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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95화 (95/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5화

"해당 지점은 강철 스나이퍼를 제외한 오망성 4인이 공격하기에 아주 적합한 위치입니다."

그는 미리 준비한 대략적인 지형도를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3면이 열려 있고 위치가 낮죠. 이미 제가 대기시킨 4인이 대기 중이며, 공기보다 무거운 성질이면서 무색무취의 신경 마비가스가 살포되어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차진혁, 아니, 김철수 본인도 몸이 많이 무거워져 있음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자랑하는 중계결계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이고요."

최익환은 제법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지껏 플레이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뀌었구나.'

너무 구시대적으로 생각했다.

저격수들만 잘 운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최종 명령만 내리시면 김철수를 사살하겠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자네의 공이 아주 커."

"처치할까요?"

"현장의 상황은 현장을 지휘하는 자네가 제일 잘 알지 않겠나?"

이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죽어도 직접 죽이라는 말은 안 하는군.'

이진성은 결국 스스로 판단하여 명령을 내렸다.

"죽여."

미리 대기하고 있던 4인이 차진혁을 향해 각자의 살상 스킬을 사용했다.

차진혁은 마치 포기라도 한 것처럼 두 팔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곧 성장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인가에 공격당한 듯 차진혁이 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이내 차진혁 주위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건 오망성 플레이어들의 스타일 차이였다.

세 명은 정교한 저격수 계열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광역 속사 계열이었다.

반쯤 엎드린 차진혁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오?'

카메라 앵글을 흔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총격전처럼 화면이 흔들리도록 연출했다.

'이러면 좀 더 실감 나겠지?'

그리고 소리를 좀 더 키웠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아마도 기관단총 계열이라 짐작되는 무기의 끊임없는 총탄 소리.

'그림이 제법이잖아!'

차진혁은 일부러 말을 하지 않고서 엎드린 채 시간을 끌었다.

스트리머로서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엄청난 고양감으로 다가왔다.

차진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엎드린 채 누워버렸다.

'방송으로 보면 마치 시체 같겠지!'

그러면서 고개는 강철 스나이퍼 쪽으로 돌려서 시야는 확보했다.

목소리를 일부러 떨면서 긴장감을 연출했다.

"강철 스나이퍼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 니다."

이건 속박계열 플레이어 중 하나가 사용한 독가스 계열의 스킬이었다.

중계자의 시야로 이미 읽어낸 상태지만 굳이 알아낸 걸 밝히지는 않았다.

"신일그룹의 은하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군요. 무섭…… 습니다."

차진혁은 마치 정신을 잃은 것처럼 눈을 감았다.

차진혁의 방송을 살피고 있던 이진성의 눈이 커졌다.

"김철수가 정신을 잃은 모양입니다."

순간,

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정신 잃거나 사망하면 방송이 끊겨야 하는데?'

그런데 화면이 어두워졌을 뿐, 방송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지연송출 같은 특별한 설정을 해놓은 건가.

그런데 차진혁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큰일 날 뻔했는데 운 좋게 살아났습니다.

이진성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집어 던질 뻔했다.

'운 좋게?'

어떻게 운이 좋으면 저렇게 멀쩡히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진성은 이를 악물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가 지금까지 파악해 왔던 김철수의 능력보다 훨씬 상회하는 함정을 깔았다.

김철수는 이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다.

'근데 어떻게?'

차진혁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사실 아까 운 좋게 수호수의 가호를 받았거든요.

* * *

아, 기분 좋다.

얘들이 나를 극한으로 밀어붙여 준 덕분에 내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나를 몰아치면 내가 어디까지 반응할 수 있는지, 아주 좋은 훈련이 됐다.

역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 최고다.

이 정도면 내가 훈련비를 지급해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고마웠다.

"이제 방어는 포기하겠습니다."

솔직히 조금 긴가민가했었는데 수호수의 가호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오망성이 쏘아낸 마력탄들은 내 몸에 제대로 닿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

'독가스도 무용지물.'

나한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말 그대로 무위로 돌아가 버리고 있다.

방어의 개념이 아니었다.

공격을 삭제하는 개념에 더 가까웠다.

'기분 좋다.'

내 한계를 깨달은 덕분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저도 많이 지쳤습니다. 이제 기본기 싸움이 되겠군요."

스킬이나 특성 운용은 힘들다.

이제 그냥 움직여서 놈들과 싸워야 한다.

방어는 신경 안 써도 되니까 무척 편했다.

"근데 얘들은 왜 공격이 실패했는데도 도망을 안 치는 걸까요?"

내가 방송을 통해 여러 번 가르쳐줬는데도 아직 미욱했다.

아 진짜 너무 화나네.

내가 방송에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얘네도 좀 연출에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너무 쉽게 잡아버리면 재미없는데.

아무튼 나는 가장 가까이 있던 놈에게 다가갔다.

"레벨 57. 각성명 레인보우 건이네요."

키가 160㎝가량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어쩐지 약간 낯이 익은 것 같기는 했는데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오, 오지 마!"

레인보우 건이 총을 난사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허리를 살짝 숙였다.

피하려는 동작이었다.

'습관이 이래서 무섭다.'

나는 다시 허리를 폈다.

'근데 그냥 맞으면서 걸어가면 폼이 안 나지?'

멋있는 연출이 뭐가 있을까.

나는 오른손을 들어 올려 앞으로 펼쳤다.

그리고 천천히 앞을 향해 걸어갔다.

내 오른손에 닿은 레인보우 건의 총탄은 모두 사라졌다.

멋들어진 대사를 생각해 냈다.

"일곱 빛깔의 사수. 네 무지개는 내게 닿지 않는다."

아,

나 개멋있었어.

'근데 도대체 왜 거리를 안 벌리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려서 멋있게 싸워져야 각이 살 텐데.

사격 실력은 뛰어난 거 같은데 그 외의 다른 능력이 부족한 거 같다.

서걱!

오른 손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앞으로 총은 못 쏘겠네요. 다음 타겟은 저쪽입니다."

나는 이동하면서 계속 방송을 이어갔다.

"환청 같은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수호수가 자기 영역에서는 살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게 정말 수호수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신령한 나무의 부탁일지도 모르니 그렇게 하는 중입니다."

응?

얼씨구?

"단도를 들었네요?"

저격수가 총을 버리고 칼을 들어?

무슨 특별한 무술을 익힌 모양이었다.

"아무리 직업 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저레벨이라고는 하지만……."

아니, 그래도 이게 말이 되냐?

저격수가 총이 아니라 칼을 든다고?

이게 맞냐?

서걱!

얘는 손목이 아니라 어깨를 베었다.

괘씸죄 추가다.

"나름대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동작들이 아주 굼뜹니다."

다음은 '707전사'였다.

서걱!

다음은 '에이전시A'.

서걱!

오망성 전원을 처리했다.

"아마도 은하수 연합은 재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참, 아마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실 은하수 연합의 군주와 최익환 회장님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한 템포 쉬었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저는 암살자와 도둑 중 누가 더 무섭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도둑을 고를 겁니다."

* * *

김철수의 팀과 은하수 연합의 충돌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플레이어 간의 전쟁,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는가.

-비플레이어 24명, 크고 작은 부상입어.

신일그룹은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여론을 유도했다.

-김철수가 일부러 시민들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던데?

┗ ㄹㅇ?

┗ 그게 맞다면 개쓰레기네.

┗ ㅇㅇ 그래서 은하수가 김철수 제대로 공격도 못했대.

-자기 방송각 잡겠다고 일부러 싸우다가 민간인 겁나 많이 다쳤다고 함.

┗ 어쩐지 개잘싸우더라.

┗ 비플레이어들 사이에 숨어서 비겁하게 싸운 듯?

-근데 선빵은 은하수에서 날린 거 아님?

┗ ㄴㄴ 김철수가 신일그룹 손자 먼저 죽임.

┗ 헐 ㄹㅇ?

┗ 예전이었으면 살인죄로 처벌되었어야 했는데, 저런 놈들이 인기 스트리머랍시고 깝치는 게 너무 역겹누.

차진솔은 실시간으로 각종 커뮤니티와 한마갤을 돌아다니며 씩씩거렸다.

"너무 조직적이야. 오빠 비방하는 글 올라오면 갑자기 추천이 파박하고 박혀서 개념글 올라간다고!"

"그런 거야 흔한 일이지."

차진혁은 천하태평이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차진혁은 방송을 켰다.

"이건 신일그룹의 작전계획서입니다. 보통 뛰어난 군주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문서화하여 보관하기 마련이거든요."

차진혁은 군주들의 습성에 대해 잘 알았다.

'나한테 검술일지가…… 아니, 방송일지가 엄청난 자산이고 보물이듯, 그건 군주들한테도 마찬가지니까.'

송하영이 이걸 털어왔다.

그곳에는 유사시 민간인(비플레이어)를 방패 혹은 장애물로 삼아 김철수를 사냥하겠다는 내용과 더불어, 생화학무기 사용과 관련된 내용도 적혀져 있었다.

혹여 생화학무기에 민간인이 당하게 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모든 잘못을 김철수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분명히 이것도 조작된 거라고 하긴 할 건데요."

차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로 신경은 안 쓸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착한 일을 해도 안티는 생기기 마련이다.

일일이 다 신경 쓰다가는 플레이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아, 그리고 이 계획서를 작성한 군주인 촉촉유비를 생포했는데요."

신일그룹도 참 바보다.

최익환을 보호할 게 아니라 촉촉유비를 보호했어야지.

전체적으로 애들 기량이 많이 떨어진다.

"인터뷰 한번 해보겠습니다."

촉촉유비 이진성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정말로 김철수를 비롯하여 김철수 팀원들을 모두 살해하려 했다고 증언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차진혁의 방송은 꽤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방송대로면 사실 은하수가 계략 다 꾸며놓고 김철수한테 뒤집어씌우려던 거 아님?

-김철수 방송 다시보기에 무슨 독가스 살포되는 것도 나왔음.

┗ 조작이 확실함. 걔 비공식 세계랭킹 1위 스트리머잖음.

┗ 조작 같은 소리 하고 있네.

┗ 편집 하나도 안 한 생방본인데 그걸 조작했다고 주장하누?

┗ 신일 알바 역겹다ㅋㅋㅋ

┗ 무지성 알바는 좀 잘라라 ㅋㅋㅋㅋ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네.

이후 이진성이 '나는 그의 머리 위에 놀고 있다고 착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자의 광대에 불과했다. 군주로서 나는 완벽히 패배했다. 나는 그 패배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면서 사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김철수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다.

김철수팀의 얼굴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도 알려지면서, 진짜 얼굴을 알아내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긴 했는데.'

기만자의 가면은 한계가 있었을뿐더러, 스트리머의 직업 특성상 완전한 비밀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너무 유명해지면 안 되는데…….'

내 처음 계획과는 좀 다른데.

차진혁은 히죽 웃고 말았다.

'기분이 왜 이렇게 좋냐?'

비공식 세계랭킹 1위라는 말도 듣기 좋았고,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것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나는 개관종인가 봐.'

사실 회귀 전에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는데 그때는 검술에만 매진하느라 이렇게까지 차진혁 스스로와 직면할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스트리머로 성장하면서 차진혁은 그 자신을 좀 더 알게 됐다.

'뭐, 아직까지는 안정권이니까.'

그가 생각하는 그의 수준은 어느 섬나라의 축구 유망주 정도 된다.

진짜배기 각성자 사냥꾼이나 진짜 세력들이 눈독 들일 정도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여러모로 다 마음에 들었다.

'애들도 다 자기 몫은 했고.'

차진혁의 팀원 중 그 누구도 은하수에 패배하지 않았다.

그게 또 차진혁을 기분 좋게 했다.

그사이에도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단순히 차진혁과 최익환의 전쟁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회 문제로 확장되었다.

신문명 시대에 진입하는 과도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

-플레이어들에게도 도덕적 가치는 요구되어야 한다.

-언제까지 범죄가 묵인되어야 하는가.

-'플레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공권력은 한참 약화되었다.

-유럽의 경우는 이미 플레이어들과 시민들끼리 어느 정도 합의가 됐다던데?

유럽의 움직임이 가장 빨랐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발 빠르게 '유럽 플레이어 연합(EPU)'을 만들었고, EPU를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성숙한 플레이 문화를 구축하는 중이었다.

-헬조선 시민의식으로 그게 되겠누? 어제만 해도 강간, 살인 같은 강력범죄가 몇 건이나 일어났는지 아누?

┗ 몇 건 일어났는데?

┗ 그건 나도 모르지 십새기야.

-헬조선은 걍 존나 글러먹었음. 반박시 니 말이 맞음.

┗ 222

┗ 333

그러나 또 플레이어의 힘을 활용하여 위험에 처한 시민을 구해줬다거나 하는 훈훈한 내용들도 분명 있었다.

-일본이 경악하고 미국이 감탄하는 한국 플레이어의 수준!

-세계를 감동의 바다에 빠뜨린 한국 플레이어의 선행.

-중국이 질투하고 유럽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플레이 문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신문명 시대.

세계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차진혁은 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며 휴식을 즐겼다.

각종 포털에 김철수를 검색하다가 이제 더 이상 볼 게 없어서 한마갤에 접속했다.

한마갤에는 온통 김철수 얘기여서 차진혁을 흡족하게 했다.

'어?'

-└ㅇ┐근데 솔직히 김철수가 대인배 아니얌?

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한마갤의 네임드임을 증명하는 굵은 글씨의 제목이었다.

-신일그룹은 김철수 죽이려고 했눈데, 김철수는 그냥 부상을 입히는 걸로 끝내줬자너. 솔직히 수호수의 환청이라는 건 핑계인 거 같구, 김철수는 대인배의 면모를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요. 김철수의 그릇과 역량 차이가 넘나 압도적이었지 모야? 오죽하면 넘사벽을 느낀 군주가 극단적인…… 요기까지만 할게, 앙뇽 >_<♡

차진혁이 집중한 건 글의 내용이 아니었다.

[글 작성자 : 킹갓제네럴유미]

킹갓제네럴유미.

그 이름을 확인한 차진혁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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