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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74화 (7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4화

두더지맨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입장권 안 사서 들어왔다, 두지."

차진혁 팀은 각각 100만 다이아를 지불하고 들어왔다.

이곳에 입장하는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한다.

그래야 죽어도 부활을 할 수 있으니까.

"저놈은 못 이겨. 대충 봐도 레벨 80 이상이다. 잡으라고 만들어놓은 마물이 아냐. 젠장. 패스파인더를 이기겠다는 목적에 미쳐서 실수한 거 같다, 두지."

목재현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입장권을 안 사서 들어온 건데요? 설마 100만 다이아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목재현 입장에서는 최악이었다.

차진혁의 지론상, 팀원 중 누군가가 먼저 죽어야 한다면 그건 탱커였다.

그리고 누군가를 꼭 살려야 한다면 길잡이와 힐러가 우선이었다.

'오늘은 안 죽나 했더니.'

아무리 죽음면역이 있어도 죽는 경험은 괴롭다.

그는 종이에 손가락이 베이는 것도 싫다.

문지방에 발톱 부딪치는 것도 싫다.

하물며 죽음은 더욱 싫다.

"그런 안전장치를 구입하는 건 쪼다들이나 하는 짓이다, 두지."

"……."

목재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게 있으면 목숨 걸고 플레이를 못 해, 두지."

"……."

"늘 배수진을 치고 진지하게 임해야 강해진다, 두지."

목재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래도 100만 다이아면 목숨을 구할 수 있는데 그걸 안 하는 미친놈이 진짜 있다니.

"다들 침묵하는 거 보이죠?"

당신, 제정신이 아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차진혁이 갑자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 진짜배기구나."

차진혁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갑자기 반성하게 되네.'

팀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차진혁은 미셸장에게 후원까지 받아가며 플레이를 진행했다.

생각해 보니 이건 너무 안일하고 지루한 플레이였다.

'초심을 잃었어.'

과거의 차진혁이었다면 이런 입장권 같은 건 사지 않았을 거다.

이런 게 있으면 쫄깃함이 떨어진다.

긴장감이 풀리고 실력향상이 더뎌진다.

모르는 던전이면 또 모를까, 이 던전은 심지어 아는 던전 아닌가!

두더지맨의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했다.

두더지맨은 바닥에 엎드려 꺼이꺼이 울었다.

"분하다, 두지. 죽고 싶지 않다, 두지!"

다가올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죽는 것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패스파인더에게 패배한 자로 영원히 기억되겠지, 두지."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른 건 분하지 않은데, 한세린에게 패배한 자로 기록된다는 것에 화가 났다.

차진혁은 두더지맨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마음, 깊이 이해한다."

* * *

나는 두더지맨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꾸 두지두지 거리는 게 아주 큰 흠이지만, 그래도 배울 점이 있는 녀석이었다.

'사람이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 거지.'

초심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은인.

두더지맨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아,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입장권을 사서 애들에게 나눠준 건 좋은 선택이었던 거 같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두더지맨의 현혹에 휘둘려서 지금의 나를 잠시 잊을 뻔했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일상이 있어.'

나도 안다.

내가 자꾸 오락가락하는 거.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다르다는 거.

사실 나도 자포자기한 상태다.

어떨 때는 이게 맞는 거 같고, 저럴 때는 저게 맞는 거 같다.

'뭐가 맞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건 하나였다.

내가 지금 방송 중이라는 거.

나는 방송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얻은 열쇠로 저 관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관에 가까이 다가갔다.

"뭐해? 목재현? 가까이 안 오고."

"네?"

"죽는다면 누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가르쳤냐?"

"……저요."

얼굴이 시꺼멓게 변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겁이 많을 뿐이지 실력과 능력은 진짜니까.

"음, 관의 형태로 미루어 보건대, 아무래도 사람의 형태인 거 같습니다. 크기는 대략 2미터 정도 되는 거 같고요. 여태껏 미이라와 관련된 마물들을 사냥해 왔으니 그와 비슷한 느낌이겠군요."

나는 애들을 하나하나 배치했다.

레이저 포인트로 콕콕 짚었다.

군주로서의 설렘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여기서 서둥이들이 연계해서 공격하고. 차진솔은 저쪽 기둥 뒤에 서. 김정현은 내 앞에서 나를 보호하면서 움직이고."

나는 저기서 뭐가 튀어나오는지 이미 알고 있다.

놈의 습성과 공격패턴도 다 안다.

내 머릿속에서 놈과의 전투 상황이 다 그려졌다.

마치 미래를 엿보고 온 기분이다.

'와, 이거 진짜 개설레네.'

발을 들이면 안 되는 금단의 영역에 또다시 발을 들인 기분.

[잠재 스킬, '넓은 시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잠재 스킬, '전투 예지'가 활성화되었습니다.]

군주 스킬들이 하나씩 개방되었다.

"그럼 전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1인청 시점이니까, 내가 직접 자물쇠를 따는 게 박진감 있겠지?

천천히 풀어야 긴장감이 살 거야.

찰칵.

찰칵.

나는 하나하나, 일부러 천천히 시간을 끌어가며 자물쇠를 풀었다.

관 뚜껑이 폭발할 것처럼 꿀렁거렸다.

찰칵.

찰칵.

[강남 신세계 백화점 보스 몬스터, '부패한 파라오'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관 뚜껑이 부서지며 보라색 독무가 바닥에 진하게 깔렸다.

목재현이 순식간에 울타리 형태의 수목산성을 펼쳐서 독무를 울타리에 가뒀다.

그리고 사망했다.

보라색으로 변한 목재현의 시체에 황금빛이 깃드는가 싶더니, 이내 팟! 하고 빛이 터져 나왔다.

목재현의 시체가 사라졌다.

"부활 설정 덕분에 살아난 모양입니다. 던전 밖으로 추방되었군요."

목재현의 희생으로 독무의 위력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하아압!"

"하압!"

서둥이들은 제대로 된 공격을 성공하지 못했다.

서둥이들의 양 옆 공간에서 갑자기 붕대가 튀어나와 서둥이들을 속박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뭐야!"

서둥이들의 머리 위로부터, 보라색 끈적이는 액체가 폭포처럼 콸콸 쏟아져 내렸다.

"서둥이들도 일격에 사망했군요. 확실히, 레벨 80의 파라오답습니다."

두더지맨이 내 옆에 섰다.

"레벨이 보이는 게 진짜냐, 두지?"

죽을 때 죽더라도 궁금한 건 해결해야겠다는 의지가 엿보여서 마음에 들었다.

응당, 플레이는 이렇게 해야지.

"보인다. 레벨도 보이고 부패한 파라오라는 이름도 보여. 몇몇 스킬의 이름도 보이고."

"대단하다, 두지."

두더지맨은 선망의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저 눈길이 싫지는 않았다.

그사이, 차진솔이 붕대에 딸려갔다.

"꺄악!"

쯧,

엄폐를 제대로 하고 있었어야지.

"힐러도 사망했군요. 그러면 김정현도 금방 죽겠습니다."

파라오는, 말하자면 황금색 가면을 쓴 거대한 미이라였다.

놈이 높이 점프했다.

쿵! 하고 김정현 앞에 서서 김정현의 팔목을 붙잡았다.

"팔목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네요. 저거 되게 아플 텐데."

그래도 김정현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반대 팔로 황금 가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따앙-!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 영 좋지 못하네요. 딱 봐도 금속재질의 가면같은데 저기에 주먹을 꽂아 넣는 건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인 거 같습니다."

주먹뼈가 으스러진 거 같다.

부패한 파라오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혔다.

"박치기를 하려는 거 같은……."

퍼억!

부패한 파라오의 이마가 김정현의 얼굴을 강타했다.

"많이…… 아프겠네요."

김정현의 목이 그대로 꺽여버렸다.

박치기의 파괴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목이 거의 너덜너덜해졌다.

"즉사입니다."

덕분에 나는 정할 수 있었다.

'저 박치기에 맞아야겠다.'

다른 스킬들은 즉사 판정이 나기가 좀 애매했다.

즉사 판정이 한 방에 딱 떠줘야 엘튜브각 세우기 좋지.

"분하지만, 즐거웠다, 두지."

두더지맨이 내 앞으로 나섰다.

"내 마지막 모습을 담아다오, 두지. 갈 땐 가더라도, 멋있게 가고 싶다, 두지."

"약한 녀석이 입만 살은 거 같습니다. 잠시 기절 시키겠습니다."

얘가 살아서 움직이면 괜히 어그로 튄다.

일단 목덜미를 내리쳐서 기절시켰다.

되게 살살쳤는데 목이 꺾일 뻔했다.

'와…… 죽일 뻔했네.'

다행히 숨은 붙어 있었다.

부패한 파라오의 가면에서 보라색 입김이 새어 나왔다.

'날 봤네.'

나를 향해 쿵쿵대며 다가왔다.

"패턴은 이미 익혀놓은 상태입니다."

이제 곧 독무가 뿜어질 거다.

나는 두더지맨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쟤는 너무 약해서 독무에 맞아도 죽을 테니까.

놈이 숨결을 토해냈다.

"벽을 밟고 공중으로 뛰겠습니다. 목재현의 희생 덕분에 파훼법을 알았습니다."

이 독무는 바닥에 깔린다.

반경과 적용 시간이 정해져 있다.

2초가 지나면 저절로 사라지는 독무다.

"네,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네요. 운이 좋았습니다."

독무가 흩어졌다.

나는 서둥이들이 했던 것처럼, 단도를 들고서 놈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그럼 여기서 저를 속박하는 붕대가 나오겠죠? 곧 인 것 같습니다. 3. 2. 1. 읏차."

나는 몸을 내던졌다.

한 바퀴를 굴렀다.

"그리고 한 번 더."

다시 한번 몸을 던졌다.

한 바퀴를 더 굴렀다.

"잘 피했습니다. 또 운이 좋았네요."

놈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그리고 김정현과 마찬가지로 주먹을 내뻗었다.

턱!

부패한 파라오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역시 같은 패턴입니다. 으윽, 그래도 아프긴 아프네요."

놈의 완력이 상당히 강해서 내 손목뼈가 부러졌다.

"오른 손목이 부러졌으니, 왼손으로 쳐보겠습니다."

왼손을 휘둘렀다.

혹시 몰라서 손에 중계결계를 두르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내가 좀 더 강한 거 같으니까.

땅!

김정현과 비슷한 소리가 났다.

"왼손도 작살 났습니다. 이제 다음 차례는 박치기가 오겠군요."

놈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목이 주욱 늘어났다.

"중압감이 어마어마한데요."

혹시 몰라서 아무런 업적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또 내가 내 예상보다 훨씬 단단해서 즉사 안 하면 곤란하니까.

'그래도 비상섬여로 예습해서 다행이다.'

나는 또 발전한 느낌을 받았다.

내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

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성장의 첫걸음 아니겠는가.

퍼억!

머리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보나마나 즉사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컥.

이런 미친.

[특성, 여벌 목숨이 적용됩니다.]

나는 목을 매만졌다.

반사 확률이 무려 80프로인데, 이게 안 통한다고?

미친?

"운이 나빴네요. 다시 한번 시도하겠습니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놈의 패턴은 완전히 정형화되어 있어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고통을 참는 게 좀 힘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다시 박치기가 날아듭니다."

진짜 이번에도 안 뜨면 말이 안 되지.

80프로인데.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래, 이거지.

파라오의 목이 뜯겨져 나가 덜렁거렸다.

나는 검을 꺼내 그 목을 여러 번 내리쳤다.

"이제 죽이겠습니다."

저 덜렁거리는 목이 어찌나 단단한지, 진짜 안 뜯겼다.

"제가 스트리머라서 공격력이 너무 약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잘라 보겠습니다."

그래도 놈은 이미 빈사 상태.

시간이 좀 걸렸다 뿐이지 죽이는 건 가능했다.

['부패한 파라오'을(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 58을(를) 달성하였습니다.]

히죽,

웃음이 났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서 확인사살을 하겠습니다."

나는 칼질을 계속했다.

손맛을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거다, 진짜로.

['파라오의 금빛 가면'을 획득하였습니다.]

['파라오의 실패한 불로초'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미 죽은, 아니, 혹시 살았을지도 모를 파라오의 목을 더 내리쳤다.

다시 강조하지만 손맛 더 느끼고 싶어서 내리친 거 아니다.

"이제 완전히 죽은 거 같기도 합니다."

완전한 죽음을 확인한 뒤, 세 번 정도 더 칼질을 하다가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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