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78화 (7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8화

키하엘은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 버렸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안 본다."

이렇게 퇴근했다가 다시 불려가는 일이 도대체 몇 번이었단 말인가.

너무 시달린 나머지 업무용 핸드폰 외에 개인용 핸드폰을 하나 새로 구매했다.

"뭔 놈의 맨날 긴급이야?"

막상 가보면 진짜 긴급인 적은 없었다.

방금도 무슨 긴급 어쩌고였는데 확인은 안 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열정맨 세르찬이 보낸 카톡이 아니었다.

[긴급, 서울시 시나리오, '경외받는 자' 시작.]

[시나리오의 안정적인 진행을 위하여 변수 제거 요망.]

[긴급, 서울시 시나리오, '경외받는 자' 시작.]

[시나리오의 안정적인 진행을 위하여 변수 제거 요망.]

"아니 뭐가 자꾸 이렇게 울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온 키하엘은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을 살펴볼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했다.

저 정도로 울리는 거면 진짜 긴급인가 싶은 마음이 일었다.

"아니다, 속지 말자."

키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 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보니까 진짜로 급한 건 시스템 알림으로 오더라."

시스템 차원에서 정말 급박한 것은 아예 시스템 차원에서 알림이 온다.

플레이어들이 알림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핸드폰에 계속 메시지가 전해졌다.

[시스템의 직접 개입 불가]

[본 메시지를 확인하는 즉시, 비밀리에 변수를 제거할 것.]

키하엘은 아예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계속 내버려 뒀다가는 결국 확인해 버릴 것 같아서 그랬다.

"지구는 넷플러스에 재미있는 게 많다던데."

한편, 열정맨 세르찬의 핸드폰도 끊임없이 울렸다.

키하엘에게 전송된 메시지와 같은 메시지였으나 그는 그걸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이놈의 경위서!'

여수시 시나리오에서 손 떼고 나온 건 천운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낙하산이 들어갔던 건 불운이었다.

'관리만 제대로 하고! 플레이어 회유만 제대로 해도! 비상섬여가 죽는 일은 없었을 텐데!'

낙하산 GM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여수시 시나리오는 폐기되었다.

그와 관련된 경위서를 벌써 수십 장째 쓰는 중이었다.

[시스템의 직접 개입 불가]

[본 메시지를 확인하는 즉시, 비밀리에 변수를 제거할 것.]

온 신경이 경위서에 쏠려 있어서 메시지를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 * *

엘튜브각이 제대로 서버렸다.

"정말 운 좋게도 던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벤트 던전이라는 말을 써도 되나?

그냥 생긴 던전이라고 해야 하나?

적당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따로 언급은 안 했다.

"정말 우연히 들어왔는데요, 갑자기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이 들려왔네요."

지금 방송을 켠 건 아니었다.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이 영상을 공개해도 될지 안 될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가 내가 가진 '스트리머로서의 역량'으로 클리어할 수 있는 곳이면 추후에 공개를 할 것이고, 그 외에 다른 역량을 끌어와서 클리어해야 하는 곳이면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알림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서울시 제 4시나리오, '경외받는 자'가 시작되었습니다.]

"시나리오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단순 퀘스트 같은 것보다는 좀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 중입니다."

크고 작은 퀘스트들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가는 것.

그게 시나리오다.

너무 잘 아는 사실이지만 일단은 모른 척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폐허가 된 공간이 나타났네요."

아주 커다란 폐가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렇다 할 마물이나 위협적인 함정은 보이지 않는 것 같군요."

이벤트 던전은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덕분에 무척 즐거운 상태다.

'오픈베타 서버에서 이벤트 던전에 들어올 줄이야. 그것도 시나리오랑 연관된.'

이건 아마 전 세계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이벤트 던전은 보통 정식 오픈 이후에나 발생하는 던전이니까.

"일단 저쪽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건물의 잔해더미를 밟으며 걸었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신의 감각이 확장되었다.

"천장에는 구멍이 나 있습니다."

밤하늘이 보였다.

"마치 저 천장을 통해 거대한 무언가가 드나든 것 같은 느낌이네요."

내 직감이 말해주고 있다.

추후 저기서 뭔가가 나타난다.

일반 마물이든 보스몹이든.

아무튼 뭔가가 나타나긴 할 거다.

언젠가 한 번, 비슷한 곳에 왔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복도를 따라 걷겠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복도는 점점 더 어두워졌다.

먼지가 자욱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 저기 문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거 함부로 열면 큰일나기는 하는데.

무방비로 문을 열면, 갑자기 사람 팔뚝만 한 쇠뇌가 튀어나온다거나 펄펄 끓는 쇳물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길잡이가 없으니 제가 직접 열어야겠군요. 혹시 모르니 중계결계를 사용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중계결계!'

혹시나 있을지 모를 위협에 대비했지만 별다른 위협이 없었다.

'이상하네.'

위험한 게 튀어나와도 진작에 튀어나왔어야 했는데.

그간 그가 경험했던 이벤트 던전들과는 양상이 많이 달랐다.

문 안쪽에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어우, 깜짝이야."

사람이 아니라 해골이었다.

"입고 있는 옷으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노파였던 것 같네요. 혹시 단서가 있을지 모르니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이상하게 트랩이 없네.

나는 해골 주위를 잘 살펴보았다.

해골은 뜨개질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았다.

'이 해골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까부터 묘하게 이곳이 낯설지 않았다.

이런 형태의 해골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가.

그때,

후웅- 하고 바람이 불어왔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문 쪽으로 다가가 보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갇힌 거 같습니다. 이 안에서 어떤 단서가 있을 텐데요."

나는 해골의 옷을 뒤져보았다.

주머니 안에 쪽지가 하나 있었다.

[이곳에는 오직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하다. 살고자 열망했던 모든 것들이 죽음의 권세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도 악령에게 잡아먹혀 버렸구나. 아아…… 통탄하여라. 나의 이 분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으랴. 나의 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으련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쪽지였다.

던전을 플레이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내용은 수도 없이 많이 본다.

"이 해골에게서 정보를 더 뽑아내야 할 것 같은데요."

아, 한세린 그립네.

한세린이면 보다 더 빨리 바른길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이 해골을 잠시 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강남 신세계 백화점 던전에서 획득한 걸 써보면 될 거 같기도 합니다."

나는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

[파라오의 실패한 불로초]

영생을 갈구했던 파라오는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불로초를 만들었다.

비록 영생에는 실패하였으나,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오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

'확실히, 시나리오가 맞네.'

분명히 서울시 시나리오라고 했다.

그러면 서울시 각지에서 단서들이 여기서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운 좋게도 내가 직전 던전에서 얻었던 걸 사용할 수 있게 된 거고.

"파라오의 실패한 불로초를 사용해 보겠습니다."

불로초는 붉은 꽃잎이 달린 풀 모양이었다.

그걸 해골의 입에 넣자 해골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해골의 눈에서 푸른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군대가 침범하여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대화가 통하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설정된 말을 내뱉은 형태의 NPC 같았다.

"이 땅에 더 이상 희망의 빛을 찾을 수가 없구나. 오로지 죽음으로만 희망의 꽃을 싹틔울 수 있으리. 제 스스로 꽃을 피워라. 아아, 그 꽃은 하얗고 아름다웠지. 순결한 삶을 보는 것만 같았어. 명심하여라. 꽃만이 죽음을 몰아낼 수 있으리니."

"……."

"메말랐던 겨울은 지나가고, 풍요로운 봄이……."

제 역할을 다한 '파라오의 실패한 불로초'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대사가 끊겼네요."

이 불로초뿐만 아니라 다른 것 조건들을 모두 맞출 수만 있다면, 저 해골을 완전히 부활시켜서 훨씬 더 고급 정보들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그거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었다.

'근데…… 나 저 대사들이 낯이 익은데.'

비슷한 류의 대사들을 많이 들어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사라니.

이 정도면 내가 언젠가 한 번은 경험했던 것이 틀림없다.

어쨌든 이 대사가 활성화되는 것이 이 방을 탈출하는 열쇠였다.

철컥!

잠겼던 방문이 열렸다.

"다시 밖으로 나가보겠습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저만치 멀리, 희미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뚫려 있던 천장에서 별빛이 새어드는 것 같군요."

나는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순간, 발밑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창?'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어 창을 피해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벽면이 부서지면, 붉은 창 하나가 또 튀어나왔다.

무려 여섯 개나 되는 창이 나를 노렸다.

'중계결계!'

몇 개는 막았고, 몇 개는 피했다.

푸욱!

"이건 못 막았네요."

붉은 창 하나가 내 허벅지를 뚫었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판단을 잘한 거 같다.

아직 감 안 죽었네.

"심장과 허벅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거든요. 만약 살아나갈 수 있다면 시간배율 촬영으로 편집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나는 히죽 웃었다.

'나 여기 경험했었네.'

아까까지는 긴가민가했다.

근데 찔려보니 확실히 알겠다.

뇌는 기억 못해도 몸은 기억하는 법이다.

'우클라 서버에서 경험했던 시나리오잖아?'

이름은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으나 내용은 같았다.

참고로 우클라 서버는 지구보다 더 늦게 오픈된 서버였고, 나는 거기서 이 시나리오와 마주했었다.

물론 몇 가지 차이점은 있었다.

'그때 내 레벨이 150가량 되었었지. 해골은 완전한 노파의 모습으로 재구성되어 있었고. 대화까지도 가능한 수준으로 복구되어 있었어.'

아마 나 말고도 몇몇이 이미 이 던전에 들어와서 클리어를 시도했고, 그사이 해골은 생명을 부여받았을 테지.

'그럼 여기 나타나는 놈들은 목이 없는 기사들이겠네.'

그놈들은 평균 레벨이 100가량 된다.

지금 내가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놈들이다.

[LV101/목이 없는 기사/?]

[LV102/목이 없는 기사/?]

[LV100/목이 없는 기사/?]

"레벨은 100가량 되는 거 같고 이름은 목이 없는 기사들입니다."

불길한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놈들.

검은색 갑주를 두르고 있으며 검은색 칼을 들고 있었다.

"척 봐도 상대가 안 되겠는데요."

역시 이벤트 던전은 다르네.

겨우 오픈베타 수준의 서버에다가 평균 레벨 100짜리 군대를 생성시켜?

이건 깨라고 만든 게 아니라 죽으라고 만든 거다.

아, 그리고 과거의 나는 저 목이 없는 기사들을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하기는 했었다.

진짜 문제는 저들이 다 죽은 뒤 튀어나오는 '몸이 없는 자'였다.

저놈들은 목이 없고, '몸이 없는 자'는 얼굴만 있다.

그것도 엄청 큰 얼굴.

'저 천장에 박살 난 구멍이 놈이 왔다 갔다 한 흔적.'

놈의 레벨은 160대였고, 나는 놈과 3일 동안 싸웠고 결국 놈을 죽일 수 있었다.

진짜 여러 번 죽을 뻔했었다.

그때의 아름답던 추억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생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황의 전말이 궁금하신 분들은 녹화해둔 영상 확인 부탁드립니다. 바로 업로드 될 겁니다."

일단 나는 생방송을 시작했다.

"어쩌면 마지막 방송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목이 없는 기사들 수십 마리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몇몇은 창을 들었고, 몇몇은 칼을 들었네요. 칼을 끌고 다가오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은데요."

나는 단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나 방송 좋아하네!'

'어쩌면 마지막 방송이 될지도 모른다'고 엄살을 부리던 그 순간.

나는 방송을 더 즐기고 싶다는 내 진심을 깨닫게 됐다.

나는 어느새 방송을 진짜 좋아하게 된 거 같다.

목이 없는 기사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건 진짜 엘튜브각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