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90화
내게 암살자들이 붙기 시작했던 건 대략 레벨 200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전에도 소소한 이벤트들이 많기는 했었는데, 200부터가 진짜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암살자들을 많이 살려줬었다.
200 초반 시절에는 쫄깃함과 긴장감을 굉장히 즐겼던 거 같다.
실력이 뛰어난 암살자들과 싸우며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던 그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기분이 제법 좋았었는데, '끝이다' 이 한 마디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스킬, '비상하는 용'을 사용합니다.]
중계자의 시야로 보면 얘가 뭘 쓰는지, 이게 어떤 스킬인지, 마력이 어떻게 구동되는지 다 보인다.
어딜 노리고 있는지도 보였다.
'내 인중을 노려?'
싸워보면 알겠지만 인중은 때리기 힘든 곳이다.
즉사시키기도 어렵다.
뉴스만 봐도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둔기에 머리를 맞아서 사망했다는 뉴스는 종종 볼 수 있지만, 인중을 맞아서 사망했다는 뉴스는 거의 없지 않은가.
굳이 이 어려운 인중을 노린단다.
'안 되겠다.'
[스킬, '시간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얘 속도를 약간 늦췄다.
그사이, 나는 모든 업적효과를 해제하고 내 뒤통수를 내줬다.
'이왕 때릴 거면 여기를 때려.'
신소룡의 주먹을 여러 차례 몸으로 받아보니 직감할 수 있었다.
저 공격을 뒤통수로 받으면 즉사다.
혹시 몰라서 보험까지 들었다.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맞추면 아주 큰 효과를 발휘할 거다.
[신비,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합니다.]
퍽!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나이스 타이밍.'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베라클라프 목걸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컥!"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을 공격 대상에게 반사한다.
짧은 단말마와 함께 신소룡은 쓰러졌다.
뒤통수가 꽤 요란한 흔적이 남게 되었다.
지나치게 잔인한 감이 있어서 나는 얼른 모자이크 필터를 씌웠다.
"목걸이 덕분에 겨우 살았습니다."
'어?'
근데 저게 뭐지?
신소룡의 몸 위에 뭐가 둥둥 떠다녔다.
신비랑 비슷하게 생긴 마력 문양이었는데 신비랑은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거기에 손을 뻗어보니 마력이 휘몰아치면서 하나의 스크롤을 형성했다.
"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
[업적, 비상하는 용을 품은 108번의 연격]
──────────
이름이 굉장했다.
'업적이 튀어나와?'
업적이 드랍되는 경우도 있다고 듣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내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이런 건 최상위 랭커의 도적들, 그것도 레벨 200 넘는 애들이나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비상하는 용을 품은 108번의 연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심지어 이거 스크롤 형태다.
이걸 다른 사람한테 양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김정현 거네!'
김정현도 예전에 이거랑 비슷한 거 썼었는데, 활용을 기가 막히게 잘했었다.
아, 그때의 김정현이 그립네.
"아주 운이 좋습니다. 아, 근데 스나이퍼는 도망치고 있네요. 쫓아가 보겠습니다."
[스킬, '시간 배율 촬영'을 사용합니다.]
녀석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어떻게? #스트리머가 왜 저렇게 빨라?]
내가 따라붙은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양새였다.
뭘 겨우 이런 걸로 충격받는 건지 원 답답해 죽겠네.
나는 그의 옆에서 똑같은 속도로 달리며 물어보았다.
"잠시 인터뷰, 가능할까요?"
"이, 이, 인터뷰?"
그래도 머리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는 도망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녀석은 도망치기를 포기했다.
"자, 여기 앉아요."
나는 준비된 스트리머답게 인벤토리에 작은 의자를 가지고 다니고 있다.
얘는 잔뜩 긴장한 모양새로 의자에 앉았다.
"일단 저는 여러분들이 혹독한 수련을 거친, 자질이 꽤 뛰어난 플레이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체가 뭐죠?"
"……."
"뭘 숨기려고 그래요? 안 그래도 신일그룹 회장님한테 친절히 전화까지 왔었는데.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신일그룹 소속, 은하수 연합의 임원. 오망성 중 한 명인 강철 스나이퍼입니다. 내 말이 맞죠?"
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정체가 뭐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냐?]
"근데 크게 실망했습니다. 아니, 여러분들이 물레벨과 다르다는 건 알겠어요. 단순히 레벨만 높인 것이 아니라 훈련도 혹독하게 치러내겠죠."
"……."
"근데 왜 나에 대한 공부를 안 했죠?"
암습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진짜를 보여줬어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방송을 통해 베라클라프 목걸이 다 보여줬잖아요."
"……."
"내가 중계결계 어떻게 쓰는지 다 보여줬잖아. 시간배율 촬영도 공개했고!"
아, 말하다 보니 화가 나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스트리머니까 다시 침착함을 되찾기로 했다.
"저는 레벨 60이 넘어가면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도 다 공개했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내 업적 효과 때문에, 연희동 인근에서는 내 모든 능력이 대폭 강화되는 것까지도 다 공개했죠."
"……."
"그러면 그에 맞는 전략을 가지고 왔어야지요. 본신의 저격 능력 하나만 믿고, 상대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모른 채 달려드는 것이 암살자라 할 수 있나요?"
아 열 받네.
너 진짜 많이 반성해야 한다.
근데 얘 태도를 보아하니 제대로 된 인터뷰를 진행하기 어려울 거 같았다.
수갑이랑 포박줄을 사서 얘를 묶을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상대해 보니까 너무 약해서 그냥 데려가도 될 거 같다.
"일단 저희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 * *
새벽 3시.
차진솔은 현관 앞에 서서 엄지손가락을 계속 물어뜯었다.
"빨리 좀 돌아와라, 제발."
방송으로 확인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렸다.
차진솔은 자고 있는 부모님이 깰까 싶어 목소리를 최대한 낮춘 채 말했다.
"오빠, 괜찮아? 괜찮은 거지? 다친 데는 없지?"
"뭐야, 너 안 잤어?"
"자긴 어떻게 자! 오빠 암습당했잖아."
"아, 너도 내 방송 봤냐?"
차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얘는 내 애청자인 아기상어였으니까 내 방송을 계속 보고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한 차진혁은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 저 사람 데려온 거야?"
차진솔은 차진혁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 머리에 총 쏜 사람이잖아. 왜 살려두는 건데?"
"꽤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 그건……!"
"플레이어답다고 칭찬한 거야."
차진솔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근데 오빠, 우리 잠시 어디 숨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숨어? 왜?"
"신일그룹이 우리 노리고 있다며. 소나기는 피해야지."
차진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너도?"
"응? 뭐가?"
"너도 이걸 생각을 못 한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차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상합니다. 왜 다들 저쪽만 암살자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저쪽에서 암살자를 보낼 수 있으면 이쪽에서도 암살자를 보낼 수 있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일 텐데 말입니다."
이내 차진혁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서지아였다.
"미션, 성공."
서지수가 옆에서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익환 이 자식, 생포했어!"
* * *
민하TV의 강미나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살아생전에 이런 걸 중계하게 될 줄이야!'
대한민국의 쥐락펴락하는 거인, 최익환의 납치를 생중계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이게 성공했다고?'
과학기술은 서지아, 서지수에게 별다른 위해를 끼치지 못했다.
서지아와 서지수가 정말로 최익환을 인질로 잡았다.
이 장면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아니, 근데 그쪽은 왜 왔어?"
현 스트리머 계열 랭킹 1위, 봉주르 TV의 봉킹도 합류했다.
나이 28세.
살집이 약간 있기는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한 남자였다.
그는 재치있는 입담과 함께 현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독점 계약 안 했잖아? 누구나 스트리밍할 수 있다고."
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몰려들었다.
회장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새벽 4시.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가장 떠들썩한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이내 그곳에 차진혁을 비롯한 차진혁의 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진혁은 기분 좋은 설렘을 느끼며 최익환을 향해 걸어갔다.
'아, 이 좋은 엘튜브 각 냄새.'
차진혁이 최익환에게 말했다.
"왜 선물 보낼 생각만 하고 받을 생각을 안 하셨나요?"
"내 패배군."
"솔직하게 인정하시네요?"
"플레이어들의 생태계를 잘 몰랐다."
서지아의 단도가 목에 닿아 있는 상황이지만 최익환은 딱히 두려운 모양새는 아니었다.
차진혁은 저 기개가 마음에 들었다.
"만약 알았다면 이렇게 허술한 실수를 하지는 않았겠지."
"그랬겠죠. 제가 봐도 너무 허접했거든요."
"원하는 게 무엇이지?"
"글쎄요. 지금 그쪽을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거든요."
그 말에 기자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진짜 최익환을 죽이겠냐며 쑥덕거렸다.
차진혁은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죽였을 텐데.'
검왕이었던 차진혁이었다면 그랬을 거다.
그렇지만 이제 그는 검왕 차진혁이 아니었다.
검왕 시절에 비해서 검술 실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때보다 더 넓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한다.
'나는 이제 스트리머니까.'
스트리머란 본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트리머로서 성공할 수 있다.
군주 스킬인 외교력을 경험해 본 게 그에게는 큰 도움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것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으니까.
'지금 얘를 죽이면 경고는 되겠지만, 대중의 두려움을 사겠지.'
외교력 스킬을 발동한 것도 아닌데 많은 요소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일단 이번 건 용서해드릴게요."
"……용서?"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배상금 100억. 목숨값치고는 싸죠?"
최익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리고 내 머리를 날리려 했으니, 회장님과 오망성 전원의 손가락 정도는 잘라야겠네요."
"……."
"대신 치료하는 건 막지 않을게요. 아니다, 우리가 치료해 주죠. 아무런 후유증도 남지 않을 겁니다. 고통은 진짜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죽이려다가 봐주는 건데요."
이 영상은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다.
이것은 플레이어들을 향한 경고였다.
함부로 자신의 팀을 건드리지 말라는.
"지아. 네가 해."
서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은 크게 긴장했다.
"서, 설마 진짜 자르겠어?"
"에이 설마, 겁만 주겠지."
"어어?"
"어?"
결국 차진혁은 최익환을 비롯하여 오망성 전원의 검지손가락을 잘라냈다.
"진짜…… 해버렸다고?"
"미친!"
몇몇 기자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봤기에 상당한 혼란이 일었다.
차진솔이 곧바로 회복을 사용하여 손가락을 붙여주었는데, 의도치 않게 차진솔의 압도적인 힐 능력을 선보이는 자리가 되었다.
차진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이니까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겁니다."
기자들은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차진혁은 피식 웃었다.
'이 시대의 기자들은 아직 순진한 구석이 있는 거 같네.'
미래의 기자들은 겨우 손가락 잘리는 것 정도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데.
"이다음 말은 우리 팀 리더인 청담동 불주먹이 해주시겠습니다."
……응?
김정현은 고개를 갸웃할 뻔했다.
내가 언제부터 리더였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의 손에는 쪽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혼란을 틈타 서지수가 쥐어준 쪽지였다.
[무섭게 경고해. 사람들 눈에는 네가 제일 세 보이나 봐.]
차진혁이 싱긋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정현이 가장 강해 보인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시간이 지나 보니 오히려 그게 좋은 것 같았다.
엘튜브 각 살리기에도 좋고, 여러 가지 연출 면에서도 좋았다.
차진혁은 자신이 스트리머로서 또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정현이 말했다.
"다음 습격이 있다면…… 모두 말살…… 하겠습니다. 경고는…… 한 번뿐."
평소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느라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험상궂고 위험해 보였다.
비주얼적으로 차진혁이 원하는 걸 모두 이뤄냈다.
떠들썩했던 새벽이 지나가고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