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5화
구자열.
각성명 구밀복검.
레벨 40의 선동가인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고봉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무슨 일이냐?
"서강대 연합 애들 이끌고 얼른 홍대 던전으로 와."
-왜?
"금수저 떴어."
-오, 진짜?
구밀복검은 실질적으로 홍대연합을 이끄는 연합장.
그리고 각성명 '신촌 날라리'는 서강대연합을 이끄는 연합장이었다.
그는 '포청천의 후예'라는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속박 계열에 뛰어난 실력이 있는 디버퍼였다.
* * *
* * *
* * *
레벨은 44.
구밀복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아는 척은 아넬란한테 하고.
이건 구밀복검의 선동가 스킬이었다.
'귓속말'이라 불리는 것으로 몰래 음성을 전달할 수 있었다.
"아넬란 연합장님. 늦어서 미안합니다."
실질적인 대화는 구밀복검과 하지만 겉으로는 아넬란과 대화하는 척했다.
구밀복검이 아넬란에게 귓속말을 전달했다.
-우리 작전, 다시 한번 점검해.
아넬란이 말했다.
"서강대 연합장님. 저희 작전은 다 알고 계시죠?"
"당연하죠. 원투데이도 아닌데. 엄청난 부자 놈들이 저기 들어갔단 말이죠?"
서강대 연합은 연합장을 필두로 하여 디버퍼 계열의 플레이어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신촌 날라리가 말했다.
"우리가 포박하면, 그쪽이 완벽히 제압. 그리고 돈을 뜯어낸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이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준비했다.
신촌 날라리가 피식 웃었다.
"아직까지도 문이 잠겨 있는 걸로 봐서 이미 피떡이 되어 있겠네요."
호기롭게 여기 들어갔던 재벌가의 도련님들도 모두 피떡이 되어 나왔다.
그들을 속박해서 돈과 아이템들을 뜯어냈는데, 그게 벌써 2억여 원에 이르렀다.
"요 며칠 도련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서 아쉬웠는데 말이야."
얼마 후.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강대 연합, 준비."
이제 곧 피떡이 된 플레이어 둘이 나타날 것이었다.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들려왔다.
"아, 나 좀 설렜었는데."
'나 쫌 설렜는데.'
각 계열의 훌륭한 실력자들을 만나는 건 늘 흥분되는 일이다.
그런데 무척 실망이 컸다.
마력실로 이루어진 허접한 그물망이 내게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스킬, '포박줄'을(를) 사용하였습니다.]
[스킬, '그물망'을(를) 사용하였습니다.]
[스킬, '느리게 걸어라'을(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속박 스킬이 더해졌다.
그 스킬들이 모두 듬성듬성한 포위망을 형성해서 내게 날아들고 있었다.
피할 곳이 너무 많아서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걸 맞아주면 등신이지.'
이렇게 허접한 포위망은 처음 봤다.
내가 옆으로 세 걸음만 옮기면 거기가 바로 생로(生路)였다.
나는 옆으로 세 걸음을 옮겼다.
'이런 속박 덫에 걸리는 등신이…….'
있네?
옆을 보니 한세린이 속박 스킬에 걸렸다.
발밑에서 검은색 팔이 튀어나와 한세린의 발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아니, 이걸 걸린다고?'
한세린은 어떨 때는 참 아름답다가도 이럴 때는 기준 미달이다.
한세린의 미래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속상한 일이다.
제일 어이없는 건 '신촌 날라리'라는 각성명을 가진 미친놈이었다.
"으하하핫! 이게 서강대연합의 힘이다."
서강대연합은 또 무슨 듣보인지 모르겠네.
"이제 너희 차례다."
아까 1층에서 봤던 몇몇 플레이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한세린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야?"
"무슨 상황이긴. 납치당하는 상황이지."
내가 말했다.
"5초 줍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으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든지, 아니면 뒤돌아서 멀어지세요. 내가 지금 기분이 좀 나빠요."
그러자 신촌 날라리가 낄낄대며 웃었다.
"뭐라는 거냐, 이 등신아!"
쟤는 내가 속박 스킬에 걸렸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왜?
왜 확신하는 거지, 진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이미 속은 만신창이인 놈이."
내 속이 만신창이라고?
나 지금 되게 상쾌한데.
진짜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해대네.
"이상하게 내가 친절하게 경고하면 안 듣더라."
이게 유명하지 않은 자의 설움이라면 설움이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내 경고가 약발이 좀 먹혔었는데.
그래, 뭐든지 일장일단이 있는 법이다.
"흐아압!"
기합성을 내지르며 내게 다가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얘도 내가 완전히 속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렇게 무방비로 달려들지.
푹!
너무 무방비로 달려들기에 어깨에 단도를 꽂아줬다.
"으아악!"
연합 애들이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솔직히 마지막 순간까지, '얘네 연기하는 거 아냐? 나 방심시키는 건가?'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근데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내가 속박에 걸렸었다고 확신하는 거 같다.
"그런 조잡한 속박에 누가 걸리냐? 눈이 달렸으면 세 살짜리도 피하겠다."
그 사이, 또 다른 속박 마법들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스킬, '포박줄'을(를) 사용하였습니다.]
[스킬, '그물망'을(를) 사용하였습니다.]
[스킬, '느리게 걸어라'을(를) 사용하였습니다.]
'똑같은 걸 또 쓴다고?'
얘들은 배움이 없는 거 같다.
아까 기습으로 해서도 실패한 걸, 이제 대놓고 쓰고 앉았다.
기본이 안 된 놈들이 자부심을 갖고 있는 거 같아서 화가 날 지경이다.
납치 플레이를 할 거면 쫄깃하게 제대로 해야지, 왜 이딴 식으로 해서 사람을 엿 먹이냔 말이다.
나는 안 피했다.
"됐다!"
"잡았다!"
홍대연합 소속의 창술가 둘이 내게 다가왔다.
그래도 아까 칼에 찔리는 걸 봐서 그런지 조금 조심스럽기는 했다.
신촌 날라리가 말했다.
"야, 뭐해! 빨리 찔러."
아, 참고로 나는 속박에 안 걸렸다.
피하지는 않았지만 중계결계로 막아냈다.
그리고 쟤들이 뻗는 창도 중계결계로 막을 참이다.
탕! 탕!
두 개의 창이 내 중계결계에 부딪쳐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나는 거리를 좁혀 내게 창을 뻗은 놈의 어깨를 향해 단도를 휘둘렀다.
[스킬, '보다 예리하게'를 사용합니다.]
서걱!
팔을 날려 버렸다.
"으아아아악!"
나는 땅에 떨어진 놈의 팔을 집어 던졌다.
놈들은 진짜로 기본이 하나도 안 되어 있다.
"눈을 감아? 고개를 돌려?"
와 이건 진짜 선 넘는 거지.
푹!
놈의 어깨에도 단도를 찔러 넣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열 명이 넘는 저쪽 놈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래서 싸움은 기세가 중요한 거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겁먹을 거 없어. 이건 저놈의 특수한 능력이야. 심각한 위협을 느끼면 각성해서 커다란 힘을 발휘해. 용기를 잃지 마. 우리는 홍대연합과 서강대연합이다. 지금 무너지지만 않으면 놈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홍대연합의 연합장 아넬란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건 아넬란의 목소리를 빌린 구밀복검의 '선동'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야. 남의 입을 빌려서?'
연합장 아넬란이 검을 들고 내 앞에 섰다.
"내가 놈을 막는다. 놈의 체력은 곧 바닥나. 그때 사냥하……."
선동가의 말을 받아서 그 음성을 전달하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다.
이러면 딜레이가 생긴다.
원래 사람은 한 번에 하나밖에 못 하게 설계되어 있다.
저렇게 행동하면 반응이 무척 느려진다.
그래서 그냥 얼른 다가가 단도를 휘둘렀다.
"큭."
"누가 전투 중에 그렇게 말을 길게 해?"
"비겁하게."
"자기소개하는 거냐?"
기습에 다구리에.
누가 누구더러 비겁하다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넬란이 팔을 잃자, 오히려 연합 애들은 분기탱천하여 용맹해졌다.
"그래도 신망 높은 연합장이었나봐."
몇몇 놈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고 난전이 벌어졌다.
그사이, 구밀복검이 크게 외쳤다.
"여기서 죽여야 해. 놈이 혹시 살아 돌아가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다. 수많은 놈들을 고용해서 우릴 모두 죽일 거라고."
저들 나름의 극한의 전투 상황(?) 속에서 선동은 꽤 잘 먹혀들어 갔다.
'얼씨구?'
난전을 유도한 뒤, 지는 도망치려는 거 같다.
'그래도 나한테 달려든 놈들은 기특하네.'
자기 연합장을 공격했다고 눈 까뒤집고 달려드는 놈들은 갸륵한 놈들이다.
그러니까 팔을 자르지는 않고 찌르기만 했다.
푹! 푹! 푹!
급소는 다 피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전투 불능이다.
"연합장이랑 동료들을 두고 튀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 저놈인데, 저놈만 여기서 제일 멀어져 있었다.
"진짜 선 넘네."
나는 단도를 집어 던졌다.
구밀복검의 뒤통수에 정확히 꽂혔다.
놈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남은 녀석들은 항복했는데, 항복한 녀석들은 가볍게 손가락 하나씩만 잘랐다.
"너네들은 얼른 힐러한테 가서 회복시켜달라고 하면 회복은 될 거야."
졸개들은 졸개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아직 어린 애들이고 자라나는 새싹들이니까 이쯤에서 봐주기로 했다.
"근데 대장들은 안 되지."
나는 아넬란의 팔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서강대 연합장 신촌 날라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래도 나는 인권을 존중하는 선량한 플레이어니까."
습관이 무섭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고 동요되지 않은 모습으로, 차분히 고지했다.
"안 아프게 자를게. 팔 줘."
놈이 뒷걸음질 쳤다.
"으아아악!"
좋게 잘 고지했는데 진짜 정도를 모른다.
나는 놈과의 거리를 좁혀서 신촌 날라리의 팔을 잘라냈다.
"너네 둘은 책임져야지."
아넬란은 핼쑥해진 얼굴로 어깨 쪽을 지혈했다.
그러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내가 책임지겠다."
뭔 소리지?
책임은 이미 졌는데.
내가 들고 있는 팔 안 보이나?
털썩.
무릎을 꿇고 목을 주욱 내밀었다.
"대신 연합원들은 살려다오. 다 내 명령으로 움직였으니."
아니,
죽인다고 안 했는데 왜 당연히 죽일 거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그사이 신촌 날라리는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시X! X까!"
아넬란이랑 비교되네.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품에서 단도를 꺼내 신촌 날라리의 뒤통수를 향해 던졌다.
저렇게 도망가면 죽는다는 걸 아까도 봤을 텐데 왜 저러나 싶다.
"쟤가 목숨으로 갚았다."
나는 아넬란에게 팔을 툭! 던져줬다.
두 명의 팔 대신, 한 명의 목숨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아, 옛날 생각나네.'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이런저런 낭만들이 있었다.
부하를 끔찍이 생각하는 대장들을 살려주는 건 흔한 일이었다.
'나도 몇 번 살았고.'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목숨을 다해 싸우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나 뭐라나.
"팔을 붙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 다만 앞으로 이런 짓을 하지 말고. 선동가에게 놀아났다는 변명은 한 번이면 족해."
얘는 무척 놀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설마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세뇌에서 풀렸다 #은혜는 #잊지 않겠다 #강해져서 #갚도록 하지]
괜히 뿌듯해졌다.
그림자에 몸을 숨긴 한세린은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처음에는 놀랐다.
차진혁이 스트리머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비상식적으로 강해.'
차진혁에게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니, 뗄 수 없었다.
'아름다워.'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작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우아했다.
상황이 모두 정리되고 나서 한세린이 차진혁에게 홀린 듯 다가갔다.
"아름…… 다워!"
그러고서 차진혁의 몸 여기저기를 미친 사람처럼 만져댔다.
달뜬 숨을 내뱉으며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차진혁은 뿌듯한 얼굴로 한세린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 표정이지!'
한세린이 영감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 영감은 곧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차진혁은 한세린의 영감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맘껏 만져."
이제야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얘의 깨달음을 위하여 내 몸을 기꺼이 내주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한세린은 자신이 차진혁의 가슴팍을 주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어, 아니, 이, 이건……!"
"깨달음은? 얻었어?"
한세린은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진혁은 한세린 자신을 더없이 잘 이해해 주고 있었다.
변명하려던 마음은 싹 달아나고 충만한 만족감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조금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를 엿본 것 같아."
"그렇다면 됐네. 아까 그런 속박에 걸린 건 좀 그랬지?"
"……."
"진짜 실망했다."
실망했다는 그 말이 한세린을 무척 기쁘게 했다.
그것이 자신을 단련시킬 채찍이었으니까.
"……미안하다. 진심으로. 다음부터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고마워."
한세린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차진혁은 방송을 켰다.
"강화 콘텐츠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운 좋게 재료 아이템들을 얻었거든요. 과정은 지루할 거 같아서 생략했습니다. 곧 뮬리누스의 작업장에 도착합니다!"
이윽고 뮬리누스의 작업장에 도착했다.
뮬리누스는 깜짝 놀랐다.
"이걸 벌써 구해왔다고?"
손가락을 받아든 뮬리누스는 허- 하고 웃었다.
"설마하니 이걸 정말로 가져올 줄이야."
뮬리누스는 달무녀의 손가락을 한참이나 살피다가 이내 낡은 앞치마와 망치를 들었다.
"강화를 시작하지."
꽝! 꽝!
뮬리누스가 망치질을 시작했다.
그때마다 번쩍번쩍 빛이 새어 나왔고, 재료 아이템들이 하나하나 소진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찬란한 빛과 함께, 베라클라프의 목걸이의 형태가 바뀌었다.
"자."
강화된 목걸이를 받아든 순간.
새로운 알림이 이어졌다.
[서버 최초로,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강화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히든 피스, '신기록'을(를) 만족하였습니다.]
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