……해서…… 것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현재 김철수 씨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각종 행정절차가 통과될 수 있도록 힘쓸게요.

"행정절차요?"

-건축허가가 중지된 상태로 알고 있어요.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제가 그걸 도울 수 있어요. 곧바로 대수선 공사에도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어때요? 좋은 제안이죠?

차진혁은 인상을 찡그렸다.

……개빡치게 하네.

차진혁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해봐요. 뭘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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