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7화
일명 열정맨.
GM 세르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친구랑 데이트라도 있나 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정시에 퇴근이란 걸 해버린다니.
"아참. 근데 거기 두 명 있다고 했었지?"
세르찬은 곧바로 키하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키하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진짜 여자친구 만나러 간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야 상사의 전화를 안 받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남겼다.
['행운을 빕니다' 신비에 대해서 생각난 것이 있어서 말이야.] 1
'행운을 빕니다'는 말 그대로 신비 소유자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비였다.
행운이라는 것은 구체화하거나 정형화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신비로운 것.
이러한 종류의 신비는 대체적으로 신비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주인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의지.
[옆에 있는 동료가 갑자기 신비를 빼앗는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거까지는 확인해야 한다? 그거 의지 있는 신비거든?] 1
[행운 신비를 얻었는데 소유자가 갑자기 죽거나 크게 다치면? 신비는 자기 모순에 빠지겠지? 자기 탓을 하게 돼. 그러면 신비가 자체적으로 더욱 증폭될 거야.] 1
[그게 서대문구 시나리오, 더 나아가서 서울시 시나리오에 꽤 큰 영향을 끼친다고 알고 있으니까 꼭 확인해 줘. ]1
업무 지시를 내린 세르찬은 핸드폰을 내려놓고서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성실한 키하엘이라면 오늘 내로 처리할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물론, 그날 내내 1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키하엘은 3년째 솔로였다.
* * *
신비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직접 획득하거나, 방금 획득한 놈으로부터 빼앗거나.
해보니까 빼앗는 게 편하긴 했다.
'해보니까 빼앗는 게 더 편하긴 하던데.'
'두 번째 신분'을 빼앗긴 송하영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여기서 또 선택을 해야 한다.
상대를 기절시킬지 죽일지.
딱히 고민하지는 않았다.
"죽자, 이제."
"뭐?"
나는 단도를 들어 올렸다.
기절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죽이는 게 제일 확실하다.
"단도로 날 찌르겠다고?"
전남길은 코웃음을 치며 검을 들었다.
저거 페이크다.
쟤는 검술가가 아니라 이능계열 플레이어다.
마력으로 연마한 미세한 침을 발사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스킬, '은침'이 사용되었습니다.]
나는 피하지 않고 놈에게 일직선으로 다가갔다.
나는 봤다.
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걸.
'중계결계.'
중계결계로 은침을 막아냈다.
요즘에 싸울 때는 중계결계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이건 싸움이 아니니까 괜찮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사냥이니까.
나는 놈에게 가까이 다가가 놈의 목덜미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합니다.]
푸욱!
놈의 방어력은 형편없었다.
예전에도 저 은침이 까다로웠을 뿐, 방어력은 별 볼 일 없었다.
"크아악!"
전남길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너, 넌 정체가 도대체 뭐냐?"
"나? asdfsadf."
아니, asdfasdf인가?
막 만든 거라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나는 뒤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너는 쟤한테 왜 그랬는데?"
"그, 그건……!"
놈의 등이 벽에 닿았다.
더 이상의 퇴로는 없었다.
"그래도 넌 운이 좋은 거지."
시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가 놈의 몸에 완전히 들러붙을 테니까.
"지금 날 만난 걸 다행으로 생각해."
예전에 죽일 때는 진짜 괴롭게 죽였었는데.
"안 아프게 죽일게."
"그, 그, 그게 무슨!"
전남길의 심장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어라?'
정확히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놈이 몸을 비틀면서 심장을 살짝 빗겨 갔다.
얘 실력은 아닌 거 같고 쟤 신비가 도운 거 같다.
근데 그게 얘한테 있어서 행운인지는 잘 모르겠다.
"안 아프게 한 번에 보내주려고 했는데."
크아아악!
또 비명을 질렀다.
남 찌르는 건 안 아픈데 자기 찔리는 건 아픈 모양이다.
"배은망덕한 신비네."
놈이 발버둥 치면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게 내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또 심장을 못 찔렀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결국 시간문제였다.
결국 전남길은 축 늘어졌고, 놈으로부터 녹색 문양이 튀어나왔다.
'먹어볼까.'
문양에 손을 대려 했는데 팟! 하고 스파크가 튀었다.
'어쭈?'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신비가 스스로 날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약간의 의지를 가진 신비가 있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나를 거부하는 신비는 처음 봤다.
'음.'
이런 신비는 포기하는 게 맞다는 게 중론이다.
괜히 획득해봐야 정신세계에서 충돌만 일으킨다나 뭐라나.
'아까운데.'
또 어디서 행운 관련 신비를 얻는단 말인가.
나는 중계자의 시야로 신비를 한참 동안이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신비가 날 거부하는 이유나 원리를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문양에서 녹색 빛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마치 약 올리는 거 같았다.
저 새끼가?
이건 못 참지.
나는 곧바로 올라운더 특성에 내재된 특성 스킬을 꺼내 들었다.
[특성 스킬, '빠른 미래를 보라'를 사용합니다.]
[직업 스킬 개방을, 일시적으로 30레벨만큼 앞당깁니다.]
나는 스트리머 직업 전용 스킬인 '단독 심층 인터뷰'를 꺼내 들었다.
이건 레벨 80에 익히는 직업 스킬이다.
[스킬, '단독 심층 인터뷰'를 사용합니다.]
'중계자의 시야'가 중계자로서 전체적인 상황과 흐름을 읽어내는 스킬이라면, '단독 심층 인터뷰'는 단 한 명의 피사체에게 집중하는 스킬이었다.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는 능력.
'오?'
그러자 신비를 둘러싸고 있는 마력의 끈이, 보다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엉킨 실타래 같았다.
'고레벨 스킬이라 그런가 정신력이부족하네.'
올라운더 특성의 도움을 조금 더 받기로 했다.
[특성 스킬, '천재는 지치지 않는다'를 사용합니다.]
나는 조심스레 신비 앞에 섰다.
'단독 심층 인터뷰'를 사용하니 신비에게서 더욱 강한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면 더 개꿀이지.
원래 플레이는 어려워야 제맛 아니겠는가.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안 보이면 모를까.
이제는 보인다.
[해금에 실패하였습니다.]
관리자가 걸어놓은 락도 한 번에 풀어낸 해금술인데 얘가 이걸 막아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흥분했다.
이 정도라고?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해금에 실패하였습니다.]
등에서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단독 심층 인터뷰'를 통해 눈으로 파악한 것에 신비를 응용하여 적용하는 중.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단순 신비 사용만으로는 해금은 절대 불가능할 테니까.
[신비, 해금술을 사용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해금에 성공하였습니다.]
'해냈다!'
성취감이 밀려들었다.
이 맛에 플레이한다.
신비를 둘러싸고 있던 마력 실타래가 한 번에 풀어지면서, 녹색 문양이 완연한 자태를 드러냈다.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와. 진짜 기절할 뻔했네.'
그리고 기절했으면 큰일날 뻔했다.
언제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창문이 없는 창가까지 걸어와 있었다.
해금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녀석이 날 유인한 모양이었다.
까딱 잘못했으면 추락사할 뻔했다.
[신비, '행운을 빕니다'를 획득하였습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신비, '행운을 빕니다'의 능력이 증폭됩니다.]
'응? 갑자기?'
신비는 내 몸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폭발을 일으켰다.
폭주하는 느낌이었다.
녹색 마력선이 무작위로 뿜어져 나왔다.
[신비, '행운 그 자체'을(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다음 기억이 없다.
* * *
차진혁은 눈을 떴다.
"뭐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깨질 듯이 아픈 게 아니라 진짜 깨질 뻔했네?"
상황을 보아하니 5층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 흙이 많은 화단에 떨어져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다행히 머리부터 떨어지지는 않았나 보다."
주변은 어느새 완전한 밤이 되어 있었다.
"뭔 놈의 신비가 저항을 이렇게 해?"
온몸이 땀에 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었다.
덕분에 차진혁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 탈력감, 맛있네.'
이렇게 몸 전체가 털렸다는 건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였다.
결국 신비를 획득했다는 성취감이 그를 즐겁게 했다.
차진혁은 눈을 감은 채 이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런데 불청객이 찾아왔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어?"
송하영이 차진혁에게 달려왔다.
"머, 머리, 괜찮아?"
"뭐가?"
차진혁의 머리 주위에 피가 가득했다.
차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머리부터 떨어진 게 아닌 줄 알았는데 머리부터 떨어진 모양이었다.
머리를 만져보니 출혈의 흔적이 있었다.
송하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러고서, 안 죽었다고?"
"은근히 죽길 바란 모양이다?"
송하영이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헤헤, 티 났어?"
차진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운이 좋았네."
"지금 이게 운이 좋았다 정도로 설명이 되는 거야? 진짜 침착하게 미친 놈인가 봐."
"침착하게 미치는 게 가능해?"
"나도 불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쪽 보니까 가능한 거 같아. 그쪽 지금 죽을 뻔한 거 아니야?"
"살았으면 됐지."
차진혁이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저기, 네 선물 있어. 가져가. 5층."
"선물?"
송하영은 선물이라는 말에 잽싸게 벽을 타고서 5층으로 올라갔다.
기쁜 탄성이 들려왔다.
"세상에나!"
돈다발이 쌓여 있었다.
송하영은 돈 냄새를 맡으며 황홀감에 젖어 들었다.
'배신각 재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나쁜 사람이 아닌 거 같다.
"이걸 왜 날 주는 건데?"
"그거 장물 같거든."
보나 마나 깨끗한 돈은 아니었다.
저런 건 도둑에게 맡기는 게 최고다.
"주인 없는 돈은 네 거지."
"진짜? 진짜 나 주는 거야?"
"나보다는 네게 어울려. 동생 생일이라며? 선물도 두둑하게 챙겨주고 그래라."
검술가는 검을 휘두른다.
스트리머는 방송을 한다.
도둑은 장물을 취한다.
차진혁의 가치관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나, 송하영에게는 달랐다.
'미친놈이지만 착하게 미친놈이야!'
"충성을 다할게! 사랑해!"
"가봐, 그럼."
"네에."
송하영은 무척 기뻐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차진혁은 몸을 일으켜서 포션을 연거푸 마셨다.
출혈량을 보고 다시 놀랐다.
"이 정도 출혈인데 안 죽었다고? 운이 좋았네."
신비 덕분인가?
'행운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을 활성화시켜 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딱히 설명이 없었다.
'신비라는 게 원래 이렇지 뭐.'
설명이 있는 신비보다 없는 신비가 더 많다.
그만큼 신비는 미지의 영역이었으니까.
이런 건 써봐야 안다.
[신비, '행운 그 자체'를 사용합니다.]
순간, 번쩍! 하고 번개가 내리친 것 같았다.
이 일대가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모든 것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다시 '행운 그 자체'를 써보려 했지만, 더 이상의 사용은 어려웠다.
'비싼 신비네. 이 정도면 쿨타임도 꽤 길겠어.'
이건 여러 번 사용해 보면서 몸으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근데 방금 뭐였지?'
절대로 놓치면 안 될 행운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차진혁은 번개가 내리친 집을 찾아 이동했다.
"여기 같은데……."
대부분의 집이 그렇듯 굉장히 낡은 집이었는데, 집이라기보다는 흉가에 가까웠다.
다 무너져가는 벽돌집이었다.
삐그덕거리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검은색 게이트가 하나 생성되어 있었다.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것도 방금 우연히 생성된.
──────────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
부서져 가는 폐허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으라.
희망이 가장 숭고한 가치일지니.
입장제한 인원 : 1명
──────────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던전이었다.
그런데 게이트의 입구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이벤트 던전이야?'
랜덤으로 세계 각지에서 잠깐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던전들이 존재한다.
이를 일컬어 이벤트 던전이라 부른다.
워낙에 희소하고 클리어된 데이터가 적어서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았다.
특정한 장소에 숨겨져 있는 '히든 던전'보다 한 단계 더 위의 비밀스러운 던전으로 알려져 있다.
'입장제한 인원이 1명?'
차진혁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무려 솔로잉 던전이었다.
'이거 참으면 사람 아니지.'
[던전, '잔해더미에서 피어난 희망'에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