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88화 (8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88화

특별한 조건을 만족했을 때에, 갑자기 나타나는 마물들이 존재한다.

저놈 또한 아마 그런 놈일 확률이 높았다.

흙더미와 무기들, 그리고 시체들을 마구잡이로 엉겨 붙어 만든 것 같은 괴물의 이름은 '뒤섞인 망령'이었다.

크기는 대략 7미터쯤 되는 마물이었다.

[LV62/뒤섞인 망령/스킬]

레벨이 62에 불과했는데(?) 주황색으로 표기되었다.

레벨보다 훨씬 강력한 놈일 확률이 높았다.

쿵!

놈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했다.

"뒤섞인 망령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떤 공격을 할지 모르겠군요. 덩치가 커서 그런가 몸동작은 둔합니다."

놈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한 손에 총 한 자루씩이 들려 있었다.

"피해!"

애들도 나름대로 위협을 느꼈는지 자동차 뒤로, 나무 뒤로 숨었다.

"총을 쏘는 마물이라니. 상당히 특이한 녀석인데요. 동작은 느리지만 총을 활용한 공격은 굉장히 빠릅니다."

이름이 망령이라 유령형인 줄 알았더니만 기계형 마물인 것 같다.

나중 되면 기계형도 흔하지만, 어쨌든 지금 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놈은 아니었다.

"다들 괜찮아?"

서지아가 팔에 약간의 부상을 입은 걸 제외하면 다들 큰 부상은 없었다.

"놈의 공격력이 상당하군요."

나무를 폭발시켜버릴 만큼의 강한 파괴력은 없었지만 사람을 관통하기에는 충분한 데미지를 가진 공격이었다.

쿵! 쿵!

놈은 느리지만 육중한 발걸음을 옮기며 우리를 찾아다녔다.

내가 말했다.

"목재현. 이건 우리 둘이 같이 힘을 합쳐야 할 거 같네."

"……어떻게 하면 돼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

말 안 들으면서 능동적인 플레이어보다, 말 잘 들으면서 수동적인 플레이어가 더 좋기는 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좋은 건 말 잘 들으면서 능동적인 플레이어다.

여태까지 목재현의 플레이가 그럭저럭 마음에 들기는 했었는데 오늘을 경험하고 나니 아무래도 생각이 바뀌었다.

아직 부족하다.

"저는 그냥 형이 시키는 대로……."

"그러니까 졌지."

골드스푼인지 뭔지.

그놈들한테 졌다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알고 있을 테니 깨닫는 바가 많을 것이다.

"생각을 좀 해봐. 스트리머인 내가 왜 굳이 탱킹에 나서겠다고 하겠어?"

"주 공격무기가 두 개……니까요?"

저 말이 맞았다.

'뒤섞인 망령'은 기관단총 두 자루를 들고 있다.

각각 하나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그럼 네가 어느 쪽에 설래?"

"저는……."

아, 안 되겠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얘는 나중에 특훈해야겠다.

"여기로 와. 나랑 자리 바꿔."

"왜, 왜요?"

"오른손 공격이 더 세더라. 쟤 오른손잡이야. 네가 저거 맡아."

"어차피 총으로 공격하는데 그런 게 있어요?"

"보면 모르냐?"

답답해 죽겠네.

피격된 흔적들을 읽어내면, 오른손으로 쏜 총이 더 세다는 걸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데 말이다.

"……아."

그제야 목재현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스스로 깨닫지는 못해도 단서를 주면 알아먹는 수준은 되어서.

"목재현, 네가 주 탱커야. 잊지 마. 그리고 차진솔, 너는 내 옆에 서. 나랑 같이 움직일 거야. 타이밍 잘 봐서 내 피 빨아."

"아, 알겠어."

"어그로는 나랑 목재현이 담당할 거고. 서둥이들. 너넨 뭘 해야겠어?"

자동차 뒤쪽에 숨은 서지아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거. 수상해요."

내가 레이저 포인트로 한 지점을 짚었다.

놈의 꼬리 부분이었다.

"이거 말하는 거지?"

"네."

정확히 봤다.

꼬리처럼 보이는 저건 사실 꼬리가 아니다.

지면으로부터 연결된 일종의 전원선 같은 거다.

"좋은 판단이야. 저걸로 마력을 공급받는 설정인 거 같아."

"잘라볼게요."

서지아는 꽤 좋은 판단을 보여주었다.

딜러로서 합격이다.

"김정현. 너는?"

사실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건 김정현이다.

내 과거의 동료이기도 했었고, 정의감이 지나치게 투철하다는 단점만 제외하면 김정현은 늘 뛰어난 플레이를 보여줬었으니까.

"저는…… 대기…… 하겠습니다."

"왜?"

"제 어설픈 공격이…… 어그로를 튀게 할 것…… 같습니다."

공격은 서둥이들에게 맡겨두고 대기하겠다는 판단.

아주 훌륭하다.

"혹시 어그로가 튀었을 때…… 제가 어그로…… 재확보 하겠습니다."

다들 자신의 역할을 비교적 정확히 깨달았다.

이 정도 머리가 돌아가는데 골드스푼한테는 도대체 왜 진 거지?

"목재현. 움직여."

목재현이 수목산성을 펼치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 *

차진혁은 씨익 웃었다.

"패턴과 리듬감에 집중해. 무작정 연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패턴과 리듬이 있어."

전담 탱커인 목재현보다 차진혁이 훨씬 빨리 망령의 공격에 익숙해졌다.

'중계결계로 대부분의 것들을 막아내고.'

그리고 가끔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 만한 공격.

급소로 들어오는 공격.

그리고 검은색 탄환의 공격은 수호자의 반지에 내재된 '수호자의 방패'로 막아냈다.

'시너지 미쳤네.'

다중인생으로 설정을 조작해서 '수호자의 방패'를 그냥 '중계자의 결계'로 이름을 설정해 놨다.

덕분에 차진혁은 중계결계만을 사용해서 망령의 공격을 모조리 차단하는 것처럼 보였다.

"왼손 공격이 확실히 많이 약한 모양입니다. 저는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네요."

그렇다기보다는 중계결계와 수호자의 방패의 연계 컨트롤이 지나치게 좋았던 것이지만 차진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기준은, 그의 친구였던 최강벽이었으니까.

'아, 팔에 한 대 맞았다.'

최강벽이었으면 이것도 안 맞았을 텐데 자존심이 좀 상하네.

혹시 몰라 말했다.

"나는 멀쩡해. 치료하지 마."

"알아."

차진솔이 힐을 집중해야 할 사람은 차진혁이 아니라 목재현이었다.

목재현은 차진혁보다 상태가 더 심각했다.

차진혁이 목소리 높여 말했다.

"야! 숨어서 피할 건 피하고! 막을 건 막고! 맞아줄 건 적당히 맞아야 할 거 아니야!"

모든 공격을 다 막아낼 수는 없다.

이 세상에 안 다치는 탱커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맞아줄 것도 안 맞으려고 용을 쓰니까 저렇게 허덕이지.

"힐러 믿고, 내줄 건 내주란 말이야."

"그, 그게……!"

"안 다치면 그게 플레이냐?"

목재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저 말이 맞았다.

겁이 나서 부상을 최소화하려고 했었는데 그건 옳지 못한 방법이었다.

'모든 공격을 막을 수는 없어.'

그의 마음에 존재하는 벽 하나를 깨부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스스로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훨씬 쉽다.'

아까보다 공격을 막아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건 맞아주고.'

고통은 있었지만 이내 차진솔의 힐이 좋은 타이밍에 들어왔다.

그리고 목재현은 다시금 수목산성을 펼쳐, 보다 안정적인 방어태세를 구축했다.

서지아와 서지수는 호흡을 맞췄다.

'우리도.'

'우리도 보여주자.'

어그로는 완벽하게 끌린 상태.

둘은 방어에는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공격을 위해 움직였다.

[스킬, '그림자 합격(合擊)'을 사용합니다.]

[스킬, '그림자 합격(合擊)'을 사용합니다.]

그림자 살수(右)와 그림자 살수(左)가 함께 사용하여 공격력을 극대화하는 스킬.

두 그림자 살수의 몸에서 검은색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빛살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높이 뛰어오른 그녀들은 X자로 교차하며 움직였다.

허공에 그녀들의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그때, 김정현이 스킬명을 크게 외쳤다.

"몸의 대화!"

김정현이 망령의 몸을 향해 달려가 세차게 부딪쳤다.

'그림자 합격'을 사용하는 순간, 어그로가 풀릴 낌새가 보였기에 김정현이 끼어든 것이었다.

쿵!

김정현과 망령의 몸이 부딪쳐 커다란 소리가 났고, 김정현이 총알 네 발을 맞았다.

덕분에 서지아와 서지수는 합격 스킬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전원선에 X자 형태의 검흔이 새겨지는가 싶더니, 이내 잘려 나갔다.

"언니, 우리가 해냈어!"

서지아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레벨이 무려 62에 달하는 고레벨 마물이었지만 생각보다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뒤섞인 망령'을 처치하였습니다.]

서지아는 뒤섞인 망령의 몸이 쓰러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알겠어."

"뭘?"

"진혁 오빠 말."

서지아는 나름대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오빠 말. 맞아."

"그니까 무슨 말?"

"우린."

서지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땅을 내려다보았다.

62레벨의 마물을 이렇게 쉽게 잡았다는 건 별로 기쁘지 않았다.

"지면 안 됐어."

차진혁과 함께 플레이해보니 알 것 같았다.

차진혁 말대로, 효율적으로 움직였다면 골드스푼에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0의 힘을 가지고 있으나 50도 발휘 못한 느낌이었다.

이 감정은 비단 서지아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다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목재현이 그랬다.

목재현은 떨떠름한 눈으로 차진혁을 바라보았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플레이.'

차진혁이 있고 없고.

그 차이가 너무 컸다.

그는 멍하니 차진혁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안 다치면 플레이 아니라면서."

목재현이 본 차진혁은 하나도 안 다쳤다.

(아까 총알에 스쳐 가벼운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이미 회복한 이후였다.)

그 말을 들은 차진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나는 스트리머잖아."

목재현은 그 뻔뻔한 모습을 보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안 다치면 플레이가 아니지만, 그 이상의 경지로 넘어서면 안 다칠 수 있는 거구나. 진혁이 형은 지금 그걸 나한테 몸소 보여준 거고.'

천외천의 플레이.

그걸 직접 경험한 느낌이었다.

오늘, 벽 하나를 깨부순 목재현은 차진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강해지고 싶다'라는 열망이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 *

나는 여러모로 뿌듯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 63을 달성하였습니다.]

'레벨이 벌써 올라?'

"이렇다 할 보상이 없는 대신 경험치를 왕창 주는 형태의 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취미를 즐기는 날인데 레벨업까지 했으니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애들이 작건 크건 깨달음을 얻은 거 같다.

'우리 플레이도 나름 완벽했고.'

아쉬운 부분들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로서도 상당히 만족하는 플레이였다.

애들은 애들의 능력을 십분 다 끌어내서 싸웠다.

이 맛에 군주하는…… 아니, 중계하지.

'위험해.'

요즘 미치겠다.

검을 휘두르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군주 역할도 너무 재밌는데, 스트리밍도 지나치게 즐거웠다.

한 가지 우물만 파도 대성하기 어려운데 자꾸만 이렇게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치고 싶다.

나중 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근데 어차피 레벨 150까지만 할 거니까 상관없지 않나?'

생각해 보니 이것저것 다 해도 상관없을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상당히 만족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몇 가지 정리할 것들이 있었다.

'과거에 김정현이 최재겸을 죽였었지.'

그 덕분에 꽤 피곤한 일에 휘말렸던 게 기억이 난다.

JG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일선그룹 총수의 친손자였으니까.

'지 못난 손자가 죽은 건 어쩔 수 없지만, 감히 자기 핏줄을 건드린 책임은 져야 할 거라고 했었던가?'

맞아.

그런 일이 있었다.

이후로 너무 많은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오다 보니, 이 정도 소소한 헤프닝은 다 잊고 살았네.

쾅! 쾅!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이거 봐봐! 지금 난리 났어!"

차진솔이 핸드폰을 들고 내 방으로 뛰어왔다.

내용은 내가 대충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일선그룹 총수가 직접 공표했다.

"손자를 살해한 죄를 묻겠대. 법이 물을 수 없다면 자기가 직접 묻겠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대. 우리 너무 큰 일에 휘말려 버린 거 아니야?"

"음."

자세히 기억 안 나는 거 보면 회귀 전의 우리 팀은 꽤 쉽게 이 위기(?)를 벗어났던 거 같다.

아마 위기 축에 속하지 않는 위기였을 거다.

다만 그때는 국가 차원의 도움, 혹은 마리아를 필두로 한 시스템 차원의 지원이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게 차이겠지.

"무섭냐?"

"응?"

차진솔이 헤헤 웃었다.

"흥미진진 해져또."

"꺼져."

아, 진짜 이걸 때릴 수도 없고.

나는 차진솔을 쫓아낸 뒤 생각을 정리했다.

'어차피 한 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일.'

상대가 일선그룹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과도기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과 싸워야 한다.

일선그룹을 제압하고 나면 우리에게 덤비는 놈들도 많이 줄어들겠지.

'정말 압도적으로 찍어눌러야 효과가 좋은데.'

생각하다 보니 수호수 던전을 떠올렸다.

그래.

그게 좋겠는데.

'그러고 보니 곧 수호수 던전이 열릴 때 아닌가?'

수호수 던전.

오픈베타 서비스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던전이다.

게이트가 수시로 바뀌는 던전이었고, 특정 조건을 만족했을 시에 연희동 어딘가에서 시작된다.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새벽 1시.

나는 일단 밖으로 나와봤다.

'수호수 던전이 열리는 조건이 뭐더라? 그게 공개가 됐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획득한 직감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특성, 중계결계를 사용합니다.]

내 머리 쪽에 가벼운 충격이 느껴졌다.

뭔가가 땅에 떨어졌다.

'마력탄?'

바닥에 떨어진 마력탄이 프스스- 하고 사라져 버렸다.

일선그룹이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다.

'저격이라.'

느낌으로 보건대 상당한 실력자인 거 같았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랜만이네.'

실력이 뛰어난 저격수에게 노려지는 이 기분.

평화에 무뎌져 잊고 있던 감각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는 것 같았다.

발, 종아리, 무릎, 척추를 타고 뇌까지 이어지는 이 불길하고 짜릿한 감각.

아, 이거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나 왜 설레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