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84화
아무래도 GM의 도움을 받아야 할 거 같다.
시스템 가디언이 나타나 날 공격했었을 당시, 키하엘이 분명 말했었다.
"이 건과 관련한 보상은 추후 따로 논의하도록 하지."
양심이 있으면 먼저 나타나서 현재 보상은 어떻게 논의되고 있으며 어떻게 진행될 거다, 라는 식의 얘기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아무래도 양심이 없는 모양이다.
내가 직접 불러서 얘기하기로 했다.
'이걸 어떻게 검의 형태로 가공하는지 물어보면 가르쳐주겠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GM을 불러서 가공법을 알아내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검을 어떻게 얻게 되었느냐에 대한 개연성도 부여해놓는 게 좋을 거 같다.
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납득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제 뭘 하든 시청자의 눈으로 먼저 바라보게 되는 거 같네.'
진짜 스트리머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
나는 한세린을 불렀다.
"와…… 너네 집 뭔데?"
우리 집에 처음 와본 한세린은 집구경을 시켜달라며 난리였다.
"서울 시내에 이런 단독주택을 짓고 살 수 있다고? 너 금수저였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
"너한테 서사를 좀 부여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
"서사?"
나는 한세린을 안다.
한세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관종 아닌 척하는 관종이다.
"그게 말이야. 내가 이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건 결국 대검 라칸을 사냥했다는 건데, 내가 일선에서 나서서 사냥을 함께 했다는 건 별로 알리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내가 이걸 얻게 된 것은 사실 우리랑 함께했던 길잡이인 한세린의 비밀스러운 능력 덕분이라고 소개할까 해."
"그건 거짓말이잖아."
"싫어?"
"싫다기보다는 좀 떨떠름한데. 네가 나섰다는 걸 굳이 숨길 필요가 있어?"
"그냥, 최소한의 양심 같은 그런 거야. 너한테 나쁠 게 전혀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가치가 과대평가될 수도 있잖아. 과소평가는 그냥 기분 더럽고 말지만, 과대평가는 날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어."
"두더지맨도 볼 텐데?"
"서사 좋네."
한세린은 곧장 동의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가 비밀스러운 작업을 통해 수월히 클리어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길잡이로서 활약을 톡톡히 했다는 내용인 거지? 내 전력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공개로 진행했다는 걸 방송에서 얘기하겠다는 거고?"
한세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더지맨도 확실히 보겠지?"
* * *
며칠 전.
두더지맨은 엘튜브를 통해 한세린을 모니터링했다.
마침, 김철수와 함께하고 있었다.
"패스파인더……! 랭킹 3위로 멀어졌는데도 날 불안하게 만드는 여자!"
뭐랄까.
비상을 위해 잠시 몸을 움츠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불안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야."
사실 현 랭킹 2위가 누군지는 관심도 없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한세린이었다.
"어?"
김철수 팀은 '대검 라칸의 무덤'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던전을 클리어 중이었다.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한동안 방송이 진행되지 않았는데, 며칠 뒤 놀라운 사실이 방송되었다.
-……하여, 결국 대검 라칸의 핵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획득하면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적절한 가공을 통해 이 핵을 대검으로 복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만 아직 그 방법은 못 찾았습니다. 어쨌든 대검 라칸의 무덤을 클리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최고의 길잡이, 패스파인더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더지맨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황급히 랭킹보드를 확인해 보았다.
──────────
[길잡이 계열]
[1위. 패스파인더(LV:57)]
[2위. 두더지맨(LV:56)]
──────────
"안 돼!"
어느새 패스파인더는 1위를 탈환했다.
"도대체 어떤 비밀스러운 전략과 방법을 쓴 거지?"
여태까지 공개된 영상을 수차례 돌려보며 탐구해 봤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잡이로서, 저곳을 어떻게 클리어했는지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영상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직접 봐야 알 것 같다.
"저긴 어디냐, 두지!"
이대로 뒤처질 수는 없었다.
영상을 분석하다 보니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패스파인더가 했으면 두더지맨도 할 수 있다, 두지!"
어느 쉬는 날 오후.
그도 '대검 라칸의 무덤'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 * *
방송을 공개한 뒤, 나는 GM콜을 사용했다.
'이럴 줄 알았다.'
내 GM콜에는 잘 반응을 안 한다.
예상 대기 시간이 8시간이 뜨는데, 요즘 GM일이 엄청나게 바빠진 모양이다.
8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그걸 기다리래.
이건 못 참지.
곧바로 나는 청담동으로 향했다.
몽마 릴리아가 나를 맞아주었다.
"당신, 최근 한 건 했던데요?"
달큼한 복숭아 향이 물씬 느껴졌다.
은근히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마다, 내가 '중계자의 시야'와 '제왕의 격'을 가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릴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래도 당신 유혹에 실패할 것 같아."
"나를 왜 유혹해?"
"대표님께서 당신을 유혹하면 큰 상금을 내리신다 했거든요. 일종의 현상금 같은 거랄까."
"그걸 이렇게 다 말해도 되는 거야?"
"어차피 기술로는 안 될 거 같아서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릴리아가 내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언제 잡았는지 모르겠는데 은근슬쩍 내게 팔짱을 꼈다.
움직임이 상당히 은밀하고 재빨랐다.
"기술로는 어렵고, 마음으로는 되지 않을까 싶어. 당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
"……."
"몽마는 본능적으로 강한 이성에게 끌리거든요."
얘는 방금 은근슬쩍 내게 팔짱을 꼈다.
만약 나를 찌르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찌를 수 있었다는 소리다.
그런 강자가 나보고 강한 이성이란다.
'지가 얼마나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건가?'
얘는 반달웃음을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얘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위험하다.'
이런 미인계 많이 당해봐서 안다.
처음부터 조심하고 쳐내지 않으면 나중에 무슨 호된 꼴을 볼지 모른다.
나는 단도를 꺼냈다.
"셋 셀 동안 안 떨어지면 찌른다."
릴리아가 빙긋 웃으며 옆으로 멀어졌다.
"방금 나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예쁘긴 하지."
나도 인정할 건 인정한다.
미인계 쓰는 계략가치고 안 예쁜 사람 못 봤다.
예쁘면 예쁠수록 더 위험하다.
"근데도 나를 이렇게 밀어내는 거예요?"
혼잣말로, '정말 섹시해. 나 또 끌리고 말았잖아?' 등의 헛소리를 해댔다.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직도 멘트 공부는 안 했나 보다.
"아무래도 좋아요."
릴리아는 배시시 웃으며 자꾸 나를 훔쳐봤다.
볼 거면 그냥 보지 왜 자꾸 훔쳐보는지 모르겠네.
"일단 대표님께 안내할게요."
릴리아가 앞장서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엉덩이는 또 왜 저렇게 흔드냐 기분 나쁘게.
* * *
본명 돈벼락.
한국맵 이름, 최갑수가 말했다.
"최근 한 건 했더군."
"보셨습니까?"
"대검 라칸의 핵을 획득했지? 그걸 나한테 보여주려고 온 건가?"
최갑수는 어딘지 모르게 뿌듯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상당히 흐뭇했다.
스트리머에게 특별대우 받는 시청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제 이런 식으로 시청자 관리도 하는구만! 으하하핫!"
최갑수는 무척 흡족했다.
이것만으로도 돈쭐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
차진혁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참, 서대문구 GM콜을 해도 됩니까?"
"서대문구 GM콜을? 그리고 여긴 강남구인데?"
원칙적으로 서대문구 GM을 콜하기 위해서는 플레이어가 서대문구에 있어야 한다.
"영감님이라면 가능하잖아요."
"가능하긴 하다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이건 일종의 갑질이네."
"갑질을 부탁하려는 게 아니고요. 입장제한 1명, 오로지 단 한 명만을 위한 방송에 초대드리려고 하는 거거든요."
최갑수에게 시스템 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방송 '라칸 대검 복구와 관련하여'에 초대받았습니다.]
[입장인원 : 0/1]
10초 만에 키하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차진혁이 말했다.
"키하엘 GM, 반갑습니다. 저는 시스템 가디언에 의해 사망할 뻔했습니다. 그렇죠?"
"……방송 중이냐?"
"시청자는 한 명뿐입니다."
키하엘은 대충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 이 방송은 오로지 최갑수를 위한 방송이었다.
최갑수가 저렇게 뿌듯한 표정으로 엘튜브를 살펴보고 있는 걸 보니 틀림없었다.
'미친!'
어차피 눈으로 보는 거랑 방송으로 보는 거랑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무튼 최갑수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상은 추후에 논의하자더니 며칠째 아무 말이 없어서 부득이 GM콜을 사용했어."
미친놈이 트리니티를 섭외해서 GM콜을 불러?
강남구에서 서대문구 GM을?
따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분위기를 흐리기에는 트리니티 VIP인 최갑수가 너무 즐거워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부상이 너무 심했어서."
"거두절미하고 말할게. 내가 최근 이걸 얻었거든. 혹시 방송으로 확인했는지 모르겠다만."
차진혁이 대검 라칸의 핵을 내밀었다.
키하엘은 인상을 찡그렸다.
'저걸 얻었다고? 어떻게?'
3트째까지는 모니터링했었다.
결국 이들의 역량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하다 판단하여 신경을 껐었는데, 어느새 클리어를 결국 해낸 모양이었다.
"자세한 건 방송으로 확인해 봐. 해당 내용은 다 업로드 해놨거든."
"……."
키하엘도 더 이상 따져 묻지 못했다.
개연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영상이 엘튜브에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많은 건 안 바란다. 이거 어떻게 검으로 제작해?"
"……."
"해달라는 것도 아냐. 그냥 방법만 알려달라는 거야. 네 실수로 나를 죽이려 한 것치고는 꽤 값싼 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 * *
키하엘로부터 정보를 전해받은 뒤, 나는 종로로 향했다.
참고로 지금은 최갑수 영감님을 위한 서비스 방송 중이다.
"왜 이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이런 건 대장장이 뮬리누스와 얘기해 보면 될 걸 말이죠."
시청자는 한 명뿐인데 후원이 1,000만 다이아나 들어왔다.
GM을 구슬려서 원하는 걸 잘 얻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나 뭐라나.
베라클라프 목걸이를 강화해 준 외눈박이 거인, 뮬리누스와는 이미 구면.
"왜 날 안 찾아오나 했다."
"내 방송 봤냐?"
"당연히 봤지. 베라클라프 목걸이를 유용하게 잘 사용하더군. 잘 봤다."
뮬리누스는 상당히 뿌듯해 보였다.
자기가 강화해 준 아이템을 잘 사용하는 것이 대장장이의 보람이나 뭐라나.
아무튼 뮬리누스와의 호감도는 유지되고 있었다.
"대검 라칸을 복구하는 법?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럼 정식으로 의뢰하지."
"먼저, 1억 다이아."
"뭐?"
뭐가 그렇게 비싸.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야. 시스템이 정해놓은 정가야."
"시스템이 정해놓은 정가가 있다고?"
"그래."
이런 경우는 하나뿐이다.
이 아이템이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생성한 '시나리오'와 관계가 있는 경우다.
"그리고 금이 많이 필요해. 카트리나한테 가봐. 네가 예전에 팔았던 금괴를 상당량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다행히 카트리나도 내게 굉장히 우호적인 상인이었고, 나는 그리 비싸지 않은 값에 금괴를 획득할 수 있었다.
뽀뽀해 주면 더 싸게 판다길래 그냥 정가에 샀다.
뮬리누스가 말했다.
"대검을 제작해 주는 건 문제가 안 돼. 다만, 네 녀석한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무슨 문제?"
"대검 라칸에는 약간의 에고가 삽입되어 있거든. 그래서 주인을 선택하는 무기가 될 거야."
예전의 대검 라칸은 순순히 나를 주인으로 인정했었는데.
"내일 와. 제작은 금방 하니까."
하루 뒤, 뮬리누스는 정말로 대검 라칸을 복구해 주었다.
"받아봐. 과연 검이 60레벨에 불과한 너를 주인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방송을 켰다.
[검이 주인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검 라칸을 손에 쥐었을 때, 하마터면 나는 검을 놓칠 뻔했다.
콰직! 콰지지직!
검 손잡이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저항이 너무 강렬해서 어깨까지 저릿했다.
"손바닥 살점이 뜯겨나가고 있습니다. 피가 나네요."
실제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뚝까지 상당한 화상을 입었다.
"고통이 상당합니다."
뮬리누스가 말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뮬리누스, 얘를 어떻게 굴복시켜야 할까?"
"나야 모르지. 그나저나 너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화상이 어깨까지 타고 올라갔어."
"음, 방법을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야, 너 살이 녹고 있어! 흐물흐물해지고 있다고!"
플레이를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왜 저렇게 덩치에 안 맞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네.
"이, 일단 내려 놔봐! 우리 같이 생각을 해보자."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한번 해보기로 했다.
순간, 뮬리누스가 움찔했다.
"……지금 뭘 어떻게 한 거냐? 어떻게 한 번에 굴복시켰어? 아, 아니, 너 팔은 괜찮아? 너덜너덜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