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7화
예전부터 그랬다.
강미나는 '독점 촬영'이라면 일단 환장하고는 했다.
내용이 뭐가 됐든 일단 좋아하고 봤다.
내용검토는 일단 독점권부터 따내고 난 다음이라나 뭐라나.
'독점이 나한테 유리해.'
강미나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날 살펴볼 거다.
드론이든 뭐든, 어떻게든 나를 감시할 테니까.
스트리머와 독점 계약을 맺게 되면, 타 스트리머나 과학기술로는 나를 촬영할 수 없게 된다.
'오로지 강미나의 시선으로만 나를 화면에 담을 수 있게 돼.'
* * *
* * *
수많은 사람들한테 나를 노출시키기보다는 강미나 한 명을 통해서만 나를 확실히 보여주는 게 여러모로 나을 거 같다.
혹시 모를 문제영상 같은 게 있으면 편집하기도 쉽고 말이다.
강미나와 간단하게 얘기를 나눴다.
"사실 여수검객은 내 제자거든."
"뭐, 뭐라고요?"
"내 제자를 죽였으니까 복수를 해야지. 내가 확실히 사냥할 거니까 잘 담아둬."
우리는 스트리밍 계약서부터 작성했다.
"조건은 어때?"
"좋아요. 실시간 방송이 아니라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편집본이라도 어딘가 싶었다.
대한민국 스트리머 중 최초로 비상섬여를 사살하는 장면을 방송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그럼 예고편은 올려도 되죠?"
"예고편?"
"비상섬여 사살하겠다는 어그로 끌 거거든요. 짧은 예고편을 준비하면 초반 화력을 끌어당길 수 있고 실시간 인기 동영상에 올라가기 편해요."
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SSF에 빨리 적응한 것 같다.
"괜히 이런 어그로 끌었다가 내가 사냥에 실패라도 하면?"
"실패할 거예요?"
"그건 아니지?"
"반드시 성공시켜요.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딘가에서는 비상섬여를 사냥하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어요. 뭐가 됐든 선점 효과가 중요한 거라고요."
나는 강미나의 눈에 일렁이는 광기를 보았다.
"내 스킬을 읽어내고 내 위치까지 추적한 미친놈이 비상섬여한테 죽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강미나의 광기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예전의 강미나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일 정도였다.
"내 눈 좀 다시 가려봐요."
"뭐?"
"팔목이랑 발목도 좀 묶고."
"왜?"
"썸네일 어그로 끌기 좋아서?"
"……."
강미나는 역시 미친 게 틀림없다.
제 손으로 옷 여기저기를 찢더니 무슨 납치라도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포즈를 잡았다.
내가 봐도 되게 험한 꼴 당한 거 같은 모양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자, 잘 들어요. 나는 의문의 괴한에게 제압당했어요. 괴한이 저에게 자신만을 찍으라고 강요했죠. 제대로 담지 못하면 죽여 버린다는 경고와 함께요. 나는 어쩔 수 없이 독점계약을 맺었다는 설정이에요."
"……."
아, 추억 돋네.
강미나는 같은 내용이라도 여러 번을 촬영했다.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똑같은 '안녕하세요'인데 연출법을 달리한다나 뭐라나.
우리는 그런 강미나에게 질려 하면서도 결국 강미나가 해달라는 대로 하곤 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로 만나서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으로 시작할 거예요. 무슨 컨셉인지 이해했죠?"
내 앞에서 옷도 갈아입었다.
옛날 생각 많이 나네.
그땐 진짜 개같이 많이 굴렀고, 덕분에 서로에게 수치심 같은 건 느끼지 못한 지 오래였다.
그때 생각나서 좋다.
"그리고 이번 컨셉은……."
얘는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스타일이기는 했지만 플레이를 향한 저 순수한 열정만큼은 정말 보기 좋았다.
이 순수한 욕망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설정은……."
여러 가지 인트로와 예고편을 촬영한 다음, 본편 내보내기 전에 본편과 가장 어울릴 만한 것으로 선정하여 방송할 거라나 뭐라나.
나는 얘를 만나고서 느꼈다.
'역시 중수 레벨에서 은퇴해야 해.'
나는 얘처럼 다채로운 연출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낼 수 없다.
딱 보면 안다.
이건 재능과 센스의 영역이고, 나같이 검에 미친 애들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지금이야 초반 버프와 몇몇 행운들이 겹쳐지면서 엄청나게 잘해 내고는 있지만, 결국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런 애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 분명했다.
'그때까지 정신줄 놓지 말자.'
내 작은 성공들에 취해서, 하마터면 나는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은퇴까지 노릴 수 있겠다는 자만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세상에 이렇게나 미친놈들이 많다.
'겸손하게 플레이에 임해야겠어.'
반성했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서대문구 3번 GM, 키하엘이 말했다.
"선배님, 자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어?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말입니다. 여수시는 왜 자꾸 들여다보시는 겁니까?"
"아…… 내가 매듭짓고 싶었던 시나리오가 하나 있었는데 좀 걱정이 돼서."
"그, 시 단위 시나리오 말이죠? 아무튼 열정은 알아줘야 합니다. 그거 이미 어느 정도 공로 인정받아서 승진까지 하신 분이 왜 자꾸 그것까지 신경 쓰세요?"
키하엘은 세르찬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모르겠다.
세르찬은 말하지 못했다.
'설마 김철수가 또 비상섬여를 잡으러 가지는 않겠지?'
아닐 거야.
'미치긴 했지만 똑똑한 놈이야. 우리가 분명 대처를 해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또 사냥하려 들지는 않겠지. 설마 그 정도로 또라이는 아닐 거다.'
비상섬여는 죽으면 안 된다.
죽지 말라고 여러 조치를 해놓기도 했다.
단적인 예로, '2페이즈'에 돌입하지 않도록 락을 걸어놓았다.
2페이즈에 돌입하면 비상섬여가 이성을 잃고 바다로 뛰어들고 마니까.
그리고 약점을 '바닷물'이 아니라 '바다'로 설정했다.
혹여 군대가 동원되어 비상섬여를 꽁꽁 묶어 바다에 빠뜨릴까 싶어 순간이동이 가능한 스킬까지 직접 제작해서 넣었다.
"뭔가 불안해 보이시는데요?"
"키하엘. 있잖아, 오픈베타에 가불기 필살기를 사용하는 마물이 있으면 어때?"
"오픈베타에 그런 마물이 어디 있어요?"
"혹시라도 있다면 말이야. 그런 놈이 사냥당하면 어떨까?"
키하엘은 생각하기도 귀찮다는 듯 대충 대꾸했다.
"뭐, 시스템이 엄청난 보상을 쥐어주겠죠."
"얼마나 좋겠어?"
"그건 저도 모르죠. 근데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냐."
정말 혹시 몰라서, '가불기(가드 불가 기술)'이라 불리는 최후의 일격까지 추가해서 넣었다.
당시 김철수는 저게 진짜 '중계자의 결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중계자의 결계를 지나치게 잘 활용했다.
지구 기준으로 최상위 탱커 이상의 실력이었다.
때문에 중계결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가불기인, '빨아들이는 늪'까지 추가했다.
세르찬으로서도 무리를 많이 한 셈이었다.
'인과율에서 지나치게 벗어났어.'
어떤 결과를 막기 위해 관리자가 인위적인 힘을 가하면 반드시 그 반대되는 급부의 힘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겠지만 보상이 지나치게 좋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쓸데없는 생각 말자. 어차피 이제 비상섬여를 잡는 건 불가능해.'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불안했다.
'아, 좋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약간의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냄새가 섞여 있기는 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암컷 설정이네.'
[LV90/비상섬여(♀)/스킬/여수시 시나리오의 첫 단추]
저번에 만났던 놈이 레벨 83이었다.
근데 이제는 레벨 90이다.
더 강해진 놈을 가져다 놓았다.
'와, 세르찬이 이를 갈았구나.'
83짜리 마물도 한국 맵의 기준을 아득히 초과한 것일 텐데.
이제는 심지어 90이다.
절대로 사냥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여서 즐거워졌다.
자고로 깨기 어려운 것일수록 깨야 제맛이다.
운영자가 깨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걸 깨는 거야말로 엄청난 희열을 가져다준다.
'좋다. 너무 좋아.'
새로운 스킬까지 추가되어 있었다.
그것은 '공간도약'이라는 스킬이었다.
'아…… 혹시 포박돼서 바다에 빠지게 될까 봐? 피하라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사실인데, 바닷물도 더 이상 약점이 아니란다.
애썼다 진짜.
'거기에 빨아들이는 늪? 이건 상세확인이 불가하고.'
나도 정보를 알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렇다면 2페이즈 돌입도 없게 설정해놨겠네.'
그래야 바다에 빠질 가능성도 줄어드니까.
나는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저 정도로 억지로 손을 써놓으면 보상이 엄청 좋아지는데?'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기는 하다.
비상섬여와 마주한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전보다 더 강해진 마물, 추가된 스킬 등을 통해, 출제자가 내놓은 문제의 의도를 파악해 내는 이 과정.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 실력향상을 체감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
당시에는 잠재 스킬에 불과했던 '예기'와 '보다 예리하게'는 이제 완벽히 내 스킬이 되었다.
비상섬여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나를 향해 날아들겠지.
그리고 나는 놈과 부딪치면 즉사다.
아, 물론 업적효과가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날아든다.'
놈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몸을 던져 비상섬여의 돌진을 피해냈다.
'안 피해도 되긴 하지만.'
나는 지금 '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 업적을 적용 중이다.
레벨 100 이하급, 두꺼비류 마물의 공격에는 완전 면역.
그렇지만 저렇게 거대한 놈이랑 몸으로 부딪치는 건 검술가로서 별로 좋은 행동은 아니었다.
"와라."
땅에 고꾸라졌던 비상섬여는 몸을 일으킨 뒤 나를 노려보았다.
수컷이 그랬던 것처럼, 날개를 접은 채 멧돼지처럼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점점 커져 가는 놈의 모습이 내 시야에 잡혔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검결을 따라 놈의 몸을 베었다.
피할 수 있는 건 피했고, 무시할 건 무시했다.
업적효과 덕분에 놈의 공격은 내게 닿지 못했다.
'미세하게나마 상처가 난다.'
이걸로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보호막을 벗겨내고 있다.
내 실력은 전보다 늘었다.
나는 비상섬여와 두 시간 동안 전투를 벌였다.
'이렇다 할 부상이 없어.'
저번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다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 클리어(사러가 던전)' 업적을 적용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 업적을 적용해도, 나는 검을 내 마음대로 휘둘러 놈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예전만큼 쫄깃함은 없지만.'
여기까지 오는데 왼쪽 어깨가 빠졌었고 갈비뼈에 금이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상이 없다.
내가 성장했다는,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신이…… 난다!'
보호막을 모두 벗겨내는 데 성공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하!"
그리고 비상섬여를 노려보았다.
보호막이 벗겨지면 본래, 붉은색 증기를 뿜으며 2페이즈에 돌입한다.
'2페이즈가 없어.'
그러면 이놈이 무엇을 선택할까?
나는 한 줄기 서늘함을 느꼈다.
'와.'
이거 죽음을 직감하기 직전의 그 느낌인데.
참고로 나는 전생에서 이 느낌을 수백 번 이상 경험했었고 내 나름대로 직감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느낌을 죽음이 접근했다고 표현한다.
'발밑?'
보글보글, 무언가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중계자의 시야가 그제야 상황을 해석해서 보여주었다.
저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얘도 한 박자 느렸다.
[특수 스킬, '빨아들이는 늪'이 사용되었습니다.]
쪼그려 앉은 비상섬여의 발밑에 녹색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보라색과 녹색이 섞인 마력이 피어올랐고, 비상섬여의 거품이 보글보글 끓었다.
내 중계결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놀랍게도, 내 결계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가불기?'
이게 오픈 베타 서버에 적용됐다고?
내 업적 효과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설정이 적용된 것이 실화인가 싶다.
역시 세르찬은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이 정도로 설정을 억지로 매만졌으면, 도대체 뭘 주려나?'
내 성장은 이미 확인했다.
이제는 보상을 기대할 때도 된 거 같다.
내 몸이 점차 '빨아들이는 늪' 효과에 잠식되어 갔다.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그래. 이거 맞으면 즉사지.'
시야가 어지러워지는가 싶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간, 쿵! 하고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베라클라프의 목걸이 효과가 작용합니다.]
'어?'
근데 조금 묘했다.
생각보다 내 방어력과 정신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이게 아닌데?'
나는 이 공격을 즉사 공격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내 업적효과와 신체의 방어능력이 내 생각보다 지나치게 좋았던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튼튼했다고?'
누가 와도 죽을 공격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직감과 기준이 틀린 것 같았다.
틀린 적 잘 없는데.
즉사였어야 할 것이 분명했던 공격이 치명상으로 판정되었다.
[치명상에 해당하는 공격입니다.]
[즉사 공격으로 전환됩니다.]
푹!
보이지 않는 거대한 검이 내 심장을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