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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69화 (69/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9화

내가 재빨리 말했다.

"뭐해요, 치료 안 하고?"

얘랑 같이 온 저 인턴GM만 불쌍하게 됐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치료 스킬 없으니까 치료 못하겠지.'

그렇지만 일단 치료하라고 윽박은 질렀다.

곧바로 재판이 시작될 테니, 나는 내 나름대로 최선의 구호조치를 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다.

나는 치료 포션의 뚜껑을 따서 하곤의 머리에 콸콸 쏟아부었다.

외상을 조금 치료해 주기는 하겠지만 반사 효과에 당해 뒤통수가 아작난 뒤라서 별로 소용은 없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하곤은 사망했다.

[GM 살해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내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땅밑으로부터 검은 결계 같은 것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이 근방을 모조리 덮어버렸다.

필드가 바뀌었다.

'오랜만이네, 여기.'

이곳은 몇몇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 자동으로 발동하는 '판결의 방'이었다.

내 앞에, 높은 곳에는 법복을 입은 세 명의 남녀가 보였다.

전체적으로 법정과 비슷한 형태였는데 내 옆에는 작은 공룡의 형상을 하고 있는 용인족들이 보였다.

쟤네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레벨이 140이다.

[무기를 착용할 수 없습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특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신비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모든 능력 사용이 제한되기 때문에 용인족의 레벨을 정확히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딱히 상관은 없었다.

내가 난폭한 짓을 벌이지만 않으면 저들도 딱히 움직이지는 않을 테니까.

가운데에 앉은 판사가 말했다.

"GM이 살해되었습니다. 이를 인정하십니까?"

참고로 저 판사는 시스템 AI로 구현된 판사다.

"고의는 아니었습니다만, 인정합니다."

"GM을 살해하는 것은 중죄입니다."

GM을 살해한 혐의로 이곳에 와서 억울한 처벌을 받은 애들이 많았다.

저 '판사'들은 시스템을 위하여 일하는 AI다.

오로지 '시스템의 안정'이 목적이고, 그 와중에 플레이어의 권리나 인권이 박탈되는 것은 그다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증인을 요청합니다. 현장의 모든 것을 촬영하고 있던 스트리머가 있습니다."

"수락합니다."

이내 강미나에게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 * *

강미나는 대박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비상섬여를 죽인 영상은 나중에 풀자.'

이건 어차피 계약에 묶여 있다.

김평범의 허락을 받아서 올릴 수 있다.

'결과 먼저 슬쩍 보여주고.'

일부러 앵글을 그렇게 잡았다.

비상섬여의 시체가 반쯤 보이도록.

'그리고 이후 일어나는 일은 계약사항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실시간으로 방송을 열었다.

[충격적인 사냥 결과, 뒤이어 나타난 GM의 수상쩍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비상섬여의 시체를 반쯤 노출한 것이 큰 화제가 되었다.

초반 어그로를 확보한 그녀는 비상섬여의 시체를 완전히 보이지 않도록 각을 잡았다.

덕분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비상섬여가 진짜로 죽었네, 죽지 않았네로 설전이 일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나타난 하곤 덕분에 비상섬여의 사살이 기정사실로 드러났다.

- 대업적 보상을 빼앗겠다고?

- 아, 이러면 개킹받지ㅋㅋㅋ

- 아무리 오픈베타여도 너무 심한 거 아니누? 양심이 없누 ㅋㅋㅋ

강미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채팅 화력이 평소보다 훨씬 강했다.

'SSF는 진짜 오묘하단 말이야.'

모든 서버가 각기 다른 언어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자동으로 번역되어 읽히는데, 그것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시스템상 설정으로는 '초월번역'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화자의 의도에 가장 근접한 표현으로 번역하여 청자에게 들려주는 번역.

- 헐? 뒤졌다고?

- ㄹㅇ?

- GM이?

하곤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시청자 정원이 가득 차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 븅신이눜ㅋㅋㅋㅋ

- 낙하산이라는 데 내 손목을 건다 ㅋㅋㅋ

이후 강미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왜? 왜 없어져?'

이상한 검은 결계 같은 것이 생성되더니 김평범이 사라져 버렸다.

- 판결의 방으로 이동한 모양이네 ㅋㅋ

- 이제 끝이누ㅋㅋㅋ

- ㅂㅂ

실시간으로 시청자 숫자가 썰물처럼 빠지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강미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지구 최초, 판결의 방에 들어가 본 썰 푼다.]

시청자 숫자가 다시 급증했다.

* * *

차진혁이 말했다.

"사고였습니다. 저는 공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에 대한 증거를 제출합니다."

강미나가 영상을 제출했다.

강미나의 영상이 스크린에 출력되었고 3명의 법관이 그를 살펴보았다.

차진혁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저는 사고가 벌어진 이후에도 수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저는 GM들이라면 당연히 기본적인 치료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고, 옆에 있던 또 다른 GM에게 치료를 해달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한 내용 역시 영상에 담겨 있었다.

법관이 인턴GM인 마리에게 질문했다.

"김평범이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입니까?"

"사, 사실입니다."

결국 차진혁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실 법관들 입장에서도 별로 즐거운 결말은 아니었다.

시스템의 안정이 최우선인 그들에게 있어서, GM을 살해한 플레이어는 어떻게든 벌을 내리는 것이 유리했으니까.

그러나 차진혁이 너무 완벽한 증거를 내밀어서 그들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참고인. 이의 없습니까?"

"……없습니다."

하곤의 동료인 마리 역시 그다지 문제 삼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술술 풀려나갔다.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해당 사건은 여수시 시나리오의 첫 번째 단추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상당히 훌륭한 시 규모의 시나리오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나 첫 시작이 지나치게 잘못되었고, 이를 관리할 GM의 능력부족과 업무태만이 확실시되었습니다. 이에 시스템은 여수시 시나리오를 폐기할 것을 명령합니다."

인턴GM 마리는 어딘지 모르게 기뻐 보였다.

"또한, 해당 사건에서 부당하게 대업적을 빼앗긴 김평범 플레이어에게 해당 시나리오의 최종 보상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평범 플레이어는 GM의 부당한 횡포 아래 사망할 뻔하였으므로 본 보상은 그리 부당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차진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원래 여수시 시나리오를 끝까지 풀어가면 결국 '천재 특성'을 획득하게 된다.

천재 특성은 검제 특성과 함께, 차진혁을 최상위 랭커로 발돋움시켜준 특성이었다.

'진짜 준다고?'

차진혁은 기뻤으나 또 한편으로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한테 지나치게 친절한데?'

물론 시스템 AI는 공명정대한 부분이 있다.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에 따른 판결을 내린다.

'그렇지만 결국 내 편은 아냐.'

저들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저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잘 굴러가는 것이 최고다.

"동의하십니까?"

"예, 동의합니다."

가운데에서 말하던 법관 왼쪽에 앉아 있던 법관이 말했다.

"단, 해당 보상은 현시점의 지구 수준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고지합니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앉아 있던 법관이 말을 이었다.

"하여, 레벨 110 제한의 락을 설정할 것을 권고합니다."

가운데 앉은 법관이 눈을 감았다.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판결을 확정하겠습니다. 본 사건은…… 하여…… 하여…… 하겠으며…… 락의 필요성을 인정하였으므로…… 유예기간이 필요할 것이므로…… 하여…… 하도록…… 하겠습니다."

탕! 탕! 탕!

망치를 두드렸다.

['판결의 방'의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여수시 시나리오의 최종 보상 특성 '천재'를 획득하였습니다.]

[단, 110레벨까지 천재 특성의 획득을 유예합니다.]

* * *

강미나가 내 손목을 꼭 붙잡았다.

"저기요. 나랑 사귈래요?"

"미쳤어?"

와, 내가 살다 살다 강미나한테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는 전우였고, 형제였다.

전 동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소름 끼쳐 죽을 거 같다.

"그럼 키스할래요?"

입술을 쭉 내밀고 나를 껴안으려 들었다.

얘가 이러는 이유를 안다.

얘는 키스를 통해 상대방의 영혼과 자신을 결속시키는 뭐라더라, 아무튼 무슨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러면 '피사체'를 추적할 수 있다나 뭐라나.

꼭 키스여야만 하는 건 아니고 농밀한 스킨십일수록 그 효과가 강해진다고 알고 있다.

"꺼져라 진짜."

"그럼 나랑 잘래?"

진심으로 소름 돋았다.

어떻게 얘가 나를 상대로 미인계를 쓰냐.

목숨을 나눈 전우가 내게 이러는 걸 보니 진짜 패버리고 싶다.

"좋아. 그럼 양보할게. 연락처라도 좀."

강미나의 눈에 절실함이 깃들었다.

절대 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광기가 엿보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플레이는 이렇게 해야지.

"당분간 날 보기 어려울 텐데……."

"왜? 설마 플레이 접기라도 하게?"

"……응?"

"고작 GM 죽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라든가 뭐 그런 거야?"

"……."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하도 절실하다 보니 기이한 상상까지 한 모양이다.

"야! 플레이하다 보면 사람도 좀 죽이고 할 수 있지, 무슨 3천 명쯤 학살한 것도 아닌데, 무슨 남자가 그렇게 쪼잔하게 굴어? 사람 안 죽이는 검술가가 검술가냐? 정신 좀 차려."

"그 두어 마디에 지적할 말이 그렇게 많은 것도 신기하다."

얘는 은근슬쩍 나한테 말을 놨지만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무튼 얘는 알아서 잘 성장하고 있는 거 같다.

"안 놔줘. 아니? 못 놔줘. 연락처 내놔. 나랑 같이 플레이 해. 안 그러면 콱 나 죽어버릴 거야."

죽어?

네가?

이 재밌는 걸 두고 죽는다고?

순도 백프로 헛소리다.

"그래도 만나서 반가웠다."

"못 놔줘!"

퍽!

나는 강미나의 관자놀이를 때려 기절시켰다.

강미나의 몸이 축 늘어졌다.

'딱히 위험 요소는 없고.'

내가 없을 때 얘가 습격당하거나 죽지는 않겠지.

혹시 몰라서 주변에 은신하여 얘가 깨어나는 걸 살펴봤다.

정신을 차린 강미나는 소리의 눈에는 여전히 광기가 일렁거렸다.

"그 새끼랑 자야 돼."

혼잣말로 계속 중얼거렸다.

표정만 보면 우리가 반얀트리 던전에 입장할 때보다 더 결연했다.

"반드시 찾아낸다. 찾아내서, 잔다."

……그냥 죽일까?

* * *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내가 만들어놓은 '차진혁'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잠방'이라고 해서 방송을 켜놨으니 내 알리바이는 완벽하게 증명되었다.

'근데 이걸 왜 보는 거야?'

그냥 내가 자는 것뿐인데.

심지어 1인칭 시점이라 딱히 보이는 것도 없는데 왜 이걸 3천 명이나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사이 후원도 수십만 다이아나 들어온 걸 보면 내가 알다가도 모를 세상이다.

나는 침대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수상해.'

너무 쉽게 나한테 천재 특성을 내어줬다.

아무리 오픈베타라지만, 저레벨 구간이라지만, 시나리오의 최종 특성을 이렇게 쉽게 내어준다?

분명 꼼수가 있을 거다.

'락이 있다라.'

나는 눈을 감고 내 내면을 관조했다.

내 몸에 내재된 스킬과 특성, 신비들을 관찰하는 작업.

이것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노력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오간 사람들은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게 바로 이 관조법이니까.

이걸 못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처절한 플레이를 안 했다는 뜻이다.

내가 만나 본 랭커들은 전부 이걸 할 수 있었다.

'천재 특성이라.'

내 내면의 우주.

그 안에 밝은 빛들이 보였다.

'저게 천재 특성이겠지.'

자세히 살펴보면 쇠사슬 같은 걸로 칭칭 봉인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풀리게 되는 금제라.'

시스템이 무슨 꼼수를 부려놓았을까.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안 되겠다.'

여기서는 답이 없을 거 같다.

곧바로 사러가 마트로 향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다.

[사러가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아, 공기부터 다르네.

여기는 내가 올 클리어를 진행했고, 내 모든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곳이다.

나는 히든 스테이지인 3층을 활성화시킨 뒤 복도에 앉았다.

여기라면 다른 플레이어들의 방해를 받지 않겠지.

나는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다.

'뭐가…… 보이는데?'

우주 속 빛나는 별.

그 별 안을 좀먹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어?'

나는 한층 강화된 '중계자의 시야'로 천재 특성이 내뿜는 빛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작은 벌레 같은 것이 천재 특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중계자의 시야가 그것을 해석해서 보여주었다.

'와, 이씨. 큰일 날 뻔했네.'

역시 시스템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뉴비라면 그대로 당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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