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62화
나를 향해 뻗어오는 주먹.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분명 위협적이었다.
맞으면 반드시 죽는다.
'쫄깃하지는 않네.'
어차피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걸 알아서 그런가.
박진감 자체는 좀 부족했다.
솔직히 시시할 정도였다.
아니, 근데 맞으면 죽는 주먹인데, 이렇게까지 위기감이 없는 건 좀 오히려 나한테 위험한 거 아닌가 싶다.
'아, 제왕의 격 탓인가 보다.'
확실히 정신방벽보다는 효과가 뛰어난 것 같다.
* * *
* * *
내가 진짜 미친놈도 아니고 저 끔찍한 주먹에 아무런 영향도 안 받았을 리는 없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좀 편해졌다.
후웅-!
커다란 바람이 일었다.
뮬리누스의 주먹이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었다.
혹여 저 주먹에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다시는 이곳에 의뢰할 수 없게 된다.
"미친놈인가?"
"손님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
뮬리누스는 신경질적으로 걸어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원하는 것이 베라클라프 목걸이의 강화겠지?"
"알고 있나?"
"카트리나에게 들었다. 아주 재미있는 오픈베타 플레이어가 있다고."
"그렇다면 얘기가 쉽겠네. 맞아. 나는 베라클라프 목걸이의 강화를 위해 널 찾아왔다."
나는 내가 모아온 재료들을 하나하나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뮬리누스는 초록색 안경을 끼고서 재료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손이 워낙에 커서 내가 가져온 것들이 작은 조약돌처럼 보였다.
그런데 뮬리누스가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그것들이 조작된 영상이 아니었다고?"
"뭐?"
"논란을 모르나?"
"무슨 논란?"
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네가 진짜 스트리머냐, 스트리머가 아니냐, 네가 제공하는 영상이 진짜냐, 아니면 조작된 영상이냐로 매일같이 싸우고 있는데."
"그게 싸울 거리가 되나?"
"한국맵 마이너 갤러리를 몰라?"
"그게 뭔데?"
뮬리누스는 푸하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 컨셉의 연장선이군."
아니 진짜 뭔 소리지?
"개썅마이웨이 컨셉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어. 시청자와의 소통은 물론이고, 스트리밍 외 다른 것은 일절 신경 쓰지 않겠다는 건가?"
"……."
"그래, 아무래도 좋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친놈을 만나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이로써, 네 얼굴을 알게 된 세 번째 시청자가 된 것인가."
"그런 셈이지."
참고로 첫 번째는 최갑수 영감님이고 두 번째는 카트리나다.
뮬리누스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얘가 SSF를 통해 스트리머의 플레이를 즐겨보는 줄은 몰랐는데.
전생에서는 이런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러나 의뢰비가 매우 비싸다. 베라 클라프의 목걸이를 제련하는 것은 아주 힘이 드는 일이거든."
"얼만데?"
전생에서는 2억 다이아를 불렀다.
뮬리누스는 상대와의 호감도에 따라 가격을 제멋대로 책정하는 놈이다.
보통 전 세계적으로 '베라 클라프의 목걸이'를 강화하는 비용은 3억 다이아 정도였는데, 나는 뮬리누스와 사이가 꽤 좋은 편이어서 싸게 먹힌 편이었다.
"1억 다이아."
"……."
"왜 그러지?"
"너무 싸서?"
나는 무구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무구가 곧 생명이니까.
너무 싼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더군다나 나는 얘와 그다지 호감도도 쌓지 않은 상황인데 1억 다이아라니.
내가 저레벨 플레이어라서 약간 대충하려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얘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크하하핫! 1억 다이아가 적다?"
나는 도무지 얘를 이해할 수 없어서 결국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했다.
레벨 차이가 많이 나서 읽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실력이 그정도지 #1억도 싼거야 #봤느냐, 드라골프?]
참고로 얘 레벨은 209다.
지구가 시스템에 편입된 이후로부터 쭉 저 레벨 고정이라고 들었다.
이 정도 레벨 차이면 중계자의 시야로 거의 아무것도 못 읽어내는 게 정상이다.
'도대체 얼마나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거야?'
'드라골프'라는 구체적인 단어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면 정말 강렬한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다.
'드라골프라면…… 서초구 쪽에 있는 또 다른 대장장이?'
내가 드라골프가 아닌 뮬리누스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에서도 연이 있기도 했거니와, 우리 집에서 가까워서다.
"이봐, 김철수."
"내 각성명까지 알고 있군."
"당연하지."
뭐, SSF를 통해 내 영상을 계속 봤다면 나에 대해 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시청자를 여기서 만나니까 좀 신기한 느낌이기는 했다.
"네가 모아온 재료로 목걸이를 강화하는 것은 분명 가능하다."
[퀘스트, '뮬리누스의 진보된 제련법'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재료가 첨가된다면 더욱 훌륭한 목걸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때? 해보겠느냐?"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문득, 이렇게 좋은 단독주택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해졌다.
"이건 엄마 용돈. 이건 아버지 용돈."
각각 500만 원씩 넣어드렸다.
엄마도 아버지도 한사코 거부하셨지만 나는 억지로나마 호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금액을 확인한 부모님이 놀라 까무러치는 걸 보며 나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더 넣으려다가 참았는데 저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아무튼 뿌듯하구만.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일주일간 나는 분에 넘치는 후원을 받았다.
'중간 점검을 좀 해볼까.'
엘튜브를 켜서 통계를 확인해 보았다.
내가 방송을 하는 동안 평균 시청자는 대략 15,000명쯤 되었다.
하루 후원은 약 700만 다이아 정도 되었는데 이래저래 다 떼고 나면 하루 300만 원 정도가 순수익이었다.
'근데 여기 또 따로 VIP패키지를 구매하는 애들이 있단 말이지.'
진짜 이해를 못 하겠다.
나는 다른 스트리머들과는 달리 VIP 대우도 따로 안해준다.
아예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데 왜 자꾸 VIP패키지를 구매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 중간중간에 몇몇 미션들도 수행했다.
VIP패키지 정산과 미션 후원금을 합치니 그게 대략 10억 다이아쯤 됐다.
그러니까 나는 1주일 동안 10억을 벌었다는 뜻이다.
'현실감각이 없어지네.'
소통을 안 하다 보니 나는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최갑수 영감님과 그 주변 사람들의 자존심 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뭐라더라?
트리니티?
그 사람들한테 1억은 우리한테 100원 같은 느낌이라나 뭐라나.
그 사람들 몇이 마음먹고 뿌려대면 10억쯤은 우스울 것이었다.
'진짜로 레벨 100이 되기 전에 은퇴할 수도 있겠다.'
물론 아주 마음을 놓지는 않았다.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속될 수도 있겠지만, 이런 특수는 내 고정소득에서 빼는 게 맞았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오빠! 이거 봐봐."
"노크는?"
차진솔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에건 폴. 이 사람 봐봐. 이번 주에 무려 60억을 벌었대."
"60억?"
"어. 매주 수입을 금요일 밤마다 공지로 띄워. 미국의 스트리머거든?"
"……."
"평균 시청자 숫자는 무려 4만 명쯤 된대. 오빠는 몇 명이야?"
"난 1만 5천 명 정도."
"와, 오빠보다 훨씬 많네! 진짜 대단한 사람인가 봐."
"그런가 봐."
역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와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시청자 숫자치고 수익이 엄청나게 크기는 했는데, 그거야말로 에건폴의 능력이겠지.
'내 목표대로 잘 가고 있는 거 같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에건 폴에 비교하면 조촐(?)하지만, 역시 세상은 3등만 해도 충분하다.
차진솔은 밖으로 나갔고 약간 시간이 흘렀다.
"와, 오빠보다 더 많네! 진짜 대단한 사람인가 봐."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한 번 들리니까 엄청나게 거슬린다.
잠이 안 온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나는 회귀 전보다 훨씬 설렁설렁 플레이하고 있다.
'아니 근데 막 그렇게 엄청나게 차이나는 건 아니지 않나?'
나는 1만 5천 명.
에건 폴은 4만 명.
이 정도면 어찌어찌 비벼볼 만한 수준 아닌가?
내가 진짜 예전처럼 미친 듯이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지 않나?
지금은 내가 설렁설렁하고 있는 건데?
'에라이, 미친놈아.'
1등 안 하면 미칠 거 같은 이 몹쓸 병은 도무지 고쳐질 생각을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실연의 슬픔은 또 다른 사랑으로 덮는 거라고 했다.
이제 곧 토요일이다.
'취미나 열심히 즐기자.'
밖으로 나갔던 차진솔이 다시 들어왔다.
얘는 내 방을 자꾸 무슨 지 방처럼 들락날락한다.
짜증이 나기는 하는데, 싫지 않은 묘한 기분이다.
"아, 오빠. 우리 이번에 또 파주 가기로 했어. 저번 주랑 비교해서 싸워보면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잘 체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좋은 생각이야."
"오빠는 쉴 거지?"
"어, 쉬어야지. 주말이잖아."
쉴 거다.
김평범의 이름으로.
김철수의 본체를 만들어서 침대에 눕혀놓은 나는 김평범으로 플레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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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리누스의 진보된 제련법]
베라클라프의 목걸이를 강화하기 위하여, 외눈박이 거인 뮬리누스가 새로이 고안해 낸 방법.
홍익대학교 던전에 잠들어 있는, '달무녀'의 손가락이 필요하다.
퀘스트 위치 : 홍익대학교 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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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던전으로 가야 한다.
여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30~40레벨대 플레이어들이 주로 이용하는 초급 던전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사실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서울시 규모의 시나리오에서 밝혀지게 될 사실이지만, 이 '홍익대학교 던전'은 '만월의 군대'라 불리는 하나의 세력이 마련한 전초기지였다.
뭐 이건 레벨 100이 넘어가야 등장하는 시나리오니까 지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이 홍익대학교 던전에는 비밀이 숨겨져 있고 당연히 히든 스테이지들이 존재한다.
'그 히든 스테이지의 보스가 달무녀.'
플레이어들은 자기가 속한 진영에 따라 달무녀 편이 되기도 하고, 달무녀와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참고로 나는 달무녀와 대적하는 쪽이었다.
'지금 싸웠다간 만나자마자 재가 되어버리겠지?'
그걸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찌릿해져 오는 것이, 말초신경에 온갖 자극이 밀려드는 느낌이다.
달무녀와 싸울 때 진짜 쫄깃했었는데.
죽음과 삶을 얼마나 많이 오갔는지 모른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검의 영역에 빠져들어 무아지경의 칼춤을 추었던 그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는 그 첫사랑 같은 기억을 가슴 한편에 고이 모셔두고서 한세린과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네가 차진혁이라고?"
"어."
나는 얼굴을 바꿔놓은 상태다.
혹시 몰라 여수검객이라 불리는 그 얼굴에서 또 바꿨다.
"말도 안 돼."
"말이 왜 안 돼?"
자꾸 못 믿길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신분을 확인시켜 줬다.
얘 핸드폰 이름에 '황홀한 차진혁'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얘는 나랑 핸드폰 액정을 번갈아 가면서 살펴봤다.
"근데 얼굴이……."
"평범하지?"
"평범하다고?"
얘는 또 왜 이런 반응인지 모르겠다.
중계자의 시야를 사용해 볼까 하다가 참았다.
이러다가 진짜 사회성 다 없어지겠다.
"왜 그런 표정인데?"
"진심으로 그 얼굴이 평범하다고 생각해?"
"어."
"내 생각에는 네 평균의 기준이 너무 높은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세린은 눈이 좀 낮은 것 같다.
이 정도면 평범하지.
"뭐, 원래 네 얼굴을 갖고 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나를 왜 따로 부른 건데? 데이트를 하자는 건 아닌 거 같고."
"홍익대학교 던전에 숨겨진 필드가 존재해."
역시 한세린은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주 잘 아는 녀석이었다.
숨겨진 필드라는 말에 다른 건 모조리 잊어버렸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달무녀라는 게 있어. 그 손가락을 구해오라는 퀘스트를 받았어."
"나도 거기 들어가 본 적 있어. 그런데 히든 필드는 못 찾았었는데."
"지난 1주일간 많이 성장했잖아. 이번에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세린의 표정에 생기가 돌았다.
볼이 분홍빛이었다.
"가자."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홍익대학교 던전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겼다.
[홍익대학교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한세린이 물었다.
"근데 팀원들이랑 같이 와야 하는 거 아냐? 히든 필드면 우리 둘이서 벅찰 수도 있을 텐데."
"둘이 하는 게 더 짜릿하지 않겠냐?"
"하긴."
자고로 던전은 소수 인원으로 깨는 게 제맛이다.
소수 인원으로 해내면 해낼수록 더욱 성취감이 있다.
가능하다면 솔로잉이 제일 좋고.
얘랑 플레이하면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우리는 플레이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