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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64화 (64/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4화

차진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잘 가다가 도대체 왜 그러냐? 마물과 비마물을 구별도 못 한다고?'

물론 생명이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한세린이잖아? 한세린은 그러면 안 되지.'

한세린에 대한 기댓값이 워낙 높은 차진혁인지라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차진혁의 그 표정은 한세린의 자존심에 또 커다란 상처를 냈다.

컹! 컹!

예전, 바람나그네가 제시했던 '가출천견' 미션 때 만났던 붕붕이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 * *

* * *

* * *

붕붕이는 육중한 몸으로 차진혁을 덮쳤다.

'이야. 많이 컸네.'

차진혁은 붕붕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붕붕이는 그게 놀아주는 건 줄 알고 신이 나서 컹컹거렸다.

[#놀아줘 #놀아줘!! #놀아줘!!!]

꼬리가 세차게 흔들렸다.

꼬리가 흔들리다 못해 엉덩이가 같이 흔들렸는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붕붕이가 차진혁의 얼굴을 마구 핥았다.

"얘는 아직도 자기가 애기인 줄 알고 날 덮친 거야. 흉흉한 기세로 뛰어왔지만 놀아달라고 보채는 거라고. 그걸 몰라?"

회귀 이후, 붕붕이를 처음 만났을 때 붕붕이를 알아보지 못했었다.

'내 눈썰미가 후진 게 아니었네.'

차진혁은 약간 안도했다.

붕붕이를 알아보지 못했던 건, 자신의 눈썰미가 나빴던 게 아니라 붕붕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회귀 이후 만난 붕붕이는 무게 약 10㎏가량의 어린 강아지였다.

그때는 레벨은 35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만난 붕붕이는 훨씬 더 자라 있었다.

회귀 전 붕붕이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한 상태였다.

[LV77/붕붕이]

[#신난다 #신난다 #신난다]

차진혁은 무게가 무려 40㎏에 육박하는, 자기 스스로를 아직도 아기인 줄 아는 붕붕이를 슬쩍 밀어내고서 일어섰다.

한세린은 잠자코 차진혁을 바라보기만 했다.

'쟤는 마물이 아니라는 걸 알아봤는데, 나는 못 알아봤다고?'

차진혁이 저 강아지와 친분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스트리머인 차진혁은 저 강아지가 '마물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한세린 그녀가 최후를 준비할 때, 차진혁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차진혁이 다가와 말했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실망이네."

"……."

한세린 주먹을 꽉 쥐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이 사실을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어디 숨고 싶다가도 저 구름 아래로 콱 뛰어들고 싶을 정도였다.

"야 그리고, 뭐? 반해? 고백?"

"그, 그건……!"

"진짜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라."

차진혁은 한세린을 여자로 볼 수 없었다.

한세린은 전우였고 형제였지, 결코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한세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내가 너무 허접한 모습을 보였지.'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징그럽다고 말해도 할 말 없었다.

차진혁의 말을 십분 이해했다.

저 기준이 너무나 옳아서 할 말이 없었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붕붕~"

듣는 순간 기분이 좀 나빠졌다.

평범한 목소리가 아니라 코맹맹이 소리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교태 섞인 목소리?

아무튼 내 입장에서 그리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굳이 글자로 표현해 보자면 '붕붕~♡' 같은 느낌이었다.

"우디 귀요운 붕붕이~."

나는 저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있다.

만나자마자 내 팔을 부러뜨렸던 어린 천사, 루루카였다.

"우디 붕붕이 오디 숨오찌~?"

한세린이 말했다.

"위야."

나도 위쪽을 바라보았다.

아주 큰 실수를 한 번 하더니, 기감을 날카롭게 다듬고 있는 중인가보다.

저만치 멀리.

하얀색 날개를 펄럭이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천사가 하나 있었다.

루루카가 땅에 착지했다.

"네 녀석들은 누구지?"

루루카는 나와 붕붕이를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붕붕이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었다.

그새 조금 예뻐해 주고 소시지 하나 줬다고 아주 끈끈한 관계가 되었다.

"어찌하여 나의 사적인 공간에 발을 들였느냐, 하찮은 인간들이여."

"무게 잡지 마. 멋없어."

"무어라?"

"그리고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른들은 무게를 잡지 않아."

얘는 어른에 대해 약간 오해를 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 '~하오.'라든가 '~하였더냐?' 같은 말투를 쓴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성인 천사들도 우리랑 그냥 똑같은 말투 쓴다.

"붕붕. 이리 온."

붕붕이는 고개를 휙 돌리고 내 옆에만 앉았다.

루루카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이써 #네 보호자는 나야]

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2 천사답게, 괜히 나한테 신경질을 부려댔다.

"네놈은 어찌하여 나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는 것이지?"

"어딜 봐서 감탄해야 하는 건데?"

"나를 보아라. 이 루루카를 보거라. 네 눈이 닿는 모든 곳이 지극히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천사들이 대부분 사회성이 무척 떨어지기는 하는데, 쟤는 유독 심하다.

나는 사실을 말해줬다.

"내 눈에는 얘가 더 아름다운데."

나는 한세린을 가리켰다.

한세린은 플레이에 진심이다.

플레이에 매진하고 열중하다가 결국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 행복해하던 그 모습.

오늘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모습들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대의 볼품없는 심미안의 수준을 알겠구나! 마치 김씨 성을 쓰는 어떤 미친놈과 비슷한 수준이로다!"

김씨 성을 쓰는 어떤 미친놈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보나 마나 정신이 똑바로 박힌 녀석이겠지.

루루카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루루카는 살살 자극하고 놀려대야 한다.

그래야 내가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어째서 네 사적인 공간에 발을 들였냐고 물었지?"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필드의 정식 명칭은 '달무녀의 무덤'이다.

말 그대로 달무녀가 묻혀 있는 곳.

내가 싸워봐서 아는데 진짜 엄청나게 강하다.

'설정상 반신이었지.'

내가 싸워본 적들 중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강했기에 기억이 또렷하다.

원래 '달무녀'는 우주를 멸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전해진다.

참고로 내가 싸웠던 '달무녀'는 진짜 달무녀가 아니라 어떤 세력이 임의로 부활시킨 가짜였다.

'달무녀'의 힘을 약간 빌린 수준이었는데도 그렇게 강했다.

설정상, 달무녀는 일몰의 군주와의 100년 전쟁에서 패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얘를 죽인 일몰의 군주는 얼마나 센 거야?'

내가 240레벨을 넘게 플레이하면서도 만나 보지 못한 존재다.

["비록 적이었으나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 하늘 위 땅의 숨결이 닿지 않는 곳에 그녀를 위한 궁전을 지어 누구도 찾을 수 없는 깊숙한 곳에 그녀의 시신을 안치하라."]

궁전 같은 무덤이 지어졌고, 구름 깊은 곳에 달무녀가 안장되었다.

그녀의 무덤에는 영기가 가득했다.

그 영기는 '달무녀'의 숨결에 묻어 있어 온갖 기적을 일으켰다.

그러나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 힘이 점차 옅어졌다.

그에 따라 '달무녀'는 점점 잊혀졌고, 웅장했던 그녀의 무덤 또한 세월에 삭아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영기의 일부가 남아 소소한 기현상들을 일으켰다.

'홍익대학교 던전'이 바로 그중 하나였다.

'말괄량이 루루카가 놀이터로 삼았던 이곳.'

루루카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중2다.

공부하기 싫어서 뺀질대고 도망치는 어린애.

얘는 나름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얘 부모님이 그걸 반대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루루카는 매일 이곳으로 도망쳐서 몰래 그림을 그리곤 했다.

["엄마아빠는 내 마음을 하나도 몰라."]

비록 어리긴 했지만 루루카의 마음 자체는 진심이었다.

어린 천사의 진심과 이곳의 영기가 만나 반응하여, '홍익대학교 던전'이라는 던전이 하나 생성되었다…… 는 것이 홍익대학교 던전의 탄생 배경이었다.

아, 모든 던전에 이런 설정이 붙는 건 아니다.

이런 설정이 붙었다는 건 이곳이 그만큼 향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루루카. 너 혹시……."

"뭐?"

"아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아니 멈추는 것이냐?"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쟤는 컨셉질에도 별로 소질이 없는 거 같다.

흥분하면 평소 말투가 튀어나온다.

"난 뭔가를 찾으러 왔어. 근데 뭐, 네가 알 리가 없지. 됐어. 내가 알아서 찾을게."

루루카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대의 짧은 안목과 식견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을, 이 내가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어린애한테 뭘 물어보겠냐?"

"이 몸은 어리지 않으시다!"

보면 중2보다 더 어린 거 같다.

사람으로 치면 한 6살쯤 되는 거 같은 느낌이다.

"야, 네가 달무녀를 알기나 해?"

"흥, 달무녀라면 어린아이들도 알고 있는 전래동화를 말하는 것이로군."

"응, 그래. 그렇구나."

나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서 내게 얼굴을 비비고 있는 붕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멍멍아. 소시지 줄까?"

루루카의 날개가 빨갛게 변했다.

몹시 흥분한 모양이었다.

"달무녀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단 말이냐?"

"너 어차피 모르잖아."

"안다면?"

"에이, 됐어. 괜히 무리하지 마."

"이곳에 달무녀가 묻힌 무덤이 있다. 천사들은 구름 속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지. 한 번 나의 위대한 능력을 견식해 볼 테냐?"

쉽네.

지구로 치면 이곳은 방치된 문화 유산 같은 거였다.

천사들에 의해 최소한의 관리는 되고 있으나 사실상 버려진 곳이었다.

루루카가 구름길을 헤치고 앞장서서 날았다.

'와, 왜 저렇게 빠르냐?'

따라가기 힘들었다.

솔직히 나 혼자 왔으면 이 구름 속에 갇혀서 길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내게는 한세린이 있었다.

"내 손 잡아."

한세린은 과연 랭킹 1위의 길잡이다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신비, '추적술'을 사용합니다.]

신비를 벌써 익히고 있단 말이야?

세상이 뒤로 쭉쭉- 밀려났다.

한세린 덕분에 루루카를 놓치지 않고 쫓을 수 있었다.

"흥, 인간들이 제법이로구나."

시야를 가리던 구름이 걷히고, 이내 구름으로 이루어진 들판이 하나 보였다.

들판 가운데에 작은 무덤이 하나 존재했다.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달무녀가 묻혔다 전해지는 무덤이도다."

중계자의 시야가 정보를 읽어냈다.

──────────

['달무녀'의 무덤]

'달무녀'가 묻힌 무덤을 형상화하여 만든 모형.

──────────

내가 찾던 게 이거다.

어차피 지금 우리 수준에서 진짜 무덤은 못 찾는다.

아마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디언들에게 몰살당할 거다.

"진짜 아네?"

"그대의 부족한 능력으로는 이곳을 찾을 수도 없었겠지."

"고맙다. 대단하네."

나는 루루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줬다.

이거 누가 발견한 공략인지는 모르겠는데, 한껏 약 올린 다음 이렇게 해주면 루루카의 마음이 열린다.

"흥! 그따위 사탕발림에 내가 기분이 좋을 줄 알고?"

[#콩닥콩닥 #칭찬받았어 #나님 대단해써?]

나는 중계상점에서 곡괭이를 하나 사서 무덤을 파내기 시작했다.

"무, 무얼 하는 것이냐?"

"내가 찾는 게 여기 있을 것 같아."

루루카는 호감을 가진 상대를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훗날, 모든 플레이어가 다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이 '달무녀의 손가락'은 각종 퀘스트와 시나리오에서 쓰이는 주요 재료 아이템이었으니까.

무덤 안에는 관이 하나 있었고 그 관을 열자 손가락이 하나 보였다.

[달무녀의 손가락(레플리카)]

'원래는 시신을 본뜬 모형이 있어야 하는데.'

근데 여길 관리하는 천사들 중 일부가 예산을 많이 해먹고 손가락만 복제해서 가져다 놓았다.

내가 마음 놓고 이곳을 파헤칠 수 있었던 이유다.

여기가 정식으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었으면 천사들이 나부터 잡아 족쳤을 테니까.

내가 여기를 이렇게 해먹어도 나를 추궁하지 못할 거다.

'상당히 정교한 모조품이네. 생각보다 쉽게 얻었어.'

운이 좋은 거 같다.

강화교본에 써 있는 것도 어차피 '레플리카'였고 전생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목걸이를 강화했었다.

'그럼 이제 강화를 해볼까?'

여기서 홍익대학교 던전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루루카를 협박하면 된다.

"네가 여기 이렇게 망가뜨렸다고 소문낸다?"

그러면 겁먹은 중2, 아니, 6살 루루카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길을 열어준다.

절대 그런 헛소문을 내면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루루카가 울먹거렸다.

"진짜 나쁜 사람이도다!"

"좋은 거 배웠다고 생각해라."

나는 루루카의 머리를 또 쓰다듬어 주었다.

얘도 어떻게 보면 마음이 참 여리다.

솔직히 싸우면 자기가 이길 텐데 말이다.

나였으면 이미 나를 죽이고도 남았다.

[#왜 때문에 잘생김 #내 취향 아님 #아닐걸 #근데 잘생김 #내 취향인가]

나 지금 되게 평범한 얼굴 하고 있는데 왜 저러지?

아. 얘도 나중에 미인계 쓰려고 연습 중인가.

안 잘생겼어도 잘생겼다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다스려야 미인계를 잘 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거 같다.

아무래도 조심해야겠다.

아무튼 루루카 덕분에 나는 아까 있던 1층 공간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얼른 뮬리누스의 작업장으로 가봐야겠다.'

그러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나를 향한 몇몇 포박술이 날아들었다.

플레이어들의 스킬이었다.

아마도 나를 속박하려는 것 같았다.

'오!'

아무래도 나를 납치하려는 것 같았다.

납치시도는 오랜만이라 약간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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