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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63화 (63/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3화

홍익대학교 던전 안에는 플레이어들이 꽤 많았다.

'활기 넘치네.'

다들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날붓'을 사냥하고 있었다.

날붓은 레벨 30대의 마물이었고, 크기 약 50㎝ 정도 되는 붓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날아다니는 붓' 이라서 날붓인 거 같다.

비행형 마물이고, 이동속도가 재빨라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구석이 있었다.

'쟤를 사냥하면 다이아를 꽤 많이 줬었지?'

레벨 30대 마물 중에서는 다이아를 가장 많이 드랍하는 걸로 알고 있다.

* * *

* * *

그래서 인기가 많은 마물이었다.

다시 말해 홍익대학교 던전은 인기 사냥터였고.

한세린이 말했다.

"여기는 홍익대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홍대연합이 꽉 쥐고 있는 던전이야."

"그래?"

내 기억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당연했다.

다가올 세상에 학연/지연/혈연 등은 하등 쓸모가 없다.

저렇게 '홍익대학교'라는 특정한 조건으로 플레이어들을 묶어놓으면 훌륭한 플레이어들이 모일 수가 없다.

내가 모르는 걸 보면 금방 도태됐겠지.

"그래서 홍대연합의 허락을 받아야만 플레이를 할 수 있어."

"허락을 안 받으면?"

고개를 갸웃했다.

"죽이나?"

"그, 그렇게까지는 안 하는 거 같고."

얘가 당황하는 걸 보니 좀 웃겼다.

'던전 내 플레이를 독점하는 연합이 침입자들을 죽이는 건 너무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게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라 다들 그렇게 한다'라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준 사람이 한세린이었으니까.

"아마 막타를 계속 빼앗고 드랍된 다이아를 강탈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괴롭힌다나 봐."

지금 사냥하고 있는 애들은 홍대연합 소속이거나, 아니면 홍대연합의 허락을 맡은 애들인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저쪽 대장이랑 얘기를 나눠야 일이 좀 편하게 진행되겠네."

"내가 누군지 알아."

한세린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만치 구석에서 날붓과 싸우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저 사람이야. 각성명 아넬란. 실력도 있고 강단도 있어서 연합원들이 잘 따른다나 봐."

"알겠어."

아넬란, 오랜만에 본다.

우리 팀의 협력연합 중 하나였다.

최상위 랭커는 아니었지만 좋게 봤던 기억이 있다.

연합원들로부터 신망이 두텁고 리더로서의 자질이 충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시작은 홍대 연합의 연합장이었나 보다.

나는 일단 아넬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레벨은 48.'

최상위 랭커라 볼 수는 없었지만 비교적 높은 레벨을 가진 여자였다.

나이는 20대 초반.

내가 기억하는 모습보다는 인상이 매서웠다.

"그쪽이 아넬란이죠?"

"플레이 허가권 사려면 저쪽으로 가봐."

아넬란은 내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턱으로 슬쩍 저쪽을 가리켰다.

저쪽에는 상당히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걸 사러 온 게 아니고 좋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반말?"

회귀 전부터 지금까지 이 상황은 아주 익숙한 상황이다.

지들은 맨날 반말하면서 내가 반말하면 어색해한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네가 먼저 하길래."

"그래 뭐, 상관없지. 무슨 좋은 제안?"

그리고 갑자기 무게를 잡는다.

"내 시간은 귀해."

내 시간도 귀한데.

얘 약간 영웅병에 취한 느낌이다.

아니, 중2병에 가깝나.

"허튼 제안이면 쉽게 넘어가지 못할 줄 알아."

내가 알던 성격이랑 좀 다르네.

쉽게 못 넘어가면 어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이러는 것보다는 빨리 이곳의 히든 스테이지를 여는 게 중요하니까.

"날붓이 드랍하는 아이템들 있잖아. 하늘 물감, 땅 캔버스, 바람 붓. 그걸 일괄로 구매하고 싶은데."

홍대연합 애들이 여기를 꽉 잡고 있다고 했다.

날붓이 드랍한 대부분을 얘네가 가지고 있을 거다.

"그걸 구매하고 싶다고?"

아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어지간하면 중계자의 시야를 안 쓰려고 했는데 지금은 써야 할 거 같다.

[……#이 쓰레기를 왜 사? #혹시 쓸모가 있는 건가?]

"아, 오해는 하지 마. 좋은 거라서 구매하려는 건 아니니까."

"그럼 왜?"

"그냥 내 퀘스트 때문에 하는 것뿐이야. 네가 말했지? 시간은 귀중하다고. 나도 그래.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돈 주고 시간을 사려는 거야. 내가 구하려면 오래 걸릴 테니까."

"……."

"가격은 넉넉히 쳐줄게, 내가 돈이 좀 많아서."

"잠깐 기다려."

아넬란은 다른 플레이어 하나를 호출했다.

위계질서가 꽤 잘 잡혀 있는지 안경을 쓴 남자애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레벨 40의 선동가?'

각성명은 구밀복검이었다.

홍익대학교 4학년, 구자열은 '선동가'로 각성했다.

화려한 언변과 화술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홍대연합을 구축했고, 카리스마 있는 후배인 아넬란을 홍대연합장으로 내세웠다.

사실상 홍대연합의 연합장은 아넬란이 아니라 구자열이었다.

각성명은 구밀복검.

'돈이 많다고?'

일단 놈의 정체부터 파악해 보기로 했다.

선동가인 그는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고 움직이는 클래스였고, 타인을 파악하는 뛰어난 스킬인 '선동가의 눈'을 지니고 있었다.

[스킬, '선동가의 눈'을 사용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선동가의 눈'은 차진혁의 '중계자의 시야'보다 등급이 훨씬 낮았다.

그래서 스킬이 어떻게 작용되는지 훤히 보였다.

예전 천사소녀의 스킬을 읽어냈을 때와 비슷했다.

녹색 실선 여러 가닥이 차진혁 자신의 몸을 스캔하는 것이 느껴졌다.

[중계자의 시야가 '선동가의 눈'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차단하지는 않았다.

'다중인생'의 능력과 연동하여 조작된 신분을 보여주었다.

구밀복검(구자열)은 씨익 웃었다.

'레벨 31? 직업은 검술가?'

별로 대단한 놈은 아니었다.

그 옆의 여자 같은 경우는 길잡이인 것 같았는데 정보를 읽어내기는 어려웠다.

아마도 정보를 차단하는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레벨 31짜리 검술가랑 같이 다니는 걸 보면 그리 대단한 길잡이는 아니겠지.'

레벨 31이 아주 저레벨이라고 볼 수는 없었으나 홍대연합에 레벨 30 언저리는 무려 10명이 넘었다.

구밀복검이 조심스레 말했다.

"좋은 조건이라면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연합장님."

"네가 얘기를 해보도록."

"알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차진혁은 피식 웃었다.

'얼씨구?'

바지사장, 아니, 바지연합장을 내세우는 거야 워낙 흔한 일이긴 했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보면 조금 웃기기는 했다.

'아넬란이 바지연합장을 내세우는 성격은 아닐 텐데?'

그렇지만 크게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는 거니까.

차진혁이 물었다.

"여태까지 모은 게 얼마나 되죠?"

"하늘 물감 130개, 땅 캔버스 181개, 바람 붓 111개입니다. 가격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상점 판매가의 10배는 어떠세요?"

"흐음."

[……#좋은 조건인데? #근데 뭔가 숨겨져 있는 거 아닌가? #괜히 파는 거 아냐?]

저런 걸 보면 답답하다.

그냥 서로가 윈윈 되게 쿨거래하면 되는데 별것도 아닌 걸로 머리를 쓰고 있다.

어차피 쓰임새도 모르면서.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아이템들 전부 모으는데, 홍대연합원들 전부를 동원하면 얼마나 걸려요?"

"아마 1주일 정도면 될 겁니다."

"그렇게 귀한 건 아니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나는 시간을 사려고 그쪽한테 거래를 제안한 거지,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그건 그래 #이거 팔면 얼마지?]

상점가의 다섯 배.

하나당 대략 800 다이아가량이었으니 상점 판매가는 대략 33만 다이아.

'그러면 330만 다이아?'

[……#진짜 이걸 산다고? #잡템들을? #a.k.a 금수저?]

1주일이면 구할 수 있는 걸 무려 330만 다이아나 주고 산단다.

구밀복검이 말했다.

"연합장님. 저희에게도 이득이 될 것 같습니다."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의 눈은 연합장이 아닌 차진혁을 향하고 있었다.

[……#금수저가 확실하다 #몸값을 받아낼 수 있겠어 #등신같은 놈 #자신을 숨겼어야지.]

차진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홍대연합과의 거래는 성공리에 끝났다.

구밀복검의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았으나 차진혁은 그런가 보다 했다.

차진혁이 말했다.

"이 던전에는 NPC가 있다던데?"

"맞아. 하늘 물감, 땅 캔버스, 바람 붓을 사들이는 NPC가 있어. 아마 저 길을 지나서 쭉 가면 나올 거 같은데. 뭔데? 왜 그렇게 봐?"

"아니, 자판기 같아서."

"뭐?"

"질문을 누르면 답이 척척 나오잖아."

"……이 정도는 길잡이라면 다들 아는 거야."

"역시 그렇지?"

차진혁은 최근 조금 기뻤다.

자신과 기준이 비슷한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다 보니, 자꾸만 동질감이 느껴졌다.

기준을 낮추고 낮춰도 도무지 이 세상에 적응이 안 됐는데 송하영이나 한세린 같은 이들을 만나다 보니 알 것 같았다.

'내 기준이 마냥 잘못된 건 아니었어.'

"이 정도는 다들 아는 거지?"

"당연하지."

한세린의 안내를 받아 한 방에 들어섰다.

방구석에는 화가 모자를 쓴 여성 NPC가 있었다.

각성룸에서 봤던 천사와 마찬가지로 AI였다.

설정상 이름은 '무명의 화가'였다.

AI답게 정해진 대사를 내뱉었다.

"아무나 하늘로 향할 수는 없어. 천사의 초대가 있어야만 하거든. 모험자, 그대는 천사의 초대를 받은 거야?"

선택창이 떴다.

[그래, 초대를 받았다.]

[아니, 초대를 받지 못했다.]

한세린이 말했다.

"여기서 YES를 선택했다가 호된 꼴 당한 플레이어가 많아. 초대를 받았다고 얘기하면 그 증거를 보이라고 요구하거든."

그런데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무명의 화가'는 손에 들고 있는 붓으로 플레이어들을 무지막지하게 폭행한다고 했다.

폭행이 끝날 때까지 방문이 굳게 잠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이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철컥.

문이 잠겼다.

무명의 화가가 다시 물었다.

"아무나 하늘로 향할 수는 없어. 천사의 초대가 있어야만 하거든. 모험자, 그대는 천사의 초대를 받은 거야?"

한세린이 말했다.

"일단 NO를 선택해. 나도 천사의 초대가 뭔지는 잘 모르겠거든. 이 던전을 탐사하다 보면 얻을 수 있겠……."

"초대받았다."

"야!"

한세린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하는 짓…… 응?"

무명의 화가가 차진혁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오! 오랜만에 자격을 갖춘 모험가를 만났군."

그것은, 예전 차진혁이 서울역 던전에서 획득했었던 '루루카의 깃털'이었다.

성향유를 만들어 악마를 처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 깃털.

벽 한쪽 편에 있던 책장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책장 너머로, 계단이 보였다.

"가봐. 말썽쟁이 루루카가 모험가를 기다리고 있어."

차진혁이 앞장서려다 말고 뒤를 힐끗 쳐다봤다.

"뭐해? 앞장 안 서고?"

"아, 아, 어. 그래. 가자."

한세린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차진혁이 어떻게 '천사의 초대' 조건을 만족했는지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이해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얘는 했는데, 내가 못했어?'

그것은 한세린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냈다.

'얘가 조건을 풀었는데, 내가 몰랐다고?'

최근 그녀는 다시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아주 약간이지만 마음이 해이해졌으나, 마음을 다시 독하게 먹었다.

[히든 스테이지, 구름 정원으로 이동합니다.]

몇 계단을 오르자 필드가 바뀌었다.

한세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하늘 위인가?'

아마도 하늘 위로 설정된 공간 같았다.

바닥은 구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무척 푹신푹신했다.

컹!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한세린은 크게 긴장하며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야. 조심해."

그녀는 소리만으로도 깨달았다.

지금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절대 싸울 수 없는 개체다.

"대적할 수 없는 개체가 틀림없어. 일단 은폐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숨어야 해."

시간을 벌어야 했다.

이곳은 싸우라고 만들어놓은 필드는 아닐 것이었다.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길잡이의 영역.

길잡이가 길을 개척해야 한다.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점차 다가왔다.

분명 광활하게 뻥- 뚫린 공간이었는데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 구름 아래 어딘가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방법을 찾아야 해.'

순간,

불독 형상의 무언가가 구름을 뚫고 튀어 올랐다.

보는 순간 직감했다.

둘이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마물이었다.

'우리는 죽었구나.'

결국 그녀는 길을 찾지 못했다.

'길잡이로서 실격이군.'

차진혁에게 조금 미안해질 정도였다.

차진혁을 향해 유언을 남겼다.

"야, 그래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너 진짜 개잘생겼어."

어차피 마지막이니까.

그냥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기로 했다.

"한눈에 반할 뻔했어. 혹시 살아서 만나게 되면 그땐 고백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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