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9화
강남구 1번 GM, 오무르는 오늘도 몸을 사렸다.
그가 몸을 사리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청담동의 최갑수 연금술사 공방을 찾는 것이었다.
'말상대만 하면 된다!'
그를 보필한다 하면 그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여기서 최갑수와 대화만 나누면, 그 어떤 사고를 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 일도 안 할 거니까.
그가 일을 안 하게 되면 강남구의 다른 관리자들이 조금 힘들어지긴 하겠지만 그도 젊을 때는 그랬다.
"허허, 왔는가?"
* * *
다행히 최갑수는 오무르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걸 좀 봐보게."
"오, 이게 무엇입니까?"
최갑수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SSF와 연동된 엘튜브에서 스트리밍되고 있는 1인칭 시점의 방송이었다.
'김철수 방송이겠지.'
그렇지만 모른 척했다.
때로는 알아도 모른 척, 반대로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할 때가 있다.
사실 그는 SSF에 관심이 없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로지 안전한 정년퇴직뿐이다.
일평생 SSF와 관련된 관리자 일만 해왔으니, 더 이상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았다.
"흥미로운 방송이군요. 혹시 김철수입니까?"
"그렇지."
최갑수는 오무르의 열띤 반응에 꽤 만족했다.
"비상섬여의 체액을 먹어서 확인하는 미친놈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게나 말입니다."
사실 저 부분은 오무르도 놀라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업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저걸 진짜 먹어서 몸으로 확인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해독제를 갖고 있다 해도, 굳이 독약을 퍼먹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지금 김철수 입장에서 그 해독제는 검증도 안 된 해독제이지 않은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스트리머가 솔로잉을 진행하는 컨셉의 플레이어들은 꽤 많았지?"
"예, 대부분 레벨 100 언저리에서 도태되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나는 저놈은 다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 정말입니까?"
오무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GM으로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
반짝 유망주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봤다.
김철수가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맞지만, 스트리머는 스트리머의 한계가 있다.
오무르는 김철수는 그리 롱런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놈이 사용하는 중계자의 시선, 아니, 이제 중계자의 시야이던가? 저게 일반적인 스트리머와는 완전히 다르지?"
"예. 상대의 스킬과 업적, 때로는 상대의 감정이나 상태까지도 읽어냅니다."
"현재 지구에서 그게 가능한 스트리머가 있나?"
"없습니다."
"나도 처음 보네. 하하하!"
최갑수는 김철수의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미친놈이 비상섬여를 공격하려 하는군."
그리고 얼마 후, 더 미친 짓이 시작되었다.
"아니? 적용업적을 왜 바꿔?"
차진혁이 비상섬여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던 까닭은 대업적, '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 효과 때문이었다.
그런데 차진혁은 해당 업적 대신, '올 클리어' 업적을 적용시켰다.
업적 효과는 '+1 속성 방어술'로서 레벨 50급 이하의 모든 타격, 체술계 공격에 완전 면역'이다.
어느새 오무르도 또한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 대만 제대로 걸려도 즉사일 텐데요."
SSF라면 넌덜머리 나는 오무르였지만 김철수의 방송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칫.'
차진혁은 몸을 비틀어 비상섬여의 발톱을 피해냈다.
비상섬여는 두꺼비 형상의 마물이면서, 손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려 있었다.
'아, 또 피했네.'
업적효과가 있어서 비상섬여의 일반 공격쯤은 얼마든지 무효화시킬 수 있지만 자꾸만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그만큼 비상섬여라는 마물이 가지는 살기가 날카롭다는 뜻이었다.
몸이 저절로 반응할 만큼.
'놈의 공격도 나한테 먹히지 않지만, 내 공격도 안 먹혀.'
차진혁의 검은 비상섬여의 보호막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레벨차이가 너무 현격해서 검결을 노리는 것도 소용없었다.
'기본 피지컬 차이가 너무 심해.'
만약 업적효과가 없었다면 진작에 비상섬여의 밥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
적어도 잠재 스킬 '예기'를 다시금 발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업적 효과 때문에 예전처럼 날카로운 감각이 살아나질 않았다.
잠재 스킬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한 각성 상태가 유지되어야 했다.
그래서 적용 업적을 바꿔버렸다.
[업적, '올 클리어(사러가 던전)'을 적용합니다.]
차진혁의 오른 손등에 검은색 각인이 돋아났다.
[업적 효과, '+1 속성 방어술'이 적용됩니다.]
"중계결계에 이 업적효과가 적용되면 레벨 50 이하의 모든 타격, 체술계 공격에 완전 면역 속성이 추가됩니다."
차진혁이 뒤로 몸을 던졌다.
세 바퀴나 몸을 회전시켜 비상섬여의 앞발을 피해냈다.
오른쪽 뺨이 불타듯 뜨거웠다.
피한다고 피했으나 발톱에 살짝 긁힌 모양이었다.
피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독이 있는 발톱에 당한 것치고는 커다란 부상은 아니었다.
"이렇듯, 부분적으로는 면역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차진혁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말을 하면서 플레이하기는 좀 어려울 거 같네요. 집중 좀 하겠습니다."
차진혁은 온몸의 감각을 끌어올렸다.
보다 진일보된 '중계자의 시야'가 비상섬여가 날아드는 방향과 경로를 읽어내고, 차진혁은 그것에 감각적으로 반응했다.
'반 발자국 옆으로 움직여서.'
다시금 아슬아슬하게 발톱을 피했다.
그와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벤다.'
깡!
비상섬여의 보호막에는 미세한 상처도 나지 않았다.
'강해.'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호흡이 차면 찰수록, 피가 들끓어 올랐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이 압박감과 긴장감이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래, 이거지.'
세포 하나하나가 눈을 뜨고 각성하는 것만 같은 이 고양감.
비상섬여라는 강력한 개체가 그의 감각을 계속해서 일깨웠다.
[잠재 스킬, '예기(銳氣)'가 생성되었습니다.]
'됐다!'
예기가 다시금 생성되었다.
차진혁의 검에 무형의 마력이 깃들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단순히 예기만으로는 비상섬여의 보호막을 뚫을 수 없다.
더 날카롭고 위협적인 기운이 필요했다.
차진혁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떠올렸다.
[잠재 스킬, '보다 예리하게'가 생성되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레벨 40, 50에 스킬을 획득한다.
스트리머 '김철수'는 레벨 40에 시간배율 촬영을, 그리고 레벨 50에는 시간배율 촬영을 강화하는 스킬을 익혔다.
스트리머 김철수가 레벨 50에 시간배율 촬영을 강화하는 힘을 얻은 것처럼.
마찬가지로 검술가 차진혁 또한 레벨 50에 예기를 강화하는 힘을 얻었다.
그게 바로 '보다 예리하게'였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극한의 긴장 상태에 접어들면, 그의 경험과 영혼에 각인되어 있던 능력이 '잠재 스킬'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차진혁의 검에 미세하게나마 보랏빛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비상섬여가 육중한 몸으로 차진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부딪친다면 어지간한 교통사고보다 훨씬 큰 충격이 밀려들 것이 뻔했다.
'슬쩍만 밀어내고.'
예전 트럭 교통사고를 막아냈던 것처럼.
슬쩍 몸을 비틀어 중계결계를 펼쳤다.
날아드는 비상섬여의 비행 방향을 슬쩍 밀어냈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중계자의 시야가 보여주는 '검결'을 따라.
'빠르게.'
그는 무아지경에 빠져 검을 휘둘렀다.
주인 없는 자동차와 부딪친 비상섬여는 몸을 일으켰다.
비상섬여의 등 뒤에서 증기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열 받았다는 뜻이지.'
조금만 더 자극하면 2페이즈에 돌입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차진혁이 검지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덤벼봐."
꾸에에엑!
비상섬여는 날개를 접은 채, 멧돼지처럼 차진혁을 향해 뛰었다.
파괴력은 더 커진 돌진이었으나 피하기는 더 수월했다.
차진혁은 마치 투우하듯 비상섬여의 돌진을 피해내며 비상섬여의 보호막을 계속해서 베어냈다.
'됐다!'
보호막이 드디어 파괴되었다.
이제는 본체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그의 온몸이 땀에 젖어 들었다.
'이거지.'
비상섬여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만큼, 차진혁의 몸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를 정도였다.
차진혁은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해내고 부득이 막아야 하는 공격은 중계결계를 활용하여 막아냈다.
그렇다고는 해도 피해가 없던 건 아니었다.
'왼쪽 어깨가 빠졌고.'
우드득.
이건 끼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갈비뼈 몇 대는 금이 간 거 같네.'
그래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으니 괜찮았다.
발톱에 긁힌 상처 곳곳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는 있었으나 독에 중독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다.
그에 반해 비상섬여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왼쪽 눈에 단도가 박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붉은색 증기가 뿜어진다.'
이제 몇 초 안 남았다.
2페이즈 돌입하면 비상섬여는 완전히 붉은 두꺼비로 변한다.
날개는 퇴화하고 몸집이 더 커지게 된다.
'레벨 +10 판정.'
비상섬여와 싸워보며 깨달았다.
2페이즈에 돌입한 비상섬여와 정면으로 싸워서는 답이 없었다.
'옛날 생각나네.'
예전에도 2페이즈에 돌입한 비상섬여 때문에 동료 한 명을 잃었었다.
그때는 정보가 없었으니까.
중계자의 시야가 정보를 전해주었다.
['비상섬여'가 '적색섬여'로 변화합니다.]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차진혁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호흡을 유지하느라 방송에 신경 쓰지는 못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뒤쪽에서 쿵! 쿵! 쿵! 소리가 들려왔다.
비상섬여, 아니 이제는 적색섬여가 된 거대 두꺼비가 이쪽을 향해 뛰었다.
한 번 도약에 몇 미터씩 거리를 좁혀왔다.
중계자의 시야가 놈의 스킬을 읽어냈다.
[스킬, '두꺼비 군단'이 사용되었습니다.]
꾸국- 꾸국-
주변에서 두꺼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기도 하다.'
작은 두꺼비들이었다.
자동차 사이사이에서, 건물 사이사이에서, 마치 좀비 떼처럼 두꺼비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차진혁의 앞, 뒤, 양, 옆을 포위한 두꺼비들이 차진혁을 향해 독액을 내뿜었다.
[업적, '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을 적용합니다.]
차진혁은 두꺼비 군단의 공격에는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모든 공격은 무효화 되기에.
'곧, 바다가 보인다.'
비상섬여는 지금 레벨에서 사냥할 수 없는 개체다.
검술가였어도 그건 불가능했다.
아니, 오히려 검술가였다면 이미 죽었을 것이었다.
쿵! 쿵! 쿵! 쿵!
적색섬여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소환된 두꺼비 군단이 오히려 적색섬여의 움직임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차진혁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무식하게 크네.'
작은 빌딩만 한 붉은 두꺼비가 쫓아왔다.
목숨을 건 술래잡기 같아서 즐거웠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차진혁이 빠르게 말했다.
"여수시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더군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는데,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은 괜찮았습니다. 비상섬여는 바닷가에 일정 거리 이상 접근하지 않았더라구요."
이는 이미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다'가 비상섬여의 약점이라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저는 놈을 바다로 유인해보려 합니다. 마침 약 500m 거리에 바다가 있거든요."
적색섬여의 눈이 붉게 변했다.
속도와 근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었다.
'전차처럼 나를 향해 뛰어오겠지.'
저렇게 변한 적색섬여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일종의 버서커 상태가 되어 버린다.
비상섬여일 때에는 얼씬조차 하지 않았던 바다이지만, 미쳐버린 적색섬여라면 얘기가 달랐다.
'사람이든, 마물이든, 미치면 안 돼.'
미치면 저 꼴이 된다.
적색섬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위압감이 어마어마한데.'
코끼리보다 더 큰 앞발을 휘둘렀다.
후웅!
파공성이 들려왔다.
'저건 일반공격이니까.'
레벨 100 이상 판정을 받기는 어려울 거다.
맞아주기로 했다.
'중계결계.'
좋은 타이밍에 중계결계를 사용하여 앞발 공격을 무효화시켰다.
"등신."
바다를 향해 뛰어들었다.
적색섬여를 비롯한 두꺼비 군단이 차진혁을 향해 돌진했다.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바닷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놈의 몸이 바닷물에 완전히 잠기다시피 했다.
흥분한 적색섬여는 차진혁을 향해 계속해서 앞발을 휘둘렀다.
그 사이, 적색섬여의 몸에서 붉은 증기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놈이 느려진다.'
그러나 적색섬여는 제 몸이 둔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적색섬여의 몸이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적색섬여가 비상섬여로 변화합니다.]
'됐다.'
지금의 비상섬여는 바닷물에 절여져서 날지 못한다.
바닷물에 피부가 모조리 녹아내려서 사냥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벨 수 있겠어.'
차진혁이 검을 수차례 휘둘렀다.
그의 검이 닿을 때마다, 비상섬여의 몸에서 녹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주변이 진녹색으로 물들었다.
비상섬여가 배를 뒤집어 깐 채 바닷물에 둥둥 떴다.
[비상섬여를 처치하였습니다.]
차진혁도 온몸에 녹색 피를 뒤집어썼다.
피범벅이 된 차진혁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후, 알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