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6화
엘튜브 링크였다.
시청자 숫자는 대략 100여 명 내외였는데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엽기킹TV?'
얘 방송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얘는 이미 사망했었다.
레벨 30인가 40인가, 아무튼 상당히 저레벨에 죽었다.
그런데 내가 얘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전남길한테 죽은 첫 번째 희생자였었지.'
엽기킹은 말 그대로 엽기적인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스트리머였다.
작은 마물들을 해부하거나 고문하는 등의 콘텐츠를 주로 찍는 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전남길에게 '그럼 우리 사람을 한번 죽여볼까? 이것도 플레이잖아?'라고 말했다가 살해당하게 된다.
내가 전남길에 대한 자료를 끌어모을 때 얻게 된 정보들이었다.
'이미 둘이 같이 플레이 중이잖아?'
-링크 확인했어?
"어, 별로 보고 싶지는 않네."
전남길과 엽기킹은 고양이 계열의 작은 마물을 고문하고 있었다.
엽기킹이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마물을 자세히 클로즈업했다.
-세상 좋아졌습니다 형님들!
텐션이 굉장히 높았다.
듣기 거슬릴 정도로 높은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동물보호법이니 뭐니 자꾸 지X들을 해대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자유로운 고어의 세상이 되었네요! 여기, 눈동자 풀리신 거 보이시나요? 아이고, 형님, 5,000 다이아 후원 감사합니다. 감사 삐리빠리뽕!
엽기킹은 손을 싹싹 비비며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후원 리액션으로 눈을 찔러보겠습니다! 으헤헤헤헤!
송곳을 들어 올렸다.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서 그냥 꺼버렸다.
-당신 말대로 찾기는 찾았어. 그럼 난 이제 내 자유시간 가져도 되지?
"쟤네 위치는 파악했지?"
-파악은…… 했는데.
"했는데?"
-나 지금 조금 바빠서 말이야.
"바쁜데 통화를 어떻게 해?"
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안 바쁜 건데 바쁘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니, 그게 나 동생 생일이라서…….
"긴고주?"
-혈육의 생일은 늦게 챙기는 게 국룰이지.
나는 택시를 타고 움직였다.
현재 위치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연희동에서 차로 10분가량 떨어져 있고, 내가 원래 살던 은평구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인가.'
회귀 전에 우리 가족은 은평구에 살고 있었고, 전남길에게 모두 살해당했다.
전남길의 활동반경 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다.
홍제역 앞에서 기다리자 얼마 후, 두리번거리는 송하영이 보였다.
내가 카톡을 보냈다.
[나. 검은색 후드티에 검은색 캡 쓴 애. 바지는 청바지 입었고 신발도 검은색. 키는 175 정도 돼.]
송하영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 혹시?"
당근이세요?
묻는 거 같네.
나는 답을 해줬다.
"거봐. 안 바쁘잖아."
"……."
진짜 바빴으면 아무리 긴고주를 외워도 못 오는 게 정상이지.
"늦게 왔으면 바빴던 걸 인정이라도 해줬을 텐데."
"이, 인정해 준다고? 긴고주 외우는 게 아니라?"
"긴고주는 외웠겠지."
바쁜 걸 인정해 준다고 했지 긴고주를 안 외운다고는 안 했으니까.
"자, 걔네한테 가보자."
"근데 왜 걔네를 찾는 건데? 설마하니 작은 마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아닐 테고."
"마물을 왜 구출해?"
아무리 작고 귀여워도 마물은 마물이다.
마물로 태어난 놈들은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놈들이 괴롭히는 작은 마물들도, 애들에게는 위험하다.
마물과 인간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
"그럼 왜 그런 쓰레기들을 굳이 찾아가는 건데?"
"그냥."
어차피 방송도 안 켰다.
개연성 같은 걸 맞출 필요 없었다.
송하영은 뭐가 그리 궁금한지 옆에서 자꾸 재잘거렸다.
"아니 근데 모습은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바꿨어?"
"……."
"기만자의 가면이 이렇게 완벽했어?"
"조용히 좀 가자."
"내가 두 마디만 더하면 긴고주 외우려고 했지?"
도둑이라서 그런가.
내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봤다.
안 그래도 카운트 세고 있었다.
"이제 한 마디 남은 거지?"
"그래. 한 마디만 더 해봐."
"이제 안 할게."
송하영은 확실히 눈치가 빨랐다.
우리는 홍제동의 한 골목가에 들어섰다.
"저기."
후미진 골목가.
재개발을 기다리는 낡은 건물들 사이로, 창문마저 모조리 깨져 버린 흉가가 하나 있었다.
"저 안에서 방송하고 있을 거야."
"그래, 수고했어. 이거 받아."
나는 10만 원을 건넸다.
"이, 이게 뭔데?"
"오늘 동생 생일이라며?"
"됐어."
나도 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근데…….'
얘가 이 돈을 순순히 받았으면 진짜 실망할 뻔했다.
다행히 얘는 내게 도둑질을 시도했다.
[스킬, '은밀한 소매치기'가 사용되었습니다.]
참고로 내 품 안에는 100만 원이 담긴 봉투가 있다.
중계자의 시야로 보니 얘 스킬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도 다 보였다.
기특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고마워. 나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지는 몰랐네."
"그래. 100만 원은 잘 쓰고."
"……알고 있었어?"
"시도 안 했으면 크게 실망할 뻔했다."
"그게 왜 실망할 거리가 되는 건데?"
"도둑이 도둑질을 안 하면 실망해야지, 그럼 칭찬하리?"
송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진짜 그쪽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 * *
홍제동 골목가에서 빠져나온 송하영은 기함을 토했다.
"뭐, 뭔데?"
불현듯, 차진혁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100만 원은 잘 쓰고."
굳이 금액을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10만 원은 언제 회수해 갔어?"
차진혁이 처음에 건네줬던 10만 원이 사라져 있었다.
그러니까 차진혁은 100만 원을 그냥 내주고, 10만 원을 다시 훔쳐갔다.
"내가 도둑질로 졌다고?"
도적 스킬도 딱히 없는 거 같은데 언제 훔쳐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아, 자존심 상하네."
아무리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속절없이 당할 줄이야.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과 달리 송하영은 히죽 웃었다.
'이거 도발이지?'
그녀는 다짐했다.
"나중에 반드시, 그쪽 팬티까지 탈탈 털어줄게."
그리고 주인 없는 빈집을 찾아 몸을 숨겼다.
차진혁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엽기킹의 엘튜브 방송에 들어가봤다.
영상 속 엽기킹이 마물의 눈을 찔러대며 낄낄대고 있었다.
상당한 광기에 젖은 눈이었는데 저 눈을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다.
'김철수의 눈과 같은 눈!'
확실히 미친놈의 눈이었다.
끝까지 저항하며 발작하던 마물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영상 속 엽기킹이 말했다.
-자, 이제 네 차례다, S매니아.
-죽은 건 별로 취미 없는데.
S매니아(전남길)는 죽은 마물의 발톱에 모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이건 S매니아의 의식 같은 거였다.
-다음에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넘겨주면 좋겠군.
-약속하지, 낄낄낄!
잠시 휴식을 취하던 엽기킹이 말했다.
-근데 말이야, 이렇게 작은 것들 죽이는 건 이제 재미가 좀 덜하지 않나?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언제까지 이 짓만 하겠어?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냐?
-사람을 죽여보자.
-사람을?
-플레이어를 죽이면 되잖아. 플레이 도중 일어난 일은 법적 책임도 없고.
엽기킹은 자기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흥분했다.
-얼마나 짜릿하겠어? 살려달라고 빌고, 우리는 살려달라는 놈의 혀를…….
방송이 끊겼다.
[시스템에 의하여 시청연령 제한이 자동으로 설정됩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입니다.]
[성인 인증이 필요합니다.]
"아이씨."
송하영은 얼른 성인인증을 끝마친 뒤 다시 방송에 입장했다.
상황이 급변해 있었다.
-이, 씨, 씨, X!
송하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엽기킹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미, 미친 새X야!
-그 눈동자, 마음에 드네.
S매니아(전남길)는 엽기킹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때? 칼에 찔리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자, 장난 그만 쳐. 미친 새X야. 하나도 재미 없어!
-거짓말. 재미있잖아. 살려달라고 빌어봐도 돼.
S매니아가 엽기킹의 가슴팍을 찔렀다.
-크아아악!
송하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막장 방송인가 싶었는데 채팅창을 보니 가관이었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Kill up! Kill up! Kill up!
약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채팅창도 광기에 젖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아무리 주작이어도 너무 심하지 않냐며 딴죽을 거는 시청자들은 엽기킹이 미리 설정해놨던 자동 설정에 의해 강퇴되었다.
-강퇴 갸꿀!
-선비충 껒여
남은 자들은 엽기킹의 엽기적인 방송에 열광하는 자들밖에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주작은 또 신박하넼ㅋㅋㅋㅋㅋ
엽기킹이 시청자들에게 애원했다.
-겨, 경찰에 신고 좀!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
['ㅇㅇ'님이 50,000 다이아를 후원하였습니다.]
['ㅇㅇ': 지연 송출 꼭 해놔라. 재수 없이 화면 꺼지게 하지 말고.]
-사, 살려줘! 크아아악!
결국 엽기킹은 S매니아(전남길)에 의해 살해당했다.
엽기킹이 살해당했지만 방송은 꺼지지 않았다.
지연송출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씹존잼이넼ㅋㅋㅋㅋ
-개꿀ㅋㅋㅋ 지렸닼ㅋㅋㅋ
-큰웃음 주고 가누 ㅋㅋㅋ
-근데 진짜 죽은 거?
-에이 설마? 진짜라고?
-보면 모르냐? 이건 ㄹㅇ임. 엽기킹을 참스트리머로 ㅇㅈ한다ㅋㅋㅋ
화면에 잡힌 S매니아는 사망한 엽기킹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매니큐어가 거의 다 칠해졌을 시점, 검은 화면과 함께 방송이 끊어졌다.
[이제 뭘 봐야 하누? 방송 추천 좀 해줘라 게이들아.]
시청자 숫자는 금세 빠져 버렸다.
* * *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매니큐어는 왜 바르는 거냐?"
내가 가까이 다가갔다.
전남길이 뒤를 돌아봤다.
전남길의 입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아니 근데 지금 뭐하냐?"
전남길은 허겁지겁 입안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었다.
마치 간식을 빼앗기기 싫은 강아지처럼.
"미친놈이네. 남의 심장을 왜 파먹어?"
사실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생각 외로 저런 놈들은 종종 있다.
던전 안은 사람이 미치기 딱 좋은 장소인데,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저런 짓거리를 하는 변태 놈들이 꼭 있다.
전남길은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누구라고 말하면 알기는 알고?"
"오늘은 제가 기분이 무척 좋으니 그냥 갈 길 가시면 좋겠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단 한 가지 단어가 놈의 상태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현자타임]
나는 죽은 엽기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심장을 파먹는 건 그럭저럭 이해하거든? 근데 매니큐어 칠하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수많은 빌런들을 만났는데 이런 괴상한 취향을 가진 놈은 전남길밖에 없었다.
'응?'
중계자의 시야에 뭔가가 잡혔다.
엽기킹의 시체로부터 초록색 마력선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서 말이다.
'뭐냐, 이건?'
이 느낌.
낯설지 않았다.
'신비의 느낌인데?'
* * *
서대문구 3번GM, 키하엘은 간만에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야근 없겠다.'
지구의 시스템과 SSF를 연동하는 작업이 거의 끝나간다.
특히 한국 맵은 과학문명과 인터넷 인프라가 굉장히 잘 발달된 곳이어서 SSF 적용이 생각보다는 수월했다.
"선배님, 오늘은 일찍 퇴근해 보겠……."
"어 잠깐만, 관리자 알람 하나 떴는데 그것만 확인해 봐."
아.
확인하기 싫은데.
격하게 싫은데.
그렇지만 저 꿈틀거리는 근육들을 보면 거절하기 어려웠다.
[신비, '행운을 빕니다'가 생성되었습니다.]
[생성 위치 : 서대문구 홍제동]
키하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신비 삽입해 놓으셨습니까?"
"무슨 신비?"
"행운을 빕니다? 그런 이름인데요."
"아. 그거! 상부에서 강제삽입한 신비일걸? 나중에 무슨 시나리오에서 쓰인다는데 나도 잘 몰라."
"중요한 신비입니까?"
"관리자 권한으로 화면 연결돼?"
"네, 됩니다."
"그럼 중요한 거겠지. 생성조건이 뭔데?"
"네. 일단 레벨이 50 이하여야 하고……."
조건이 영 이상했다.
"죽은 지 10분이 되지 않은 시체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고, 심장을 파먹어야 한다는데요? 그 외에도 몇몇 자잘한 것들이 있기는 한데 얼추 다 만족 된 거 같습니다."
"그딴 조건인데 만족이 됐다고?"
"예, 됐네요."
"그 미친놈이 누구야? 화면 열어서 확인해 봐."
"두 놈이 있는데요. 한 놈은 S매니아라는 놈이고, 또 한 놈은 잘 모르는 놈입니다. 어디 보자, 각성명이…… asdfasdf…… 인데요?"
각성명을 바꾼 김철수였지만 키하엘은 김철수가 아님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김철수는 아닙니다. S매니아라는 놈이 신비를 먹은 모양인데요?"
키하엘이 정확히 봤다.
전남길이 신비를 흡수했다.
무언가 기분 좋은 것이 몸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신비, '행운을 빕니다'를 획득하였습니다.]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더니 돈다발이 쏟아져 내렸다.
차진혁이 히죽 웃었다.
"우와, 행운이 쏟아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