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7화
제왕 두꺼비가 물 위로 튀어올라 널따란 잎에 앉았다.
서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미친. 개 커."
제왕 두꺼비는 몸집이 상당했다.
어지간한 소보다 더욱 커다란 놈이었다.
차진혁은 아무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독이…… 생각보다 별로 효과가 없네?'
아무래도 제왕 두꺼비는 최갑수가 만들어준 독포션에 상당한 내성을 가진 것 같았다.
"일단 내가 어그로를 완벽히 잡을 때까지 다들 대기."
목재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아니라 형?'
* * *
언제나 목재현을 앞세웠었던 차진혁이다.
목재현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로 위험할 때에는 본인이 앞장서는 거구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약간 감동을 받았다.
차진혁이 말했다.
"혹시 내 중계결계가 뚫리면 그 다음은 네가 공격받아야 하니까 대기하고."
차진혁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즐거워 보였으나 목재현은 다르게 생각했다.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짓는 거야.'
나는 겁쟁이니까.
여기서 형이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나도 손발이 굳고 말 테니까.
'저 형은 진짜……!'
오늘 확실히 깨달았다.
여태까지 자신을 위기로 내몰았던 건 이유가 다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위기만 내게 던져줬던 거야.'
그 위기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모두 잘 헤쳐나왔다.
차진혁이 이번에 앞장서는 행동은, 목재현에게 많은 감명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이고. 결국 형이 내 대신 첫 어그로를 끈다는 거겠지.'
그의 특성, '대오각성'이 빛을 발했다.
보다 침착한 마음.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현 상황을 해석하고 이해했다.
'이건 저레벨이라서 가능한 거야. 형은 미래에 내가 가야 할 길을 또 알려주고 있는 거다.'
예전부터 그랬다.
차진혁은 늘 어른으로서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사이, 차진혁은 완벽하게 어그로를 끌어왔다.
제왕 두꺼비의 살기가 오로지 차진혁을 향했다.
'나 어그로에 진짜 재능있나 봐.'
딱히 대단한 스킬을 가진 것도 아니고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단도를 집어던졌을 뿐인데 어그로를 완벽히 끌어왔다.
목재현보다 훨씬 더 어그로를 잘 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계자의 시선.'
직접 전투에 나선 차진혁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독에 내성이 있는 제왕 두꺼비라.
이미 단도는 연못 안에 빠져 버렸고, 아까 중계상점에서 구매했던 철검을 휘둘렀다.
깡!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튀었다.
'보호막?'
과연 보스몬스터다웠다.
제왕 두꺼비는 강력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었는데 새로울 것은 아니었다.
미래에 나타날 대부분의 마물들은 모두 각자의 보호막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 순간, 제왕 두꺼비가 독액을 뿜었다.
몸을 뒤로 피하는 한편,
'중계결계.'
중계결계를 함께 사용했다.
파스슷!
독액과 닿은 중계결계가 녹아내렸다.
'조금 늦었으면 꽤 큰 화상을 입을 뻔했네.'
피하는 동작과 함께 중계결계를 사용해서 다행이었다.
둘 중 하나만 했더라면 큰 피해를 입을 뻔했다.
제왕 두꺼비의 양쪽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킬 사용이다.'
놈에게는 꽤 성가신 스킬이 하나 있었다.
허공에 수많은 지점에서 혓바닥이 튀어나온다.
황금 두꺼비 던전 1층과 비슷한 것들이 수십 개가 생겨나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스킬이었다.
중계자의 시선이 모두 읽어냈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첫 번째 공격은 모두 차진혁을 향했다.
7개의 혀가 투창처럼 차진혁에게 쏟아졌다.
'우와.'
차진혁은 7개의 설창 사이의 생로(生路)를 본능적으로 찾아냈다.
찰나의 시간 동안, 미묘한 틈을 읽어냈다.
극도의 긴장 상태 속에 새로운 길이 보였다.
그것은 차진혁의 특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특성, '중계자의 시선'이 강화됩니다.]
[특성, '중계자의 시야'로 상향조정됩니다.]
차진혁은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이 전투에 모든 감각과 신경을 집중했다.
'이거지.'
7개의 창을 피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로를 파악하고 안전한 곳에 먼저 가 있었다.
고레벨 마물이 아닌 만큼, 공격 자체가 그렇게 정교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보았을 때 그 모습은 마치 기예와도 같았다.
어지간하면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서지아가 "아……!" 하고 짧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서지아가 보기에 차진혁의 움직임은 예술의 경지였다.
차진혁은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중계자의 시야라.'
순간 보았다.
7개의 창이 어디로 날아올지.
아주 근소한 미래를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검왕 시절 가지고 있던 스킬, '초감각'과 매우 흡사했다.
아주 비슷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어디에 공격이 닿을지 보인다.'
다설창은 허공 곳곳에서 설창이 쏟아져 나오는 스킬.
다설창이 노리는 지점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그걸 읽어내니 창들을 피해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제왕 두꺼비는 약이 바짝 오른 모양새였다.
모든 공격이 차진혁에게 집중된 사이. 서지아/서지수가 제왕 두꺼비를 공격했다.
그러던 중 설창 하나가 서지아의 등을 꿰뚫었다.
"언니!"
서지수가 화들짝 놀라 소리치면서, 제왕 두꺼비가 서지수 쪽을 힐끗 쳐다봤다.
차진혁이 움찔했다.
'젠장!'
지금의 서지아나 서지수는 제왕 두꺼비의 공격을 감당할 방어력이 없다.
한 번 맞으면 중상 혹은 사망이다.
지금 서지아가 저렇게 된 것처럼.
'응?'
그런데 어그로가 빼앗기지 않았다.
제왕 두꺼비는 서지수에게 관심을 끈 채, 오로지 차진혁에게만 집중했다.
'잘됐네.'
놈의 방어막이 생각보다 너무 단단했다.
아무리 공격해도 깨지지 않았다.
차진혁이 제왕 두꺼비의 공격을 피해내며 겨우 접근하여 검을 휘둘러도, 결국 제왕 두꺼비는 독액을 분사해 차진혁을 밀어냈다.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목재현은 날카로운 기감을 유지하며 언제라도 수목산성을 펼칠 준비를 했다.
차진혁에게 큰 감명을 받은 목재현은 차진혁을 은연중에 닮아갔다.
"지수 누나. 호들갑 좀 떨지 마요. 레이드 중에 다치는 건 당연한 거잖아."
차진솔이 서지아의 부상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부상이 너무 심해서 바로 완쾌되지는 못했다.
서지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죽여 버릴 거야.'
그녀 또한 적극적으로 제왕 두꺼비 레이드에 참여했다.
그녀는 전투 센스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차진혁에게도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김정현의 체술 또한 제왕 두꺼비의 방어막에 나름대로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서지수와 김정현은 점차 지쳐갔다.
'방어막이 안 뚫려.'
'너무…… 강한…… 상대다.'
서지수와 김정현 모두, 아득한 벽을 느꼈다.
어쩌면 모두가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차진혁 또한 꽤 지쳤다.
'와, 이거 혼자 들어왔으면 죽었겠는데?'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쫀득한 긴장감이 차오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애써 이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제 그럴 단계는 벗어났고, 이성으로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잘 들어."
차진혁은 두꺼비의 독액을 피해내며 말했다.
"놈은 물에 들어가서 방어막을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졌어. 다들 눈치챘지?"
방어막이 어느 정도 부서졌다 싶으면 놈은 물 안으로 도망쳤다.
다시 튀어나왔을 때, 두꺼비의 방어막은 재생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방법은 두 가지야. 뭍으로 끌어내거나, 물로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죽여 버리거나."
그런데 지금 뭍으로 끌어내서 속박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가진 디버퍼나 저주술사가 없다.
차진혁은 결론을 내렸다.
"물로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죽인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서지수는 이미 체력적으로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
탈진하기 직전이었다.
"서지수는 뒤로 빠져. 김정현이랑 나랑 둘이 잡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빠지라면 빠져. 길게 설명할 여유 없으니까."
길게 설명할 여유는 없었다.
두꺼비 또한 약간 지친 상태다.
다설창의 빈도와 위력이 약간 줄어든 상태.
차진혁은 지금이 단 한 번뿐인 기회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정현. 저기, 내가 저기 아이템 설치한 곳 보이지?"
중계상점에서 구매한 '와드'라는 것이었다.
둥그런 구슬 형태, 반투명한 아이템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네."
"이후, 놈이 세 번째 스킬을 사용했을 때 저기로 움직여. 저곳에 창 두 개가 교차해서 쏟아질 거야. 그걸 몸으로 받아."
지금은 피해내고 공격하느라 공격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그러니 누군가가 공격을 대신 받아야 했다.
적어도 한 번은.
"서지수는 죽겠지만, 너는 안 죽겠지. 목재현은 너처럼 기민하게 움직일 수 없고."
그러니까 적임자는 김정현이다.
감각이 살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차진혁은 잽싸게 움직여 다설창을 모두 피해냈다.
"이 다음 공격."
김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진혁보다는 느리지만, 그래도 제법 빠른 움직임으로 차진혁이 정해준 위치로 뛰었다.
차진혁이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스킬, 다설창(多舌槍)을 사용합니다.]
푸욱!
푸욱!
X자로 교차된 다설창이 김정현의 몸을 꿰뚫었다.
"큭!"
척 봐도 중상이었다.
차진혁은 곧바로 두꺼비에게 접근했다.
김정현의 희생 덕택에 길이 완전히 열렸고, 공격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보인다.'
중계자의 시야는 보다 많은 것을 보여 주었다.
경험과 직관으로 알고 있던 검격의 결.
그것을 흐릿하게나마 점선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검왕 시절 가지고 있던 스킬, '검결'처럼.
'그러나 부족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서지아와 김정현은 전투 불능 상태.
둘을 치료하고 나면 차진솔도 지쳐서 더 이상 힐을 주기 어렵다.
'이번에 끝내야 하는데.'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기회에 반드시 놈을 죽여야 했다.
'반드시 베어내야 하는데.'
그는 오로지 이 상황에만 집중했다.
전신의 모든 감각이 자신과 두꺼비를 향했다.
그토록 바라왔던 이 피 끓는 전투가 그의 전신을 자극했다.
[잠재 스킬, '예기(銳氣)'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예기는 검술 계열 플레이어들이 레벨 40 때에 각성하는 스킬이었다.
많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잠재 스킬, 예기를 사용합니다.]
차진혁의 철검에 무형의 마력이 깃들었다.
날카로운 기운.
차진혁은 자신에게 보이는 검결을 따라 검을 휘둘렀다.
'방어막이 파괴됐다.'
제왕 두꺼비는 순간 당황한 것 같았다.
곧바로 물로 뛰어들려는 순간, 차진혁의 검이 제왕 두꺼비의 목을 베어버렸다.
어찌나 빠르게 검을 휘둘렀는지 허공에 푸른 잔상이 남았다.
[제왕 두꺼비를 처치하였습니다.]
['x7 잭팟 효과'가 적용됩니다.]
보호막이 굉장히 단단했으나 본체의 방어력은 보잘것없는 마물이었다.
"헉…… 헉……!"
제왕 두꺼비를 처치한 차진혁은 잎 위에 드러누웠다.
간만에 느끼는 탈력감이고, 간만에 느끼는 희열이었다.
'이거지.'
이게 레이드를 하는 참 맛이지.
마약보다 더한 쾌감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결국 차진혁 팀은 제왕 두꺼비를 처치하였고 모두 2레벨씩 상승했다.
[대업적, '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을 달성하였습니다.]
차진혁이 씨익 웃었다.
명예의 전당에 등록할 건 아니지만, 대업적을 이룩했을 때의 성취감은 무척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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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지름길과 숨겨진 제왕]
수없이 반복된 지름길의 틈 사이.
오랜 세월 교묘히 숨어 비상을 꿈꾸던 제왕을 사냥하였다.
비록 비상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가히 두꺼비들의 제왕이라 불릴 만했다.
업적효과 : 방어스킬/특성 사용 시, 레벨 100 이하, 두꺼비류 마물의 모든 공격 완전 무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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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화냐?'
레벨 100 이하 두꺼비류 마물의 모든 공격 완전 무효화라니.
'이게 있으면 그놈도 잡을 수 있겠는데?'
애초에 계획에 없던 놈이 하나 있다.
비상을 꿈꾸던 제왕들 중, 결국 비상에 성공하였다는 설정의 괴물이.
'과연, 내가 그놈을 잡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전력 자체는 내가 훨씬 약하겠지만, 이 업적 효과가 있으면 사냥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고.
'개설레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집으로 돌아온 차진혁은 통장잔고를 다시 확인해 봤다.
'내 계획보다 너무 빠른데?'
생각보다 큰 후원들.
그리고 10번의 황금 두꺼비 던전 클리어 및 7배의 잭팟 효과.
그 모든 것들이 더해지면 차진혁에게 주어진 현금은 약 80억 원.
이 정도면 연희동에 괜찮은 건물 하나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었다.
'아, 근데 생각해 보니까 건물주가 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네.'
너무 간단한 이치였는데 잊고 있던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