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50화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무려 두 개의 레벨이 한 번에 올랐다.
[레벨 52을(를) 달성하였습니다.]
별다른 아이템을 드랍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알림들이 이어졌다.
[여수 시나리오, 첫 번째 조각을 파괴하였습니다.]
[대업적, '비상섬여 조기 척결'을 달성하였습니다.]
* * *
그런데 여러모로 약간 이상하기는 했다.
'내가 예전에 이놈 사냥했을 때에는 이런 대업적 안 줬는데?'
그때는 여수 시나리오라는 말도 등장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첫 번째 조각을 완성하였다는 것도 아니고 '파괴'했단다.
'어감이 별로인데.'
게다가 이상한 건 또 있었다.
대업적 '비상섬여 조기 척결'이란 글자에 밑줄이 없었다.
'선택을 해야 상세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오류인가?
오픈 베타 서비스 기간 중에는 이런저런 오류들이 많이 발생했다던데 이것도 그중 하나인가 싶었다.
'GM콜을 써야 하나?'
현재 여수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이곳의 GM들도 상대적으로 굉장히 여유 있을 테니 GM콜에 금방 응답할 것 같았다.
GM콜을 사용해서 대업적 오류를 제보하려 했는데, 내 앞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 위로 머리가 반짝반짝한 민머리 아저씨 한 명이 튀어나왔다.
그는 상당한 근육질이었는데 나는 이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세르찬?'
세르찬은 훗날 강남구 1번 관리자가 되는 인물이다.
열정이 매우 넘치고 관리자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
세르찬이 말했다.
"이 미친놈이 왜 여수까지 굴러들어왔어?"
"미친놈이라니? 초면 말이 너무 심하시네."
예전에는 나랑 제법 친하게 지냈었는데.
대뜸 미친놈이라니 황당했다.
"야이 미친놈아. 비상섬여는 도대체 어떻게 죽였냐?"
"방송으로 다 송출됐는데 못 봤냐?"
"말이 짧다?"
"너도 짧다?"
"이 새끼가……!"
나를 때리려는 듯 주먹을 들어 올렸으나 나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생긴 게 험악해서 그렇지 사실 쟤는 평화주의자이며 행정가다.
싸움도 잘 못 한다.
"기다려. SSF 스트리머, 김철수 맞지?"
역시 열정맨이다.
나는 그다지 유명한 스트리머도 아닌데, 나에 대해서 꽤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녀석은 엘튜브를 통해 내가 어떻게 비상섬여를 사냥했는지 확인했다.
"미친."
미친을 도대체 몇 번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냥해 버렸네."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냥하는 법도 있냐?"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미친놈아."
"자꾸 미친놈, 미친놈 하는데, 자꾸 그러면 듣는 미친놈 기분이 나쁘다?"
내가 본질적으로 미친놈이라는 사실은 잘 안다.
비상섬여랑 싸우는 그동안에는 엄청난 희열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나는 이성으로 나의 본능을 억누르는 중이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나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사회화 과정을 잘 거치고 있다.
그렇게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는데 자꾸 미친놈이라니까 기분이 나쁘다.
"하아. 너 대업적 획득했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GM콜 사용하려고 했다. 이거 왜 상세설명이 없어?"
그런데 내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리자 전용 비밀 전음이었다.
[관리자 전용, 비밀 전음 시스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전음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야, 잠깐만 방송 꺼라.
-왜?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 방송 중지에 따른 합당한 보상은 제시할 테니까, 일단 좀 꺼봐.
여수시를 관리하는 1번 GM 세르찬은 야근이 즐거운 타입의 관리자였다.
그는 자신이 맡게 된 '여수 시나리오'에 매우 큰 만족을 느꼈다.
시나리오 전면에 배치한 건 비상섬여였다.
'비상섬여 정도면 충분하겠지.'
바다라는 뚜렷한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지구라는 서버의 특성상, 과학문물이 상당히 발전한 곳이니 과학문물이 전혀 통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한 보호막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덩치가 커서 사람들의 기억에 잘 각인이 되어야 했으며, 인육을 즐겨서 지구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큰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해야 했다.
'이놈이 결국 전라남도의 플레이어들의 힘을 한 곳으로 집결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줄 거야.'
흐흐흐.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세르찬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놈이 잡히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럴 수는 없었다.
랭킹 보드를 참조해서 난이도를 설정했다.
현재 각 계열 최상위 랭커들의 레벨은 40대 후반 정도 된다.
전 세계적으로 범위를 넓혀도 레벨 50을 달성한 사람조차 거의 없다.
그 랭커들이 모조리 몰려와도 비상섬여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한 달 정도는 활약해 줘야 한다, 비상섬여.'
비상섬여가 사냥당할 거라는 예상은 일절 하지 않았다.
비상섬여가 최소 한 달 이상 멀쩡히 살아서 여수시를 활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다음 시나리오들을 짰다.
'수십 일 동안 여수를 절망에 빠뜨린 마물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낸 영웅들이 출현하게 되겠지.'
지구 서버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무척 낮다.
훗날, 서버 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시스템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인류는 절망하게 될 것이다.
지구의 인류에게는 희망이 필요했다.
'상부의 승인도 얻어놨으니.'
여수 시나리오는 결국 한국에 희망의 불씨를 일으켜줄 것이다.
위대한 영웅들의 탄생.
그것이 여수 시나리오가 가지는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세르찬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해당 시나리오는 거의 막바지 작업에 이르렀고, 세르찬은 관리자실에 앉아서 여수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던 중이었다.
삐이- 삐이-
강렬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뭐냐?'
그는 황급히 화면을 움직여 여수시를 모니터링했다.
'엥?'
믿을 수 없게도 한 플레이어가 비상섬여를 처치해 버렸다.
그는 책상을 쾅 내리치며 일어섰다.
"이런 씨X!!!"
지구 서버의 런칭 멤버로 선택된 이후, 그는 3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다.
이 프로젝트만 잘 성공하고 나면 조금 더 메이저급 관리자로 올라설 수 있다.
시스템에서 메이저급이라하면 보통 인구밀도가 높은 거대도시의 관리자라 할 수 있다.
세르찬이 노리고 있는 곳은 바로 강남구 GM이었다.
강남구 1번 GM 오무르가 얼마 후면 정년퇴임을 할 테고, 그러면 그쪽 TO가 한 자리 빌 테니까.
이번이 기회였다.
"비상섬여가 왜 죽어!!"
죽을 리 없는 마물을 세팅해놨는데 죽어버렸다.
그가 3년간 밤을 새우며 진행한 프로젝트는, '비상섬여가 최소 한 달 이상 생존하며 여수시를 유린한다'라는 대전제 아래 시작한다.
그런데 비상섬여가 증발했으니 그의 3년도 삭제된 셈이었다.
[대업적, '비상섬여 조기 척결'을 달성하였습니다.]
여수시 시나리오는 시스템이 자연적으로 생성시킨 자연 시나리오가 아니다.
시나리오에 투입된 GM들이 하나하나 개연성과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비상섬여가 빠르게 사냥되었을 경우도 가정해서 이름 정도는 언급해놓아야 상부 심사에 통과될 수 있다.
그래서 '비상섬여 조기 척결'이라는 대업적을 만들어 놓았었다.
(세르찬 입장에서는 이게 3년 전이라 잘 기억도 안 났다.)
다만 심사 통과를 위해 단어만 넣어놨을 뿐, 디테일은 정해놓은 것이 없었다.
그게 지금 세르찬이 황급히 차진혁을 찾은 이유였다.
-아, 그래서 이건 가짜 시나리오다?
-이 새끼야! 가짜라니! 내가 3년을 개고생해서 만든 건데!
차진혁은 턱을 매만졌다.
얘기를 듣고 나니 시야가 좀 투명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수 시나리오는 결국 최종적으로 영웅 플레이어를 탄생시키기 위한 GM들의 노력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얘를 사냥하고 나서 천재 특성을 획득했던 거구나.'
그리고 각 계열의 랭커들로 성장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여수 시나리오'라는 이름이 없었다.
'아마 진행하면서 이름이 바뀌었거나 했겠지.'
그리고 이 시나리오의 성공으로 인하여 결국 세르찬은 자기가 원했던 강남구 관리자로 파견될 수 있었고.
"그것참 안 됐네. 사정이 안타깝게 됐어."
"그렇지?"
"그런데 내가 알 바는 아닌 것 같아."
"……."
세르찬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차진혁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어찌 됐든 나는 대업적을 달성했는데, 보상이 없는 건 말이 안 되잖아."
"……필요한 걸 말해봐."
"원래 이 시나리오를 따라가다 얻게 되는 최종 보상이 뭔데?"
"그건 말해줄 수 없다."
그거 천재 특성이잖아?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차진혁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평소보다 머리가 훨씬 빠르게 돌아갔다.
'얘는 이 시나리오를 원래 궤도로 돌려놓기 위해서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거다.'
그렇다면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신비도 내어줄 수 있냐?"
"신비를 알아?"
"시스템에서도 정확히 규정짓지 못한 불가사의한 힘. 특성으로 분류되지 않았으나 특별한 권능을 행사하는 힘…… 이라고 미래일기에 적혀 있던데."
신비란 플레이어의 직업 등과는 상관없이 특정 조건을 통해 획득하게 되는 불가사의한 힘을 뜻한다.
이능을 발현한다는 점에서 스킬/특성과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꽤 존재했다.
스킬/특성과는 달리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힘이다.
이를테면 어떤 신비는 극심한 정신력 소모를 동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신비는 정신력 소모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혹은 같은 신비라 할지라도 어떨 때는 정신력 소모를 일으키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정신력 소모가 없기도 하다.
그도 아니면 사용자에 따라 정신력 소모의 유무가 갈리기도 한다.
효과가 오락가락하는 경우도 있고 쿨타임도 제멋대로인 경우도 있다.
반대로 어떤 신비는 스킬처럼 정형화된 권능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확히 이렇다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능.
다만, '신비'는 개인의 수련보다는 신비와 사용자의 선천적인 궁합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치겠군. 어떤 종류의 신비를 원하는데?"
마침 딱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해금술."
'해금술'이라는 직접적인 명칭을 언급하는 것은 약간 위험하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험을 무릅써야 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위험하다고 도전하지 않는 건 사나이가 아니지.'
"……그건 못 줘."
그럴 만했다.
왜냐하면 신비 '해금술'은 여수 지역에 딱 하나 숨겨져 있는 신비였으니까.
"싫으면 정식으로 시스템에 이의제기하고. 3년을 준비한 시나리오가 다 개박살 나도 난 몰라."
"야, 잠깐만.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나는 진짜 죽을 뻔했어. 나는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해냈는데, GM도 그에 합당한 건 내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
"……."
세르찬은 할 말을 잃었다.
"직접은 못 줘. 그건 상부의 상부까지 올라가야 겨우 결재 떨어질까 말까야. 나는 말단이라고."
"말단이 그렇게 큰 시나리오를 짜?"
"원래 그래! 깔때기 효과 모르냐? 결국 일은 막내가 다 해."
그는 억울해 보였다.
차진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는 법이다.
"사실은 그게 즐거운 거지?"
"……뭐?"
차진혁이 위험을 즐기는 것처럼, 세르찬도 자신에게 쏟아지는 일을 즐긴다.
미친놈은 미친놈을 알아보았다.
"그러니까 힘들다느니, 억울하다느니, 잡아떼지 마. 나는 내가 얻어야 할 보상을 얻어야겠어."
차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미 '잠재 스킬'을 통하여 가능성을 엿보았다.
'해금술은…… 내재된 재능과 능력들을 끌어내는 신비.'
해금술사 곽찬영이 지니고 있던 신비다.
아까도 말했듯, 신비는 사용자와의 궁합이 제일 중요한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해금술은 곽찬영과 궁합이 매우 좋았었다.
곽찬영은 그 힘을 가지고 비각성자들을 각성시키고, 각성자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었다.
플레이 초기, 그는 플레이어들의 구원자라고 불릴 만큼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했다.
'오픈 베타가 끝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각성자 사냥꾼에게 사냥당했지만.'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제 겨우 초보를 벗어난 플레이어를 사냥한다는 건 각성자 사냥꾼들에게도 매우 부담되는 일이다.
그들을 향한 여론이 지나치게 나빠지고, 그에 따라 그들의 운신 폭이 줄어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곽찬영을 사냥하여 '해금술'을 빼앗아 갔었다.
차진혁은 그 해금술을 원했다.
'해금술을 얻어서 나한테만 적용하면 돼. 어차피 우리 대화는 외부로 공개되지 않을 거고.'
잠재 스킬을 통해 확인했듯, 그에게는 이전 삶에서 획득했던 능력들을 다시금 각성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해금술을 사용하면 그 힘을 끌어낼 수 있다.
검왕으로서 단련해 왔던 힘을.
이게 가능해진다면,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물론 스트리머의 한계는 있겠지.'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딱 레벨 100까지만. 그때까지만 원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면…….'
그러면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그도 모르는 사이, 그의 얼굴이 미소가 만연했다.
너무 강해지면 안 된다는 '이성'은, 해금술 앞에 잠시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