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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72화 (72/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72화

외교력은 군주계열의 플레이어들이 레벨 60에 얻게 되는 스킬이다.

두 사람의 머리 위에 '호감도'라는 특이한 창 하나가 생성되었다.

[적대──비우호──▶중립◀──우호──극호]

이 스킬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현재는 중립에 표시되어 있지만 실시간으로 저게 변한다고 알고 있다.

지금이야 저 정도 간단한 창이지만, 최상위 랭커들의 눈에는 온갖 요소들이 다 보인다나 뭐라나.

'이게 이런 느낌이구나.'

머리로 알고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직접 경험하자 완전히 신세계였다.

여태껏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정보들이 의미 있는 정보가 되어 재정립되는 기분.

똑똑해지는 느낌이었다.

'최갑수 영감님은 사람 사이의 신의와 신뢰 관계를 상당히 중요시해.'

그렇다 보니 일단 호감을 얻고 우호적인 관계를 쌓고 나면 상당히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

괜히 예전 플레이어들이 돈 많은 호구영감님이라 불렀던 게 아니다.

"영감님의 제안은 무척 감사합니다. 제 무엇을 보고 그렇게까지 투자를 아끼지 않으시는 건지 감사하다 못해 의아할 지경입니다."

[적대──비우호──중립──▶우호◀──극호]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 밑밥을 까나?"

"제안에는 무척 감사하지만, 저는 눈앞의 이득만 좇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흐음."

"적어도 이번 일에 한해서는, 미셸장이 제게 먼저 조건 없는 호감과 신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에 보답하는 것 또한 사람 된 도리라 생각합니다."

[적대──비우호──중립──▶우호◀──극호]

어, 반응이 있다.

'▶우호◀'와 '극호' 사이에 ── 라인이 무척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제 물질적 이득을 포기하고 미셸장께서 내밀어준 손을 잡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미셸장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직은 볼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제게 선뜻 손을 내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자 미셸장이 내게 손등을 내밀었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나는 자연스레 그 손등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미셸장이 사는 곳의 예법 같은 건가 보다.

외교력이 그것을 자연스레 캐치했고, 미셸장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행동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적대──비우호──중립──우호──극호──▶?◀]

미셸장이 환하게 웃었다.

"단어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크게 움직이네요."

"……."

"분명 아직이라고 했죠?"

응? 내가 그랬던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볼 게 아주 많다는 뜻이겠어."

거기까지 말한 미셸장은 최갑수 영감에게 시선을 옮겼다.

"사실 영감탱이랑 자존심 싸움 하려고 김철수를 주시하기 시작한 거거든요?"

"흥, 자네랑 내가 싸움이 되나."

"근데 만나 보니 알겠네. 어떻게 이런 원석을 발견했어요? 이번만큼은 안목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크흠."

아, 그리고 최갑수 영감은 칭찬에 좀 약한 편이다.

보니까 귓불이 조금 붉어져 있다.

미셸장이 씨익 웃었다.

"얼굴도 내 스타일이고."

저런 영감님을 좋아한다니.

취향 한번 독특하다.

* * *

나는 방송을 켬과 동시에 사과부터 진행했다.

"최근 개인적인 사정들로 인하여 공지를 올릴 겨를이 없었습니다. 방송을 기다려주셨을 시청자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아직 초보 스트리머여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하여 휴방을 하게 될 시 꼭 휴방공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과를 마친 나는 애들과 함께 강남 신세계 백화점 던전에 입장했다.

"입장료는 재미사업가 미셸장께서 지원해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여러 번 죽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입장료를 지원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덕분에 콘텐츠를 여유로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방송에서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이렇게 '콘텐츠 진행에 큰 도움'을 준 후원자에 한하여 일종의 명예의 전당 같은 것을 만들었다.

화면 오른편에 [도움을 주신 분]이라 하여 '미셸장'의 이름이 새겨 놓았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특혜를 하나 부여했다.

[도움을 주신 분, '돈쭐'이(가) 흡족해합니다.]

이게 끝이었다.

딱 한 번에 한하여, 지정된 몇몇 문장들로만 상태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좋아합니다'라든가 '싫어합니다'라든가 '흡족해합니다' 정도 수준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아…… 미셸장이 돈쭐이었어?'

과거에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는데, 나도 참 몰랐던 게 많다 싶다.

[레벨 45 이상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강남 신세계 백화점 던전에 입장합니다.]

안에 들어와 보니 다른 던전에 비해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던전 안은 백화점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사람 대신 사람 형태의 마물이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이 다를 뿐, 백화점 1층과 모양새는 거의 똑같았다.

[LV52/부패한 미이라/-]

1층에는 미이라들의 서식지였다.

더러운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은 채, 느릿느릿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악취가 나는군요. 아마도 저 미이라들에게서 나는 냄새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몇몇 플레이어들이 이곳에 입장했다.

꽤 많은 숫자가 한 번에 입장하는 것으로 보아 팀인 것 같았다.

'어?'

가장 먼저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한세, 아니, 패스파인더?"

"너 잘 만났다. 감히 날 까?"

"아니, 깐 게 아니지."

이번 던전 플레이에는 한세린을 제외했다.

한세린이 억울하다며,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따지고 들었지만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겸사겸사 던전 클리어도 하면 좋고.

'네가 있으면 여길 너무 쉽게 클리어할 거 같아서.'

여기는 이렇다 할 히든피스 같은 건 따로 없는 곳이다.

지금 우리 수준에서 좀 강한 놈들이 많다뿐이지, 그것 외에는 아주 평이한 곳.

유능한 길잡이가 있다면 지나치게 쉽게 클리어할 수 있기도 했다.

보스몹인 '부패한 파라오'를 피해서 클리어하면 되니까.

근데 나는 부패한 파라오와 싸울 예정이다.

최대한 극적인 순간에 내 목걸이를 선보일 생각인데 한세린이 있으면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잘 봐. 내가 얼마나 유능한 길잡이인지 보여줄게."

그러니까, 오늘은 그 유능함이 필요 없다니까.

한세린 뒤로 몇몇 플레이어들이 더 입장했다.

'이현성?'

나와 검 계열의 1인자 자리를 놓고 싸우던 이현성.

지금은 나를 대신하여 국가 소속으로 들어가게 된 이현성이 보였다.

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서 나한테 친한 척을 했다.

"아, 혹시 그쪽이 김철수 님이신가요?"

"저를 아세요?"

"네, 엄청 유명하시잖아요. 활약이 대단하시다던데."

옛날에는 저런 말 잘 못했었는데 이리 보니 신기하긴 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지보다 훨씬 강했었는데, 그때는 지가 나보다 더 세다고 떠들고 다녔다.

근데 지금은 추켜세워주고 있다.

경쟁자가 아니게 된 지금에서야 겨우 마음이 여유로워진 모양이다.

좀팽이 자식.

"유명하다뇨. 솔직히 그 정도 아닌 거 저도 잘 압니다."

"겸손하시기까지."

"……."

"그러니까 랭킹보드에 등록도 안 하셨겠죠. 하하!"

이현성 뒤로 몇몇 플레이어들이 더 입장했는데 나는 몇은 낯이 익었고 몇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국가 주도로 팀을 꾸리고 있다더니 저쪽 분들인 것 같습니다.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났군요."

사실 이렇게 마주치는 건 아주 흔한 경우다.

최상위 랭커들의 사냥터는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니까.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비공식 랭킹 1위, 김철수야?"

"……."

강미나?

쟤도 저기 있네.

원래 내 동료였던 한세린과 강미나가 같은 자리에 있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보여줄게. 내가 당신보다 더 뛰어난 스트리머라는 걸."

"당신이 누군데?"

"나를 몰라?"

강미나는 약간 자의식 과잉인 거 같다.

"스트리머 계열, 부동의 랭킹 1위, 압도적 랭킹 1위, 최근 비상섬여 사냥과 GM살해사건을 독점으로 생생히 중계한 특급 스트리머인 나를 모른다고?"

"부동의 랭킹 1위는 봉주르TV잖아."

"이, 이게 뭘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네! 내가 최근 1위로 올라섰거든? 내가 압도적 랭킹 1위야."

확실히, 같은 계열이라서 그런가 나한테 굉장히 열렬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원래 3등만 하려고 했는데 자꾸 이렇게 날 도발하면 1등이 마려워지지?

나도 같이 도발했다.

"스트리머 계열에 압도적 1등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인데."

"처음 듣는다고? 하!"

"어, 진짜 처음 들어."

"압도적인 1등이 누군지 몰라?"

"봉주르TV?"

얘가 왜 이러나 싶다.

방금 자기 입으로 자기가 압도적인 1등이라고 주장해놓고서는.

내 입으로 '응, 네가 압도적 1등'이라고 말해주는 걸 기대하는 건가.

"하아."

강미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눈빛이 굉장히 살벌했는데, 내게 적개심까지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제 보니 쌉기만러네."

뭔 소리지.

"압도적 1등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듣는다고?"

"진짜라니까."

"네가 그런 말을 한다고?"

강미나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러시겠지. 그런 여유도 오늘까지야. 오늘 분명히 보여주겠어. 압도적 1등이 누구인지."

이번에는 한세린이 말했다.

한세린도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이곳을 클리어할 거야. 방해가 되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최고의 길잡이가 누군지 알려줄게."

* * *

저쪽 팀은 한세린을 필두로 하여 멀어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우리는 우리 할 거 하자."

저들과 속도로는 경쟁할 수 없다.

여기에 한세린과 버금가는 길잡이가 있어서, 지름길을 찾아낼 수 있다면 또 모를까.

평이한 공략으로 가면 저들보다 무조건 늦다.

[부패한 미이라를 처치하였습니다.]

평이한 공략.

보이는 마물들을 보이는 족족 때려잡고 다음 관문으로 향하는 것.

"어? 부패한 미이라가 특별한 열쇠를 하나 드랍했습니다."

내가 열쇠를 주워 들었다.

이름 자체가 '특별한 열쇠'였으나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보스룸으로 들어가는 열쇠 중에 하나다.

"저희 팀원들이 생각보다 더 잘 싸워줬습니다. 부패한 미이라에게는 한 번도 죽지 않았습니다."

기준을 정말 많이 낮춰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 기준을 조금 올려도 될 거 같다.

우리 애들은 확실히 물레벨은 아니다.

"그럼 2층으로 가보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천천히 움직였다.

한숨 돌렸는지, 차진솔이 내게 말했다.

"오빠. 근데 안 분해?"

"뭐가?"

"아까 그 사람들 말이야. 진짜 우리보다 먼저 클리어하면 어떡해?"

"……."

차진솔은 굉장히 초조해하는 모양새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애들 표정도 비슷했다.

목재현 빼고.

내가 차분히 말했다.

"우리 목표는 빠른 클리어가 아니잖아."

"그래도, 저쪽에 랭킹 1위 스트리머 있잖아. 진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서지수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우리가 질 수 없잖아. 아니, 지면 안 되잖아?"

"휘둘리지 마. 이번 콘텐츠는 상급 던전에서 우리의 성장과 더불어, 이번에 얻게 된 내 목걸이의 활용이야. 쟤들이 빨리 클리어하든 말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어차피 쟤네보다 빠른 클리어는 불가능해!

내 바로 뒤에 있던 서지아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제일 초조해 보여."

"누가?"

서지아가 검지손가락으로 내 등을 콕 찔렀다.

제일 초조해 보인다니?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잠깐만요!"

어 잠깐만.

누군가가 헐레벌떡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혼자서 여길 들어오는 미친놈이 있나 싶었는데, 그 미친놈은 내가 아는 미친놈이었다.

길잡이 계열 전 랭킹 1위.

지금은 한세린에게 밀린 랭킹 2위.

'두더지맨?'

쟤가 있으면 진짜 빨리 클리어할 수 있기는 할 거 같은데.

"길잡이 계열 랭킹 1위, 두더지맨입니다. 방송 보고 뛰어왔습니다."

[#내가 돕는다 #적의적은 친구 #1위탈환각 #보여줄게 찐의 위엄을]

"랭킹 2위겠죠."

"……방금까지 랭킹 1위였습니다."

와, 3일 전을 방금으로 친다고?

서지아가 다시금 내 등을 콕 찔렀다.

"신나 보여."

아닌데.

나 하나도 안 신났는데.

히죽,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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