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89화 (8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89화

바야흐로 세계는 대격변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각국 정보기관을 필두로 하여 플레이어를 육성하고 있고, 눈치 빠른 몇몇 사기업들 또한 자사의 플레이어들을 키우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일신그룹의 '은하수'도 마찬가지였다.

일신그룹은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하여 한국 각지의 유망주들을 끌어모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키워내는 중이었다.

일신그룹이 가장 공을 들여 키워내고 있는 플레이어들은 바로 암살계열, 그중에서도 원거리 저격계열의 플레이어들이었다.

그건 일신그룹의 총수 최익환의 뜻이었다.

"첫 번째 공식 임무를 부여하겠다."

최익환은 은하수 연합의 리더 격이라 할 수 있는 5인을 불러 모았다.

은하수 내에서는 '오망성'이라 부르는 이들이었다.

세 명은 특수부대 출신의 스나이퍼였고, 두 명은 사격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김철수와 그 팀을 완벽하게 와해시킬 거야."

오망성은 최익환 앞에 차렷 자세로 서서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일단은 대장인 김철수부터, 아니, 차진혁부터."

"순차적으로 한 명씩 죽입니까?"

오망성은 일시에 김철수 팀 전원을 소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최익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한 명, 한 명, 천천히, 순서대로 확실하게 죽여."

최익환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래야 감히 누굴 건드렸는지 깨달을 수 있을 테니."

한 명, 한 명.

천천히 죽여야 한다.

다가올 죽음을 직감하며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그 무력감과 공포감. 그걸 하사하여야 한다."

첫 번째 타겟은 차진혁이었다.

* * *

나는 히죽 웃었다.

그래도 손자보다는 할아버지가 나은 거 같다.

손자는 비플레이어까지 동원해서 나를 공격했었는데, 할아버지는 뛰어난 실력의 저격수를 동원했으니.

'그래. 하나하나 기억이 난다.'

플레이 초창기 위명을 떨쳤던 연합 중에 은하수라는 놈들이 있었다.

일신그룹 휘하의 연합이었지.

'걔네를 이끌던 애들이 오망성인가 뭔가 하는 애들이었고.'

전부 다 저격수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망했지.'

일신그룹의 총수 최익환이 시류를 제대로 못 읽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저격수는 물론 뛰어난 역할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리더에 어울리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리더는 당연히 군주들로 세워야 한다.

은하수 연합은 이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았고, 말하자면 기본부터 흔들렸다는 소리다.

기본이 탄탄하지 않은데 오래갈 수 있겠어?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재미있는 방송이 될 거 같습니다. 방금 제 머리에 구멍이 뚫릴 뻔했거든요."

내 엘튜브각을 위해서인가.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려댔다.

"왠지 저를 노리는 세력의 수장일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듭니다."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다.

-선물은 잘 받았나?

"네, 물론이죠."

일신그룹의 총수 최익환이 틀림없었다.

나도 모르게 톤이 좀 올라갔다.

엘튜브각이 제대로 잡혀서 기뻤다.

-혹시 자네, 복어 좋아하나?

"복어요? 아뇨, 먹어보진 않았는데."

-복어는 둥근 몸과 작은 지느러미 탓에 빠르게 수영할 수가 없지. 천적이 다가오면 물을 들이마셔서 몸을 부풀린다네.

나는 핸드폰을 살짝 가리고서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줬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들어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빠각빠각 울면서 위협을 해대곤 하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나를 속일 수 없다는 뜻이야. 자네의 꾸며진 목소리 뒤에 짙은 두려움이 묻어나는군.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짙은 두려움을 느꼈다고?

어느 부분에서 저렇게 생각한 거지?

'시청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쟤가 내 시청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롤은 시청자에 가깝다.

내 목소리를 듣고 저렇게 느낀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아마도 자네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거야.

"진짜요?"

아 자꾸 설레네.

-명심하게. 자네의 과장된 목소리로도 두려움은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그러게요. 무섭네요."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겉으로는 무섭고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이 할배 덕분에 영감을 얻은 거 같다.'

무서운 척.

두려운 척.

공포에 짓눌린 척.

이런 것도 하나의 연출이 될 수 있겠지!

나는 스트리머답게, 표정을 잘 관리했다.

비장하게 얘기했다.

"한 번,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시청자들한테 말한 건데 할배가 오해했다.

-그럴 수는 없을 게야.

통화가 끊어졌다.

근데 좀 이상하네.

자기가 암살자를 보낼 수 있다면, 나도 암살자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거 같지?

왜 자기만 보냈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

'에이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겠어?'

아닐 거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 안 하겠지.

* * *

나는 전봇대 뒤편에 숨어서 방송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니까 나름 스릴 있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전봇대 뒤에 숨어서 주변을 살피는 시늉을 하다 보니 괜스레 더 긴박함이 느껴지는 거 같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이 긴장감이 화면을 통해 잘 전달이 되면 좋겠다.

'너무 쉽게 막으면 안 되겠다.'

아까 너무 쉽게 막았다.

암살자들에게 하도 많이 시달렸다 보니, 감각이 너무 몸에 배어버린 탓이었다.

'아, 나는 또 성장했구나.'

스트리머로서 보다 좋은 연출을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나는 첩보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조심조심 움직였다.

탕!

머리를 살짝 내밀자 마력탄이 전봇대를 스쳤다.

나는 긴장한 듯 아주 작게 말했다.

"정말 훌륭한 스나이퍼라면 저를 이렇게 또 공격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실 연희동은 저격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는 아니니까요. 몸을 숨길 만한 곳도 많지 않고요."

여기는 한적한 주택가다.

끽해야 2층짜리 주택들이 대다수이고, 엄폐물의 숫자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저격 포인트 자체가 그리 많지 않네요. 숨어 있을 만한 곳들이 짐작이 딱 보입니다."

탄이 날아온 방향.

아까 전봇대와 탄이 부딪친 각도 등을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얼추 몇몇 포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쪽을 향해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했다.

[LV57/신소룡/절권타격가/스킬/108연격]

"아, 왜 도망을 치지 않는가 했더니."

나는 몸을 던져 다음 전봇대를 향해 뛰었다.

"옆에 보호자를 붙여뒀네요."

전봇대 뒤에 다시 몸을 숨겼다.

이렇게 플레이하는 것도 되게 재미있네.

옛날에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

상당히 색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근데 제 생각에는 아주 잘못된 판단인 거 같습니다."

숨어서 저격을 하려면 저격을 하고.

아예 맞서 싸우려면 맞서 싸워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덕분에 위치를 아주 정확히 특정할 수 있었죠."

저런 호위를 옆에 붙여두면 저격수의 은밀함이 떨어진다.

그리고 뛰어난 저격수라면 첫발이 빗나갔을 때 일찌감치 짐을 꾸려서 튀었을 거다.

근데 저 호위가 옆에 있다는 걸 믿고 계속해서 저격을 시도하고 있다.

'기본이 안 됐네.'

저격 실력 자체는 뛰어난 거 같다.

은신 능력도 뛰어나다.

거리가 먼 탓인지, 중계자의 시야로 안 잡히고 있으니까.

'근데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의미 없지.'

나는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결국 한 주택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아, 참고로 나는 이제 레벨 63이다.

비록 도적이나 전투 계열의 신체를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담장과 지붕을 타는 것 정도는 가능한 수준의 육체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

"결국, 찾아냈습니다."

내 예상대로 둘이었다.

거리를 좁히자 저격수의 정보도 눈에 들어왔다.

[LV59/강철 스나이퍼/저격왕/스킬/올 타겟 클리어]

오랜만에 보는 9성 직업이었고 레벨도 상당히 고레벨이었다.

강철 스나이퍼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놈은 많이 지쳤다."

나는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성장해 버렸어.'

하나도 안 지쳤는데 많이 지쳤다고 본 걸 보니, 내가 스트리머로서 연출을 아주 잘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능력을 인정받은 거 같아서 상당히 흐뭇했다.

강철 스나이퍼 옆에 서 있던 신소룡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상당히 날렵한 체형과 작은 체구를 가진 여자였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되는 것 같다.

"각성명 신소룡, 그리고 108 연격이라는 멋들어진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의 업적에는 크게 관심 없지만 저 업적은 좀 궁금하네.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이름인 거 같아서 살펴봤다.

──────────

[108 연격]

일백여덟 번의 공격에 성공하였다.

아아, 유수와도 같은 움직임이여.

부드럽되 강하고, 무겁되 빠르구나.

업적 효과 :

연격 성공 시 중첩 데미지 +2%

연격 성공 시 공격 속도 +1%

──────────

"콤보 공격에 성공하면 데미지가 계속해서 중첩되는 효과입니다. 속도도 빨라지고요. 상당히 좋은데요?"

저런 업적이 좋은 건 복리라는 거다.

복리로 계속 2% 추가 산정이 들어간다.

이론상으로 108번 콤보가 성공하면 복리로 2%가 계속 적용된 거니까…… 어디 보자.

아무튼 세겠지.

김정현한테도 비슷한 게 있었는데 걔는 10배 파괴력을 내기도 했다.

"계산기 꺼내서 계산해 보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계산해 봤다.

그동안 신소룡은 열심히 날 공격하길래 그냥 내버려 뒀다.

"제 방송 처음 들어오신 분들 있을지도 모르니까 설명해드리자면, 저는 지금 이거 적용 중입니다."

한쪽 편에 설명 띄워놨다.

──────────

┗ 레벨 80 이하급 체술계 공격에 완전 면역.

┗ 레벨 100 이하급 체술계 공격에 일부 면역.

──────────

지금 대략 18콤보 정도 쌓은 거 같은데 아직까지 타격은 별로 없었다.

강철 스나이퍼가 답답한 듯 말했다.

"뭐하는 거야! 장난하지 마!"

네가 더 답답하다.

너는 지금 얼른 이곳을 이탈해서 또 다른 저격 포인트를 잡아야지.

저격수가 저기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 이론상으로 100번쯤 콤보 공격에 성공하면 무려 8배의 파괴력을 내는군요! 속도는 대략 2.8배가량 빨라지고요. 지금 대략 30번쯤 콤보에 성공한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별 데미지가 없습니다."

뭐 복리로 적용되니까.

초반 데미지는 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데이터를 쌓아갔다.

'나보다 저레벨, 8성 체술가의 일반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네. 내 몸 성능이 꽤 괜찮아.'

나는 중계자의 시선으로 신소룡의 움직임을 세밀히 읽었다.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공격이 더 세지기 전에 내 몸으로 좀 받아 볼까 봐.'

이런 경험 흔치 않다.

나를 진짜 죽이고자 달려드는 체술가와 진심으로 싸워볼 경험.

8성 체술가의 주먹을 몸으로 받아볼 수 있는 경험.

'레벨 150 넘어가면 이 짓도 어려울 테니까.'

지금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은 지금 즐겨야지.

나는 적용 업적을 바꿔서 속성 방어술을 없앴다.

내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냈다.

퍽!

상당히 둔탁한 느낌이었다.

'꽤 하네?'

나는 거리를 벌렸고, 신소룡은 민첩하게 다시금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내 머리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스킬, 6연각을 사용합니다.]

순간 쟤 다리가 3개로 보였다.

순식간에 공격이 휘몰아쳤다.

'상당히 빨라.'

눈으로만 보고 좇으면 반응하기 힘들 정도였다.

강철 스나이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군. 얼른 끝내."

내가 드디어 밀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연출을 잘했다는 생각에 또 뿌듯해졌다.

"연계되는 공격이 너무 빨라서 숨 쉴 틈도 없네요."

나는 신소룡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냈다.

내 몸이 점차 뒤로 밀려서 옥상 난간 쪽에 닿았다.

어느덧 얘의 공격은 80콤보에 가까워졌다.

이쯤 되니 맨몸으로 받아내기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아하. 이 정도부터 슬슬 부담이 되는구나.'

좋은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냥 막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

이제 여기서부터 중계결계를 간간이 활용해야만 했다.

중계결계를 사용하니 막아내는 것이 더 수월해졌다.

'근데 눈빛 봐라?'

비장의 한 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분명한 눈빛.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저 눈빛과 기세.

싸울 때는 저런 걸 철저히 숨겨야 한다는 걸 모르나?

이런 걸 보면 좀 화가 난다.

'얘네는 훈련도 열심히 했고, 물레벨도 아닌데!'

실력이 준수한 것에 비해 자꾸 기본을 놓친다.

끊임없이 무려 100콤보를 달성했다.

상당한 연계 능력이었다.

이제 맨몸으로 받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별의 방패.'

한 번은 별의 방패를 써서 턱을 보호해야만 했을 정도였다.

다 좋다.

다 좋은데.

저렇게 한 방을 숨기고 있다는 매서운 눈빛이 너무 거슬렸다.

"끝이다."

얼씨구?

눈빛을 보여주는 것에 이어 친절하게 경고까지 해준다고?

얘는 플레이를 뭐로 보는 거냐?

"이건 선 넘은 거지."

날 죽이려 드는 건 참아도, 이건 못 참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