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6화
킹갓제네럴유미.
훗날 우리 지원팀 중, 미래전략팀의 팀장으로 스카웃되는 인물이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여론전과 더불어 우리의 이미지 메이킹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국가 소속 플레이로서 수많은 구설수에 휩싸였고, 꽤 많은 사건에 휘말렸었다.
그때마다 킹갓제네럴유미를 필두로 한, 일명 '미래전략팀'이 나서 다양한 공작을 펼치고는 했었다.
'이 여자를 완전히 잊고 있었네.'
본명 왕유미.
이미지 메이킹과 스토리 기획의 달인이었다.
나는 위험한 마물과 빌런들은 두렵지 않았지만 왕유미는 좀 두려웠었다.
내게 있어 왕유미는 약간 피할 수 없는 재앙 같은 느낌이었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안 한 건지,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건지.'
실제로 회귀 이후, 나는 왕유미에 대한 기억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누군가 왕유미와 관련된 기억을 칼로 도려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왕유미에 대해 기억하기를 거부했던 거 같다.
'그때만 생각하면…….'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시민이 일곱이나 죽었어요. 또 비판여론이 들끓겠죠."
우리는 욕먹는 게 너무 당연한 사람들이었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었다.
그 처지(?)를 바꿔준 사람이 왕유미였다.
"세계관이 필요해요."
어느 순간 우리 팀에게는 세계관이 적용되었다.
나는 그 세계관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기함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희망을 통해 공감하고 플레이로 하나가 되는 것이 기본적이 요점인데요."
거기까진 그렇다 치는데.
"설정상 인간이 아닌 플레이어들로 하죠. 미지의 세계에서 비행선을 타고 날아온 새로운 신격 존재들."
우리를 갑자기 무슨 미지 세계의 신인류로 포장했다.
태초부터 존재한 무슨 '거대한 의지'가 있었다…… 정도로 시작하는 어떤 얘기였는데, 상당히 정교하게 짜인 서사였다.
사실 기억은 잘 안 난다.
참고로 나는 뭐더라, 아 그래.
나는 일식을 담당하는? 어떤 신적인? 전설로 남은 어쩌고? 였다.
"미모는 진혁 씨가 제일 빼어나요. 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수많은 팬들을 양산하기 딱 좋기는 한데, 약간 피폐함과 왠지 모를 위험함이 공존하죠."
왕유미는 날 보면서 매번 군침을 흘렸다.
"관능적이고 섹시하기까지 해."
왕유미의 눈에는 늘 광기가 번들거렸다.
나는 왕유미의 작업을 거쳐, 세계관 속 어쩌고가 되었다.
세상에 이따금 어둠(일식)을 선물하는 신성한 어쩌고.
아, 정확한 이름 기억났다.
'잿빛 세계의 월왕'이었다.
"진혁 씨처럼 붉은 립스틱이 어울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믿어봐요. 진짜 아름다울 거라니까?"
그때가 제일 끔찍했다.
검을 쓰는 플레이어가 왜 립스틱을 발라야 하는 건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당시 국정원 소속의 플레이어였고, 결국 위에서 까라는 건 깠어야 했다.
"이제 실감해요, 진혁 씨의 인기를?"
왕유미에게 적잖이 시달린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곤 했다.
무슨 나를 위한 팬클럽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나 뭐라나.
내가 잿빛 세계의 월왕이었고, 나를 수호하는 팬들이…… 뭐였지?
'아, 이것도 기억났다.'
달의 군대, 일명 Moon-Army.
줄여서 '마미'라고 불렀다.
워낙 극성팬이 많아서 온갖 헤프닝이 끊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화장에, 대본에, 처음에는 까라면 깠었는데.'
왕유미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대중과 소통은 필수라나 뭐라나.
참고로 김정현은 '풀의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이었고, 최강벽은 단단한 바위 거인족의 수장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강미나는 불의 행성에서 애지중지 자란 불꽃의 소녀였고, 한세린은 나르시즘에 빠진 여신인가 뭔가로 기억한다.
나는 손발이 오글거려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때려치우겠다고 선언했었는데.'
나는 더 이상 왕유미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왕유미는 내 캐릭터를 교묘하게 손봤다.
훗날 내 잿빛 세계 어쩌고는 플레이 외에 다른 것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는, 고고하고 도도한 달의 황제 같은 걸로 변하게 되었던 걸로 알고 있다.
"흐흐흐, 마미가 더 열광하고 환호하고 있어."
어두운 골방에서 손을 번쩍 들고 이렇게 소리치기도 했다.
"월왕께서 침묵을 명하셨다. 월령을 받들어라, 아름다움에 취한 백성들아! 낄낄낄! 낄낄낄낄!"
그날 이후 나는 왕유미를 피해 다녔다.
아무튼 제네럴킹갓유미를 보니, 무의식적으로 봉인되어 있던 나쁜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얘랑은 절대 엮이지 말아야지.'
* * *
'근데 비밀상자는 요즘 뭐하고 있나?'
플레이가 보다 대중화되고, SSF와 엘튜브의 연동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스트리머 채널들이 개설되었다.
한국에서는 봉주르TV가 랭킹 1위였고, 그 뒤를 민하TV가 바짝 뒤쫓고 있는 상황.
'근데 왜 랭킹보드에 없지?'
내 기억에 의하면 비밀상자는 1, 2인자는 못되어도 3인자 정도는 늘 유지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랭킹보드에 아예 이름이 없었다.
'어디 보자.'
엘튜브에 검색해 보니 비밀상자는 5월에 1인칭 시점의 영상을 몇 개 업로드했었다.
구독과 알림설정을 눌러놓은 상태였는데 아직까지 잠잠했다.
'플레이를 안 하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런데 그때 즈음, 비밀상자의 영상들이 업로드되었다.
'응?'
컨셉이 좀 이상했다.
동영상 카테고리의 이름부터가 '김철수 염탐기'였다.
'이게 뭐하는 거지?'
며칠 후, 나는 비밀상자가 어떤 컨셉으로 방송을 하는 건지 알 수 있었다.
비밀상자는 나를 중계하는 방식의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내 방송을 따서 엘튜브에 올릴 수 있는 어떤 권한 같은 걸 얻은 것 같기도 했다.
'내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송?'
예전의 비밀상자는 1인칭 시점의 스트리머로 발로 뛰는 콘텐츠를 진행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스튜디오에 앉아서 입만 털고 있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상자의 노림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시청자 숫자가 많네.'
영상 몇 개를 틀어보니 상당히 활발한 채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가 '몸이 없는 자'와 대적하면서 자살을 하던 장면에서 엄청나게 많은 채팅이 쏟아지고 있었다.
-왘ㅋㅋㅋㅋ 저기서 자살을 해버리네ㅋㅋㅋㅋ
-미친ㅋㅋㅋ 다시 봐도 레게노ㅋㅋㅋㅋㅋ
-? 이거 쉬움 나도 이거 보고 튜토리얼 필드가 시도해 봄
비밀상자는 상당히 노련하게 몇몇 채팅을 고정시키기도 했다.
그러면 게시판처럼 해당 채팅에 댓글을 달 수 있는 기능까지 활성화되어 있었다.
다른 스트리머들에게서는 보지 못했던 시스템이었다.
[*자유로운 의견 남겨주세요 *지나친 비방/욕설은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정치/혐오 관련 표현 자제 부탁드립니다 *지나친 분란 조장 시 블랙리스트 추가됩니다.]
[고정댓글: ㅇㅇ: ? 자살 이거 은근히 쉬움. 나도 이거 보고 튜토리얼 필드 가서 시도해 봄.]
┗ 는 시도만 해본 나.
┗ 는 찌른 다음 아프다고 소리 지르던 나.
┗ 는 자살할 수 없는 나.
┗ 는 절대 죽지 않는 나 ㅋㅋㅋㅋㅋ
수많은 사람들이 '상남자'를 비웃었다.
사실 내가 방송에서 자살하는 모습을 보여준 이후, 몇몇 스트리머들이 나를 따라서 자살 콘텐츠를 진행하기는 했었다.
'이상하게 다들 쉽게 못 죽던데.'
누가 막는 것도 아니고 마물이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부활설정까지 떡하니 걸려 있다.
잘만 찌르면 쉽게 죽을 수 있는데 왜 다들 실패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한 번에 잘 찔러야 즉사 뜨는데 말이다.
어설프게 찌르면 아프기만 하고 안 죽는데, 내가 살펴본 스트리머들 대부분은 한 번에 못 죽었다.
[상남자: 진짜임! 증거 영상 제출 가능함]
방송 속, 비밀상자는 해당 시청자로부터 영상을 전송받아 화면에 공유해 줬다.
화면이 약간 이상하다 싶었는데 시청자들은 예리했다.
┗ ㅋㅋㅋㅋㅋㅋㅋ1.8배속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ㅋ
┗ 배속했는데도 김철수보다 느린 거 ㅈ되눜ㅋㅋㅋㅋ
┗ 1.8배속으로 찔렀으나 ㅈ밥인 나에 관하옄ㅋㅋㅋㅋ
몇몇은 그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조각내서 내 영상과 비교짤을 만들기도 했다.
┗ 김철수와 상남자의 자살 비교짤 만들어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순식간에 이렇게 짤까지 만들어서 올린다고?
나에 비해 자살하는 모습이 영 어설펐다.
┗ 응 다음 ㅈ밥나와 주세여ㅋㅋㅋㅋㅋㅋ
┗ 그만 놀려 애 울겠닼ㅋㅋㅋㅋ
나는 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이게 뭐라고, 시청자들은 수많은 'ㅋㅋㅋ'를 써대면서 놀고 있었다.
'뭔가…… 재밌네?'
비밀상자라는 놀이공원에 놀러 온 애들 같은 느낌이었다.
저걸 보는 나도 왠지 모르게 재밌었다.
방송 중간에 갑자기 쨍그랑 소리가 났다.
후원 효과음이었다.
[_동글동글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전자음이 '_동글동글'의 글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_동글동글: 김철수의 눈을 3인칭으로 봐보고 싶다. 찐광기에 절은 무친놈일 거 같애.]
그러자 비밀상자는 그에 맞추어 대답했다.
-야, 동글아, 그걸 과연 광기로 표현할 수 있겠냐? 광기로는 표현이 안 돼. 이건 광기 너머 차원 이상의 그 어떤 경이롭고 성스러운 영역의 무언가야. 우리, 김철수의 신격을 모독하지 말자.
얜 도대체 무슨 컨셉을 잡은 건지 모르겠네.
아니, 근데 잠깐만.
얘 화면이 묘하게 이상한데.
나는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비밀상자의 방송을 계속 시청했다.
'혹시 이게 되나?'
중계자의 시야로 얘 방송을 살폈다.
얘가 방송하는 것도 플레이의 영역이고, 그렇다면 내 중계자의 시야가 더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
'기만자의 가면과 비슷한 부류의 뭔가를 쓰고 있다.'
얘도 진짜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한 번에 진짜 얼굴 파악은 어려웠고 나는 몇 시간 동안 얘 방송을 계속해서 관찰하면서 실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계속 살펴보다 보니 무언가가 잡혔다.
'잠깐만.'
얘 왜?
낯이 익냐?
뭔가가 보일 듯 말 듯했다.
다시 몇 시간이 흘렀을 때, 나는 결국 '비밀상자'의 진짜 얼굴을 읽어낼 수 있었다.
'킹갓제네럴…… 아니, 왕유미?'
방송을 진행하는 비밀상자의 얼굴에서 왕유미가 보였다.
'아니, 잠깐만. 왜 왕유미가?'
근데 또 생각해 보니 맞아떨어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왕유미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은퇴한다.
그 즈음해서 왕유미가 우리 지원팀에 합류했었다.
'그 비밀상자가 왕유미였다고?'
안보리 시절 비밀상자에 대해 조금 파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이름이었고, 심지어 남자였다.
'설마…….'
한 가지 가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비밀상자도 [다중 인생] 혹은 [두번째 신분] 같은 신비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아마 상위 신비인 다중인생급의 신비였겠지.'
그래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면서 활동하다가 건물주가 된 이후, 진짜 모습으로 지원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어쩐지 플레이어에 대해 너무 잘 알더라니.'
그러니까 왕유미는 직업이었던 스트리머에서 은퇴한 이후, 자유롭게 자기 취미를 즐겼던 거 같다.
우리를 가지고 인형놀이 같은 걸 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또 뭔가가 생각났다.
'고독에 잠긴 월왕 굿즈 시리즈.'
내 얼굴이 프린팅된 티셔츠는 기본이었고 베개나 이불 같은 것도 있었다.
나와 일대일 사이즈의 인형도 불티나게 팔렸었다나 뭐라나.
덕분에 왕유미는 돈방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나도 돈을 많이 받았다곤 하는데 사실 신경 쓴 적이 없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강해지는 것뿐이었으니까- 이번에도 왕유미는 나를 팔아 계속 돈을 벌고 있는 모양이다.
계속 쨍그랑, 쨍그랑 소리가 났다.
후원이 이어지고 있었다.
'또 날 팔아서 부자가 되고 있다고?'
아, 잠깐만.
이거 살짝 빡치는데?
'근데 내가 그냥 내 방송에서 소통 풀어버리면 그만이잖아?'
얘 방송이 흥할 수 있는 이유?
내가 내 방송에서 소통을 아예 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방송에서 채팅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잠깐. 얘처럼 직접적인 소통하면서 플레이하는 건 불가능해.'
가면을 쓴 현자와 만나면서 느꼈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스트리머다.
'소통은 안 하고 채팅창만 열까?'
그러면 저쪽 시청자들이 굳이 쟤 방송을 볼 이유가 없게 되지 않는가?
'내 방송에서 신나게 떠들 수 있으면, 왕유미도 자연스레 나와 관련된 콘텐츠를 접게 될 거고. 그러면 나와의 접점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다음 날.
나는 방송을 켰다.
['채팅 ON'으로 전환하시겠습니까?]
['채팅 ON' 설정이 적용됩니다.]
처음으로 채팅창을 열었다.
-데빌스: 응? 뭐임?
-꽁지아파: 왜 채팅이 되지?
-ㅇㅇ: ???
-안녕볶음: 이거 실화냐?
-안졸리냐졸려: 소리벗고 팬티질러ㅓㅓㅓ!!
보아하니 굵은 글씨로 표시된 사람들은 나한테 후원을 했었던 사람들인 거 같다.
-기모찌: 응? 채팅창 무엇?
-돼지런하다: ??????
-빠직뿌직뽀직: ?????????
채팅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가운데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다시 채팅창을 동결시켰다.
'뭐지, 이 기분은?'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주 잠깐 폭주했던 채팅창을 살펴보던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게…… 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