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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48화 (48/437)

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8화

'집이 먼저 필요하잖아.'

예전 삶에서는 집이 필요 없었다.

정부에서 숙소를 제공해 줬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노숙했다.

그래야 시간을 아껴서 강한 마물과 싸울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나한테는 가족이 있고, 가족과 함께할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집 먼저 사자.'

이틀 뒤.

"이 집으로 할게요."

상태가 아주 좋은 신축 단독주택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다.

* * *

* * *

계약서에 사인까지 끝마쳤다.

어쩔 수 없이 은퇴를 미뤄야 할 것 같다.

원래 이 정도 벌었으면 바로 은퇴하려고 했었는데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이제 나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으니까.

집에 돌아오자 차진솔이 물었다.

"오빠, 왜 그렇게 신나 있어?"

"뭐가?"

"어릴 때 엄마 아빠 어디 나간다고 할 때 그 표정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

"그 왜, 어릴 때 엄빠 몰래 게임 할 때 그 표정."

"그런 거 아니다."

"아니긴 뭘, 내가 오빠를 몰라?"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천천히 잘 설명해 줬다.

나는 비전투계열 3등만 해서, 빨리 은퇴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인 사람인데.

플레이 시간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렇게 기쁠 리 없지 않은가.

"집을 사서 그래."

"지, 집을 샀다고? 무, 무슨 집?"

"잔금 치르고 보여줄게."

이사를 하기 전에 차진솔한테 먼저 보여줬다.

"미, 미친. 서울에 마당 딸린 단독주택이라니."

"신축이야."

이름난 건축가가 설계해서 지은 뒤 몇 개월 안 산 집인데, 집주인이 갑자기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나 뭐라나.

"오빠가 이걸 샀다고?"

"어."

"얼만데?"

"60억 정도."

"미친!"

차진솔은 속고만 살았는지 자꾸만 재차 확인했다.

진짜 집을 산 게 맞냐고 물었다.

부동산 계약서를 보여주고 나서야 차진솔은 나를 신뢰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나한테 물었다.

"오, 오빠 혼자 살 거야?"

"나 혼자 살 거면 그냥 노숙했……."

아니,

"이렇게 크고 좋은 집 필요 없지."

"그, 그럼 나 여기서 같이 살게 해줄 거야?"

"뭔 소리야? 애초에 같이 살려고 산 건데."

차진솔이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를 와락 끌어안으려고 하길래 나는 황급히 중계결계를 사용했다.

우리 사이에 투명한 결계가 생겼고, 물리적인 데미지는 없었다.

며칠 뒤 우리 가족은 이 집으로 이사했다.

엄마랑 아빠를 납득시키는 데 좀 힘들기는 했지만 내가 엄청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지원을 받았다고 둘러댔다.

별로 믿는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이런 집에서 살아보게 되다니……."

엄마의 반응은 날 아주 뿌듯하게 만들었다.

이전 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희열감이었다.

아빠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정원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돈 열심히 벌어야겠다.'

이만한 규모의 집을 유지하려면 돈도 많이 든다.

어쩔 수 없이 플레이를 좀 더 오래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전남길에 대해서도 미리 알아놔야겠어.'

우리 가족을 학살했던 연쇄살인마 전남길.

지금 시점에 플레이어로 각성했는지 각성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때 나는 이성을 잃고 그냥 죽여 버리기에 급급했었으니까.

임꺽정 사건 이후로, 송하영은 내 말을 무척 잘 들었다.

-전남길이요? 각성명이 연쇄살인마? 그딴 걸 각성명으로 하는 미친놈이 있어요? 알았어요, 일단 최대한 찾아볼게요.

나는 평소처럼 방송을 켰다.

"방어 특성이나 스킬 사용 시, 레벨 100 이하의 두꺼비류 마물의 모든 공격을 완전 무효화하는 업적을 획득했습니다."

예고편 영상을 찍는 중이다.

"김신원이라는 예언가가 올렸던 글 중에는 한국에 일어날 최초의 재앙이라는 내용이 있거든요."

김신원은 많은 것을 예언했다.

개중에는 여수에 나타날 '비상섬여'라는 마물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2022년 6월 초. 거대한 두꺼비 형상의 마물이 나타날 것이다."

비상섬여는 날개 달린 두꺼비 모습의 마물이다.

내 기억에 레벨은 80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인간의 터전에서 인간을 몰아낼 최초의 마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 된다.

비상섬여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잡아먹히고, 사람들은 결국 여수에서 도망치게 되니까.

이건 비단 여수에만 생길 문제는 아니고 앞으로 많이 벌어질 일이다.

인류와 마물은 끊임없이 영역을 두고 전쟁을 벌이게 되니까.

'괜히 수호수가 자라난 연희동이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곳이 되는 게 아니지.'

아, 참고로 군대도 소용없다.

제왕 두꺼비의 경우에서 봤듯, 일정 레벨 이상 넘어가는 마물에게는 특별한 보호막이 생긴다.

그 보호막은 현대무기를 무효화시킨다.

나중이 되면 또 그 보호막을 다시 무력화시키는 과학 무기들이 개발되기도 하기는 하는데, 아무튼 그건 먼 미래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잡았던 놈이네?'

너무 오래된 옛날이라 까먹고 있었는데 그놈 내가 회귀하기 전에 잡았던 놈이다.

돌이켜보니 그때도 죽을 뻔했다.

참고로 당시 내 레벨은 70 언저리였던 거 같다.

요 며칠 사이 레벨업을 조금 해서 내 레벨은 48이다.

"제가 한 번 잡아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드는데요."

이건 절대 내가 미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렇게 좋은 업적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활용 안 하는 게 아까워서 그런 거다.

'그놈이랑 싸우면 잠재스킬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을까?'

제왕 두꺼비와 싸우던 그 순간.

그때 나는 검왕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온전히 전투에만 집중했다.

칼날 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놈과 싸웠다.

그러다 보니 잠재 스킬 '예기'가 발동되었다.

전투가 끝나고 다시 확인해 보니 예기는 사라져 있었다.

'다시 끄집어내고 싶다.'

내 직업이 됐든 내 정신이 됐든, 어딘가에는 녹아 있다.

잠재스킬이 아니라 진짜 스킬로 자리매김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저레벨 스킬일 뿐이니까.'

아주 고레벨의 고위스킬이면 내가 이런 욕심도 안 낸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저레벨 스킬이니까 욕심내는 거다.

저레벨 때에만 이런 희열감과 직접 레이드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레벨 50까지만 만들고, 이후에 도전하겠습니다."

레벨 50이 되면, 레벨 40에 획득한 스킬이 강화된다.

시간배율 촬영을 강화하고 업적효과를 두르고 싸우면 비상섬여랑 충분히 싸워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야 정신을 좀 차렸다.

예전이었다면 그냥 무턱대고 가서 칼 뽑고 싸웠을 텐데 이제는 철저히 준비도 하고 계산도 한다.

많이 성장한 것 같아 약간 뿌듯하다.

'재미있겠다.'

결국 나는 레벨 50을 달성했다.

-여수시청 근처에 나타난 두꺼비 형태의 마물 비상섬여는……

-커다란 피해가 지속되고 있으며…….

뉴스에서는 연일 비상섬여에 대한 내용이 도배되었다.

비상섬여에 의해 수천 명의 사람이 죽었다.

수많은 사람이 여수에서 빠져나와 주변 도시로 도망쳤다.

김신원의 예언이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었는데, 그걸 믿고 미리 피신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나 뭐라나.

'미리 대피하라고 그렇게 방송을 해대고 경고를 해대도 안 가는 사람들 천치였는데 뭐.'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공무원 시절에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시민들을 상대하는 거였다.

마물들은 때려눕힐 수라도 있지, 아무튼 시민들 통제가 제일 어렵다.

지들 죽는다는데 기어이 음모론이니 뭐니 하면서 말 안 듣는 애들이 되게 많았었다.

나도 슬슬 여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레벨이 지나치게 높은 개체니까 저 혼자 가는 게 좋겠네요."

'아, 또 너무 기본적인 거라 놓쳤네.'

여수로 가는 대중교통이 모두 막혔다.

예전에는 이런 거 있으면 헬기 타고 가거나 차량을 제공해 줬었는데.

참고로 나는 지금 면허도 없다.

결국 나는 김정현을 호출해야만 했다.

"차 좀 태워줘."

"어디…… 가시게…… 요?"

"여수."

김정현이 눈을 크게 떴다.

"저도…… 같이 합니…… 까?"

"아니. 너무 위험해."

아니, 그렇게 위험한 놈이랑 싸우러 가는 건데.

안 껴준다고 아쉬운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얘도 확실히 미친놈이 틀림없다.

이런 놈들만 주변에 득실거렸으니 내가 내 스스로 이상한 걸 몰랐지.

내가 미쳐 있던 건 이런 애들 탓도 있다.

어쨌든 나는 김정현의 차를 얻어타고 여수까지 이동했다.

'와.'

겨우 레벨 80짜리 필드 마물 하나 때문에 이렇게 유령도시가 되어버리다니.

나는 김정현을 돌려보냈다.

군대의 무기가 별로 소용은 없다지만 그래도 군인들이 오가는 길목을 차단하고 시민 통제를 완벽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체계도 없는 모양이다.

'생각보다 더 엉망진창이네.'

내가 공무원이었던 시절에는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쉽게 여수에 진입할 수 있었다.

'으음.'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들도 보였다.

손에 아이템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플레이어인 모양이었다.

'나 말고도 미친놈들이 있구나.'

최근, 한 스카우터 계열의 플레이어가 비상섬여의 레벨은 약 80가량이다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참고로 그 플레이어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드론을 띄워 그 플레이어의 사망을 확인했는데, 그 플레이어는 웃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표정의 의미를 몰랐지만 나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현시대에 가장 강력한 마물의 레벨을 본인이 제일 먼저 확인해서 기쁜 것이 틀림없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미친놈들은 많다.

'어디 즈음에 있으려나.'

놈은 여수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약 3㎞ 정도를 제 생활권으로 한다.

여수시청 앞 로터리 부근이 놈의 서식처였는데 지금은 사냥을 나간 모양이었다.

"많은 시체가 쌓여 있네요.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쌓아 올린 거 같습니다. 마치 식료품 저장소처럼요."

나는 시체들에 가까이 다가갔다.

"상당히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이 냄새는 시체 특유의 냄새와 더불어, 비상섬여의 체액 때문이다.

중간중간, 드론이 날아다녔다.

괜히 내 얼굴이 노출되는 게 싫어서 '기만자의 가면'을 썼다.

"끈끈한 체액이 묻어 있는데 중계자의 시야로 살펴보겠습니다."

──────────

[비상섬여의 체액]

비상섬여의 체액.

생명체의 신경계를 마비시키는 독임과 동시에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

'중계자의 시야'는 내게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었다.

휘잉-

바람이 불어왔다.

찌그덕- 하고 너덜너덜해진 자동차 문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아, 기분 좋다.'

언제 비상섬여가 나타날지 모르겠는 이 긴장감.

이 기분 좋은 감각이 내 모든 신경을 일깨웠다.

"이 독을 직접 먹어보면서, 업적효과와 제 방어 특성이 잘 조합되는지 확인부터 해보겠습니다."

아마 그냥 먹으면 죽겠지.

직접 몸으로 먹어봐야 위력을 정확히 체감하고 싸울 때의 전략을 잘 짤 수 있다.

나는 중계결계를 사용하고서 업적효과를 활성화했다.

레벨 100 이하, 두꺼비류 마물의 모든 데미지를 무효화한다.

'예나 지금이나 마물들 체액은 역하네.'

꿀꺽.

삼켜봤다.

'과연?'

내 레벨은 50.

레벨 80짜리 마물의 체액이 내게는 당연히 치명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원래는 그렇다.

'괜찮다!'

중계결계와 업적효과의 시너지가 잘 나는 것 같다.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군요. 그렇지만 한 가지 사실은 깨달았습니다. 데미지가 작용하는 순간에 잘 맞춰서 중계결계를 사용해야만 하는 것 같군요. 타이밍이 무척 중요합니다."

중계결계가 만능은 아니다.

중계결계가 상시활성화되면 좋겠지만 지금 내 수준에서 그건 불가능한 일.

데미지가 작용하는 그 순간에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

그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추고 비상섬여의 공격을 받는 순간 나는 즉사할 거다.

'가슴이 간질간질하네.'

나는 비록 미친놈은 아니지만 이 긴장감이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일단은 시체 더미들 사이에 숨어보겠습니다. 놈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군요."

나는 시체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곳에서 3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해가 어둑어둑해질 무렵,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다.

소리도 나지 않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데 느껴지는 이 인기척 같은 감각.

'마물이다.'

비상섬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만치 멀리, 헬기 같은 것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LV83/비상섬여/스킬/여수시 시나리오의 첫 단추]

확실히 비상섬여였다.

입에는 사람이라 짐작되는 것들이 물려 있었다.

'여수시 시나리오?'

시나리오란 여러 갈래의 퀘스트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말하자면 대규모 스토리 퀘스트 같은 거다.

여수시 시나리오는 지금으로부터 2년은 지나야 생겨나는, 시 단위 퀘스트인데.

저게 왜 벌써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오래 생각할 수 없었다.

비상섬여가 착지해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강해.'

검왕 시절, 레벨 70에 겨우 사냥했던 놈이다.

'지금 내 레벨은 50.'

현 레벨에 사냥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그때보다 더 성장했다고 봐도 되겠지.

그때의 나를 이겨냈다고 볼 수 있겠지.

그 사실이 나를 몹시 흥분시켰다.

'좀 더.'

좀 더 다가와야 한다.

'좀 더.'

놈이 가까이 다가와 입에 물고 있던 시체 몇 구를 툭 던졌다.

'지금.'

내가 작게 말했다.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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