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그만 강해지고 싶다 46화
차진혁과 임꺽정 사이에는 사소한 인연이 있었다.
차진혁이 회귀 전까지 착용했던 아이템인 '베르클라프 목걸이'의 원주인이 임꺽정이었다.
'중간에 몇 번 주인이 바뀌기는 했지만.'
몇 명의 손을 거쳐 차진혁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베르클라프 목걸이를 제대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6가지 특별한 재료와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그 조건이 바로 제 주인의 피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치사량에 달하는 피를 먹이고 숙성 시켜야 하는 악랄한 조건이 붙어 있었다.
과거, 차진혁은 그 조건을 쉽게 해결했었다.
* * *
* * *
'애초에 임꺽정의 피를 머금고 있었으니까.'
서류로 접했던 내용들이 기억났다.
임꺽정은 플레이 초반 아주 반짝 활약했던 반짝 플레이어였다.
모든 계열에는 반짝 유망주가 존재한다.
초보 구간 혹은 중수구간까지 엄청난 기세로 성장하다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꺾여 버리고 마는 비운의 플레이어들.
임꺽정이 바로 그런 사례였다.
플레이 초반에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었는데 얼마 못 가 암살자한테 살해당한다.
그 암살자가 임꺽정에게 성폭행당했던 여자였다.
아무튼 그 때문에 베르클라프 목걸이는 임꺽정의 피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근데 지금 임꺽정의 피를 먹여도 되나?'
아무 피나 먹이면 안 된다
몇몇 업적을 이룩한 주인의 피여야 한다.
지금 시점의 임꺽정과 그때의 임꺽정은 다르다.
차진혁은 쓰러진 임꺽정을 살펴보았다.
겨우 목숨만 붙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 같았다.
[LV35/임꺽정/의적/스킬/칠음십살(七淫十殺)]
'칠음십살?'
플레이 초반인데 벌써 저 업적을 이룩했다.
도적/암살자 계열의 플레이어가 7명을 성폭행하고 10명을 살해한 플레이어가 얻을 수 있는 아주 질 나쁜 업적이었다.
'최소 삼음오살(三淫五殺) 이상이면 되잖아.'
차진혁은 컨테이너 내부를 슬쩍 살펴보았다.
놈의 피와 목걸이를 담을 적당한 크기의 용기가 필요했는데 없었다.
'중계상점 쓰면 또 개바가지 쓸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무려 50만 다이아를 주고 커다란 용기를 하나 구매했다.
그러고서 임꺽정에게 다가갔다.
임꺽정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
송하영이 더 놀랐다.
"뭐, 뭐하시게요?"
송하영은 임꺽정보다 차진혁이 더 두려웠다.
차진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임꺽정의 뒤통수에 꽂힌 단도를 슥- 꺼냈다.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차진혁은 플레이에 집중하느라 송하영의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신선한 피일수록 좋다고 했었지, 아마?'
송하영은 여전히 포박된 상태.
그 상태로 애벌레처럼 기어 차진혁과 멀어졌다.
"자, 잠깐만요, 뭐, 뭐, 뭘 하려는 거예요?"
'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송하영은 악마를 보았다.
차진혁의 도움으로 무사히 풀려난 송하영은 집으로 돌아와 몸을 벌벌 떨었다.
'피를 왜 받아?'
이상한 통을 하나 꺼내더니 거기에 피를 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걸 찍어 먹어보더니 퉤! 뱉었다.
신선하지 못하다나 뭐라나.
아무리 봐도 악마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가슴을 열어서…….'
송하영은 더 이상의 회상을 멈췄다.
너무 끔찍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뛰고 있는 심장을 손에 쥔 차진혁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이게 제일 신선하겠다."
목걸이를 그냥 회수하는 것도 아니고, 피와 심장을 같이 넣은 통에 담아서 회수하는 걸 목격했다.
그러고 나서 차진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송하영을 풀어주었다.
송하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 새끼는 침착하게 미친놈이야.'
기회를 봐서 이 긴고아를 빼내고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는데 그런 욕구마저 싹 달아났다.
카트리나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가져왔네!"
"하나는 제 거니까 제가 가졌습니다."
"그래. 고마워."
카트리나가 도둑맞았던 건 한 쌍의 베르클라프 목걸이.
그중 하나는 임꺽정의 피와 함께 숙성 중이다.
[퀘스트, '카트리나의 부탁'이 클리어되었습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그거 엄청 좋은 아이템이거든?"
"겉보기에는 별로 특별할 건 없던데요?"
"특정한 조건과 재료들을 갖추면 목걸이에 특별한 속성이 부여 돼."
[퀘스트 보상, '베르클라프 목걸이 연공법'이 주어집니다.]
카트리나가 내게 책자 하나를 건넸다.
"이게 초보 구간 서버에 풀려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상은 보상이니까."
"고맙습니다."
"오빠는 아직 잘 모르겠지. 이게 얼마나 좋은 보상인지."
"예, 뭐, 실감은 잘 안 나네요."
책자 안에는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이 적혀져 있겠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강화할 때,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지원팀의 안지원 씨가 말하던 카트리또가 맞는 거 같다.
"또 오겠습니다."
"그래, 오빠. 빈손으로 와도 좋아. 이왕이면 밤에."
"……."
"혹시 술 좋아해?"
나는 대답하지 않고 등을 돌려 걸어 나왔다.
쟤 말에 일일이 대꾸해 주다가는 끝이 없을 테니까.
나는 책자를 살펴보았다.
내가 완벽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아. 7일 이상 숙성해야 하는 거구나.'
하마터면 금방 뺄 뻔했다.
그리고 '*' 표시와 함께 추가사항이 적혀져 있었다.
[*주인의 심장과 함께 숙성하면 그 효과가 더욱 좋다.]
이건 순전히 운이었다.
나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제대로 된 공략을 완성해 가는 이 느낌은 플레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면 일단 황금 두꺼비 던전을 더 클리어해 볼까.'
나는 애들과 함께 황금 두꺼비 던전을 계속해서 도전했다.
첫 번째 클리어.
두 번째 클리어.
.
.
.
일곱 번째 클리어.
금괴를 계속해서 획득했다.
클리어 때마다 다르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4억 다이아 정도의 금괴를 얻고 있다.
"이 오빠, 수완이 굉장히 좋네? 나한테 장가올 생각 없어?"
카트리나의 수작질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딱히 대응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 잔고는 쌓여갔다.
그사이 내 레벨은 45가 되었다.
'이번이 열 번째 클리어.'
한 플레이어가 황금 두꺼비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건 열 번이 한계다.
좀 아쉽기는 했다.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이었으면 대충 400억은 벌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40억이 어디냐.'
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돈을 벌었다.
스트리머로 각성해서 내가 직접 여기를 이렇게 클리어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차진솔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네."
참고로 애들한테는 내가 얻는 보상의 10퍼센트가량을 보수로 지급하고 있다.
내가 얻은 것의 10퍼센트를 또 애들끼리 나누는 방식이다.
한 번 클리어할 때마다 대략 800만 원 정도를 가져간다.
"너무 아쉽다."
"정말…… 아쉽…… 군요."
"고, 고마워요 형. 형 덕분에 이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애들은 엄청나게 감격하고 좋아해서 악덕사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없었으면 여길 클리어하는 방법을 전혀 몰랐을 테니까 내가 많이 먹는 게 맞겠지.
10번째 클리어.
생성된 문을 향해 걸었다.
['황금 두꺼비 던전'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히든 피스, '최초의 10회 연속 클리어'를 만족하였습니다.]
순간 내 눈앞에 폭죽이 터졌다.
실제 폭죽은 아닌, 시스템 효과였다.
시스템이 굉장히 좋은 것을 보상으로 내려줄 때, 이런 이펙트가 생성된다.
'오?'
나도 모르는 내용이다.
누군가는 분명 여기를 최초로 10회 연속 클리어했을 텐데.
그 누군가는 이 히든피스의 내용에 대해 함구했었다.
반드시 함구로 해야 했을 만큼 좋은 것이었겠지.
[히든 보스룸, '제왕 두꺼비의 방'이 생성됩니다.]
아니, 잠깐만.
다시 생각해 보니 반드시 함구로 해야 했을 만큼 좋은 보물을 얻은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저기 들어갔다가 살아나오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반드시 한 명 이상은, 히든 보스룸에 입장하여야 합니다.]
저레벨 구간의 던전이라서 그런지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히든 보스룸에 입장한 플레이어는 반드시 제왕 두꺼비의 밥이 될 것입니다.]
[제왕 두꺼비의 레벨은 53입니다.]
[히든 보스룸에 입장한 플레이어에게는 'x7 잭팟 효과'가 주어집니다.]
[히든 보스룸에 입장하지 않은 플레이어에게는 'x2 효과'가 주어집니다.]
애들의 얼굴빛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목재현은 벌써부터 겁을 먹은 모양새였다.
"형…… 어, 어떡해요?"
차진솔은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서지아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침묵했고, 서지수는 약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서지수가 내게 물었다.
"반드시…… 한 명은 들어가야 한다는 거지?"
"그런 것 같네."
우리 앞에는 밖으로 나가는 출구 외에 또 다른 입구가 하나 생성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왕 두꺼비는 포악해집니다.]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김정현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엄청난 결단을 내린 모양이었다.
"제가…… 가겠…… 습니다."
누군가 한 명이 들어가야만 한다면, 자신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모양새여서 나는 기분이 좀 나빠졌다.
"왜 네가 들어가?"
x7배 잭팟이라니.
이건 아무리 봐도 내 건데.
"제가…… 제일……적임자…… 같습니다. 생존율도…… 제일 높을…… 테고요."
"뭔 소리야? 내가 해야지."
황금 두꺼비 던전을 열심히 클리어하는 동안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빠져 있었다.
황금 두꺼비를 사냥하는 것에 딱히 매력을 못 느껴서 그랬다.
그런데 그거 때문에 김정현이 약간 오해하는 모양이었다.
레벨이 좀 높아졌다고 김정현은 자기가 더 센 줄 아는 것 같다.
그냥 내버려 뒀다가는 새치기당할 거 같다.
"밖에서 보자."
나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차진솔이 울며 내 뒤를 따라왔다.
"오빠!!!"
"왜 우냐?"
"오빠가 왜 희생하는데?"
"희생? 무슨 희생?"
희생은 무슨.
지금 안 그래도 설레 죽겠구만.
"나는 플레이 방향을 이제 확실히 잡았거든."
레벨 100까지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딱 거기까지는 내 마음대로 플레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간다."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진솔이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오빠, 제발, 이러지 마."
"걱정 마. 7배 잭팟 먹고 살아서 돌아올 테니까."
"안 어울리게 무슨 멋있는 척인데!"
뭔 소리지?
멋있는 척 한 적 없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멋있나 보다.
'빨리 들어가고 싶다.'
오랜만에 제왕 두꺼비와 결투라니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린다.
그래도 레벨이 상당히 높은 녀석이니 나도 내 나름의 준비가 필요했다.
'중계상점.'
남들 앞에서는 단도만 썼다.
근데 이제 나 혼자고, 어차피 방송도 안 하고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해보기로 했다.
['강철검'을 구매하시겠습니까?]
현재 내 레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검을 구매했다.
아직까지는 전 직업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바가지를 엄청 씌우는 중계상점이라 무려 3,000만 다이아나 써야 했다.
성능에 비해 가격이 무지하게 비싸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 자체는 좋았다.
"다들 밖에서 기다려."
나는 설레는 가슴을 부여잡고 히든 보스룸과 이어지는 게이트로 향했다.
[히든 보스룸, '제왕 두꺼비의 방'에 입장합니다.]
필드가 변했다.
제왕 두꺼비의 방에 도착했다.
제법 큰 규모의 연못이 하나 보였다.
연못에는 꽤 넓적한 잎들이 둥둥 떠 있었다.
보글보글.
연못 안쪽에 기척이 있었다.
중계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니 제왕 두꺼비가 숨어 있었다.
'독약 풀까?'
연못에 풀면 꽤 효과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에이, 됐다.'
이왕에 강철검도 샀는데, 한바탕 숨 가쁜 결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잠도 잘 잤고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얼른 튀어나와…… 응?'
근데 보스룸 게이트가 일렁거렸다.
"오빠."
차진솔이 뒤따라 들어왔다.
'아…….'
김정현도 들어왔다.
'왜……?'
뒤이어 서둥이들과 서지수에게 헤드락을 잡힌 목재현도 들어왔다.
서지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같이한 정이 있지. 어떻게 혼자 보내겠어?"
망했다.
우리 사이에 이 정도의 전우애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신난 나머지 애들을 과소평가한 모양이다.
서지수가 내 속을 긁어댔다.
"왜? 너무 감동적이야?"
차진솔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는 절대 오빠를 바치고 혼자 살 생각이 없어."
하아.
얘네들 있으면 보호하면서 싸워야 하는데.
황급히 내가 가진 모든 독약을 연못에 풀어 넣어야만 했다.
젠장.
기껏 마음먹고 싸워보려고 했는데 오늘은 실패인 것 같다.