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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91화 (91/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1화

차진솔이 차진혁의 방에 들어와서 몇몇 게시글들을 소리내어 읽었다.

굉장히 신나 보였다.

"비교적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 강자가 보여준 포용과 미덕. 그러나 철저하고 단호한 경고. 실리와 명분을 모두 가져감으로써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었고, 대중들은 환호했다. 청불팀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아, 청불팀은 청담동 불주먹 팀의 준말이래."

"……뭐하냐?"

"한마갤에 엄청 네임드인 백과사전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야. 나는 잘 몰랐는데 오빠가 해낸 게 장난 아닌 거래. 어제 있었던 일이 엄청나게 큰일인 모양이야. 지금 포털이고 TV고 다 난리 났어. 실검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다 우리랑 관련된 키워드야."

차진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이렇게 사소한 걸로 호들갑인가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차전이 있을 거야."

"2차전?"

"최익환 속마음을 읽었거든."

서지아에게 손가락이 잘리던 그 시점, 최익환은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왜? 우리한테 복수라도 한대?"

"그게 당연한 거 아니냐?"

"그게 당연한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당했는데 참으면 사람 아니지. 당연히 복수하는 거야."

"아하. 그런 거구나."

차진혁이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우리를 칠 거야. 조금은 위험할지도 모르지. 애들이 확실히 물레벨은 아니었거든."

차진솔은 차진혁이 약간 신나 보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도 약간 신나는 거 같지?'

그녀는 부정했다.

'아냐. 아까 커피 많이 마셔서 가슴이 뛰는 느낌이 나는 건가 봐.'

이후 차진혁은 밖을 나섰다.

'행운 그 자체'를 사용했을 때, 단순히 업적만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거기서 차진혁은 또 다른 무언가를 분명히 읽어냈다.

홍제동에서 벼락이 내리칠 때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다.

정확한 건 가서 살펴봐야 알 것 같았다.

'느낌이 아주 좋아.'

외형과 각성명을 '들끓었던 전우애'로 바꾼 뒤 연희동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어제 신소룡과 싸웠던 곳을 향해.

* * *

스트리머 김철수가 아닌, 정체불명의 검술가 '들끓었던 전우애'로 플레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중계하듯 계속 말했다.

방송을 안 해도 하는 것처럼.

매 순간 스트리밍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이 정도는 스트리머로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곳이 어제 신소룡이 사망한 위치입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했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요?"

──────────

[업적을 먹는 비석]

──────────

"상세설명을 볼 수 있는 설정이네요. 펼쳐보겠습니다."

──────────

하나의 업적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리.

그대에게 주어질 기회는 한 번뿐.

소모 업적 : (_______)

잔여 시간 : 16:44:21

──────────

이내 알림이 들려왔다.

[소모될 업적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아하. 업적을 제물로 바치는 설정인 것 같습니다."

이런 건 나도 처음 본다.

남은 시간은 16시간.

설명으로 미루어 보건대 기회는 한 번뿐이다.

"무슨 업적을 바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신비, '행운 그 자체' 신비를 사용해 보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아오, 이놈의 신비.

신비는 스킬처럼 쿨타임이 정확히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얘처럼 이렇게 들쑥날쑥한 경우도 많지 않다.

'신비 사용은 안 되고.'

중계자의 시야, 단독 심층 인터뷰 등을 사용해서 알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단서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여기는 연희동이라고!'

연희동에서는 내 능력치가 대폭 상향조정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낼 수가 없었다.

'아, 자존심 상하네.'

아니지.

원래 이런 건 길잡이의 영역이니 내가 자존심 상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걸 알아내려면 유능한 길잡이들을 데려와야 하나?'

한세린은 지금 바쁠 텐데?

두더지맨을 부를까?

약간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 * *

카톡!

'제보영상?'

발신자는 미셸장(돈쭐)이었다.

[당신이 알고 있으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제보할게.]

동영상 내, 등장인물은 총 네 명이었다.

최갑수 영감님.

미셸장.

서대문구 GM 키하엘.

강남구 GM 오무르.

넷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넷은 어제 있었던 사건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갑수 영감님과 미셸장은 무척이나 재미있는 듯 보였고, 키하엘과 오무르는 약간 심각한 표정이었다.

최갑수 영감님이 물었다.

"그래서? 그 비석이 뭔데?"

"그게…… 말씀드리기가 좀……."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결국 키하엘과 오무르는 입을 열고 말았다.

여기에 비석이 생겨나게 된 배경과 조건이 제법 흥미로웠다.

이것도 서울시 제4 시나리오 '경외받는 자'와 일정 부분 관련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자인 '경외받는 자'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수비자.

그러니까 해당 서버를 지키는 영웅과 관련된 비석이었다.

"공격자에게 주어질 안배를, 지구 출신의 김철수가 먹어버리면서 시나리오가 꼬였고, 전체적으로 리버스시스템이 적용됐다는 얘기지요?"

"마, 맞습니다."

원래 '비석'은 수비자와 관련된 물품이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모든 것이 반대로(Reverse) 돌아가기 시작했다.

원래 공격자의 것들을 수비자에게.

수비자의 것들을 공격자에게 넘어가게 설정을 매만졌다나 뭐라나.

영상 속 오무르가 말했다.

"그래서 해당 비석을 제대로 활성화시키려면 공격자 관련 업적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학살과 관련된 것 업적 같은 것 말입니다."

"그게 끝인가?"

"이후 처절한 생존과 관련된 업적이나 특성 등이 필요하도록 설계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더 이상의 자세한 것은 저희도 모릅니다."

제보 영상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제보 영상 감사합니다, 귀한 곳에 쓰겠습니다. 좋은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웃는 이모티콘 하나가 도착했다.

학살과 관련된 업적?

나는 비석 앞에 섰다.

[소모될 업적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업적, '피에 물든 학살자'를 선택하였습니다.]

어차피 마음에 드는 업적도 아니었는데 잘 됐다.

['업적을 먹는 비석'이 업적을 포식합니다.]

내 몸으로부터 녹색의 마력선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특정한 형태를 지닌 마력 문양으로 변했다.

비석이 커지기 시작했다.

붉은색 입이 생겨나서 옆으로 주욱 늘어나는가 싶더니, 마력 문양을 삼켜버렸다.

꺼억-

비석이 트림했고, 입이 있던 자리에 게이트가 하나 생성되었다.

[던전, '수호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 *

오.

이렇게 찬란하고 따뜻한 던전은 오랜만이다.

"햇빛이 내리쬐는 들판이군요. 저만치 멀리 황금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나무가 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풀들이 바람과 부딪쳐 기분 좋은 마찰음을 내었다.

저만치 멀리 위용을 내뿜는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수호수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아름드리나무.

수백 갈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잎이 굉장히 풍성했다.

특이한 것은 나무의 몸통과 줄기가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것과는 좀 다르네.'

내가 경험했던 수호수는 거대하고 상서로운 나무이기는 했으나, 저렇게 황금빛으로 번쩍이지는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이름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황금의 수호수]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이렇게 큰 나무는 진짜 오랜만에 본다.

회귀 이후로는 처음 봤다.

"나무 몸통 중앙 부근에 게이트가 있네요."

높이 약 10미터 부근.

게이트가 생성되어 있었다.

"저기가 출구인 모양입니다."

출구까지 생성되어 있고.

위험한 마물은 딱히 보이지 않고.

일반적인 던전들과 달리, 분위기 자체가 너무나 평화롭고 따스했다.

'보통 이런 곳들이 위험하던데.'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별다른 위험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출구 쪽으로 기어 올라가 보겠습니다."

보통의 경우, 단도를 찍으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그런데 이놈의 나무가 너무 단단해서 단도가 박히질 않았다.

결국 나는 중계상점에서 밧줄과 '뱅뱅이 활'을 구매했다.

대단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밧줄을 묶은 화살에 특정한 회전력을 줘서 나뭇가지를 빙빙 감을 수 있도록 제작된 아이템이었다.

레벨 20만 넘으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아이템 중 하나였다.

"뱅뱅이 활을 쏴서 밧줄을 가지에 걸어 보겠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거라서 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한 번에 성공했다.

"운이 좋네요?"

나는 밧줄을 잡아당겨 단단히 고정한 뒤 밧줄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갈 수 없습니다.]

[황금 수호수의 열매가 필요합니다.]

"열매를 따와야 나갈 수 있는 모양입니다."

나는 밧줄을 타고 높이 올라갔다.

진짜 나무가 어지간히 높네.

어쨌든 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한 가지에 앉았다.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열매가 보였다.

"황금으로 만든 볼링공 같네요."

나는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딱 봐도 상서로운 보물이거든요?"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걸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심으면 '수호수'가 자라날 거다.

수호수의 존재가 연희동을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만큼 엄청난 보물이라는 건데.

'보통 이런 거 건드리면 이걸 지키는 파수꾼이 나타나던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은 여전히 지나치게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그럼 무조건 파수꾼이 나오겠네.'

이제 슬슬 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구를 바로 앞에 대놓고 놔줬어.'

이거 아주 불길하다.

게다가 출구의 발동 조건도 '열매를 획득하라'라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조건이다.

다른 조건들이 이렇게 쉽다는 건, 파수꾼이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얘기다.

'와 근데 이런 걸 지킬 정도의 파수꾼이면…… 도대체 어떤 놈이 나오는 건데?'

이 정도면 예전의 미친 나였어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거 같다.

나는 물론 강해지는 데 미쳐 있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규칙과 선은 있었다.

가능성이 0.0001%가 있으면 늘 이를 악물고 도전했지만 가능성이 0인 것은 과감히 포기했었다.

'이거 완전 노답일 거 같은데.'

제일 베스트는 수호수의 열매를 따자마자 곧바로 몸을 날려 출구로 도망치는 거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해봤으나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가지들 때문에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전속력으로 도망치기는 할 건데.'

근데 아마 실패할 거다.

그럼 결국 나타나게 될 파수꾼과 한 판 붙어야 한다는 건데.

'싸워서 이기라는 건 아닐 거야.'

전에도 연희동에 수호수가 자라났었다.

누가 수호수의 열매를 꺼내왔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아주 멀지는 않았었다.

그즈음의 그 어떤 플레이어라도 이제 나타나게 될 파수꾼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

'아마도 지성체가 나타나겠지. 마냥 싸우는 건 답이 아닐 거야.'

후우.

간만에 엄청 긴장되네.

그래도 답은 없었다.

가능성이 0인 것은 과감하게 포기했지만, 피할 길이 없을 때에는 또 빨리 부딪치는 게 마음 편한 법이다.

[황금수의 열매를 채취하였습니다.]

'일단 도망을…….'

순간, 알싸한 기분이 들었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뭐가 날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된단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일격에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소리다.

'어?'

근데 느껴진다.

반사효과가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멀쩡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중압감이 바람결을 타고 느껴졌다.

'베라클라프 목걸이 효과를 막아냈어?'

지금 내 수준으로는 상대조차 할 수 없는 적이 분명했다.

어디서, 뭐가 날라오는지 안 보인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

.

.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하도 여러 번 공격을 받다 보니 어떤 공격인지 대충은 알겠다.

빛으로 이루어진 빛다발이 내 몸을 꿰뚫었다.

'노답인데.'

공격이 워낙 거세서 앞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말하자면 빛의 창이 내 몸을 계속해서 뚫어버렸다.

결국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밧줄도 끊어졌다.

'아…….'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그리고 결국, 베라클라프의 목걸이가 반사효과를 적용하지 못했다.

이건 100프로 확률이 아니라 80프로 확률이니까.

'이건 좀 억울한데.'

내가 약해서 죽는 건 하나도 안 억울하다.

원래 플레이가 그렇다.

약하면 죽는 게 너무 당연하다.

그렇지만 새로운 재미들을 이제 막 깨달아가고 있는데 죽는 건 좀 억울하다.

'근데 진짜 존나 세네.'

억울함과 별개로 적의 공격은 나를 한 번에 즉사시킬 만큼 강하기는 했다.

[특성, 여벌 목숨이 적용됩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친!'

이자가 누군지 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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