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8화
[치명상에 해당하는 공격이 즉사 공격으로 전화됩니다.]
즉사 판정이다.
의식이 멀어져 갔다.
이 세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
괜스레 반가웠다.
'재미있네.'
분명 즉사에 해당할 만한 공격이라고 생각했었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확신하던 바였다.
그런데 내 예상이 보기 좋게 틀렸고, 거기에 겨우 30% 확률이 연거푸 터질 확률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래서 플레이를 기적의 연속이라고 부른다.
[특성, 여벌 목숨이 적용됩니다.]
"후우, 진짜 뒤질 뻔했네."
스릴 있었다.
여벌 목숨이 없었다면 진짜 죽었을 거다.
비상섬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아무래도 육탄 공격을 감행할 예정인 것 같다.
'안 되겠다.'
중계결계 사용을 중지했다.
그리고 적용 업적도 모조리 해제해 버렸다.
'방어를 하면 안 되겠다.'
그래야 완벽하게 즉사판정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즉사판정이 떠야 베라클라프 목걸이가 제 역할을 해낸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을 무려 80% 확률로 반사할 수 있다.
'그냥 대놓고 급소를 맞아줘야겠어.'
반사확률이 무려 80%에 달한다.
'이 정도면 나한테 너무 유리한 옵션이지.'
플레이에 100프로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100프로를 말하는 놈이 있다면 100프로 사기꾼이다.
약간의 위험도 부담하기 싫은 놈은 플레이하면 안 된다.
이런 훌륭한 옵션을 활용 못 할 거면 플레이 접어야 한다.
'온다!'
놈의 몸이 점점 커졌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직감했다.
'부딪치면 즉사다!'
쾅!
놈이 내게 부딪쳤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꿰엑!
놈이 비명을 질렀다.
배를 뒤집어 까고 쓰러졌다.
입에는 게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보호막은 완전히 벗겨진 상태.
'나는 완전히 성장해 버렸어.'
아주 기쁜 마음으로 놈의 배 위에 올라타서 칼을 휘둘렀다.
결국, 나는 또다시 비상섬여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레벨 56을(를) 달성하였습니다.]
레벨 56을 달성했다.
[대업적, '비상섬여 조기 척결'을 달성하였습니다.]
내가 반납했던 업적을 다시 달성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밑줄은 없었다.
'설마 보상이 없다고?'
내가 무슨 보상을 바라고 이 짓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안 주는 건 다른 문제다.
내가 무려 비상섬여를 때려잡았는데, 그것도 설정을 덕지덕지 덧붙인 돌연변이를 잡았는데 아무것도 안 준다고?
이건 선 넘는 거지.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야."
어?
내가 아는 놈이다.
* * *
최근 여수시 GM으로 발령받은 하곤은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
그의 아버지는 한 서버의 서버급 관리자였고 직책은 전무였다.
"여수시에 커다란 시나리오가 하나 준비되어 있다. 그것만 잘 마무리하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게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마라. 평판 좋은 사원이 거진 마무리까지 다 해놓았다. 건드리지 말고 구경만 잘하면 돼."
하곤은 어린 시절부터 굉장히 많은 사고를 쳐왔다.
그의 부모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저 하곤이 먹을 것 좀 줄이고, 사람 구실을 좀 하는 것이었다.
"플레이어 주제에 자꾸 GM콜이야, GM콜은."
그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남산만큼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다.
오른손으로는 과자를 주워 먹었다.
다른 건 몰라도 지구의 과자는 맛이 꽤 좋은 편이었다.
"한 번만 더 GM콜 보내봐라. 그냥 콱 죽여 버려야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이상의 GM콜은 없었다.
그는 이곳에 발령받을 때부터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날 세 번 귀찮게 하는 놈은 죽인다.
말단 사원 GM을 하나 죽일 뻔했고, 플레이어도 6명 정도 죽였다.
'아부지가 사고 치지 말랬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GM을 죽이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GM콜 좀 받아달라, 서버 관리에 신경 좀 써달라, 서류작업 좀 해달라, 하도 귀찮게 해대는 통에 죽일 뻔했으나 결국 참아냈다.
'역시 나는 성장했어.'
예전 같았으면 죽였을 텐데 말이다.
"낮잠이나 자야겠다."
일과시간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냥 여기서 이렇게 시간만 죽치고 있다 보면, 결국 전임자가 세팅해둔 시나리오는 잘 굴러가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하게 될 것이었다.
"더 좋은 곳 가면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일하기에 이곳은 너무 작은 규모의 맵이었다.
"근데 설마, 비상섬여가 죽지는 않겠지?"
그럴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전임자(세르찬)는 아주 꼼꼼하고 성실한 사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고 여태까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안 했다고 한다.
그 전임자가 최선을 다해서 꼼꼼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놨다고 하니까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사이, 그를 보조하는 인턴GM들이 여러 차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하곤 대리님, 비상섬여가 전투 중입니다.
- 평소와 조금 다릅니다.
- 확인 부탁드립니다.
인턴GM들은 잠자는 하곤을 깨우지 못했다.
하곤의 낮잠을 깨웠다가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말 테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 버렸다.
- 비상섬여가 사망했습니다.
그때, 관리자실에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삐이-! 삐이-!
이건 전임자 세르찬이 설정해놓은 것이었다.
"어우, 씨X! 놀래라! 이게 왜 이래?"
깜짝 놀란 하곤은 메시지창들을 확인했다.
"무슨 쪽지들이 이렇게 많이 왔어?"
쪽지들을 확인한 하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이런 씨X! 인턴GM 이 븅X새X들아! 월급값 안 처하냐!"
인턴GM들 중 몇몇이 황급히 관리자실로 들어왔다.
하곤은 신고 있던 슬리퍼로 인턴GM 세 명의 뺨을 차례대로 때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댔다.
놈들을 더 패고 싶었으나 지금 당장 일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동마법 좀 익혀놓을걸.'
"이동 마법 쓸 수 있는 놈?"
참고로 이동 마법은 관리자들의 기본 소양이었다.
시스템의 도움이 있기에 아주 조금만 노력하면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세 명의 인턴GM들 모두 이동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
셋 모두가 손을 들었다.
하곤은 세 명 중 유일한 여성GM을 골랐다.
"가자."
황급히 어딘가로 이동했다.
* * *
차진혁을 촬영하던 강미나는 얼떨떨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화면 속 저 남자는 어쩌면 여수검객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실성한 사람처럼 낄낄대면서 팔을 벌렸다.
낙하하는 비상섬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광기에 물들어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어마어마하게 만족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이후 기적이 벌어졌다.
차진혁이 결국 비상섬여 사냥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저걸 진짜 해내네. 진짜 미친놈이잖아?'
중요한 사냥 장면은 빼기로 계약했다.
그렇다면, 계약 조건을 어기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갑자기 GM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의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는데 덩치가 무척 컸다.
적어도 2미터는 넘는 것 같았는데 이마에 뿔이 하나 돋아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여성GM에게 업혀 있었다.
'GM이 갑자기 왜?'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촬영은 이어갔다.
그런데 순간, 또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차진혁이 다시 자신을 바라본 것이었다.
이로써 완전히 확실해졌다.
'저자는 내 위치를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는 거야.'
원리는 알 수 없으나 마치 스킬의 흐름과 흔적을 찾아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미친놈이 틀림없어.'
미친놈은 미친놈을 알아본다.
그녀는 차진혁의 눈에 서린 광기를 읽어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힌트다.'
김평범이 무언가 메시지를 건네고 있었다.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촬영해 주겠어.'
그녀는 스트리머 전용 스킬, 초속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이후, 온 정신을 집중하여 촬영을 시작했다.
* * *
이마에 돋아난 손가락 정도 크기의 뿔.
굉장히 오만한 표정.
옷으로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툭 튀어나온 배.
그리고 유독 짧은 팔다리.
나는 이 녀석을 정확히 알고 있다.
[LV65/하곤/여수시 1번GM]
[#이새끼 #내프로젝트를 망쳐? #죽일까?]
GM인데 레벨이 65밖에 안 된다.
쟤는 도깨비 일족의 한 갈래인데, 아마 태어나면서부터 레벨이 50인가로 설정되어 있을 거다.
'내가 아는 이름은 키루돈이었는데.'
척 보니까 사이즈 나온다.
아마 사고 쳐서 개명하고 신분세탁 했을 확률이 높다.
내가 알던 시기의 키루돈, 그러니까 지금의 하곤은 서울 도봉구의 1번 GM이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한 놈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최악이었던 건 도봉역 던전 방화사건이었지, 아마.'
놈은 플레이어 한 명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도봉역 던전에 방화를 저질렀다.
던전에 아주 심각한 문제나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에 행하는 소거 조치였는데, 그 안에는 무려 1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본래 소거 조치를 취할 때에는 모든 플레이어들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하고, 던전의 입구를 폐쇄한 뒤 진행하는 게 원칙이었다.
'분명 잘못된 일이었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항의했었는데……'
근데 저놈이 받은 징계라고는 감봉 3개월뿐이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려서 증거가 없었고, 하곤이 지니는 관리자로서의 권한을 존중한다나 뭐라나.
아무튼 개떡같은 결과여서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었다.
우리 팀의 협력연합 중 하나였던 해질녘이 몰살당했던 사건이라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네르버에서 유족들을 조롱하다 걸렸고.'
꼬치구이들이 맛있어 보였다나 뭐라나.
이 외에도 똥글을 어지간히 많이 싸질렀는데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 난다.
'이 새끼를 엿 먹이려면 완벽한 증거가 필요한데.'
다행히 지금은 촬영에 미친 놈인 강미나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
"야, 대업적 내놔라."
"네?"
얘는 내가 알던 그놈보다 더욱 단순하고 무식했다.
"그럼 목숨만은 살려준다."
"하, 하지만……!"
"10초 준다. 10. 9."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4. 3."
나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하곤의 주먹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렸다.
퍽!
하곤의 주먹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음.'
나보다 레벨이 10이나 높은데 뭐가 이렇게 약한지 모르겠다.
완전히 물레벨이다.
나는 일부러 살짝 몸을 띄웠다.
놈이 때려서 몸이 붕 뜬 것처럼 보이게.
"컥!"
안 아픈데 아픈 척하는 것도 고역이다.
퍽! 퍽!
놈은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
이왕이면 더 때려주면 좋겠는데, 때리다가 혼자 지쳐버렸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지?
"자, 잠시만요."
"헥, 헥, 넌 뒤졌어."
"반환, 반환하겠습니다!"
"그래?"
"대업적…… 반환하겠습니다."
"그러지."
[대업적, '비상섬여 조기 척결'이 회수되었습니다.]
대업적을 빼앗긴 나는 애처로이 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안 되겠습니다. 돌려주세요."
"이 새끼가 뒤질라고."
"빼앗은 거 돌려주시라고요!"
슬쩍슬쩍 움직였다.
뒤쪽에 돌부리가 보이길래 이쯤에서 멈췄다.
"뭔 시X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놈은 나를 떼어놓고 걸어가려 했다.
나는 놈의 다리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슬슬 열이 받을 텐데?'
그럴 텐데?
나는 아주 작게, 강미나의 방송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돼지 새끼가 내 업적까지 다 처먹으려고."
"이 애X 없는 새X가!"
놈은 패드립까지 날려대며 이마의 뿔을 뽑아냈다.
뿔이 주욱- 늘어나며 도끼처럼 변했다.
나는 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일부러 뒤통수를 보여주었다.
"내 업적 돌려달라고!"
뒤통수(후두부)는 급소다.
여길 맞아야 즉사 판정 뜰 거 같다.
놈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나는 놈의 집중이 깨지지 않도록 방해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기다려주었다.
'오, 마력이 모였다.'
[스킬, '낙하하는 도깨비뿔'을 사용하였습니다.]
비록 물레벨이지만 스킬의 위력만큼은 진짜였다.
평소라면 안 맞았겠지만 급소에 맞아주기로 했다.
놈의 도끼가 내 뒤통수를 찍었다.
아까 한 번 죽어봤더니 좀 더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즉사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반사+1' 효과가 적용됩니다.]
비상섬여를 상대할 때와 같은 실수는 없었다.
나는 또 성장했다.
"크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퍽!
놈의 뒤통수가 돌부리에 부딪쳤다.
"아니? 우연히 돌부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